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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뷰티 칼럼] 패션 피플의 원피스 코디 노하우

제니스 Zenith’s Beautiful Life 유투브 채널 운영자 youtube.com/c/myzenith2015 myzenith2015@gmail.com

원피스의 종류
지난 칼럼에서 패션 피플(패피)들의 옷장정리 노하우를 소개하면서 원피스 아이템의 활용도가 높다는 점을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원피스 코디법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원피스는 먼저 길이에 따라 미니, 미디, 롱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매의 여부에 따라서 긴팔, 반팔, 민소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발목까지 오는 롱 드레스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에스닉한 무늬의 집시풍 드레스부터 고급스러운 연속사방무늬의 클래식한 드레스까지 다양한 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원피스의 길이와 소매에 따른 코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드레스 하나로 포멀하게
요즘 같은 여름철에 민소매 롱드레스는 소재에 관계없이 포멀한 룩부터 바캉스룩까지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프리티 우먼’ 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경마장에 입고 온 베이지색 바탕에 하얀 땡땡이 무늬 롱드레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천의 리본을 두른 모자와 더불어 너무나도 클래시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 영화 이후로 그런 느낌의 코디는 거의 패션의 교본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선보인 포멀한 민소매 드레스 스타일 ©Pinterest

이 코디에서 포인트는 민소매 드레스와 허리에 두른 굵은 벨트입니다. 민소매 드레스는 어깨부터 팔을 드러내어 바디를 길고 날씬해 보이게 합니다.
또한 벨트는 자칫 심심하게 길어 보이는 드레스를 허리에서 두툼하게 잡아주어 여성미와 포멀감을 살려줍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를 거리의 여자에서 우아한 상류층 숙녀로 탈바꿈시켜주는 무기였습니다.

미니 원피스 코디
무릎 위로 짧게 올라가는 미니 원피스는 그 자체로 섹시하고 유니크한 멋을 더해 주지만, 30대가 넘어가면 점점 소화하기 힘든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아예 길이가 짧은 원피스는 샤프롱처럼 슬림한 팬츠와 매치해서 도시적인 프로페셔널 느낌을 연출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길이가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애매한 길이의 원피스라면 허리에 두툼한 벨트를 착용해 벨트 위로 드레스를 꺼내 전체 길이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때 미니 원피스의 무늬나 색감이 화려할수록 샤프롱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샤프롱은 소매의 종류와 상관없이 멋내기를 할 수 있는데 민소매는 도시적인 느낌을 주고, 긴소매는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 올려 고정시키시면 활동적인 멋이 살아납니다.

원피스와 자켓 매치
최근에 잇(it)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는 핸드백이 사첼(Satchel)백이라고 해서 토트백 사이즈에 긴 스트랩을 가진 숄더백입니다. 이 사첼백이 가장 잘 어울리는 코디가 바로 긴소매 자켓과 롱드레스를 매치한 모습입니다.
이때 발목까지 오는 롱 드레스를 매치하면 더 드레시하고 사첼백의 롱 스트렙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더할 나위 없는 세련된 룩이 완성됩니다.
롱 드레스와 자켓의 매치는 자유분방한 여성미를 표현하며 단숨에 패피룩을 연출할 수 있다면, 미디 드레스와 자켓의 매치는 좀 더 포멀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미니 드레스와 자켓의 매치는 캐주얼하고 소녀같은 감성을 표현하고 싶을 때 추천하는 코디입니다.
드레스와 자켓을 매치할 때 주의점은 드레스나 자켓이 부해 보이지 않도록 얇은 소재이면 좋고, 자켓 안에 입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소매가 없거나 얇은 감이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소재를 선택하는 게 좋고, 자켓이나 드레스가 너무 뚜렷하게 각이 잡히거나 두툼하면 멋이 살지 않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여름용 마소재의 홑겹 자켓과 실크 드레스를 매치한다면 너비가 쿼터 인치 정도 되는 띠처럼 가느다란 벨트를 둘러서 정돈된 멋을 살리면 좋습니다.
원피스와 코트 매치
‘프리티 우먼’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주로 입은 드레스는 종아리까지 오는 길이의 미디 드레스였습니다. 미디 드레스는 자유로움보다는 정돈된 여성미를 강조합니다.
반면 발목까지 오는 슬림한 롱 드레스는 집시풍의 자유로운 여성미를 보여주며, 중세 귀족 여성들의 어마어마한 양의 옷감으로 만들어진 풍성한 드레스는 극도의 여성미를 선사합니다.
미디 드레스를 트렌치 코트나 겨울 코트 안에 받쳐 입으면 뒤에서 볼면 코트 밑으로 드레스가 보이지 않고 다리만 드러나기 때문에 여성스러움과 신비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 트렌치 코트나 겨울 코트는 두터울 수 있지만 안에 받쳐 입은 드레스는 부피감이 없어야 여성미가 살아납니다. 한여름에는 코트 안에 민소매 드레스를 입는 게 좋고, 겨울에는 반소매 드레스를 추천합니다.
반면 코트 안에 발목까지 오는 롱 드레스를 매치시키면 위에서 언급한 중세 시대의 숙녀 같은 우아한 멋을 낼 수 있습니다.
코트와 매치하는 드레스를 선택할 때 주의할 점은 허리에 플리츠나 다트가 많이 들어가 바깥으로 많이 퍼져나가는 드레스(캉캉치마 스타일)는 피하시고, 어깨부터 같은 폭으로 내려오는 일자형 드레스를 고르되 무릎 아래에 슬릿이 들어가서 보폭이 자유로운 형태가 좋습니다. 코트 밑으로 드러난 드레스 자락이 슬림할수록 세련된 멋을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민소매 드레스 코디
드레스의 어깨 부분이 끈이나 레이스로 만들어진 슬립 드레스는 흰색 반팔티 위에 코디하면 발랄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여성미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코디는 10대~30대 젊은 층에 잘 어울리는 반면 40대 이상의 장년층에서는 엄두를 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소재의 몸에 착 감기는 얇은 슬립 드레스를 스웨터나 가디건과 코디하면 일반 스커트를 매치했을 때보다 훨씬 더 드레시한 멋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코디는 요즘 같은 여름철이나 봄, 가을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면으로 짜인 스웨터와 코디할 경우 발랄하면서도 루즈한 멋을 주고 몸에 밀착되는 얇은 가디건을 슬립 드레스 위에 입고 단추 여밈을 적당하게 하시면 섹시함과 우아함이 어우러진 룩이 완성됩니다.

