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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탐방] 랄리에 괜찮은 한국 식당 있나요? 서울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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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울가든에 갔을 때 격자무늬 창문을 보고 ‘오, 한국 느낌이다!’ 했는데, 대리석으로 된 식탁과 불판을 보는 순간 ‘와, 여기는 본격적인 한국 식당이구나!’ 싶었다. 가게 안팎의 인테리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음식도 좋아서 누구와 함께 가도 좋은 한국 식당이다.

그 동안 밥 먹으러 여러 번 가봤지만, 사장님 얼굴을 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LA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교회를 개척하시는 목사님과 다른 멤버들과 함께 랄리로 이사를 오게 되셨다고 한다.

30년 경력의 오너 쉐프
서울가든이 2007년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랄리에서 맛은 최고’, ‘손님이 오셨을 때 모시고 갈 만한 곳’, ‘음식도 깔끔하고 일하시는 분들까지 친절’ 이런 리뷰를 받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사장님을 뵙는 순간 바로 답이 나왔다. 30년 경력의 오너 쉐프 사장님이 주방을 책임지고 계시니 오랜 세월 변함 없는 음식맛을 유지하며 랄리의 대표적인 한국 식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사장님께 특별한 비법소스 가 있는지 여쭤보았더니, 음식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최상의 재료라고 하셨다. 그래서 서울가든은 식재료 공급업체를 다변화해서 고기, 생선, 야채, 양념 등 각 항목별로 최상의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첫번째 비법이라고 하셨다.

그에 더해 서울가든의 대표 메뉴인 갈비, 순두부, 매운탕 양념 등은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고, 특히 순두부는 순두부 전문점에 버금가는 레시피를 사용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여름에는 가끔 회냉면이 먹고 싶은데 서울가든 메뉴에 회냉면이 없어서 혹시 계절메뉴로 회냉면을 추가하실 계힉이 없으신지 여쭤보니, 회냉면에 들어가는 가오리회가 좀 질긴 편이어서 부드러운 재료를 이용한 회냉면 메뉴를 개발 중에 있다고 살짝 귀띔해 주셨다.

서울가든의 훌륭한 직원들
서울가든은 서버들이 참 친절한데, 특히 젊은 서버들은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고, 베테랑 왕언니들은 항상 친근하고 다정하게 손님들을 맞아주신다. 이렇게 훌륭한 직원들을 어떻게 구하시는지 여쭤보니, 여기에도 역시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좋은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직원용 숙소 3개를 제공한다고 하셨다. 직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여쭤보니 무려 25명! 큰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한국적인 맛과 멋으로
서울가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지 여쭤보니, 처음 식당을 오픈하고 KOREAN BBQ 불판을 설치하려고 했더니 시청에서는 불이 날까봐 위험하다며 허가를 안 해 줬다고 한다. 몇 번을 신청했다가 거절 당하기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한국인 며느리를 둔 미국인 할머니 건축가의 도움으로 1년 만에 겨우 BBQ 불판 6개를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10개를 신청했지만 그나마 6개라도 허가가 나서 너무나도 감사했다고 한다.

외국인 손님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보니 80%~90% 정도가 외국인 손님이라고 하셨다. 완전히 한국적인 맛과 분위기로 현지화에 성공하셨으니 사장님 내외분의 노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서울가든 내부 모습

손님들이 주로 어떤 칭찬을 많이 하냐고 여쭤보니, “에이, 식당에서 손님들한테 무슨 칭찬을 들어요. 불평 안 들으면 다행이지.” 하면서 웃으신다. 사장님 내외분이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청결인데, 아무리 깔끔하게 해도 실수가 있고, 작은 일도 인터넷에 올라간 순간 큰일처럼 보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본 반찬을 최대한 다채롭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재료비는 물론이고,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고 하셨다.

