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보로는 샬롯, 랄리에 이어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그 덕분에 일찍부터 한국식품점 Super Gmart가 자리를 잡았고, 그 주변으로 한인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떡집, 노래방, 간판집, 미용실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데, 당연히 식당도 몇 군데 있다. 그 중에 이름이 가장 다정하게 느껴지는 ‘다사랑’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전에도 한두 번 들러서 서로 안면이 있는 카운터 이모님이 밝은 표정으로 맞아 주셨다. 여기서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 메뉴를 찬찬히 보니, 메뉴판에 적힌 이름이 ‘다사랑’이 아니라, ‘단지(Danji)’였다. 이모님께 여쭤 보니 사장님이 바뀌면서 식당 이름이 ‘단지’로 바뀌었는데, 외부 간판은 그대로 두어서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을 것 같은 점심 메뉴인 돌솥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고 곧이어 밑반찬이 나왔는데, 딱 보는 순간 한국의 가정식 백반집에서 보던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낯익고 친근하고 편안하면서도 맛있는 전라도 음식 같은 느낌. 그래서 이모님께 혹시 주방장님 고향이 전라도시냐고 물어봤더니 아니시란다. 식당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음식을 하시는데, 한국에서 식당을 오래 하셔서 음식을 맛있게 잘하신다고 했다.

밑반찬이 맛있는 집
그래서 내친 김에 이모님께 단지 식당만의 자랑거리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제일 첫번째가 역시 밑반찬! 손님들이 단지 식당의 밑반찬이 맛있다고 하시는데, 특히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고 표현하신다고 하셨다.

사실 미국에서 한식당을 개업하면, 한인 밀집지역이 아닌 이상 손님의 대다수가 미국 현지인들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약간씩 변형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인 손님들 입장에서는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그런 퓨전 한식에 대해 뭔가 아쉬운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국 음식점에 갔을 때 ‘이게 뭐야? 맛이 왜 이렇게 밍밍해? 이맛도 저맛도 아닌데…’ 하며 실망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그런 한식에 점점 익숙해 가던 차에 단지의 음식을 맛보신 손님들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며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했다. 식당을 처음 오픈했을 때는 한국인 손님과 미국인 손님이 50:50 정도였는데, 요즘엔 한국인 손님들이 더 많이 늘어서 70% 정도가 한국인 손님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옛것을 고집하는 것이 사람의 입맛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한국분들이 단지에서 옛날 한국 음식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많이 찾으시는 듯했다.

짜장면과 짬뽕이 맛있는 집
두 번째 자랑거리가 뭐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중식’이 맛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하셨다. 중식이라고? 나는 깜짝 놀라 메뉴판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진짜 ‘Noodle’ 페이지에 자장면, 삼선간짜장, 짬뽕이 있는 것이었다. 오, 자장면 $9.99, 삼선간짜장 $15.99! 이게 있는 줄 알았으면 간짜장을 먹어 보는 건데!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그린스보로 사람들이 부러웠다. 맛있는 짜장면을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그는 집
세 번째 자랑거리는 사장님이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아서 쓰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순두부찌개 국물이 아주 진국이었다. 옛날 가게 사진에 보니 가게 입구에 장독 단지가 줄줄이 놓여 있던데, 그게 아마도 된장, 간장, 고추장 단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가게 이름이 ‘단지’인 것도 거기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장님께서 처음에 요리를 누구한테 배우셨는지, 중식 요리는 어떻게 배우셨는지, 한식점에서 중식 메뉴를 추가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등 직접 여쭤보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어서 짧은 인터뷰 요청을 드렸더니, 이모님 말씀이 사장님 내외분은 가게가 너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이유는, 요즘 주방에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음식을 다 하시는데, 손님이 더 늘면 일을 더 많이 해야 돼서 힘들어 하신다는 것이었다. 하긴 얼마 전에도 다른 분들한테서 요즘 중남미 사람들도 없어서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단지의 영업 시간을 보니 평일엔 9시, 금토는 10시까지였다.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다 보면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게 꼭 기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도 혹시 한국의 진한 양념맛이 그립거나 짜장면과 짬뽕이 땡기는 날은 그린스보로 단지 한식당으로 가 보시기를. 친근한 가정식 백반과 추억의 짜장면, 그리고 밝고 편안한 표정의 이모님이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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