여기까지 패피들의 원피스 활용법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같은 옷도 조금 더 멋지게 입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뷰티 칼럼에 대한 문의는 myzenith2015@gmail.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미술관 나들이] 강을 건너 다음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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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NC 미술관 안내원 yopark.kwise@gmail.com

감상을 위한 질문
위의 배 모형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이 모형은 어느 나라 작품일까? 이 배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그리고 가운데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질문에 답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의 생각이 맞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고대 이집트인들과 배
우리는 이집트 문명을 ‘나일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을 익히 들어왔을 것이다. 다른 강들은 홍수가 나면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는데 반해,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인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해주었다.
이집트인들은 이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3,000년 동안 통일된 왕조 아래 장대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특히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나일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에게 배는 생과 사를 아우르는 필수품이었다. 그들은 나일강에서 배를 타고 여행과 상거래, 그리고 피라미드의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했다.
그리고 배는 그들의 종교 의식에도 사용되었다. 장례식 배, 저승으로 가는 배, 태양의 배 등 이집트 중세 시대 무덤에는 물을 가로지르는 여행과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여행에서 고인이 사용할 배 모형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것은 2012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서쪽의 아부 라와시 지역에서 4,500년 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의 배’가 발견되었다.[참조 1]
그리고 1954년에는 이집트 고고학자가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에서 기원전 2,5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쿠푸왕의 태양의 배를 발견했다.[참조 2]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진 길이 43.6m(143 ft) 짜리 배가 1954년에 발견되었다.
위의 배를 다시 조립하여 완성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내세에 도달하기 위해 물을 가로질러 여행해야 한다고 믿었고, 태양의 배가 자신들을 지하세계로 데려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태양의 배를 만들어 무덤에 함께 묻었다고 한다.

배 모형 살펴보기
오늘 소개하는 배 모형은 둥근 바닥과 뱃머리와 선미가 파피루스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나일강에서 실제로 사용된 배와 매우 흡사하다.[참조 3]
이 배에는 5명의 선원이 있는데 각자의 역할이 뚜렷해 보인다. 맨 앞에서 뱃길을 인도하는 사람, 노 젓는 사람, 돛을 담당한 사람, 그리고 맨 뒤에서 키를 잡은 선원이 있다.
그리고 가운데 흰옷을 입은 고인이 내세의 삶을 그리며 앉아 있다. 노 젖는 선원들이 힘껏 노를 당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고인을 빨리 내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 더 깊은 감상을 위해 미술관에 오셔서 다음을 살펴보자.
• 내가 다시 배 모형을 만든다면 사람들을 어떻게 배치할까?
• 고대 이집트의 뗏목이 어떻게 복잡한 배로 발전되었나 살펴보자.
• 사후 세계와 관련해 고대 이집트인들과 우리 조상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자.

참조

  1. https://www.realmofhistory.com/2016/02/02/4500-years-old-well-preserved-ship-found-near-ancient-egyptian-tomb/
  2. https://en.wikipedia.org/wiki/Khufu_ship
  3. https://learn.ncartmuseum.org/artwork/model-of-a-boat/

[미국생활기] 상상초월 미국 의료비 – 내시경 비용

건강한 사람이 부자
미국 생활 4년차. 미국에서 부자는 돈 많이 가진 사람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걸요. 게다가 미국에서는 건강을 잃으면 재산 탕진하는 것도 순식간이겠더라고요.
실은 제가 혈변 때문에 한동안 말 못할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지난 번에 한국에 갔을 때부터 이상을 느끼다가 미국으로 오기 일주일 전에 심각성을 깨닫고 한국에서 병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심각한 병이면 곧 미국에 돌아가야 하니 한국에서 치료할 시간도 없고, 보험도 없으니 미국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의사 보려면 3개월 대기
그런데 증상이 갈수록 나빠져서 병원 예약을 하려니 뭔 전문의들이 다들 예약이 꽉 차서 한 3개월은 기다려야 의사를 볼 수가 있다지 뭡니까? 그 중 한 병원에 제 증상을 얘기하니 3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던 걸 한 달 뒤로 잡아주더라고요. 진짜 심각한 병이면 의사 보기도 전에 기다리다 죽을 판. (물론 그럴 경우에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면 되긴 합니다만, 진료 결과 응급 상황이 아니면 병원비가 후덜덜하니 판단을 잘하셔야 합니다.ㅠ.ㅠ)
아무튼 의사를 만나기까지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애들 볼 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 질질 짜며 ‘이것들이 엄마가 없으면 잘 클 수 있을까? 이 이쁜 것들 고등학교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은데…….’ 하며 시한부 드라마를 매일 찍었어요. 지금은 웃으며 농담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나름 심각했고, 증상들도 꽤 심각했더랍니다.

내시경 예약도 빨라야 3주
드디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본 날. 간단한 검사를 한 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한다며 예약을 잡아주더군요. 한국이었으면 병원 예약부터 내시경까지 일주일 안에 다 해결되었겠죠? 하지만 여기는 미국. 내시경 예약도 병원 예약할 때는 3개월 뒤에나 가능하다고 그랬는데 진료 보고나니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날짜가 3주 뒤라고 해서 그렇게 예약을 하고 다시 3주를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내시경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내시경은 환자가 공복인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전날 오후 2시부터 금식을 한 환자를 고려해 무조건 아침 일찍 진행하느라 환자를 하루에 2명밖에 안 받는대요. (제가 진료받은 의사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시경 예약 대기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침 7시에 병원 도착해서 내시경 비용으로 250불을 지불하고 각종 서류에 싸인하고 수술하는 것처럼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있으니 담당 간호사 2명 등장.
자기소개를 하고, 오늘 어떤 진료를 받게 될 것인지 설명하고, 자신들이 도와줄 것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의사가 와서 자기소개와 함께 내시경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설명하고 오늘 하루는 일도, 운전도 금지이고, 시술 후의 부작용이 있을 경우의 증상에 대해서 설명한 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번엔 마취과 의사가 나타나서 또 자기소개와 함께 마취약은 프로포폴을 사용할 것이고 (나 지금 그 우유주사 맞아보는 거임???) 금방 잠들었다가 시술이 끝나면 금방 깨어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고 사라집니다. 미국에 온 이래로 “I’m Ellie, nice to meet you, too.” 이 말을 제일 많이 한 날이었어요.

