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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뷰티 칼럼] 여행 중에 건강과 미용을 챙기는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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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Zenith’s beautiful life 유투브 채녈 운영자

안녕하세요. 제니스 뷰티 칼럼으로 새롭게 인사 드리는 제니스입니다. 현재 캐리에 살고 있고, 유투브에서 3년째 뷰티 채널을 운영 중인 뷰티 유투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 30대 이상의 미용과 패션, 건강을 주제로 만나 뵙겠습니다.

KOREAN LIFE에 첫 인사를 드리는 지금 저는 가족들과 퀘백 시티와 몬트리올을 방문 중입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오늘은 여행하면서 건강과 미용을 지키는 노하우로 칼럼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첫째, 비행기 여행을 할 때는 루즈한 롱드레스를 입는 것을 추천합니다. 협소한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부리고 있으려면 옷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칭이 자유로운 원단의 롱드레스는 양반다리를 하거나 무릎을 세우고 앉기도 편하고, 기내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편리합니다.

둘째, 기내용 가방은 시장 바구니처럼 가볍고 어깨에 맬 수 있는 빅사이즈 숄더백을 추천합니다. 고야드의 생루이 가방처럼 가방의 위가 오픈형으로 넓게 트이고 위아래는 짧지만 옆이 긴 형태입니다. 이유는 각종 신분증이나 여권 및 항공권, 호텔이나 렌트카의 예약상황이 담긴 프린트물 등을 넣어 두고 그때그때 넣었다 뺐다를 반복할 때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내의 차가운 온도를 견딜 숄이나 겉옷을 쉽게 넣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 여행을 위한 루즈핏 롱드레스와 큰 숄더백

셋째, 비행기 여행을 할 때는 평소와 다른 식단을 권합니다. 예를 들면, 커피, 차, 소다 같은 카페인 음료를 자제하고 가능하면 물을 적당히 마셔 주세요.

기내에서는 온도가 낮아 피부가 건조해지고 근육이 긴장합니다. 이럴 때 커피나 소다를 마시면 근육의 수축은 물론 과다한 이뇨작용으로 체내 수분을 강제 배출하게 되므로 피부가 더욱 건조해집니다. 따라서 피부를 위한 물 한 병은 필수!

또한 나이가 들수록 외부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소화기에 무리가 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음식은 부드럽게 조리한 계란 위주의 고단백 소식을 권하며 적어도 비행기 탑승 두어 시간 전에 식사를 마치고 편안한 위와 장을 유지한 채로 여행하는 것이 신체의 부담을 덜어 주는 방법입니다.

20대에는 먹는 일과 화장실 가는 일이 외부 환경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지만, 30대 이상이신 분들은 이렇게 우리 몸이 잘 적응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 건강한 여행의 지혜인 듯 합니다.

넷째, 여행시 피부관리는 수분관리가 중요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면서 또한 매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평상시에도 토너 후에 가벼운 수분크림으로 기초관리를 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2~3일에 한번씩은 제 피부에 잘 맞는 나이트크림을 소량 발라줍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자외선 노출이 많아(특히 북미 지역과 여름철 여행시) 이미 힘들어 하는 피부에 나이트 크림은 오히려 더 부담이 됩니다. 따라서 1회용 팩을 준비해서 1일 1팩으로 진정효과를 노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마스크팩은 수분공급 기능이 있는 중저가의 무난한 제품을 선택하셔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세안 후 토너 전에 얹으시고 10~15분 정도 후에 떼어 내시면 됩니다. 피부에 남은 잔여물은 그대로 두시고 토너로 마무리합니다.

저녁에 1일 1팩으로 수분관리 © 더’s skin care

혹시 여유가 되시면 아침 메이크업 30분 전에 팩을 하셔도 좋습니다. 아침에 팩을 하면 메이크업이 잘 먹을 수 있도록 도와 주고, 하루 종일 수분 방어막이 되어 줍니다. 다만 팩을 마친 후 잔여물이 피부에 완전히 스며들어야 메이크업이 밀리거나 파우더 제품이 떡지지 않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팩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침 팩보다는 저녁 팩을 추천 드립니다.

다섯째, 여행 중에도 메이크업을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여행 중 메이크업은 여성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행도 힘든데 화장까지 해야 하냐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 중에는 쌩얼(메이크업하지 않은 민낯) 의견도 일리가 있고, 그래도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자외선 노출이 많으니 메이크업을 하면 쌩얼에 자외선 차단제만 바른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것이 사실입니다. 메이크업을 하게 되면 자외선 차단제는 물론, 그 위에 쿠션, 파운데이션, 파우더 등의 제품을 도포하면서 추가적인 자외선 차단 효과를 더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메이크업을 추천하는 이유는 사진입니다. 아무리 뽀샵 어플이 있어 좋은 세상이지만 메이크업을 안 하면 아무래도 사진 찍는 것을 피하게 됩니다. 쌩얼 때문에 행복한 순간, 가족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거나, 쌩얼에 신경 쓰다가 어색한 표정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메이크업을 하고 언제든 자신 있게 멋진 사진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여행 중 메이크업 제품은 최근에 애용하는 제품들을 챙겨 가시면 됩니다. 또는 이것 저것 여러 제품을 사용하다가도 결국 고향처럼 편하고 잘 맞아서 돌아가게 되는 제품이 있다면 그런 제품이 여행에 안성맞춤입니다.