KOREAN BBQ 전문점 준비 중
사장님 내외분이 은퇴를 준비하시던 중, 둘째딸 내외가 식당을 물려받겠다고 해서 현재는 2세 경영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이다. 더불어 모리스빌에 3.5 에이커 부지를 구입해 넓은 주차장과 BBQ 테이블 약 50개를 완비한 서울가든 BBQ 전문점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하셨다. LA에 있는 큰딸 사위가 건축가로서 공사 일체를 담당하고, 사장님이 메뉴를 구상해서 한국 음식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 될 수 있도록 야심차게 준비 중이라고 한다. 올해 연말부터 건축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 중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국 음식점으로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뷰] 그동안 받은 덕 나누며 살고 싶은 유충현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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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전 랄리한인회 회장님은 동네 착한 형이나 오빠 같은, 사람 좋은 인상에 선한 미소를 가진 분이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말씀도 차분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힘 닿는 한 적극 도와 주시고, 때로는 크게 밀어주신다. 슬림한 체형에 키가 약간 크셔서 동화책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분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강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유회장님은 그런 통념을 뒤집으며 세탁업계의 숨은 대부가 되셨다. 그래서 KORAN LIFE가 유충현 회장님을 만나 유회장님의 인생 스토리와 사업성공의 비결을 들어 보았다.

농사를 물려받은 셋째 아들
유충현 회장님은 유관순 열사가 살던 천안의 시골 마을에서 7남매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오니 아버지께서 중대 발표를 하셨다. 아들 넷 중에 첫째와 둘째는 이미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막내는 아직 어리니 셋째인 너에게 농사를 물려주겠다는 말씀이셨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1년간 농사를 지은 결과 자신은 농사 체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사업자금을 받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없는 젊은이에게 사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과 미국 이민
그러다가 중매로 옥자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끼며 사랑을 꽃피우고 결혼을 해서 예쁜 두 딸을 낳았다. 당시 처가댁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미국 이민을 계속 저울질하다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미국에 도착한 것이 1984년 7월 4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랄리는 너무 시골이어서 도로들이 모두 2차선이고 그나마 차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이 없어서 살기도 불편했다. 그래서 한인들이 많은 뉴저지로 가서 6년 정도 살다가 세탁소를 열기로 결정하고 다시 랄리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상가 렌트비가 많이 오르고, 중동 사람들이 세탁업에 진출하면서 반값도 아닌 1/3 가격으로 비지니스를 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도 떨어지지만, 당시만 해도 세탁업은 백인과 한인들뿐이어서 경쟁도 없고 일감도 많았다.

사업가의 안목
처음 옥자씨와 세탁소를 시작했을 때는 너무 일이 많아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고 2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새벽 6시부터 나와 일을 하는 날이 많았다. 아름답고 상냥한 옥자씨가 카운터를 맡고 있으니 손님도 나날이 늘고, 돈 버는 재미에 몸은 힘들어도 일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면서 2호점부터 차례로 오픈을 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새 매장을 오픈할 때가 되면 마치 우연처럼 쇼핑센터들에서 연락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받고 가서 쇼핑센터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면 1년 매출액이 거의 정확하게 예측이 되어서 실패 없이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매니저를 맡은 분들도 20년 이상 내 일처럼, 가족처럼 일해 주셔서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늘이 주신 인덕 나누며 살기
유회장님은 그것을 하늘이 주신 ‘인덕’이라고 표현했다. 젊은 시절 옥자씨와 함께 열심히 일했고, 사업가로서 로케이션을 보는 남다른 안목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늘이 주신 우연 같은 기회들과 내 일처럼 성실하게 일해 준 분들의 인덕이 사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유회장님은 이제 딸들도 모두 출가해서 잘 살고 있고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으니 지금까지 받은 덕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1년이 다 되도록 공석으로 비어 있던 한인회장 자리를 맡은 것도 그런 맥락이었고, 한국 전쟁 참전 베테랑들과 그 가족분들을 초대해 사비로 위로잔치를 열어 드린 것도 그런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한국에 자주 나갔는데,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80 넘은 할머니가 시장 카트에 폐지를 싣고 기우뚱 기우뚱 가시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됐다고 한다. 그걸 팔아 하루에 3천원을 번다는 말씀을 듣고 “어르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하며 100불씩 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시적인 도움보다 장애나 집안에 다른 어려운 사정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장기적으로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내가 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봉사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유회장님의 조용한 미소가 마음에 따듯하게 남는다.