프로포폴 마취
잠시 후,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어두운 수술실에 조명만 켜져 있는 곳으로 간호사들에 의해 옮겨졌습니다. 아까 전에 자기소개 해주신 분들이 다시 한번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마취의가 “지금 프로포폴 주입하니 곧 잠들 거다. 잠시 후에 보자~” 했는데……. “미스 엘리? 미스 엘리?”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마치 순간이동한 것처럼 다른 장소로 옮겨져서 남편이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남편이 저의 손을 꼭 잡아주며 “드디어 깨어났구나~!!!” 하며 눈물 찔끔… 했다면 그건 드라마지. 현실은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카메라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찰칵 찰칵!!! 프로포폴에서 깨어나며 비몽사몽하는 모습이 잠에서 깬 모습하고 너무 달라서 사진으로 남겨 놓고 싶었다나 어쨌다나. 그런데 정말 프로포폴 마취는 잠시 잠든 것이었는데도 그 사이에 꿈도 꾸고 너무 푹~ 잔 느낌이었어요. 대신에 깨어날 때 잠에서 깬 것처럼 바로 정신이 차려지지 않고 한 5분 정도 잠에 취한 듯 멍~ 한 상태.

암은 아니래!
내시경 결과를 가지고 나타난 의사 선생님은 “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대장 내시경을 통해 용종 2개를 제거했는데 모양이나 상태를 봤을 때 암은 아니지만 일단 검사를 보냈다. 그리고 궤양성 대장염으로 대장 내에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서 혈변과 복통이 있었던 것이고, 그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완치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계속 지켜보며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어쨌든 암은 아니었다니!!! 정말 다행이었고, 지난 두 달간 애들 잠든 거 보면서 거의 매일 눈물 흘렸는데, 진짜 새 삶을 얻은 것처럼 기쁜 날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제2의 삶과 함께 얻어온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의료비 청구서!!!

악몽의 시작
사실 내시경 예약하면서도 미국 내시경은 또 얼마나 비쌀까 걱정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내시경하러 간 날, 병원에서 지불한 비용은 250불(한화로 약 28만원) 정도라 ‘의료비 비싼 미국에서 내시경 비용 250불이면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미국은 진료 다 마치고 집에 가야 의료비 청구서가 날아온다는 것을 애 낳은지 2년만에 다 까먹은 거죠. 둘째를 출산하고 몇 달에 걸쳐서 청구서가 날아들었었는데,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693불이 청구된 청구서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내가 병원에서 이미 250불을 냈는데, 거기다 693불을 더 내라고??? 내역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청구한 금액은 1,430불이고, 제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737불을 지불하고 제가 693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일에 지불했던 250을 더하면 무려 1,680불! 미국에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하려면 180만원이 든다는 얘기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서 내시경 하고 올 걸~! 무보험으로 했어도 제가 미국에서 부담해야 하는 100만원보다는 훨씬 더 저렴했을 텐데…… ㅠ.ㅠ

내시경 비용이 2천만원?
새 삶을 얻은 기쁨은 이미 잊었고, 돈 아까운 생각에 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 눈물이 마를 때쯤, 또 하나의 우편물이 도착했고, 그것을 본 순간 제 심장은 쿵! 수직강하를 했습니다. 이 우편물은 제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날아온 것이었는데, 병원에서 15,429불(한화로 1,748만원)을 청구했고, 보험사에서 14,123불(한화로 1,600만원)을 지불했으니 나머지 1,306불(한화로 148만원)은 제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뭐시라???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 비용으로 내가 이미 1,000불에 가까운 돈을 지불했거늘!!! 여기에 다시 1,300불을 더 내라고??? 내역서를 보니 이 병원은 제가 프로포폴에 취해 자고 있는 동안 금으로 만든 호스로 장을 검사하고 다이아몬드를 갈아 만든 매스로 용종 두 개를 떼어낸 것도 아닐 텐데, 무슨 내시경 비용이 15,429불(한화로 1,748만원)이나 된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서 14,123불을 지불했으니 저는 1,306불만 내면 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요? 병원 가기 전에는 피똥을 쌌는데, 병원에 다녀오니 피눈물이 나네 그려~!!! 미국에서 보험 없이 내시경 받으려면 16,859불(한화로 1,910만원)이나 내야 한다니!!! 그나마 보험에서 커버하고 제가 지불할 위 내시경 + 대장 내시경 비용은 총 2,250불(한화로 255만원)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미국 사는 한국분들이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보험 없이 진료 받아도 미국에서 진료받는 것보다 싸다고들 하시나 봅니다.

병원에서 온 의료비 청구서 ©스마일 엘리

자기부담금도 부담돼
한 달에 보험료로 남편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가는 돈도 700불(한화로 약 80만원)이 넘는데, 보험이 있어도 자기부담금(Deductable)이 이렇게 높으니 정말 미국 의료비는 적응을 할래야 할 수가 없네요. 그나마 위로를 한다면 자기부담금 일정 한도금액이 넘으면 그 후로는 보험사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라 차라리 큰 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자기부담금만 내고 나머지 비용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네요. 그래서 살펴보니 저의 자기부담금이 2,000불인데, 이번 내시경 진료로 인해서 2,000불을 넘겼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병원비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에헤라디야~~~
그런데 풍악을 울리기도 전에 다시 발견한 사실은 미국 보험은 1년마다 갱신되는데, 저희 보험 갱신 날짜가 10월 1일. (저희 남편의 보험 갱신 날짜는 가입일을 기준으로 해요.) 그래서 10월 1일부로 다시 자기부담금 2,000불이 생성되기 때문에 그 후로 병원에 가면 다시 2,000불을 부담해야 된다는 사실!
그런데 불행은 병원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절초풍할 병원비에 이어 약값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서 미국의 상상초월 의료비에 이은 후덜덜한 약값의 실태, 그리고 비싼 약값의 절약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smileellie777@gmail.com

[상담 칼럼] 싸움의 기술 : I-message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lifeplusfamilycenter@gmail.com