여행 메이크업은 짧은 시간에 빨리 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효과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피부 상태에 따라 편차가 큰 제품은 여행 메이크업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바쁜 아침에 메이크업이 생각처럼 잘 안 되면 그날 하루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평소 자신이 즐겨 쓰고 잘 아는 제품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평소 즐겨 쓰던 제품 챙겨가기 © G마켓

그리고 전체적으로 무난하면서 사진 촬영에 적합한 메이크업을 하시려면 눈매에 브라운톤의 음영을 주는 기본적인 아이섀도우와 아이라이너, 그리고 살구빛 블러셔 색상이 좋습니다. 혹시 근사한 저녁 데이트를 계획하신다면 글리터 아이라이너 하나만 준비하셔도 아래 속눈썹 사이에서 반짝이는 영롱한 눈매를 연출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행 중 건강과 미용을 지키는 꿀팁 몇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여행하실 때 참고하셔서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을 즐기시 바랍니다. 앞으로 더욱 더 유익한 정보로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칼럼에 대한 피드백이나 미용, 패션, 건강에 대한 질문은 myzenith2015@gmail.com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목회 칼럼]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 (시편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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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목사님 하비스터스성결교회 부목사

RTP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6년간 목회를 하면서 마음에 간절히 원하게 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교회, 초대교회에 가장 가까운 그 교회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었습니다. 그러한 열망으로 현대 교회를 바라보았을 때 마음에 깊은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I. 현대 문화에 물든 현대 교회의 병폐: 개인주의적 교회
현대 문화의 특징은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판단과 행동의 준거가 ‘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의 문화가 교회에 고스란히 들어와 교회에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같은 교회의 연약한 자들은 돌아보지 않고 그저 내가 은혜 받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II.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
그런데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꿈은 요한복음 17장 11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입니다. 하나가 되는 교회말입니다. 원래 이 ‘하나’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사이의 연합을 드러내는 말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단어가 교회에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들이 어느 정도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온전히 하나가 되신 것같이 우리도 그렇게 하나되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뜻이 같은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III. 교회가 사랑할 때 임하는 축복
그리고 교회는 이렇게 하나 되어 사랑할 때만 기름부으심이 넘쳐 흐를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구절이 시편 133편입니다.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유명한 이 시편 133편은 육신의 형제끼리 같이 사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노래한 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약 육신의 형제들이 동거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노래하였다면 그들에게 명령하신 복이 ‘영생’이라는 3절이 이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 133편에서 노래하는 ‘형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누가 내 형제며 자매며 모친이냐. 오직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형제며 자매며 모친이라.’(막 3:31-35) 하신 그 믿음의 형제 자매 공동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 133편에 보니 믿음의 형제자매가 요한복음 17장 11절의 예수님의 기도대로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내림 같고 헐몬산의 이슬이 다른 낮은 산에 내림과 같은 축복입니다. 몸의 최정상에 있는 머리에 있는 기름이 몸의 지체들로 흘러내리는 축복입니다. 즉,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기름부으심이 지체의 각 부분인 공동체 모두에게 흘러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온전한 기름부으심이 모두에게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IV. 결어
각자 자신의 신앙만 돌보며 내가 은혜 받기를, 내 가족만 은혜 받기를 추구한다고 해서 나의 삶에 온전한 기름부으심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있게 하신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그 공동체에서 하나되며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을 이룰 때, 주님께서 그 연합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기름부으심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함께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칼럼에 대한 회신은 iamhyesunl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목회 칼럼] 함께 가는 즐거움 (아가서 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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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균 목사님 샬롯장로교회 담임목사

나이가 들면서 진정한 친구가 있는 것이 노년생활의 승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어디 노년뿐이겠는가? 우리의 경험에 더해 우리의 자녀들을 키우면서도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좋은 친구든 나쁜 친구든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겸손하며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친구라면 따라 다니면서라도 친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은 누구나 친구가 되기를 바랄 만한 분이다. 유명한 솔로몬의 연애시 아가서 2장 10절로 13절에서는 그 이유 두 가지를 묘사한다.

1. 초청의 환경: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것은 선택 받은 신부에게 주시는 말씀이겠으나 따지고 보면 모든 인류에게 이런 초청을 하신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초청이다. 이 초청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지금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니 이 초청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초청의 환경은 기가 막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일찍 익은 무화과 열매가 맺히고 포도꽃이 향기를 토한다. 건기와 우기로 나뉜 이스라엘의 기후가 이제 긴 우기(10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지나고 이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동산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좋은 것을 가진 분이신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성지순례를 하신 분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금방 이해하실 것이다. 좋으신 친구 예수님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구나 오기만 하면 그렇게 기가 막힌 모든 것을 주신다. 그리고 마11: 28 말씀을 떠올려 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 초청의 핵심: 일어나라
우선 일어나라고 하신다. 이것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지만, 우리 삶에 적용하면 예수님의 이 놀라운 초청을 실감케 된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에서 일어나라, 슬픔과 고통에서 일어나라, 죄악과 죽음에서 일어나라고 하신다. 감히 누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 오직 인생의 가장 처참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시고 죽음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이 아니시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며 싫어했듯이 예수님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 아래 떨어진 사람만 찾아 다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 가난한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그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시며 천국이 너희에게서 멀지 않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번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 장례식과 만나게 되셨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모든 괴로움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왔던 그녀에게 무어라 위로할 수 있을까? 나인성에서 나가는 행렬은 죽음과 절망의 행렬이요, 반대로 그 성으로 들어오시던 예수님 일행은 새로운 삶과 희망의 행렬이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시자 ‘울지 말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죽은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죽음에서 살아났다. 이 얼마나 놀라운 친구이신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죄악과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사죄와 생명을 주시는 분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기적과 능력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모진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두려워 떨기 바빴고, 확신도 기대고 없었고, 슬픔과 두려움뿐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슬픔이 기쁨이 되게,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평안이 되게 하셨다. 또한 절망이 소망이 되게 하셨다. 이 예수님만이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시는 진정한 친구이시고 참된 능력자요 실천자이시다. 예수님은 말씀과 약속을 지키시는 친구이시다. 함께 가자는 말씀은 영원한 동거, 동행, 동역을 보장하는 말씀이다. 이 약속을 붙잡고 진정한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생애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영원한 친구
어느 유수한 교회의 기관지에 ‘재판장과 사형수’라는 글이 올라왔다. 11세 소녀를 납치, 성폭행, 살인한 범죄자에게 당연히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데, 교회 집사였던 판사님은 괴로움 중에 할 수 없이 법에 따라 사형을 언도하고 그 사형수를 잊지 않고 3년 동안 신앙서적을 보내고 편지를 써 보내며 예수님을 친구로 영접하도록 권면하였다.