[상법 칼럼] 상가 임대계약서(Lease)에 싸인하기 전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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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변호사

지난 호에서는 보증인(guarantor)과 옵션 조항 일부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옵션 조항에 대해서 더 설명 드리겠다.

옵션(Option) 조항
옵션 조항에 있어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중요한 부분이니 짚고 넘어가 보자.
김씨가 가게를 인수하려고 2018년 7월 1일에 랜드로드를 만나 리스에 대해 문의하였다. 랜드로드는 5년짜리 옵션이 2개가 있으니 지금부터 11년이 남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날짜를 물으니, 현재 리스는 2019년 6월 30일에 끝나고 2019년 7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1차 옵션, 2024년 7월 1일부터 2029년 6월 30일까지 2차 옵션이 있다고 했다.

단순 논리로 보자면 김씨가 지금 가게를 인수하면 그 가게에서 11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순수한 리스가 11년 남아 있다는 것과 순수한 리스 1년에 5년짜리 옵션 2개를 합쳐 11년이 있다는 것은 세입자에게는 법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순수한 리스 기간과 옵션의 차이
우선 11년 순수한 리스는 세입자가 리스 계약상 디폴트를 하지만 않으면 11년 동안 그 가게에서 영업을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리스가 남아 있는 동안에 언제라도 가게를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위 2개의 옵션이 있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제한이 있다.

우선 김씨는 2018년 7월 1일에 가게를 인수하고 옵션을 행사하려면 옵션 조항에 적혀 있는 옵션 행사 방법을 준수해야 한다. 만약 김씨가 옵션 행사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최악의 경우, 랜드로드가 리스 계약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김씨는 가게 인수한지 1년만에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또한 리스 계약상 랜드로드가 옵션 행사를 승인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을 경우, 마찬가지로 김씨는 1년만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이와 같은 옵션과 순수한 리스의차이가 있기 때문에 순수한 리스 기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후에 추가로 옵션을 길게 받을수록 유리하다.

옵션 행사 조건
이제부터 옵션 조항 중 주의할 사항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크게 보아 옵션 조항은 옵션을 행사하려면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건과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으로 나뉜다.

우선 옵션을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건부터 살펴보자. 먼저 세입자는 랜드로드에게 몇월 몇일까지 서면으로 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몇월 몇일까지가 옵션 시작일로부터 무려 6개월 전(180일 내지 240일)이다. 그래서 그 날짜를 신경써서 기억하지 않으면 깜박 지나가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스가 2019년 6월 30일에 종료되고 5년 옵션이 그 해 7월 1일 시작된다고 하자. 그런데 리스 계약서에 옵션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옵션 시작 6개월 전까지 서면으로 통보하라는 조항이 있으면 세입자는 최소한 2018년 12월 31일까지는 통보를 해야 한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는 리스 계약서에서 요구하는 우편물 방식(예를 들면, 등기우편)을 이용해 통보해야 한다.

옵션 행사 자격
다음은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살펴 보자. 일반적으로 렌트비를 제대로 내면 자동적으로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 동안 리스 계약상 디폴트가 없어야 하고 모든 리스 계약을 준수했어야 한다.