관계의 성숙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연합(창 2:24)’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친해지고 서로 알아가며 사랑하게 되어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하기까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또한 친구를 만나 친해지고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는 우정이 다져지기까지도 꼭 지나가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서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단계를 지나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단계가 반드시 온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지금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지만, 때로는 배우자가 정말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또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에게도 진짜 짜증나서 보기 싫을 때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그 관계가 어긋나고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관계가 성숙해가는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관계가 끝날 것인지, 더 깊어질 것인지를 가르는 열쇠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못난이 감정
어릴 때부터 사귄 친구는 어른이 되어 만난 사람들보다 편하고 오래 간다. 어릴 때는 감정 표현이 빠르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서로 다시 안 볼 것처럼 싸워도 자고나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신나게 논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깊어진 우정은 작은 오해나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다져진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감추는 데 달인이 된다. 친구가 안 놀아줘서 울고 오면 아버지께 혼이 났다. “사내자식이 어디서 징징대냐! 뚝 그쳐!” 그러면서 남자는 슬퍼도 울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동생이 내 물건에 손을 대서 한 대 때리고 소리를 지르면 어머니께 혼이 났다. 그리고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밤에 무서워서 울어도 혼이 났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무것도 없는데… 너 바보야? 어서 자.”
아프다, 화난다, 외롭다, 두렵다, 심심하다, 절망스럽다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가 약하고 못났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감추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감정의 다이너마이트
그런데 문제는 그 못난 감정들이 감춘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꼭꼭 숨겨둔 감정들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다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어느 순간에 뻥 터진다. 그동안 꾹꾹 눌러둔 감정이 터져 나오는 대상은 흔히 가까이에 있는 내 배우자이거나 자녀들이다. 그래서 한번 짜증내고 지나갈 일이 때로는 집안의 물건들이 부서지고, 집을 뛰쳐나가고,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과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그때 그때 풀지 못한 감정들이 어느 순간 다이나마이트처럼 터진 결과이다.

작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싸움을 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비난’이다. 내가 화나거나 상처 받았을 때 대부분은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비난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상대를 비난하면 그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하거나 오히려 너 때문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그러면 작은 싸움이 더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많은 부부들이 싸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싸움의 원인보다는 싸움이 커지는 과정에서 훨씬 더 크고 깊은 상처와 불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I-message
잘 싸우는 기술 중 하나는 잘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I-message’, 즉 ‘너’가 아닌 ‘나’를 주어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네가 게으르니까 집안이 이 모양이잖아!”가 아니라, “내가 집에 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You-message’는 비난으로 시작한다.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은 운전을 왜 그렇게 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차를 세우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러니 대신 I-message로 말해보자.
“여보, 나 무서워. 좀 천천히 가자.”라고 하면 남편은 순순히 속도를 줄여줄 것이다.
공부 안 하는 아이를 야단칠 때도 “공부 좀 해! 넌 뭐가 되려고 그 모양이야!”보다는 “아빠가 걱정이 된다. 네가 나중에 후회 안 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라고 해야 아이가 공부하고 싶어진다.
“당신은 왜 맨날 늦어? 애들하고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 하면 남편은 가정에서 더 멀어진다. 대신 “내가 외롭고 지치네. 당신이 집에 더 있으면 힘이 될텐데.”라고 하면 남편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게 된다.

표현의 지혜와 용기
대부분의 한국 가정은 감정 언어 사용에 서툴다. 그래서 야단을 치거나 비난을 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내 감정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서 나의 솔직한 감정은 창피하고 약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의 가장 약한 모습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솔직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살피는 지혜,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고, 내 감정에 책임지는 용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잘못 표현되면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지혜롭게 표현되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싸움을 위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는 승리가 아닌 이해를 위한 기술이다. 공격이 아니라 갑옷을 벗고 함께 이기는 기술이다.

[참지 말고 사이다] 시어머니의 무리한 요구에 “제가 왜요?”

일요일 아침은 시댁에서
신혼 초에 매주 일요일 아침은 시댁에 와서 먹으라는 말씀에 어이가 없었지만, 시집온지 달랑 2주된 28살 새댁이어서 우선은 입 다물고 3주를 갔습니다. (차로 20분 거리)
그냥 가서 아침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재료만 있고 저보고 밥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고 식재료도 있으니 저보고 만들어 내라는 식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나도 맞벌이인데 일요일 아침마다 내가 이걸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남편 왈, 처음부터 무조건 싫다고 하면 반항하는 걸로 보이니까 한 반년(!)만 해주고 그때가서 횟수를 줄이거나 없애자고 얘기하자고 하더군요.

이거 왜 하는 거죠?
그런데 3주 해보니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4주째 되는 날 아침에 가서 시어머니께 저 이거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맞벌이인데, 소중한 주말에 늦잠도 못자고, 평일에 바빠서 미뤄둔 집안일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할 이유를 모르겠다고요. 시댁에 생일이나 경조사가 있으면 당연히 찾아뵙겠지만, 이거 도대체 왜 하느냐고요. 그랬더니 요리를 가르치고 살림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하시더군요.
저 혼자 산지 8년이 넘어서 웬만한 살림이며 요리 다 할줄 알고, 그리고 살림을 배운다면 왜 내 집 놔두고 다른 데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이유라면 저는 이렇게 일요일 아침에 억지로 와서 요리할 필요 없으니 앞으로는 오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내가 뭐랬어!
그러자 신랑은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어버버 거리고, 시어머니는 정수리까지 빨개져서 금방이라도 소리지를 것 같더니 시아버지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지가, 그러게 내가 뭐랬냐고, 쓸데없이 시어머니 권위를 보이네 어쩌네 하면서 애를 들들 볶더니 당신이 말한 권위가 이런 거냐며 한심한 여편네라고 소리지르셨어요. 그러시고는, “말 잘했다. 어서 집에 가라. 그리고 내가 부를 때까지 오지 마라. 오고 싶으면 며칠 전에 연락해서 약속 잡고 와라. 나도 주말 아침부터 내 집에 며느리든 아들놈이든 들이닥치는 거 귀찮다.”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쫓겨났습니다.

제가 왜요?
그 후로도 시어머니 권위 포기 못하시고 끄떡하면 이상한 거 요구하시더라고요.
친정 엄마가 브랜드 미시옷 매장 하시는데 한번 구경가고 싶다 하셔서 모시고 갔더니 너무나 당연하게 옷 얻어가시면서 “아들 잘 키웠더니 이런 것도 얻어 입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다음 시즌에 또 가자 하시길래, “제가 왜요?” 그랬어요.
한여름 삼복 더위에 지방 사시는 시이모님 올라오신다며 평일 오전에 저보고 터미널 가서 모셔 오라시기에, “제가 왜요?”
생일도 아니고 용돈도 매달 드리는데, 여름에 세일한다며 갑자기 모피를 사달라시기에, “제가 왜요?”
여름 휴가를 시삼촌네 댁에서 보내자며 신랑이랑 제 휴가 날짜를 맞추라고 하시길래, “제가 왜요?”
저랑 동갑인 도련님한테 (아직 대학생이라 돈도 없고 전망도 별로임) 여자 좀 소개시켜주라고 하시길래, “제가 왜요?”
남편이 중재 역할을 못해주니 저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요.

