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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글쓰기는 최고의 공부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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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kthan@assist.ac.kr

책을 쓰라
나는 뭔가를 공부하고 싶을 때 책을 쓴다. 인재 채용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쓴 책이 <채용이 전부다>이고, 제대로 몸을 만들기 위해 쓴 책이 <몸이 먼저다>이다. 최근에 쓴 <재정의 사전>, <고수의 질문법>, <역설의 역설> 등은 모두 재정의와 질문, 역설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결과물들이다.
나는 이렇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 공부하는 방법으로 책 쓰기를 택한다. 시간도 들고 힘도 들지만 결과는 최고다. 일단 그 분야의 책을 한 권 쓰고나면 그 주제에 관해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전문가로 등극할 수 있다.

최고의 공부법
글쓰기는 나에게 최고의 공부방법이다. 조만간 인문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쓸 예정이다. 인문학의 으뜸은 역사다. 그동안 나는 제법 많은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요약하고 커뮤니티에 소개해왔다. <부의 역사>, <달러 이야기>,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을까>, <세계사 지식향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역사로 읽는 경제> 등등.
다음은 지리다. 지리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네덜란드 이야기>, <경제는 지리>,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지리의 힘> 등등. 지리를 공부하면서 지정학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처럼 살면 한국이 위험할 수 있다는 강한 위기의식도 생겼다.

콘텐츠 사전 점검
나는 글을 쓰기 전 내 콘텐츠에 대해 사전 점검을 한다. 이게 나 혼자만의 주장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지 알기 위해서다.
얼마 전 윤은기 회장이 주최하는 백강포럼이라는 곳에서 인문학 콘텐츠를 가지고 처음 강의를 해봤다. 혼자 읽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내용들이 어느새 역사와 지리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 나왔다. 원래 강연 제목은 “고수의 질문법”이었는데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살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1세기 이완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19세기 말 쇄국주의를 주장하다 나라를 말아먹은 것과 데이터 쇄국주의를 하다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얘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역사와 지정학 관련 얘기를 했는데 뜻밖에도 참가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책을 읽고 느낀 혼자만의 위기의식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 다음 과정은 내 생각을 구체적인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고수들의 비법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예일대 물리학과 라마무르티 샹커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책을 쓰다보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그래서 난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싶을 때 책을 쓴다. 집필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운다. 책을 쓰고나면 학생들에게 새롭게 이해한 부분을 설명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한국에서 글쓰기와 관련해 한 획을 그은 강원국도 이런 얘기를 한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싸움이다. 좋은 자료를 얼마나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길이 있다. 자료를 찾다보면 그 안에 반드시 길이 있다. 글은 자료와 생각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다.”
그들의 말도 결국 글을 쓰는 것이 최고의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자기수련
글쓰기는 최고의 자기수련 방법이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몸과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암송과 연극, 필사와 구술 등 고전의 입구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최후의 관문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고전의 지혜와 나의 몸이 화학적으로 융합되는 절정의 순간이다.
쿵푸를 배울 때 교재만 죽어라 읽어대는 이는 없다. 반드시 몸으로 직접 해야 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지성의 훈련도 이와 같다. 대중이 평생 지식인의 말을 듣고 그들이 쓴 글을 읽기만 한다면 그건 불평등한 배치다. 대중지성이란 대중 자신이 지성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읽고 암기하고 베끼고 한 다음 스스로 글을 써야 한다. 발산과 수렴의 동시성, 오행의 모든 기운을 다 응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운법(開運法)으로 최고다. 글쓰기만큼 보편적인 활동도 없고 원초적인 욕망도 없다.”