그런데 랜드로드 입장에서 최대한의 렌트비 수익을 얻기 위해 옵션 행사 조건을 까다롭게 요구할 수도 있다. 만약 렌트비가 많이 오른 건물이라면 랜드로드는 옵션 행사 시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리스를 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옵션 행사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서 옵션을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리스에 랜드로드가 자의적으로 옵션을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옵션 조항에 “option is subject to landlord’s acceptance and approval is not granted automatically…” (옵션은 랜드로드가 수락하는 조건이지 자동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항목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랜드로드가 세입자의 옵션 행사 요청을 구체적으로 어떨 때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혹시라도 이와 같은 불명확한 옵션 조항이 있다면 랜드로드와 협상할 때 이 부분을 명확하게 수정해야 한다.

반드시 사전 검토 필요
리스 계약서도 일반적인 다른 상거래와 마찬가지로 세입자와 랜드로드 사이의 사적인 계약서이기 때문에 랜드로드가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옵션 조항에 추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한인 1세들에게는 깨알 같은 글씨로 생소한 각종 법률 용어를 영어로 수십 페이지를 읽고 문제점을 찾아내기란 참으로 힘든 노릇이다. 더구나 렌트비는 가게 운영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다. 하나의 가게에 가족의 생계가 걸린 경우도 많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중요한 계약서인 리스에 서명하기 전에 가능한 한 변호사에게 검토를 의뢰하여 세입자로서 최대한 권익을 보호하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랜드로드에게 정당하게 수정을 요구하도록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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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법률 칼럼] 여행 중 렌트카 사고 처리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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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변호사

지난 호에서는 본인 보험회사에 신고하는 상항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독자가 질문해 주신 여행 중 렌터카 이용시 사고 처리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렌터카를 사용하는 경우

렌터카는 주로 비행기 여행을 하거나 자동차 사고로 인해 내 차를 운행할 수 없을 때 사용하게 된다. 먼저 자신의 자동차 보험에 렌터카 혜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보험증권의 Policy Declarations 페이지를 보면 된다. 이 페이지에 Transportation Expenses가 있으면 렌터카 혜택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렌터카 혜택은 $30 per day to maximum $900라는 형식으로 쓰여 있는데, 이것은 하루 $30씩 30일간 렌터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본인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본인 보험으로 렌터카를 이용해야겠지만, 만약 상대방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상대방 보험사가 제공하는 렌터카를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 보험사의 책임 인정이 늦어지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본인 보험이 제공하는 렌터카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비용에 대해서는 먼저 본인 보험사가 렌터카를 주선해 준 후, 차후에 상대방 보험사로부터 그 비용을 받아 간다.

내 보험의 렌터카 관련 조항
이어서 독자분이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분들이 여행을 떠나는데, 내 자동차 보험으로 레터카가 커버되는지, 만약 된다면 어떤 조항에 의거해 커버가 되는지 질문하셨다. 이 부분은 다른 분들도 알아 두시면 좋을 것 같아 여기에서 설명을 드린다.

자동차를 렌트하는 경우 렌터카 회사는 필수적으로 렌터카 보험과 관련하여 본인 보험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보험을 구입할 것인지 질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가로 렌터카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기 위해 본인 보험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내 보험증서의 어느 부분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본인 자동차가 사고로 인해 운행을 못하게 된 경우,

둘째는 여행지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경우이다.
사고로 인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경우, 이와 관련된 렌터카 조항은 보험증서의 정의(Definitions) 부분에 있다. 여행지 렌터카 조항은 Part A – Liability Coverage의 Insuring Agreement(보험 계약)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다.

Insuring Agreement:
We will pay damages for bodily injury or property damage for which any insured becomes legally responsible because of an auto accident… (우리는 피보험자가 사고로 인하여 법적인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부상과 재산 피해에 대하여 보상한다).

“Isured” as used in this Part means (“피보험자”의 의미):
1. You or any family member for the ownership, maintenance or use of any auto or trailer. (어떠한 자동차나 트레일러의 소유, 유지, 사용과 관련된 당신 또는 당신의 모든 가족)
2. Any person using your covered auto. (당신의 보험 가입된 자동차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

DEFINITIONS (정의)
“Your covered auto” means:
4. Any auto or trailer not owned by you while used as a temporary substitute… because of its:
a. breakdown;
b. repair;
c. servicing;
d. loss; or
e. destruction.
(당신의 보험 가입된 자동차란 고장, 수리, 서비스, 분실, 파손으로 인하여 임시로 사용되는 당신이 소유하지 않은 자동차를 의미한다.)