그런데 교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던 그 사형수에게 쏟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가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완전히 거듭나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열심히 전도하여 예수님을 친구로 영접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절망에서, 좌절에서, 실패에서, 두려움과 슬픔에서, 죄악과 죽음에서, 박차고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영원한 친구의 초청을 기쁘게, 그리고 신중하게 받아들이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천국에)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

칼럼에 대한 회신은 revskna@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목회 칼럼] 홀로 외로운 자리가 복된 이유 (창세기 28:10-22 3:1, 3:22,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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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목사님 RTP지구촌교회 담임목사

홀로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 흘리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혹시 지금 그런 자리에 있으신지요?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꿈을 안고 이민 오셔서 3대째 살고 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치 않는 사고를 쳐서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어머니 고향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떠나갑니다. 경유하는 공항의 의자에 누워 쪽잠을 자면서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그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외삼촌 가족들이 자신을 반겨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며 외롭고 불안한 밤을 보냅니다.

이 청년이 보내는 외로운 밤을 사실은 우리 자신도 여러 모양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분 문제, 경제적인 문제, 불확실한 일자리, 믿었던 가족과 사람들의 배신, 불행한 가정, 깨어진 관계 등으로 우리는 홀로 눈물 흘리며 외로운 밤을 보냅니다.

이 청년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오늘 본문의 인물,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복의 땅인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장자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일로 인해 형에게 맞아 죽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고 있습니다. 복을 붙잡으려다가 오히려 복의 땅을 떠나야 하는 캄캄한 밤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홀로 외롭고 불안하고 절망의 자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야곱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밤, 그의 삶에 대 전환이 일어나는 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홀로 외로운 그 밤이 어떻게 복된 자리가 되었을까요?

1.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후에 ‘벧엘’이라 불리게 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11-13절). 1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고백합니다. 홀로 외로운 그 자리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란까지의 길은 약 500마일(180km)입니다. 캐리에서 뉴욕 맨하탄까지의 거리이며 도보로 162시간 거리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60마일, 캐리에서 그린스보로까지의 거리입니다. 고단한 길입니다. 캄캄한 밤에는 무서운 길입니다. 짐승도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삶의 불확실성도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때로 두렵고 외로운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찾으면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짖으면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외롭고 두렵고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자리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홀로 외로운 자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복된 자리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장 12절).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나시기 원하십니다. 홀로 외롭고 두렵고 절망스럽고 고통스런 자리에 계신가요? 그 자리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절망 속에 그분을 부를 때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나를 안으시고 품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05년도에 캐나다 밴쿠버 시장이 되신 샘 설리번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분은 2010년 동계 패럴림픽 대사로 활동하였고 캐나다 최고 명예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밴쿠버 시장이 되셨을 때 버스나 지하철에 휠체어가 바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요트도 개발하고, 산악자전거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샘 설리반 장애재단”을 만들어 수 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분은 19살 때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서 목뼈가 부러지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가까웠던 사람들, 여자친구도 다 떠나고 홀로 외로운 자리에서 캄캄하고 깊은 절망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7년 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사고가 났을 때 왜 죽지 않고 살아났는지 원망하며 수 차례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병상에서 홀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밤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들어 오십니다.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어 마음에 영접합니다. 그때 그의 삶에 절망이 걷히고, 새로운 꿈과 희망이 솟아나고, 기쁨이 흘러 넘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장애인 인권관련 협회를 조직해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1993년 밴쿠버 시의원이 되었고, 2005년에 밴쿠버 시장이 되었습니다.

밴 쿠버 시장 샘 설리번

홀로 외로운 자리가 가장 복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만난다면 그 자리는 새로운 희망의 자리, 새로운 복의 자리가 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는 자리입니다
13-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야곱은 스스로 복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치며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장자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복의 자리에서 도망치는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홀로 외로운 자리에서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습니다.

우리 역시 야곱처럼 스스로 복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홀로 외롭고 불안한 밤을 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붙잡으려던 복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후손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홀로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 오십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민 온 이 땅에서 복을 받아 보겠다고 몸부림치고 계신가요? 그런데 결국 홀로 외로운 자리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자리가 복된 이유입니다.

『보호하심』이라는 책에서 이찬수 목사님은 자신의 이런 간증을 실었습니다. “혼자 외로워 울던 1992년 12월 24일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그러고는 나를 위로하시며 놀라운 약속을 주셨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청소년 사역에 함께할 것이다. 너의 연약함, 아이들이 놀리는 사투리, 호감 가지 않는 외모 등 어느 것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청소년 사역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나의 10년간 청소년 사역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약속을 그대로 이루신 놀라운 축복의 시간이었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 두려워 떨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1992년 12월 24일에 나를 만나주셨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셨다. 그러면서 청소년 사역을 할 수 있던 것이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였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군요. 하나님,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내 힘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 사역도 내가 똑똑해서, 내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군요. 그런데 내가 왜 여기서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떨고 있습니까?’ 그 날 이후, 엄청난 용기가 생겼다.”