출처 : 네이트 판

[영화 칼럼] 인생의 옆길에서 삶을 음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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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윤 캐롤라이나 열린방송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parksungyoontree@gmail.com

사이드 웨이 (Sideways, 2004)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연: 폴 지아매티, 토마스 헤이든 처치

와인 영화의 명작
와인 애호가인 중학교 영어교사 마일즈는 결혼식을 1주일 앞둔 단짝 친구 잭과 함께 산타바바라의 와이너리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다.
‘일렉션’, ‘어바웃 슈미트’를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04년작 ‘Sideways’는 개봉하자마자 많은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특히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와인의 깊은 풍미에 비유하며 관객들을 취하게 한 덕분에 와인 판매량을 급증시킨 영화이기도 하다.

잠시 인생의 옆길로
마일즈는 2년 전에 아내와 이혼했다. 그리고 작가의 꿈을 안고 자신의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고 출간 결정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다. 벌써 인생의 절반을 살았지만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과 실패한 결혼에 대해 슬퍼하며 전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일즈에게 유일한 삶의 위안은 와인이다.
마일즈의 오랜 친구 잭은 예전엔 드라마 조연으로 잘 나갔지만 지금은 TV 세척제 광고 성우로 전락한 B급 연기자다. 그는 부잣집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실은 장인의 사업을 도와야 하는 부담감과 자신의 타고난 바랑둥이 기질을 더 이상 만끽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결혼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마일즈와 잭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행과 와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잭이 그만 옆길로 너무 빠져 버렸다.

와인 애호가 마일즈는 단짝 친구 잭과 함께 여행을 나선다. ©justwatch.com

옆길에서 만난 사랑
이 위기의 중년 남자들은 여행지에서 아침엔 골프를 치고 낮에는 와인을 시음하며 밤에는 고급식당에서 와인과 식사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바람둥이 잭은 자신의 결혼을 비밀로 한 채 와이너리에서 시음 와인을 잔에 가득 따라준 열정적인 여자 스테파니아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에 바쁘다.
마일즈는 이곳에 오면 늘 들르는 식당의 웨이트리스 마야의 관심을 느끼지만 결국 처량맞게 혼자 시간을 보낸다.

와인과 인생
어느 날 이들 4명은 함께 식사를 하며 더블 데이트를 하게 된다. 평소에는 주눅 들어 있지만 와인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눈이 빛나고 열정적이 되는 마일즈와 탁월한 미각의 소유자인 마야는 와인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마야가 마일즈에게 묻는다.
“피노(pinot, 포도의 종류)를 왜 그렇게 좋아해요?”
“글쎄요… 피노는 재배하기 힘든 포도예요. 껍질이 얇아서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빨리 익죠. 카버네 같은 생존자가 아니에요. 아무데서나 자랄 수 있는, 안 돌봐줘도 잘 자라는… 피노는 항상 돌봐주고 관심을 줘야 해요. 오직 인내심과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피노를 가꿀 수 있죠. 피노의 잠재력을 아는 사람만이 피노의 진정한 맛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러고나면 그 맛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빛나는, 미묘한,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고풍스런 맛이 되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마일즈와 마야 ©PicsWe

피노를 통해 마일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마야는 알아챘을까? 이번엔 마일즈가 묻는다.
“왜 와인을 좋아해요?”
“나는 와인의 일생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아요. 와인은 살아 있어요. 난 그 포도들이 자라던 해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생각하는 게 좋아요. 태양은 어떻게 빛났는지, 비는 왔었는지. 그리고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요. 오래된 와인이라면 그동안 그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도 생각하죠.
나는 와인이 계속 진화하는 것이 좋아요. 내가 오늘 와인을 한 병 딴다면 그 와인은 다른 날에 땄을 때와 다른 맛이 날 거예요. 왜냐하면 와인은 살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맛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복잡성을 갖게 되죠. 정점에 이를 때까지요. 당신이 좋아하는 그 61년산 와인처럼요. 그러다 정점에 이르면 피할 수 없는 내리막이 시작되죠. 그리고 정점일 때의 그 맛은 정말 끝내주죠.”
마일즈의 진실함에 반한 마야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불행의 순간엔 오직 와인
마일즈는 마야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전처 빅토리아에 대한 미련과 자괴감 때문에 마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전처가 재혼을 한다는 것과 자신의 소설이 출판사에서 거절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총체적 불행과 슬픔과 분노를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와인뿐! 마일즈는 와인 코르크를 이빨로 뽑아 와인을 퍼부으며 포도 농장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와이너리의 시음와인 항아리를 통째로 들이붓는다. 마일즈는 와인의 맛을 전혀 음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순간 이렇게라도 미치도록 의지할 것이 있음은 다행이 아닐까?

광란의 파티
한편 마일즈는 자신의 소설에 관심이 있는 마야에게 초고를 건네주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며 같이 밤을 보낸다.
그런데 결혼 소식이 들통나 스테파니아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잭은 코뼈가 내려앉은 상태에서 또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다 결국 그 여자의 남편에게 발각되어 결혼 반지를 넣어둔 지갑마저 잃어버린 채 알몸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잭의 코뼈에 대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들이받아 자동차 사고로 위장한다.
좋은 와인을 많이 맛보고 싶었던 마일즈와 많은 여자들과 즐기고 싶었던 잭의 달콤쌉싸름한 일탈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마일즈는 다시 무기력한 삶으로 돌아온다.

절망의 순간에도 와인
잭은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되고, 그의 결혼식에서 마일즈는 전부인인 빅토리아와 재회하게 된다. 함께 와인을 음미하며 즐겼던 그녀를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는 마일드에게 빅토리아는 임신을 해서 더 이상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그 둘 사이를 이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감에 마일즈는 그녀와 다시 만나는 날 마시기 위해 소중하게 보관해 오던 특별한 와인 61년산 샤토 슈발 블랑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함께 종이컵에 따라 허망하게 마신다.