이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여행지에서 사용하는 렌터카에 대해 본인 보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위 Insuring Agreement(보험 계약)의 “피보험자”의 정의 때문이다. 위에서 피보험자는 어떠한 자동차를 사용하는 당신 또는 당신 가족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렌터카를 사용하는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은 피보험자로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가 보상을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렌터카에 대해 커버를 해 준다는 내용은 위 “Your covered auto”(당신의 보험 가입된 자동차) 정의에 해당된다. 즉 사고가 발생하여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렌트를 하는 자동차는 your covered auto의 정의에 포함된다. 또한 Insuring Agreement의 피보험자란 your covered auto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에 피보험자가 사고가 발생하여 your covered auto인 렌터카를 사용하면 보험으로 커버가 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호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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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칼럼] 한인들은 미국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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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우리 자신과 다른 민족들을 부르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이제는 우리 한인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인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한인들은 미국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많은 한인 1세들이 현지인들을 부를 때 ‘미국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백인을 표현할 때는 ‘미국 사람’, 중남미 사람들은 ‘스페니쉬’,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은 ‘흑인’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맨 처음 이민 온 유럽 백인들만 ‘미국 사람’이고, 한인들을 포함한 다른 민족은 다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은 운 좋은 이민자’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옳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자신과 2세들에게 매우 큰 해악을 끼친다.

굳이 이민의 선후를 따지자면 미국의 원래 주인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고, 그들은 1만 2천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온 아시아인들이다. 500여년 전에 미국을 발견한 콜럼버스보다 1만년 앞서 미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원래 ‘미국 사람’이고 ‘주인’인가?

또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미국 사람’이라는 말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에서 미국 국민으로 살면서도 우리 스스로 ‘미국의 이민자’ 내지 ‘임시 방문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2세들까지도 그 생각을 물려 받을 수 있다. ‘너는 아시아인이니까 미국 사람들에게 차별 받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조언도 때로는 2세들에게 ‘나는 반쪽짜리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각자가 ‘나는 이 나라 미국의 온전한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자국민의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한국도 제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100% 한국 사람이면서 동시에 100% 미국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영어로 Korean-American이 아닌가. 한인들도 American, 즉 미국 사람이며 미국의 온전한 주인이다. 1세들은 물론,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은 더더욱 미국 사람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인 우리가 인종 때문에 차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똑같은 미국 사람으로서 그것을 조심하고 감내할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해 우리 한인들은 미국의 ‘주인’으로서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에게 합당한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마치 ‘발언권이 없는 손님’의 태도로 ‘미국의 주인’들이 알아서 잘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미국의 주인이다. 주인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곧 미국의 평화와 직결되니, 이는 곧 100% 한국인이자 100% 미국인으로서 가장 공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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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캐롤라이나 강연회 및 북콘서트 – 8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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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17일(금) 저녁 6시에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에 소재한 원불교 NC교당에서 명진 스님 캐롤라이나 강연회 및 북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 캐롤라이나 지역에 귀한 손님이 오시니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지면을 통해 명진 스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명진 스님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봉은사의 주지로서 국가 권력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불의를 비판해 오신 대표적인 사회 참여 승려이다.