홀로 외로운 자리를 보낼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시며, 약속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불안하고 절망스런 자리가 복될 수 있습니다. 혹시 외롭고 불안하며 절망스런 자리에서 고통스런 밤을 보내고 계신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스스로 복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찾으십시오. 홀로 외로운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가장 복된 자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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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게임의 법칙: 내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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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밀고 당기는 게임, ‘밀당’
미국에서도 노스 캐롤라이나의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인터넷에 올라 오는 수많은 신조어들이 꽤나 낯설다. 마음먹고 공부(?)하지 않으면 뭐가 뭔지 몰라서 사오정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가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강의를 하다가 청년들에게 주워 들은 말 중에 ‘밀당’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로 데이트하는 남녀 관계에서 밀고 당기는 역동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밀당은 사실 부부 사이에서나 자녀와의 관계, 더 나아가 많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에서는 1+1=2이라는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너와 내가 만나면 그저 단순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독특한 관계의 기류가 형성된다. 그리고 만남이 길어지면 두 사람의 밀당으로 둘 사이에 새로운 상호작용의 패턴이 자리잡게 된다.

인간관계의 역동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른 면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참 좋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하고 붙여 놓으면 영 딴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그룹 속에 있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 빚어 내는 역동의 예술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 강하고 리더쉽이 있는 사람은 옆에 잘 따라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빛이 난다. 재미있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옆에서 깔깔깔 웃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신이 난다. 과묵하고 조용한 남자는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여자를 소개시켜 주면 잘 맞는 커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한 것은, 성격이 똑같은 사람들이 만나면 갈등도 없고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재미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둘 다 조용하거나 남에게 잘 맞춰주는 부드러운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답답해 하고, 반대로 둘 다 강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 만나면 훨씬 더 많이 부딪친다.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만나면 단순한 1+1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역동(Dynamic)이라는 플러스 요소가 생겨나는 것이다.

밀당의 부작용
그런데 이 상호작용이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집안 일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였다고는 하지만, 하다못해 벽에 못을 박거나 뭘 고치시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이사를 가는 날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삿짐을 싸시고, 다른 식구들은 학교나 직장에 갔다 오면 이사가 다 끝나 있는 식이었다. 가끔 아버지에게 어떻게 벽에 못도 하나 못 박으시냐고 놀리면 그저 웃기만 하셨다.

그런데 요즘 들어 집안일을 못하고 느긋하신 아버지 뒤로, 급하디 급한 성격의 어머니가 함께 보인다. 설거지가 조금만 쌓여 있어도 못 참고, 집안에 액자 하나 비뚤어져 있는 것도 못 견디셨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시키면서 잔소리를 하느니 차라리 당신이 그냥 해 버리는 것이 속 편하셨다.

이렇게 부지런한 어머니 덕분에 아버지는 점점 더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남편이 되어 가셨다. 성격이 불 같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잡고 야단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아버지는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있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역할에만 익숙해지셨다. 그래서 어릴 때 나는 야단치는 어머니가 악마고, 놀아주는 아버지가 천사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천사 역할(Good guy) 뒤에는, 악마 역할(Bad guy)을 짊어진 어머니의 공조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절반의 책임
부부관계에서 한쪽 이야기만 들으면 상대 배우자는 세상에 몹쓸 사람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한쪽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만 살아. 그 인간 못쓰겠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다른 한쪽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순간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된다. 그래서 싸움에서는 늘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 봐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상담실에 찾아온 아내가 말을 안 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예전에는 남편이 과묵해 보이고 진중해 보였는데, 이제는 꾹 다문 입에서 구린내가 날 것 같다며 화를 낸다. 집에 오면 맨날 TV나 컴퓨터만 쳐다보고, 그도 아니면 차고에 틀어박혀 있단다.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다음에 남편분을 함께 모시고 오게 했다.

부부가 함께 상담소를 찾으면서 예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질문을 받고 남편이 잠시 생각하는 동안을 못 참고 아내가 중간에 끼어든다. 머뭇거리는 남편 대신 설명을 하고, 남편이 대답할 말을 먼저 나서서 알려주면서 남편에게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고 타박한다. 말수가 적은 남편은 더 입을 다문다. 남편이 입을 다물자 아내는 더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진 아내는 남편의 입을 더 꾹 닫게 만든다. 나와 상대가 서로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상호작용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의식하든 못 하든 늘 밀고 당기는 ‘밀당’의 상호작용 안에서 산다. 미는 사람이 있으면 당기는 사람도 있다. 계속 미는 사람은 밀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심해진다. 상대가 계속 물러서는 사람이면 다가서고 채근하는 상대의 특성이 더 강화된다. 이 상호작용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 재미있기도 하고, 더 망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만 보고 손가락질을 한다. 저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 그런데 사실은 그 게임의 절반은 내 책임이다. 내가 한 파트를 담당한 밀당 게임에서 나로 인해 상대방이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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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새 썬글라스를 쓰고 멋진 인생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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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봐요
얼마 전 20대 중반의 아가씨가 상담소를 찾아왔다. 그녀의 고민은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에 가면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동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얼마 못 가 그만둬 버리는 것이 그녀의 패턴이 되었다.

새 직장의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인터뷰가 잡히면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져서 인터뷰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 미리 걱정하느라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고 열정적으로 보여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공황장애와 같은 극심한 불안증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과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자신이 뭐라 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으며,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들키게 될까봐 어떻게든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이 아가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그녀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책을 좋아했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홀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흑인들 사회에서 ‘이상한 아이’로 놀림을 받았다. ‘Nerd’, 즉 공부벌레라는 별명은 미국 사회,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기에 충분했다. ‘공부벌레’는 이 아가씨가 자란 환경 속에서는 ‘이상한’ 부류에 속했던 것이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게 되자, 이 아가씨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걸 눈치챌까봐 가슴이 철렁한다.