최고의 인생역전
우유를 마시는 사람과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중 누가 더 건강할까? 당연히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다. 책 쓰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혜택을 받을까? 당연히 책 쓰는 사람이다. 책 쓰기는 최고의 공부이다.
변화하고 싶은가? 거듭나고 싶은가?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가?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가? 내 안의 잠든 거인을 깨우고 싶은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가?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단연코 글쓰기다.
내 인생은 글쓰기 전과 글 쓴 후로 나눌 수 있다. 나는 글쓰기 전의 내가 아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한다. 매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일요일 새벽이다.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만함을 느낀다. 책을 쓰는 동안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참지 말고 사이다!] 시댁 단체 카톡방에서 탈출한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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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가~, 답장 좀 해라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 3년차 워킹맘입니다. 저는 시댁의 단체 카톡방에 2년 정도 갇혀 있었는데,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격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일단 시어머니는 시댁 단톡방에 진짜 30분에 한번씩 메세지를 보내십니다. 저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명언, 좋은 글귀, 꽃 사진 등등 진짜 너무 많이 올리세요;;; 처음에는 신경써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데 하루종일 계속 이렇게 올리시니까 시부모님 메세지를 씹을 수도 없고 난감했죠. 그리고 가뜩이나 신혼 초라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항상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회사를 다니니 시어머니 메세지에 바로바로 답장을 할 수 없을 때가 많았죠. 제가 1시간 정도 답장을 안 하면 전화가 오십니다. “새아가~, 많이 바쁘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보낸 메세지에 답장은 해줬으면 좋겠구나.” 하시더라고요.

우리 엄마 신경 좀 써줘
어느 날은 회사에 비상이 걸려 핸드폰을 볼 새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댁 단톡방 메세지도 못 보고, 시어머니 전화도 못 받았어요. 그런데 세상에나… 시어머니께서 회사로 전화를 하셨어요. 저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급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새아가~, 내 메세지도 안 읽고 전화도 안 받는구나. 너무 한 거 아니니?” 하시는 거예요.
그날 저녁에 남편한테 엄청 뭐라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이, “우리 엄마가 스마트폰 단톡방 같은 게 신기해서 그러시는 거야. 네가 신경써서 답장 좀 해 드려.” 하더라고요? 하… 진짜 남편은 남의 편이라더니, 저희 남편이 딱 그짝이었어요.

늙으면 죽어야지
그리고 주말에 시어머니께서 단톡방에서 저에게, “새아가~, 프로필 사진이 아주 이쁘구나. 어디서 찍은 거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남편이랑 여행가서 찍은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께서, “너희들끼리만 좋은 데 다니는구나.^^ 늙으면 집구석에 가만히 있어야지, 그렇지?” 하시더라고요. 하…
그 후로 시도때도 없이 단톡방에, ‘내 친구는 제주도 여행 다녀왔다더라, 계모임하는 친구 중에 며느리가 캐나다에 보내줬더라.’ 등등 그 일로 정말 보름 동안 시달렸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은행 마이너스 통장으로 제주도 여행 보내드렸네요. 그리고 프로필 사진은 아예 기본사진으로만 해둡니다.

나 혈압 올라 쓰러진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시댁 단톡방에서 항상 저만 답장을 하고 있어요. 남편은 한번도 답장을 안 했죠. 왜 맨날 저한테만 답장하라고 하시는지 어이가 없어서 하루는 시어머니께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본인 아들은 남자라 회사에서 일하는 데 방해하면 안 되니 답장을 안 해도 상관이 없다네요. 저도 똑같이 회사 다니고 돈 번다고 했더니, 남자랑 여자랑 같냐고 하시네요. 아니, 이게 말인가요?
그날 진짜 너무 열이 받아서 시댁 단톡방을 확 나가버렸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한테 바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제가 전화를 안 받으니 남편한테 전화를 하셨죠. 제가 왜 단톡방을 나갔냐고 막 뭐라 하시길래, 저도 큰소리로 “짜증나서 단톡방 나갔어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놀고 먹으며 답장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전세대출금 갚느라 아둥바둥 일하는데 너무 하시는 거 아니냐고 했죠.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자기 혈압 올라 병원에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하… 그래서 결국 그 지옥 같은 시댁 단톡방에 다시 들어가게 됐습니다… 역시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좋은 글귀부터 꽃 사진까지…