명진 스님은 1950년 생으로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스님들도 반드시 군대에 가야 했던 시절이어서 월남전 당시 군생활을 하게 된 명진 스님은 맹호부대원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다.
1969년, 19세의 나이에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하였고, 1998년~2005년까지 봉은사 선원장, 2006년~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로 재직했다. 봉은사 주지로 재직하는 동안 사찰 재정 공개를 시행하였고, 1,000일 기도를 완성함으로써 오늘날의 그 유명한 봉은사를 만든 주인공이다.
2010년 명진 스님이 정권에 의해 봉은사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은 당시 한국에서 아주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명진 스님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출처: 2010년 3월 23일자 시사IN, 2010년 3월 21일 명진 스님 봉은사 일요법회 법문 전문(출처: <불교포커스>)]

“먼저 법회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야 하는데 오늘은 부처님의 법이 아닌 세간의 시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신도님들과 사부대중에게 저의 부덕한 소치로 그 동안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봉은사 부처님께도 참회를 올린다. (중략)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해인사로 출가해 성철 스님 문하에서 1년 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법주사로 출가했다. 걸망을 지고 이 선방 저 선방으로 돌아다니다 86년도에 해인사 승려대회를 계기로 사회와 종단의 여러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중략)

94년 종단개혁 때 제가 부처님께 가사를 바치며 이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중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종단의 개혁이 성공했다. 형식적으로는. 지금의 종헌종법도 개혁회의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 뒤로 선방에서 남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됐다. (중략)

그때 품은 뜻은 94년에 이루고자 했던 개혁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 종단개혁이 법안을 바꾸고 종헌종법을 바꾸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부처님의 법대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절을 만든다면 종단이 바뀌지 않겠나 하는 원력을 세우고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기도 시작할 때 신도님들이 믿지 않았다. 100일 지나도 믿지 않았고, 200일 지나도 믿지 않았다. 300일째 되니까 정말 기도하는 건가 생각했다. 500일째 되는 날 신도님들에게 3배를 올렸다. 만약 제가 혼자 기도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다. 여러 신도님들이 바라보고 기대하는 그 마음을 생각했다. 중노릇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구나 느꼈다.

봉은사가 재정을 공개할 때 재정의 투명성을 분명히 하면 신도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단에서 ‘저렇게 잘 되니까 우리가 직영해야겠다’고 나올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략)

2009년 11월 5일 총무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11월 20일경 김모 거사가 나를 찾아왔다. 자승 원장과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이 같이 자리를 했는데, 안상수 의원이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잣절 주지를 그냥 놔둘 수 있느냐”고 했다. 그리고 용산참사에 1억 전달한 것을 두고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단다. (중략)

이후 조계종 총무원은 2010년 11월 9일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고, 명진 스님은 봉은사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 2017년 4월 대한불교 조계종이 언론 인터뷰와 법회 등에서 종단과 총무원 집행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종단의 위상과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명진 스님의 승적을 박탈했다. 이에 수많은 종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승적 박탈 철회를 요구했지만 명진 스님은 재심 요청을 하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길거리로 나와 법회를 열었다. 명진 스님은 옳은 길을 가며 스스로 성찰하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명진 스님 캐롤라이나 강연회 및 북 콘서트, 08-17-2018

[유머경영] 최규상의 유머경영 칼럼 4

최규상 유머경영연구소 소장
humorcenter@naver.com

유머를 통해 고객 행복 가치를 생산하도록 돕는 유머경영 컨설턴트. “유머는 돈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고객을 웃게 하는 실천적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최초의 비즈니스 유머포럼인 “희희덕 유머포럼”을 운영하면서 기업체에서 비즈니스 유머 강의와 유머경영 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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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경영] 최규상의 유머경영 칼럼 3

최규상 유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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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탐방] 더램의 깔끔한 한식당, 빛고을 순두부!

 

빛고을 순두부집의 첫인상은 깔끔하다. 매장 분위기도 깔끔하고, 식탁도 깔끔하고, 화장실도 매우 깔끔하다. 빛고을 식당에 처음 갔을 때 손 씻으러 갔던 남편이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다며 감탄할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장님 얼굴을 보면 ‘나, 깔끔한 사람’이라고 써 있다. 이 가게를 처음 인수했을 때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홀과 화장실을 비롯해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다 새로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음식하는 사람은 외양도 깔끔해야 한다며 항상 세련되고 준비된 모습으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신다.