이 아가씨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 속에서 배운 것은 ‘나는 이상한 사람,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왜곡된 믿음이 굳어져 지금은 이 아가씨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왜 나를 못 믿어요?”
예전에 우리 교회 수련회 때 있었던 일이다. 한 자매가 직장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발하지 못하고 일을 마친 후 혼자 운전을 해서 와야 했다. 아직 GPS라는 놀라운 기술의 축복이 없었던 때라, 밤에 자매 혼자 수련회 장소를 찾아 오는 것이 걱정되었던 목사님은 그 자매에게 두 번 세 번 확인을 했다. “오는 길 알겠니? 괜찮겠어? 길이 너무 어둡고 시골이라 더 힘들텐데… 길을 다시 알려 줄까?” 그 자매가 길을 못 찾아 올까봐 걱정하고 챙기려는 목사님을 보고 아마도 주변 사람들은 ‘우리 목사님, 참 자상하기도 하셔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매는 돌연 화를 버럭 냈다. “목사님! 왜 저를 못 믿으세요!”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이 자매를 보며 꽤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상황, 즉 보통 사람과 다른 감정 패턴과 마주칠 때, 우리는 ‘이 자매 성질 못 쓰겠네.’ 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다면 한 걸음 다가가 잠재된 원인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 자매에게 내재된 분노의 원인은 가족이었다. 그녀에게는 아들만 편애하시는 부모님, 늘 똑똑하고 잘 나가는 남동생,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가 있었다. 가족 들 사이에서 그녀는 그저 나이값 못하는 장녀에 불과했다. 뭐든 척척 잘 해내는 남동생에 비해 자기는 늘 20% 부족한 자식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녀에게 “이거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면 그 말은 곧 ‘너는 믿을 수가 없어.’로 들렸고, “좀 도와 줄까?”라고 물으면 그 말은 곧 ‘너는 왜 그런 거 하나도 똑바로 못하고..’로 들리는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그릇된 믿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색을 입힌 썬글라스를 쓰고 산다. 자라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각자의 필터(Filter)가 형성되고 그 필터를 통해 세상만사를 해석한다. 그것이 자기만의 인생각본(Life script) 즉,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굳어지면서 점점 그 틀에 맞는 증거만 수집하게 된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야.”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해.” “I am not good enough.” “결국 모두가 나를 버릴 거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자기만의 스토리는 그 사람이 자라온 문화, 어린 시절의 경험, 성격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굳어지면 그에 맞지 않는 다른 모든 ‘긍정적 증거’들은 무시된다. 자신을 믿어주고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다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가끔씩 나를 무시하는 듯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며 확신을 더해 간다. ‘나는 정말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구나.’

새 썬글라스를 쓰자
내 불행한 인생 스토리의 저자가 바로 나이며, 내 왜곡된 필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에 대 전환이 일어난다. 부모 때문에,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내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 원망하던 희생양의 자리(victim position)에서 빠져 나와, 긍정적인 필터로 교체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스토리를 쓰겠다고 결심할 때 내 앞에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 좋은 책, 그리고 신의 한마디가 그 스토리를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내가 만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매일 새로운 스토리를 쓰게 하셨다. “너는 내 자녀다(요 3:16)”, “내가 너와 함께 한다(사 41:10).”,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다(벧전 2:9).” 그 후 오늘 내가 하나님과 함께 쓰는 인생 스토리가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며, 내 삶은 하나님께서 써 가시는 대 서사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제 새 썬글라스를 쓸 때가 되었다. 새 썬글라스에 어떤 색을 입히고 싶은가. 우리는 모두 좋은 점과 덜 좋은 점을 가진 존재이다. 기왕이면 밝은 색 썬글라스를 쓰고 삶의 밝은 면에 집중하며 사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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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배우자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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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결혼을 하고 달콤한 신혼에 접어든 커플들이 결혼 선배들에게서 종종 듣게 되는 충고가 있다. 초반에 기선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 초기부터 배우자를 잘 길들여 놔야 남은 평생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서로 눈빛만 스쳐도 꿀이 떨어지고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들에게는 한편 당혹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배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무시할 수 없어 가만히 듣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되면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나중에는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 기선 제압의 기술을 배우고 실천해 가게 된다.

가정,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
기선 제압이 목표가 된 결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변하기 십상이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미 혼수, 예단 등의 문제로 시작된 두 집안 간의 묘한 신경전은, 결혼 후에 누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느냐로 이어지고, 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밤에 일어나 기저귀를 가느냐 등의 문제로 조금씩 변해 간다.

아이들이 커서 손이 좀 덜 가는 시기가 되면 싸움의 대상이 배우자에서 자녀들로 옮겨간다. 아이들이 십대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권위와 가정의 규칙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틀렸고, 자기는 그렇게 안 산다고 도전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십대 시절을 무난히 잘 넘긴 부모들은 뒤늦게 자녀들의 결혼문제로 골치를 썩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가정은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가장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훈련의 장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너를 고쳐라
상담을 오시는 많은 분들이 상담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공통적인 목표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목표를 이루려면 내 가족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 남편이 술부터 끊어야 한다. 내 불면증이 없어지려면 내 자식이 정신차리고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자신감을 되찾으려면 내 아내가 나를 다른 남자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포르노 중독이나 게임 중독에 걸린 남편 때문에 나에게 우울증이 오고,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끊임없이 잔소리와 비난을 퍼붓는 아내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의욕도 없어져 버렸다. 아내는 남편의 폭력적인 언행 때문에 못살겠다고 울고,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붙인다고 하소연한다. 자신을 가만 놔 두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상담소에 와서 자신의 가족을 바꾸어 놓을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확인 받으려고 한다.