해킹 됐나봐요!
그러다 문득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제 카톡 프로필을 바꿔서 다른 사람인 척하기로요! 그래서 이름을 □□정육점이라고 바꾸고, 프로필 사진도 정육점 사진을 올리고, 상태 메세지도 “신선하고 정직한 □□정육점” 이렇게 바꿨습니다. 그러고 단톡방을 나가버렸죠.ㅋㅋ
10분도 안 돼서 시어머니에게 전화왔어요. 전화 받자마자 왜 단톡방 나갔냐고, 이름이 □□정육점으로 되어 있는데 이게 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머나, 어머님!!! 제 톡이 해킹된 것 같아요.” 라고 했죠. 시어머니가 그럼 어떡하냐고 하시길래, “일단 신고해 뒀으니 기다려볼게요.” 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왜 자기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냐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하… 진짜 남편 때문에 더 열이 받았어요. 자기가 엄마한테 얘기 안 할테니 다시 단톡방에 들어오래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들어갔습니다. 해킹당한 아이디 다시 찾았다고 하고요…

눈에는 눈!
그날 밤 저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 지옥 같은 시댁 단톡방을 나갈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바로 어머님이 하시는 그대로 똑같이 해드리는 것이었어요. 아니, 어머님이 하신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요!
저는 아침부터 단톡방에 좋은 글귀, 사진, 명언 등을 미친듯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답장을 안 하시면 단톡방에, “어머님, 답장 좀 해주세요~~” 라며 수십 통의 메세지를 보냈죠. 그래도 답장이 없으시면 전화해서, “어머니~, 왜 단톡방에 답장이 없으세요? 저 서운해지려고 해요~” 했어요. 어머님은, “어… 그래… 답장하마…” 하시며 당혹스러워 하시더라고요.ㅋㅋ 저는 심지어 새벽에도 쉬지 않고 메세지를 올렸어요. 시어머니 핸드폰은 단톡방 메세지 때문에 계속 알람이 울려대고, 잠도 못 주무시게 아주 불철주야로 톡을 보냈네요.^^
그랬더니 새벽 3시쯤 전화가 오더라고요. 제발 잠 좀 자게 그만 좀 보내라고요. 저는 알겠다고 하고 새벽 6시부터 또 단톡방에 미친듯이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시어머니의 프로필에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길래, “어머님~, 프로필 사진 보니 좋은 음식점에 다녀오셨네요?^^ 저는 일하느라 밥도 못 먹었는데… 좋으시겠어요^^” 했어요. 그리고 시어머니께 엄청 징징거렸어요. “어머님… 고기 먹고 싶어요… 어머님 가셨던 음식점 저도 가보고 싶어요…” 등등 그렇게 딱 일주일 동안 시댁 단톡방에 메세지 폭탄을 투척했더니 시어머니 본인이 단톡방을 나가 버리셨어요.ㅎㅎㅎ
저는 그날 진짜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이 저에게 난리난리를 치는데,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정이 없냐며, 우리 엄마 메세지에 꼬박꼬박 답장해주는 게 그렇게도 어렵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끝까지 저를 나쁜 사람 취급하길래, 저는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며 남편을 저희 친정 단톡방에 초대했습니다.

이에는 이!
“장서방~, 어서 오게~~” 하시며 저희 아빠가 남편을 환대해주셨죠. 남편은 순간 엄청 당황하더라고요.ㅎㅎㅎ 친정 아빠가 예전에 유도선수를 하셨고, 성격이 불 같으셔서 남편이 저희 아빠를 굉장히 무서워하고 깍듯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지금까지 시댁 단톡방에서 당한 수모를 다 얘기하며 장서방 좀 귀찮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죠. 그랬더니 이번 기회에 장서방 버릇 좀 단단히 고쳐놔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날부터 저희 아빠는 똑같이 좋은 글귀, 명언 등을 하루에도 몇 십 통씩 보내셨고, 남편이 답장을 안 하면 전화해서, “장서방, 많이 바쁜가? 아무리 그래도 장인 메세지를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되지 않나?” 하며 소리를 치셨대요. 그때부터 남편은 핸드폰을 아주 손에 쥐고 다닙니다. 답장하려고요. ㅋㅋㅋ
그리고 친정 아빠는 낚시를 워낙 좋아하시는데, 매일 같이 붕어, 잉어 사진을 보내시고, “장서방~, 주말에 나랑 낚시나 하러 가지.” 하셔서 결국 남편은 매주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아빠한테 붙잡혀서 낚시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시댁 단톡방에서 대답 자판기가 되신 며느리분들 참고해보세요.
출처 : 네이트 판