작은 음식점은 매장 분위기부터 음식맛까지 모두 주인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빛고을 순두부의 밑반찬은 딱 보는 순간 신선한 느낌이 든다. 사장님이 김치와 밑반찬을 매일 새로 만드시는데, 어떤 것은 음식을 내기 직전에 바로 무쳐서 나온다. 어느 날은 겉절이가 정말 생생해서 비결이 뭐냐고 여쭤 보니 소량씩 바로바로 무쳐서 낸다고 하셨다. 그때가 저녁식사 시간이었는데, 한창 바쁠 시간에 겉절이를 소량씩 무쳐 내는 정성과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참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이름이 빛고을 순두부집이라 순두부 메뉴를 시키려고 보니, 순두부 종류가 무려 12가지나 된다. 순두부는 여태 고기맛, 해물맛, 야채맛 이렇게 3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곱창 순두부, 된장 순두부, 국수 순두부, 만두 순두부… 신기한 메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중에 제일 탐나는 메뉴는 바로 섞어 순두부! 새우, 조개, 쇠고기가 들어가 바다와 육지의 조화를 한 그릇으로 맛볼 수 있다. 큼직한 왕새우들이 들어 있어 보기에도 아주 먹음직하다. 뚝배기 끝까지 넘실넘실하는 찌개 양을 보고 이걸 다 먹을 수 있겠나 싶었지만, 밑반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다 비우고 겉절이는 리필까지 해서 먹었다.

두 번째 갔을 때 시도한 메뉴는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고 고른 불낙전골이었다. 다른 메뉴들은 집에서 흉내라도 내 볼 수 있는데, 전골류는 아예 엄두가 안 나서 나에게는 한국 식당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특별 메뉴이다. 그런데 전골의 육수가 기대 이상으로 참 맛있었다. 그래서 어떤 육수를 쓰시냐고 여쭤 보니 갈비탕 육수를 내서 쓰신다고 하셨다. 아, 역시 우리 음식에는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야 이런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손님들은 한국 사람보다는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같은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갈 때마다 옆 테이블에서 외국어를 하는 아시아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일본인 직장인 그룹이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이 그분들과 일본어로 얘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화하시는 걸 보니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다음에 가면 국수 순두부나 쭈꾸미국수볶음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한번도 안 먹어본 메뉴를 시도하면 성공보다는 실패한 경험이 더 많아서 점점 익숙한 메뉴만 찾게 되는데, 빛고을 식당에서는 새로운 메뉴를 시켜도 사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주실 것 같은 안도감이 생긴다.

인터넷에서 빛고을 식당 리뷰와 평점을 살펴 보니 10년 전에 올라온 악플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고, 양도 적고, 미원맛이 나고, 비싸고, 한국 식당 특유의 인심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장님이 바뀌었지만 예전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과거 고객들의 리뷰와 평점이 섞여 있어 지금 빛고을 순두부의 평점을 깎아 먹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의 빛고을 순두부 사장님과 스탭들은 아주 친절하고, 음식 양도 많고, 음식맛도 깔끔하며, 가격도 다른 한식당과 비슷하다. 한국 식당 특유의 인심?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오히려 한국 손님들이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말만 잘하면 순두부에 작은 새우 한 마리는 더 넣어 주시니 안심하고 찾아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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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탐방] 그린스보로에서 찾은 한국적인 맛, 단지

 