불가능한 미션, 상대방 고치기
그런데 우리를 정말 절망하게 만드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오랜 세월을 참고 노력했지만, 내 배우자, 내 자식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가족관계 내에서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한다. 내 남편이 무능하니까 내가 닦달을 해서 뭐라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아내가 게으르니까 내가 그 버릇을 고쳐 놔야 한다. 내 자식이 똑똑하지 못하니까 내가 채근을 해서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만큼 진이 빠지는 일도 없다.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러면서 점점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된다.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내가 책임지고 고쳐야 될 사람은 내 자신 하나로도 족하다는 것이다. 그 목표 하나만 이루는 데도 평생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상대방을 고쳐 놓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고 그 에너지를 나 자신을 추스리고 변화하는 데로 돌리면, 가정에 진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변화는 가족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스스로를 돕는 사람들을 도와 주신다.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면, 좋은 마음을 먹었다가도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반대로 남편을 향해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내면을 돌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잔소리가 줄고 불필요한 잡음도 줄어들게 된다. 아내가 편안해지면 남편도 집에 있는 게 편안해진다. 또한 남편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면 아내가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남편이 먼저 처가에 전화를 하면 아내도 시댁을 챙기게 된다. 부모가 일일이 확인하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자기가 스스로 챙겨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립심과 자기관리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일은 언뜻 보면 내 가족의 문제를 다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또한 내가 먼저 변해야 가정이 변화한다는 말은 내 답답하고 억울한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섣부른 충고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내 가정의 변화를 위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결코 씁쓸한 일이 아니다. 내 가정을 위해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일은 자주 혈압이 오르내리고, 복장이 터지고, 갈수록 불만과 무력감만 쌓이는 일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변화의 속도와 목표를 내가 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실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궁극적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내 가족들과 함께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따라서 이제 ‘상대방 고쳐 놓기’ 프로젝트를 멈추고 대신 ‘나부터 잘 돌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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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문화 차이 확실히 실감한 미국 시월드 체험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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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어머니가 한국의 어머니들과 다름 없는 한 어머니로 느껴지지만, 제일 처음 시댁에 갔을 때는 사실 많이 어색했답니다. 저희가 장거리 커플이었던 탓에 결혼식 직전에 시어머니를 처음 뵈었고, 시댁에 방문했을 때가 두 번째 뵙는 거라 가족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미국인 중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상 ‘시댁’이라는 곳은 며느리에게 편할 수만은 없는 곳이었기에 여느 한국 며느리들처럼 저도 시어머님의 동선을 살피며, 제가 도와야 할 일은 없는지, 시어머니가 주방에서 뭔가 하고 계시면 저는 안절부절 못하며 남편에게, “나 어떻게 해야 해?” 하고 입 모양으로 지원 요청을 했었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댁에서 어리버리했던 제 모습과, 또 한국과는 너무 다른 문화 차이에 충격을 받았던 미국 시월드 체험기를 2번에 나누어 들려 드리겠습니다.

손님이 왔는데…
저와 남편이 시댁을 가기 위해 샌디에고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댁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였습니다. 같은 미국 땅인데도 총 3대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니 무슨 해외여행보다 더 고단하더라고요. 시어머님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셔서 시어머님과 남편, 저 이렇게 셋이서 시댁에 들어갔는데, 시아버님은 문 밖까지 나오셔서 저희를 반갑게 맞아 주셨어요.

그런데 남편의 형, 즉 저에게는 아주버님이죠. 아주버님은 비디오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한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손님을 환대하는 의미로 인사를 한 뒤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생네 부부가 멀리서 왔는데, 더군다나 저와는 첫대면인데, 환대는커녕 비디오 게임 하느라 정신 없는 이 아주버님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한국 같았으면 어른들이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하며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겼을지 모릅니다.

남편과 제가 아주버님 쪽으로 다가가자 그제서야 저희 남편에게 빅 허그를 하고, 저에게는 악수를 청하더니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비행은 어땠냐는 둥 시덥잖은 말 몇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비디오 게임을 하지 뭡니까? So cool하다 못해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미국식 손님 맞이법에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비록 저희가 샌디에고에서 출발했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외국에서 찾아 온 “손님”인데, 왠지 환대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런데 나중에 남편이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은 저와는 반대의 고충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제 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저희 친정집에 묵고 있을 때 친척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밥 먹다 말고 다 일어서고, 차 마시다 말고 다 일어서고, TV보다 말고 다 일어서니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게다가 그분들이 가실 때마다 또 문 밖까지 나가서 배웅을 해야 하니, 그것 또한 남편에게는 이해하기 힘들고 번거롭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앞에서 이래도 돼?
시댁에서 가족들과 다 같이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남편은 소파에 기대고, 저는 남편에게 기대서 무릎 담요를 덮고 있었답니다.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은 옆의 흔들의자에 앉아 계셨고요. TV를 보면서 중간 중간 대화도 하고 그랬는데, 남편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하다가 제 머리에 뽀뽀를 계속 하더니 나중에는 제 입술에다가 뽀뽀를 쪽~ 하는 겁니다. ‘이기 미칬나?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정말 너무 놀라서 제일 먼저 시부모님 얼굴부터 살폈어요. 그런데 너무 태연하게 TV를 계속 보시더라고요. ‘못 보신 건가? 다행이다!!!’ 하고 TV를 계속 보는데, 남편이 또 뽀뽀를 하려고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피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막 장난치면서 얼굴을 못 돌리게 양손으로 제 열굴을 잡고는 강제로 뽀뽀를 쪽~ 하지 뭡니까??? 저는 또 심장이 벌령거려 시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어요. “(나) 어머님, 아버님 계시잖아!!!” “(남편) 그래서?” “(나) 우리 이러면 안 돼!” “(남편) 우리 이래도 돼!!! 엄마 아빠가 있는 게 왜? 내가 내 와이프한테 뽀뽀하는데 문제 있어? 여러분! 내가 내 아내한테 뽀뽀하는데 문제 있나요?” 하며 되려 시부모님께 큰 소리로 물어보지 뭡니까?