[인생유머] 꼰대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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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울증 진단법
요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가 길어짐에 따라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에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혼자 있을 때 저도 모르게 종종 식물이나 물건, 벽에 자꾸 말을 걸게 돼요.”
“요즘 강아지나 고양이한테 부쩍 더 말을 걸게 돼요. 이런 거 괜찮을까요?”

이런 질문에 한 유명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물건이나 벽에 말을 거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동물이나 식물, 물건이나 벽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되면 빨리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그때가 좋았지
여러분 혹시 이런 말 해본 적 있으신가요?

  • 세상에 태어났을 때 :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지!
  • 초등학교 때 : 유치원 때가 좋았지!
  • 고등학교 때 : 중학교 때가 좋았지!
  • 대학교 때 : 고등학교 때가 좋았지!
  • 직장인일 때 : 학생일 때가 좋았지!
  • 은퇴했을 때 : 바쁘게 일할 때가 좋았지!
  • 늙었을 때 : 젊을 때가 좋았지!

그러고보니 우리 인생은 항상 좋았었네요. 이 말 속에 인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답답하고 힘들어도 나중에는 다 좋은 때로 기억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의 코로나 상황도 나중에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도 좋았지!”

한국인의 밥 인사말

  • 일상적인 인사 : 밥 먹었어?
  • 오랜만에 안부 인사 : 요새 밥은 먹고 다니니?
  • 헤어질 때 인사 : 담에 밥 한 번 먹자.
  • 감사 인사 : 내가 밥 한 번 살게.
  • 위로할 때 : 그래도 밥은 꼭 챙겨 먹어~
  • 작업 걸 때 : 언제 같이 밥 한 번 먹을래요?
  • 짜증날 때 : 나 밥 안 먹어!
  • 혼 낼 때 : 너 오늘 밥 없어!
  • 겁줄 때 : 너 콩밥 한 번 먹어볼래?
  • 심각할 때 : 너는 지금 밥이 넘어가냐?
  • 한심할 때 : 그게 밥 먹여주냐?
  • 비꼴 때 : 밥만 잘 먹네.
  • 재수 없을 때 : 어휴, 밥맛 떨어져.

모든 게 밥으로 통하는 한국인의 인사말은 기승전’밥’이네요.ㅋㅋㅋ
우리도 코로나 끝나면 언제 같이 밥 한 번 먹어요. 뭐니뭐니해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고, 인생만사 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꼰대 체크리스트
나이 들면서 고집불통이 된 사람을 꼰대, 꼰순이라고 한답니다. 불통의 상징 꼰대!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6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여러분도 한번 체크해보세요.

  1. Who : 내가 누군지 알아?
  2. When : 나 때는 말이야~
  3. Where : 어디서 감히?
  4. What : 니가 뭘 알어?
  5. Why : 내가 왜?
  6. How : 어떻게 나한테!

나이가 많다고 모두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많다고 갑질할 때 비로소 꼰대가 됩니다.

출처 : 최규상의 유머편지

[영어칼럼] 영어 독해와 실전 대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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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KoreanEnglish.org 운영자
영어 학습 프로그램 개발자
contact@koreanenglish.org

영어 독해 VS 영어 대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영어 독해는 각종 영어 시험과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학창 시절에 했던 영어공부를 생각해보면 단어, 문법, 그리고 영어 독해가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영어 독해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왜 실전 대화 능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걸까요?