사랑으로 숙성되는 삶
출판사의 전화를 기다리던 마일즈는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자동응답기를 확인한다. 그러나 자동응답기는 늘 비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메세지가 하나 들어와 있다.
“늦게 연락해서 미안해요. 당신의 소설을 읽었어요. 정말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예요. 출판이 안 되면 어때요. 포기하지 말아요. 계속 글을 써요. 행복하게…….”
자신이 너무도 하찮아서 자살도 못하겠다던 자괴감과 절망 속에 허우적 거리던 마일즈는 결국 마야의 따뜻한 사랑으로 다시 삶의 기쁨을 느끼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인생을 음미하다
영화 제목인 sideways는 우리말로 ‘옆길’ 또는 ‘샛길’을 의미하고 속어로는 흠뻑 취하다라는 뜻도 있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렉스 피켓(Rex Pickett)은 이혼과 작가로서의 실패, 그리고 빚더미로 삶의 절망 가운데 자살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잠시 쉬어가려고 들른 와이너리에서 사람들과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자신을 치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인생의 여정에 잠시 쉬어가는 샛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경험은 때로 우리 삶에 깊은 풍미를 더해준다. 그러니 인생이 힘들고 외로울 때 잠시 샛길로 빠져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인생을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조성택 칼럼] 절망에서 희망으로

조성택 前 전라남도의회 의원
태권도 공인 9단 (국기원)

매미의 메시지
메모리얼 데이를 지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원한 매미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매미가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떠올리곤 한다.
굼벵이가 매미로 탄생하기까지는 평균 6~7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땅속에서 나무 뿌리의 진액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여름날 비가 내린 다음날 매미 애벌레들이 부드러운 대지를 뚫고 우화(羽化: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화)하기 좋은 나뭇가지나 풀잎사귀 등에 자리를 잡고 매미로서의 짧은 생을 시작한다.
굼벵이가 매미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매미보다 긴 세월을 살아가는 우리도 녹녹치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미처럼 희망을 가지고 기(氣)를 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
나에게 희망의 표상으로 남아 있는 분이 있다. 한국의 15대 대통령 김대중. 그의 정치 인생 40년은 파란과 시련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6.25 전정 때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 직전에 도망쳤고, 1971년에는 국회의원 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목포에서 광주로 이동하던 중 14톤짜리 대형트럭이 덮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공화당 모씨가 경영하던 운수회사 소속).
그리고 1973년 동경에서 납치되어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이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전두환의 시나리오에 의에 ‘정부 전복 음모’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정치적 박해로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험난한 정치 역정이었다.

27년간의 수감생활
지난 2013년, 95세로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 역시 또 하나의 희망의 표상이다. 그는 19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들어가서 “넬슨”이라는 서양식 이름을 받았다. 얼마 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부족왕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여 광산회사 경비원과 법률회사 사환 등으로 일하면서 대학을 마쳤다. 그 후 민주화 운동의 중심 정당이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회합에 참가하고 입당하게 된다.
1951년 ANC 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된다. 1956년에는 내란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된다. 1962년에는 해외에서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남아공을 탈출했다가 복귀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1963년 교도소에서 내란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그 후 무려 27년이 지난 1990년에 마침내 석방된다. 그 후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부총재로 선출되고, 1993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이어 1994년에 남아공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는 정치범으로 무려 27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백인정권의 강고한 아파르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며 투쟁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흑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남아공을 건설했다. 그 긴 절망의 시간 동안 그는 희망의 세상을 그려왔던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 스러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무엇이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신의 존재를 통해 영적인 삶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또 어떤 이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우며 절망의 시간을 서로 위로하며 견뎌나간다.
나는 절망의 순간에 다섯 번이나 죽음의 목전에서 하늘에 간절히 기도했을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한다. 그리고 27년의 수감생활 동안 한 줄기 희망을 품고 평생을 기다렸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면 아마 포기해도 여러 번 포기했고, 죽어도 여러 번 죽었을 것이다.
특히 나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과 배신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원한과 복수심으로 더 큰 괴로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럴 때 이 두 사람을 기억하면 어떨까?
김대중과 만델라 두 대통령은 정치적인 이유로 가장 극심하고 잔인한 형태의 박해를 받았지만, 자신들을 박해한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마치 변학도에게 부당하게 고문 당하고 생명에 위협을 받았던 춘향이의 한(限)은 이도령을 만남으로써 풀리는 것이지 변학도에게 똑같이 복수함으로써 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름이 오면 매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도록 하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며 열심히 살았다면 매미가 우는 한여름에는 지친 일상과 무거운 절망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편안히 쉬며 새롭게 회복할 시간을 주자.
우리에게는 매일 여러 가지 고비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며 그 고비를 넘어가야 한다.
또한 삶의 고비는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며 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 힘을 내서 살아가자.

[인생 토크] 삶이 힘들어 자살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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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형 얘기 한번 들어볼래?”

편집자주 – 어느 인터넷 웹사이트의 좌절 게시판에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차라리 자살하고 싶다”는 어떤 학생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삶에 지친 모든 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 KOREAN LIFE 지면에 소개합니다.

콩가루 집안
나는 9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빠와 함께 새엄마랑 살았어. 그리고 11살 때 아빠가 외도를 해서 새엄마 새아빠와 살게 됐지.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콩가루 집안…
어린 나이에 새엄마 새아빠랑 사는 기분이 어땠을지 너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소풍이나 이럴 때 김밥도 못 싸갔고, 돈 못 낸다고 선생님한테 맞기도 했어.
아… 그때부터 나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았어. 부모(?)라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았고, 공부도 안 했지. 너무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머리가 멍해지더라고.

고1 자퇴와 우울증
중학교에 올라가서 3년 내내 왕따를 당하다가 결국 고1 올라가서 딱 이틀 다니고 자퇴를 했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고, 그 덕분(?)에 병원에도 많이 갔지. 그때 내 마음은 친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하는 정도의 아픔이 아니었어. 그냥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 친구들이 엄마 얘기할 때 혹은 아빠가 뭐 사줬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작아졌어…

검정고시 준비
그러다가 내가 18살이 됐을 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우선 뭐가 됐든 시작을 해보고, 아무리 힘들어도 성공까지 가보자…’
그렇게 첫 목표로 잡은 게 검정고시. 그런데 하도 공부를 안 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우선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검정고시는 필수과목 6개와 선택과목 2개를 합쳐서 총 8과목이었어.
그런데 이 책들을 사려니까 돈이 11만원이 필요하네? 그래서 안 사도 되겠다 싶은 것은 안 사고, 꼭 필요한 것만 사면 5만원이면 되겠더라. 하지만 나는 그 5만원도 없었지. 그래서 5일 동안 전단지를 뿌리고 돈을 벌어서 접수비까지 충당하고 접수하고 오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한 거야. 뭔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
그래서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 4시간씩 치킨 배달을 했어. 그런데 치킨집 배달하면서 사고가 그렇게 많이 나는 줄 처음 알았다. 내가 아무리 신호를 잘 지켜도 소용 없더라. 한번은 신호대기 중인데 어떤 차가 갑자기 옆으로 밀고 들어와서 내 발가락이 다 나갔어. 철심 박고 병원에 누워 있었지. 물론 내 돈 드는 건 아니었으니까 병원에서 그냥 하루종일 공부만 했어.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었거든.
그렇게 딱 4달 동안 공부했거든? 그런데 점수가 너무 잘 나온 거야. 평균 83! 검정고시는 평균 60점만 맞으면 합격이야.