그러자 시어머님이 막 웃으시며, “알았다, 알았어! 너네 신혼인 거 우리도 다 안다!!!” 하시며 오히려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 앞에서의 애정 표현은 역시나 어색하고 불편했던 저의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게 된 사건이 곧 생겼습니다.

한참 TV를 보시던 시아버님이 먼저 들어가서 자겠다며 의자에 앉아 있던 시어머니를 꼭 껴안으시더니 “굿나잇!” 인사를 하시고는 시어머님과 쪽쪽쪽~ 3단콤보 키스를 제 앞에서 나누시지 뭡니까??? 우리의 키스를 시부모님께 들킨 것보다, 시부모님의 키스를 옆눈으로 훔쳐보니 100배는 더 부끄럽더라고요.ㅎㅎㅎ

시부모님의 강렬한 키스 씬~

다음 호에서 미국 시월드의 문화 충격 2탄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smileellie777@gmail.com

[미국 생활기] 미국인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즐거움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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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남자친구 또는 남편과 함께 냉면집에 가서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둘 다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중국집에 가서 짬뽕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간단하죠. 물냉, 비냉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되죠. 탕수육, 짬뽕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되고요. 그런데 이 간단한 일이 저희 부부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ㅠ.ㅠ

연애 시절 남편과 차이나타운에 밥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그곳은 무제한 코스 요리집이어서 메뉴에 있는 음식은 다 먹을 수 있고, 추가 주문도 무제한이었습니다(다만 시간 제한이 90분). 메뉴를 보고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고른 후, 남편과 제가 중복해서 고른 메뉴는 하나만 주문을 했습니다. 같이 나눠 먹고 모자라면 추가 주문하면 되니까요.

제가 주문한 음식이 먼저 나와서 같이 먹자고 했더니 자기 음식도 곧 나올 거라며 사양하더라고요. 그리고 남편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남편 앞으로 가져가서 먹더니, 이후에 남편과 제가 중복되게 고른 음식이 나오자 남편이 그건 제 앞으로 밀어주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나) 이건 나눠 먹자.” “(남친) 왜? 내 것도 곧 나올 거니까 먼저 먹어.” “(나) 아니야, 나눠 먹으려고 하나만 시켰어. 모자라면 또 주문하면 되니까.” 그랬더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남친) 왜 내 건 주문 안 했는데???” “(나) 자기 걸 주문 안 한 게 아니라, 자기랑 나랑 이 메뉴가 중복되니까 하나 시켜서 나눠 먹고, 맛있으면 추가하고 맛 없으면 다른 음식 맛보려고 그랬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남편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웃백에 밥을 먹으러 갔죠. 저는 아웃백의 간판메뉴인 베이비 백립과 퀸즐랜드 샐러드가 먹고 싶은데, 남편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죠. ‘흠~, 백립과 스테이크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백립을 포기하고 스테이크와 퀸즐랜드 샐러드를 같이 나눠 먹으면 딱 되겠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나오니, 저는 음식들을 테이블 가운데에 나란히 놓아 달라고 서버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스테이크를 자기 앞으로 당겨 가는 겁니다. 그러더니 샐러드는 제 앞으로 놓아 주더군요. “(나) 이거 자기랑 나눠 먹으려고 시킨 거야. 나 혼자서 다 못 먹어.” “(남친) 나는 내 스테이크가 있잖아. 난 샐러드 별로 안 먹고 싶어. 다 못 먹겠으면 그냥 남겨.” ‘아니,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ㅠ.ㅠ 샐러드도 나눠 먹고, 스테이크도 나눠 먹자는 건데 ㅡ.ㅡ;;’ 그날 저는 스테이크 한 점 한 점이 남편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째려보며 허니 머스터드 소스에 풀때기 팍팍 무쳐서 먹었드랬죠. ㅠ.ㅠ

이렇게 연애 시절 경험으로 미국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다는 걸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에게, 내가 예전에 메인메뉴 혼자서 다 못 먹으니까 나눠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무슨 생각 들었냐고 물어보니, “Get your own food lady! (니 꺼 먹어, 아가씨야!)”

그런데 문제는 몸으로 직접 배운 이 깨달음을 돈 때문에 실행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거죠. 식당에 가서 남편 메인메뉴 하나, 제 메인메뉴 하나, 샐러드, 에피타이저를 먹고 싶은 대로 주문하면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서 집에 싸오게 되는 겁니다. 집에 싸와서 나중에 데워 먹지도 않아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되죠.

아무리 생각해도 양이 많은 미국 음식을 기분 좋게 다 먹는 방법은 남편과 제가 사이좋게 에피타이저 하나, 샐러드 하나, 메인메뉴 하나 이렇게 나눠 먹는 건데, 남편은 남겨도 괜찮다며 그냥 제 음식을 따로 시키라고 하니까 돈 아끼고 싶은 아줌마 마음에 차라리 제가 메인메뉴를 안 먹고 마는 거죠. 그냥 샐러드의 풀때기나 에피타이저로 배를 채우게 되는 겁니다.