한국어식 독해 훈련
영어 문장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문장의 앞뒤를 오가며 직역을 하던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은 영어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런 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문장을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영어 문장을 한국어 어순에 맞게 해석하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어식 해석 방식은 실전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 하면 이것이 영어를 영어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영어를 한국어식 사고에 맞추어 공부하는 어려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향상된 독해 실력은 영어를 영어식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한국어식 사고에 맞춰 의미를 추측하는 능력이 됩니다. 물론 이 추측 능력도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리고 단어와 표현, 문법 규칙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향상됩니다. 비록 한국어식 사고에 맞춘 해석이기는 하지만 독해 속도 역시 빨라지게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키운 독해 능력이 실전 영어 실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직업, 다른 영어 실력
영어를 배우며 만났던 30대 후반의 한국인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견 기업을 다니면서 부업으로 시작한 번역 일이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을 본격적인 직업으로 하고 있었죠. 그런데 하루 종일 영어 번역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회화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영어학원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잘 못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쉽고 빠르게 영어회화 실력을 키워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회화 실력이 독해 실력의 1/5 수준도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콜롬비아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도 번역가였습니다. 미국에서 2년간 유학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 한국인 번역가와는 출발점이 달랐지만, 그럼에도 이 콜롬비아 여성의 회화 실력은 그 한국인 남성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어공부에 투자한 전체적인 영어 학습 시간은 한국인 번역가가 더 많았는데 말이죠.
같은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실용 영어 구사 능력에 있어서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입니다. 한국어식이든, 영어식이든 영어 독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회화를 더 빨리 배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영어 독해 실력이 실용 영어 구사 능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실용 영어에 도움되는 영어 독해
영어 문장을 영어식 사고 방식으로 접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그 기본 개념을 숙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글 문장을 볼 때 문장의 앞뒤를 오가며 이해하지 않듯이, 영어 문장도 앞에서부터 뒤로 흘러가듯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석을 하면 처음에는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이 어색함을 유지한 채 영어 단어, 표현, 문법 규칙을 계속 배워가며 그 어색함을 줄여가는 것이 영어식 사고를 배우는 방법입니다.

영어 독해가 실용 영어에 도움되게 하는 또 다른 팁은 마음에 드는 표현을 골라 더 관심있게 익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영어로 된 글이나 편지를 읽는 경우는 특정한 정보를 파악을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특정한 정보 파악을 위한 독해에서는 필요한 내용에 집중할 뿐, 세부적인 표현들은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이때 눈에 띄는 단어나 표현, 문법 규칙 2~3개를 골라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기사를 보더라도 전체 내용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거기에 나온 표현들은 뇌리에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실전 대화에 사용할 만한 단어나 표현 몇 개를 골라 따로 익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팁은 빠른 영어 독해, 즉 영어 속독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어 이해를 위한 빠른 두뇌 회전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영어 속독 훈련을 하다보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그것이 리스닝 실력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빠른 독해가 조금씩 익숙해지면 한국어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어렵게 느껴지는 독해 자료 대신 쉽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연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학교 전공 서적으로 영어 속독을 하는 것보다는 초중고 수준의 교재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재미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에게 딱 맞는 쉽고 재미있는 속독 교재를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교재를 고르면 공부를 지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실천 과제
우리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영어가 실용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책상에서 하는 영어 독해든, 우편으로 온 광고 전단지를 보며 하는 영어 독해든 그것이 실용 영어 실력에 도움되게 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마음가짐’입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영어 노출 기회들에 좀 더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이 단순 독해가 아닌 실용 영어에 살을 붙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편함에 광고 전단지가 있었나요? 그 중 2~3개의 표현을 익혀보세요.