그린스보로는 샬롯, 랄리에 이어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그 덕분에 일찍부터 한국식품점 Super Gmart가 자리를 잡았고, 그 주변으로 한인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떡집, 노래방, 간판집, 미용실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데, 당연히 식당도 몇 군데 있다. 그 중에 이름이 가장 다정하게 느껴지는 ‘다사랑’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전에도 한두 번 들러서 서로 안면이 있는 카운터 이모님이 밝은 표정으로 맞아 주셨다. 여기서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 메뉴를 찬찬히 보니, 메뉴판에 적힌 이름이 ‘다사랑’이 아니라, ‘단지(Danji)’였다. 이모님께 여쭤 보니 사장님이 바뀌면서 식당 이름이 ‘단지’로 바뀌었는데, 외부 간판은 그대로 두어서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을 것 같은 점심 메뉴인 돌솥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고 곧이어 밑반찬이 나왔는데, 딱 보는 순간 한국의 가정식 백반집에서 보던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낯익고 친근하고 편안하면서도 맛있는 전라도 음식 같은 느낌. 그래서 이모님께 혹시 주방장님 고향이 전라도시냐고 물어봤더니 아니시란다. 식당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음식을 하시는데, 한국에서 식당을 오래 하셔서 음식을 맛있게 잘하신다고 했다.

밑반찬이 맛있는 집
그래서 내친 김에 이모님께 단지 식당만의 자랑거리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제일 첫번째가 역시 밑반찬! 손님들이 단지 식당의 밑반찬이 맛있다고 하시는데, 특히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고 표현하신다고 하셨다.

사실 미국에서 한식당을 개업하면, 한인 밀집지역이 아닌 이상 손님의 대다수가 미국 현지인들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약간씩 변형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인 손님들 입장에서는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그런 퓨전 한식에 대해 뭔가 아쉬운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국 음식점에 갔을 때 ‘이게 뭐야? 맛이 왜 이렇게 밍밍해? 이맛도 저맛도 아닌데…’ 하며 실망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그런 한식에 점점 익숙해 가던 차에 단지의 음식을 맛보신 손님들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며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했다. 식당을 처음 오픈했을 때는 한국인 손님과 미국인 손님이 50:50 정도였는데, 요즘엔 한국인 손님들이 더 많이 늘어서 70% 정도가 한국인 손님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옛것을 고집하는 것이 사람의 입맛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한국분들이 단지에서 옛날 한국 음식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많이 찾으시는 듯했다.

짜장면과 짬뽕이 맛있는 집
두 번째 자랑거리가 뭐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중식’이 맛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하셨다. 중식이라고? 나는 깜짝 놀라 메뉴판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진짜 ‘Noodle’ 페이지에 자장면, 삼선간짜장, 짬뽕이 있는 것이었다. 오, 자장면 $9.99, 삼선간짜장 $15.99! 이게 있는 줄 알았으면 간짜장을 먹어 보는 건데!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그린스보로 사람들이 부러웠다. 맛있는 짜장면을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그는 집
세 번째 자랑거리는 사장님이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아서 쓰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순두부찌개 국물이 아주 진국이었다. 옛날 가게 사진에 보니 가게 입구에 장독 단지가 줄줄이 놓여 있던데, 그게 아마도 된장, 간장, 고추장 단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가게 이름이 ‘단지’인 것도 거기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장님께서 처음에 요리를 누구한테 배우셨는지, 중식 요리는 어떻게 배우셨는지, 한식점에서 중식 메뉴를 추가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등 직접 여쭤보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어서 짧은 인터뷰 요청을 드렸더니, 이모님 말씀이 사장님 내외분은 가게가 너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이유는, 요즘 주방에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음식을 다 하시는데, 손님이 더 늘면 일을 더 많이 해야 돼서 힘들어 하신다는 것이었다. 하긴 얼마 전에도 다른 분들한테서 요즘 중남미 사람들도 없어서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단지의 영업 시간을 보니 평일엔 9시, 금토는 10시까지였다.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다 보면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게 꼭 기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도 혹시 한국의 진한 양념맛이 그립거나 짜장면과 짬뽕이 땡기는 날은 그린스보로 단지 한식당으로 가 보시기를. 친근한 가정식 백반과 추억의 짜장면, 그리고 밝고 편안한 표정의 이모님이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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