남편 말로는 아주 꼬맹이일 때야 혼자서 주문한 음식을 다 못 먹으니 형제끼리 나눠 먹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 들면서부터는 각자의 음식은 다 따로 시켜서 먹었다는군요. 그래서 제가 음식을 나눠 먹자고 했을 때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거 맛 봐도 되냐고 해 놓고 계속 자기 음식을 뺏어(?) 먹으니 적응이 안 되더랍니다. 하지만 이제 저랑 살다 보니 서바이벌 파워로 어느 정도 극복이 되어서 샐러드 정도는 나눠 먹고, 메인메뉴도 제가 뺏어 먹기 전에 자진해서 저에게 먹여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자상해서 먹여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주는 것만 받아 먹고 더 이상 자기 음식에 손대지 말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 시켜서 나눠 먹는 즐거움은 미국인 남편과는 누려볼 수가 없답니다. 물냉과 비냉, 둘 다 먹고 싶으면 혼자서 두 개 다 시켜야 합니다. 만약 제가 비냉을 시키고, 남편이 물냉을 시켰다면 남편의 물냉은 한 젓가락 얻어 먹고 나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의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은 푸짐한 한그릇 음식들이 많아서 메뉴 하나를 2인분으로 주문해서 나눠 먹을 수가 있지만, 그 즐거움을 누리려면 한국까지 가야 한다는 게 문제. 그러니 저에게 있어 남편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아주 호사스러운 즐거움일 수밖에 없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smileellie777@gmail.com

[미국 생활기] 미국인 시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뒤지게 만든 한국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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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는 동안 매운 한국 음식을 못 먹을 걸 생각하니 가기 전부터 속이 느글거리면서 뭔가 매운 걸 챙겨 가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라면 ㄴ구리를 5개 챙겨 갔답니다. 2주 동안 머물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라면을 끓여 먹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제가 라면을 끓이자 시댁에 놀러 왔던 시누이가 자기도 한번 먹어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과 저, 그리고 시누이와 함께 둘러앉아 라면을 먹었답니다. 라면 속에 들어간 계란이 라면의 메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남편 때문에 계란을 4개씩이나 넣고 끓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주얼은 완전 계란찌개에 라면사리 추가한 것 같은 형상. (남편은 라면에 계란이 사람 수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자기 계란은 꼭 두 개여야 한다고 해서 남편 것 2개, 저와 시누이 것 각각 1개씩, 그렇게 계란 4개가 들어간 거죠.)

어쨌든 시누이에게는 처음 먹어보는 한국 라면 요리인지라, 라면을 그릇에 덜어 스파게티 먹듯 면발을 돌돌 말아 먹는 시누이 표정을 살피며, ‘너무 맵지 않을까? 입맛에 맞을까?’ 걱정을 했더랬죠. 그런데 시누이가 너무 맛있다며 혀를 내밀고 “헤~ 헤~” 매운 기운을 삭이면서 끊어진 라면 부스러기들까지 싹싹 긁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이후, 제가 라면을 끓일 때마다 시누이가 와서 함께 먹더니, 마지막에 하나 남은 라면을 먹을 때는 시아주버님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라면 1개에 계란 5개를 넣고 끓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시댁을 방문했을 때는 일주일 정도만 머무를 거라 한국 음식 안 먹어도 살겠지 싶어 그냥 갔는데,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틀째부터 한국 음식 금단 현상이 생겨서 미국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한국 음식이 아른거려 죽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남편과 시댁 근처에 있는 월마트에 갔는데 거기서 ‘ㅅ라면’을 발견한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시댁 근처에서 ㅅ라면을 발견한 게 그렇게 놀라웠던 이유가, 그곳은 아시아인이 정말 없는 곳이었거든요. 제가 남편과 걸어가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심지어 시댁 식구들과 볼링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무심결에 저희 쪽을 쳐다보다가 아시아인인 제가 있는 걸 보고 놀래서 다시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짓곤 했죠. 게다가 월마트에서 계산할 때, 캐셔가 하는 말이 자기가 태어나서 실제로 처음 만나본 아시아인이 저라고까지;; 아무튼 동양인이 없는 그곳에서 아시아 음식은 기대도 안 했는데, 그곳 월마트에서 ㅅ라면을 발견했으니 제 눈에는 ㅅ라면이 있던 섹션이 라면계의 금광, 또는 노다지로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ㅅ라면 5개를 사 들고 룰루랄라 시댁에 가서 라면을 끓였답니다. (이미 한국 라면 끓인다는 소식에 시누이는 시댁을 향해 오고 있던 중~)

그런데 그전까지 한국 라면에 관심도 없던 시아버지께서, “내가 먹을 라면도 있는 거냐?” 하시길래 “당연하죠. 같이 먹어요.” 하며 ㅅ라면이 담긴 큰 솥을 식탁 한가운데 두고, 계란찌개에 라면사리 비주얼의 신라면 배급을 시작했습니다.

라면을 드시기 시작하던 시아버님의 벗겨진 머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눈물 콧물까지 흘리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멈추지 않으시고 한번 더 저에게 리필을 받아서 드시고는 마지막에 솥 바닥에 깔려 있는 국물까지 국자로 박박 긁어 한 국자를 기어이 만드시더니, 그것마저 다 드셔 버리는 겁니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면서 드셨건만 얼굴은 이미 100미터 달 리기를 한 것처럼 땀과 눈물과 콧 물범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맛있었다며 고맙다고 하시더라고 요. 그리고선 시아버님이 갑자기 쓰레기통을 막 뒤적거리시는 겁니 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 했 더니, “라면 포장지를 보관해 둬야 지. 나 혼자 월마트 가서 이 라면을 살 수 있지 않겠니?” 하시며 쓰레기 통에 버려진 꾸깃꾸깃해진 라면 포 장지를 찾아서 곱게 펴시더군요. 사 나이 울리는 ㅅ라면이라더니, 미국 인 시아버님도 울려버리다 못해, 쓰 레기통까지 뒤지게 만드는 자랑스 런 한국의 매운맛!!! 한국에 가면 제 대로 된 원조 ㅅ라면을 사서 보내 드리려고요. (미국에 판매되는 ㅅ신 라면은 미주용으로, 한국 라면에 비 하면 별로 맵지가 않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smileelli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