단칸방 생활
그런데 좋은 일은 같이 온다고 해야 되나? 그때 친엄마가 전화가 와서 나더러 같이 살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친엄마,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서 월 30만원짜리 17평 원룸에서 살게 됐어.
여름엔 엄청 더웠고, 겨울엔 난방비 아낀다고 엄청 추웠어. 당시 엄마가 도서관 청소해서 버는 돈이 한달에 83만원. 거기서 월세 30만원 내고 전기세 등등 이것저것 내면 얼마나 남겠어.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렇다고 내 미래를 포기할 순 없잖아?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 나온 답은 두 가지. 부사관을 가느냐, 아니면 산업체를 가느냐…
산업체는 3년, 부사관은 4년. 그런데 혜택이나 수당 같은 걸 보니까 부사관이 더 좋더라고. 그래서 부사관 시험을 준비했지. 다행히 그닥 어렵진 않았다. 필기는 쉽게 합격했고, 실기에서 조금 애를 먹긴 했었는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1500m 달리기 등… 어찌어찌 합격하고 15주 훈련 후에 자대배치를 받았어.

군대 부사관 시절
그런데 처음에는 사람을 엄청 무시하더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불쑥 나타나서 자기들 관리한다니까 그럴 만도 했겠지. 아무리 내가 자기들보다 짬이 낮아도 그래도 상관인데, 바로 앞에서 대놓고 무시하고 욕하고… 그래도 꾹꾹 참았지. ‘여기서 참는 거? 내 인생에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받은 돈이 109만 얼마였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주는데, 그 휴가를 반납하면 10만원 정도 나와. 엄마한테 바로 100만원 부쳐 드렸지. 나야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밖에 나가봐야 돈만 쓰니까 휴가도 안 나갔어.
그리고 다음 달부터 한 달에 70만원씩 군용 적금 붓고, 엄마한테는 50만원씩 부쳐드렸다.

방송통신대 영문과 진학
군대에서 지원해주는 대학이 있어. 그래서 인터넷으로 수업 듣고 시험날만 학교가는 방통대를 들어갔지. 영어가 좋아서 영어영문과를 지원했어. 5시에 땡하면 무조건 씻고 들어와서 매일 1~2시간씩 공부했어. 그리고 결국 4년제 학사학위를 땄지. 방통대는 스스로 공부해야 되고 또 시험 성적에 따라서 학점을 주니까 졸업하기가 만만치 않아. 아니 굉장히 힘들어.
내가 4년 동안 흘린 눈물이나 고생, 그리고 동생들 학비 대주고 했던 거, 진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세상이 준대로 그대로 항복하면? 물론 편하긴 하겠지. 그런데 난 그러지 않았어. 왜냐고??? 그렇게 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난 진즉에 알았거든.

사회로 복귀
시간이 흘러 어느 덧 부사관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꽉 차고 제대해야 할 시간이 됐을 때 정말 엄청난 고민을 했다. 진급시험을 보고 말뚝을 박을까, 아니면 사회에 나가서 영어 전공을 할까? (당시 3학년)
“에이!!! 그래, 일단 벌어둔 돈도 있고 퇴직금도 있으니까 나가보자! 나가서 해보자!!!”
군용 적금 3,700만원과 엄마가 모은 돈 2천만원을 합쳐서 5,500짜리 전세를 얻었지. 정말 내 인생에… 그렇게 신났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전세라고는 해도 우리집… 더 이상 월세 낼 걱정도 없고, 여동생 방도 만들어주고 책상도 사줬어.

호주 유학
제대하고 방통대 4학년을 다니는데 학교에서 나의 성실한 면을 눈여겨 봤나봐.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유학을 보내주네??? 여차저차 준비해서 호주 시드니에 도착. 나는 시드니가 호주 수도인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ㅋㅋㅋ 아무튼 가서 그쪽 교수님들과 인사를 하는데, 말이 안 통하잖아… 아무리 영문과 학생이라도 맨날 영시만 해석해댔는데 말이 통하겠냐? 하여간 그렇게 연수를 갔다오니 학교에서 표창장을 주네??? 그리고 3학년 때부터 꾸준히 봐오던 토익도 810점까지 땄고.

취업과 또 다른 꿈
드디어 졸업 시즌이 다가오고, 이곳저곳에 막 이력서를 썼다. 토익점수다, 호주 유학이다, 부사관 출신이다, 뭐 조금이라도 도움된다 싶은 건 다 썼지. 그랬는데 오잉??? 당시 내가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1차 탈락이 하나도 없고 다들 와서 면접을 보라는 겨?
그리고 더 웃긴 건 뭔줄 아냐? 거기서 내 토익점수나 유학 경험을 묻는 게 아니라 가정환경을 물어보더라고??? 그때 깨달았지. 스펙보다 내 가정환경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며 살아온 걸 더 높게 평가한다는 걸. CNQ 면접보시던 과장님이 날더러 정말 대단하다며 진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더라. 그리고 합격…
연봉도 괜찮다. 얼마 전엔 차도 샀지. 이제 융자 받아서 진짜 내 집을 마련하고 가족들과 다 함께 살 계획이야. 그리고 열심히 벌어서 여동생 혼수도 해주고, 어머니 좋은 것도 많이 해드리고 말이지.
그리고 최근에 꿈이 하나 생겼는데, 박사학위를 따서 영문학 교수가 되고 싶어. 그래서 회사에 말했는데, 지원을 해준다고 하네??? 언제부터 할 거냐 묻는데 내심 걱정이 되기는 한다.ㅎㅎㅎ 교수면 학생들 가르쳐야 되는데,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태까지 어려운 것도 많이 해왔으니까. 그리고 나는 나를 믿거든…

네 자신을 믿어
어때, 동생아! 형 인생 이야기 참 길고 힘들지? 형은 그렇게 생각한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해 그렇게 불평을 하는 것 같아. 그런데 나중에 네 나이 50살 정도 먹었을 때 이런 환경에서 내가 이만큼 해냈다!!! 라고 생각해봐. 얼마나 멋진 일이냐!!!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너를 비교하지마. 나도 인정하긴 싫지만 세상이 원래 그래.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다들 출발선이 다르지… 물론 출발선이 다른 건 네 탓이 아니야. 그래서 화가 나고 원망도 하고 세상이 더럽지. 다 이해해. 그래도 절대 포기는 하지 마라. 비록 내 출발선은 비루하고 늦어도 그 결승선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 소중한 목숨 버릴 생각 하지 말고 스스로를 좀 더 믿어봐. 힘을 내… 그리고 이 악물고 버텨. 사는게 힘들어서 그만큼 울어봤으면 이젠 웃어도 봐야지… 안 그래???
네 인생 앞날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기도할게.

[코칭 칼럼] 직장에서의 걸림돌과 디딤돌

김종명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iamcoach@naver.com

직장 상사가 걸림돌
코칭을 하면서 만났던 A부장은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A부장이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사의 괴롭힘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다른 회사로 옮겼다고 했다.
몇 년이 흐른 후 우연히 A부장을 만났다. A부장은 지금 직장이 예전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여우 같은 상사 피하려다가 호랑이 같은 상사를 만났습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더군요.”
A부장은 자신은 상사 운이 없다고 푸념하면서 만나는 상사마다 자기 인생의 걸림돌이었다고 했다.

상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 코칭하고 있는 분들 중에도 상사 때문에 일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 상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독선적이고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조직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상사가 회사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이분에게 물었다. “본부장님은 상사의 성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분의 애로사항은 무엇입니까?”
이분은 당황했다. “예? 상사의 성공을 위해 뭘 하냐고요?”

당신은 어떤 상사인가?
좀 더 객관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이분의 부하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그의 부하 직원들은 이분의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 중 한 명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상사들은 서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전혀 듣지 않아요. 자기만 옳다고 하고 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일하기가 힘듭니다. 계속 이렇게 서로 딴 방향으로 간다면 다 같이 망하고 말겁니다. 일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방향은 한 곳을 향해야 합니다. 상사들이 조직의 목표를 한 방향으로 정렬해주면 좋겠습니다.”

상사와 목표 일치시키기
어느 임원이 말했다.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상사와 경쟁하지 말고 상사를 성공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목표를 상사의 목표와 한 방향으로 일치시켜야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상사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함께 성공할 수 있습니다.”
코칭을 시작할 때, 자신을 둘러싼 상하좌우의 이해관계자를 파악하고 그들의 목표와 현재 상황을 검토한다. 상하좌우 이해관계자들의 목표와 방향을 일치시키기 위함이다. 개인의 행동이 조직의 목적과 일치할 때 비로소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상사가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조직의 방향을 공유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위한 디딤돌
코칭 했던 분 중에 매일 아침 ‘상사에 대해 명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 눈을 감고 바로 윗상사와 두 직급 높은 상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명상에 잠긴다.
‘지금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이 뭘까?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까?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성찰한다고 한다.
그렇게 명상을 하면 상사들의 욕구와 불안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들의 욕구와 불안을 해결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상사들은 그에게 일의 핵심을 파악할 줄 안다고 칭찬했다. 서로 일치된 방향으로 열심히 일하다보니 성과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상사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직장생활이 즐거워졌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목표에 방해가 될 때 걸림돌이 되고, 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목표와 일치할 때 디딤돌이 된다.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목적과 목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 서로에게 디딤돌이 된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목적과 목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나를 둘러싼 상사, 동료, 부하들에게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비즈니스 칼럼] 절대 포기하지 마라!

황새와 개구리
내게는 오래된 그림이 한 장 있다. 황새에게 머리부터 잡혀 먹히게 된 개구리가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황새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 유머러스한 그림은 내 책상 앞에 항상 자리잡고 있다.
나는 지치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 그림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 그림은 내가 사업적인 곤경에 빠졌을 때 그 누구보다 실질적인 격려를 해주었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일깨워주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살피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이 개구리를 보며 얻을 수 있었다.

실패 너머 실패
미국에 이민 와서 우리 가족이 운영하던 비즈니스가 차츰차츰 성장하면서 나는 가족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것에서 벗어나 보려 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에 계속 도전했지만 결국 몇 년간의 수고가 다 물거품이 된 날 아침에도 나는 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산보다 많은 빚을 가지고 타국에서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망감이 온 몸을 싸고 돌았고, 나의 실수로 부모님의 노후와 아이들의 장래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죄책감과 슬픔이 머리를 쥐어뜯게 하던 시절이었다.

개구리의 용기로
어느 수요일.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는 길에 있던 휴스턴에서 유명한 소매 유통업체가 경영자들의 이권다툼 끝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장 하나당 시세가 400만 달러나 된다는 그 회사는 내 형편으로 욕심을 내기에는 터무니없었다. 더군다나 동양인에게는 절대 넘기지 않는다는 이상한 소문도 들렸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68달러(68만 달러가 아니다)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장 그 회사의 사장을 찾아내 약속을 잡고 그 업체의 거래 은행을 찾아가 은행장과 부행장을 만나 도와달라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그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그 회사를 바라보며 “저건 내 꺼다. 저건 내 꺼다.”라고 100번씩 외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8개월을 쫓아다닌 후, 나는 4개의 열쇠를 건네 받았다. 죽어가는 회사를 살리는 나의 재주를 믿어준 은행과 내 억지에 지쳐버린 사장은 100% 융자로 40년된 비즈니스를 나에게 넘긴 것이다.
동요하는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이익의 25%를 나누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을 다독이며 비즈니스를 키워나갔다. 매출은 1년만에 3배가 올랐고, 이듬해에는 추가 매장도 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절망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그 개구리처럼 마지막까지 황새의 목을 움켜쥐고 버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절망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코 다가서지 못할 것 같은 부부 간의 이질감, 평생을 이렇게 돈에 치여 살아가야 하는 비루함, 실패와 악재만 거듭하는 사업, 원칙과 상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정치적 모멸감. 이런 모든 절망 앞에서도 부디 개구리의 마지막 몸짓을 생각하기 바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 인생은 불과 다음 해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나는 과연 내년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내년에도 이곳에 살고 있을까? 나는 과연 내년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 격랑의 바다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 모두에게 나는 이 개구리의 용기를 보여주고 싶다.
황새라는 운명에 대항하기에 개구리 같은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당신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운명이라는 거친 손이 당신의 목덜미를 휘감아 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오늘부터 마음 속에 이렇게 용감한 개구리를 한 마리 키우시기 바란다.

출처 : 김승호, <자기경영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