[제롬의 사람 이야기]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사람입니다 – 위장내과 의사 수지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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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사진가
jeromegraphy@daum.net
T. (864) 477-0643

만남이 두려운 시절
햇살은 점점 따가워지지만 몸과 마음은 아직 스산한 겨울에 갇힌 듯 집안에만 머물러 있다. 마트에서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사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누구와 만나 커피 한 잔 하는 것조차 두려워진 상황이다. 덕분에 평소 같으면 별일 없이 진행되던 인터뷰 약속도 모두 뒤로 미뤄지고 심지어 거절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시절이 하도 뒤숭숭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감사하게도 인터뷰를 수락해준 오늘의 주인공 수지 킴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차별이 싫어 이민 결심
현재 그린빌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수지 킴은 3살 때 외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주 뉴버그 시티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1960년대 한국에서 아버지가 외과 의사이면 상당히 안정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살았을 터인데 굳이 왜 미국 이민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충북 천안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셨고, 공군 군의관 출신이세요.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사회 정서상 장남 우선주의가 있어서 차남이었던 아버지는 늘 차별을 받고 장남인 형님에게 모든 걸 양보해야 하는 한국의 유교문화를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미국 이민을 선택하게 되셨죠.
당시 뉴버그라는 도시는 미국 의사들이 기피하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의료인력이 많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필리핀이나 한국 등 아시아계 의사들의 이민이 가능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뉴욕시로 자리를 옮겨서 암수술 전문의로 일하셨어요.
저는 펜실베니아에서 공부하다가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에서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조교수(GI Fellow)로 있었고, 그 후 콜럼비아와 그린빌을 놓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그린빌을 선택하게 됐어요.”
필자도 형님과 나이 차이가 5살이나 나는 막내인지라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게다가 1960년대였다면 장남과 차남에 대한 차별이 훨씬 더 심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말 못해요
다음 질문은 조금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녀가 한국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가족들도 모두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제가 어릴 때 엄마가 한국말을 가르치려고 한국 교회에 데리고 나가셨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잘 못하니까 손을 놓게 되신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은 미국에 오면서부터 저희 세 자매에게 완전한 미국인이 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두 분은 한국어로 대화하셨지만 저희들에게는 영어로 말씀하셨지요. 1960년대에 이민을 왔고, 그리 좋은 도시도 아닌데다가 이민자 수도 많지 않아서 당시로서는 그것이 부모님이 생각하신 최선이셨을 거라 생각돼요. 아, 그런데 가끔 크게 혼내실 때는 한국말로 혼내셨어요.ㅎㅎㅎ”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수지 킴은 그린빌 코리안 나이트 파티의 진행자이며, K-Drum 멤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고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어땠을지 궁금하다.
“코리안 나이트 진행은 윤 원장님이 워낙 부끄러워하셔서 제가 거의 떠밀리다시피 맡게 됐어요. 자라면서 제 얼굴이 한국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은 사실 많지 았았어요. 예전에 비해 한국이 많이 성장했고 어떤 분야는 세계제일을 달리고, K-POP과 K-드라마가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진 정도만 알고 있었죠. 무엇보다 제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한 2년 전에 한국문화원 윤 원장님이 사물놀이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알아보니 이 사물놀이가 상당히 마음을 흥분시키기도 하면서 또 젠틀한 느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참여해서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퓨전 퍼커션 모임인 K-Drum 모임도 같이 하고 있어요. 멤버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에요. 국적만 미국이지 실은 여러 나라 출신이 모인 거지요.
지금의 한국 문화는 알리는 수준은 이미 넘었다고 봐요. 현지 문화와 포용하고 함께하는 단계라고 생각돼요. 저도 그중 한 명일뿐이고요.”

코로나 사태에 한마디
마지막으로 의사로서 현재 COVID-19 사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보았다.
“미국이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보험과 의료 시스템은 거의 망한(broken) 상태라고 봐요. 그러다보니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없는 사람들은 더욱 더 궁지로 내몰리고 있지요. 게다가 정치인들의 사태 숨기기와 늦은 각성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왜 헬스 케어 시스템을 불신하는지, 대통령과 정부를 불신하는지 알아야 해요.
지금은 의사로서도 뭐라고 말하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CDC에서 알려준 지침대로 기본에 충실하게 손 잘 씻고, 외출 삼가고, 증상이 있으면 바로 신고해서 검사받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상 초유의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서 정치 지도자들이나 의료계나 시민들이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준 수지 킴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서로 몸조심하라는 인사와 함께 총총히 발길을 돌렸다.

[이준길 법률칼럼] 리빙 윌(Living Will)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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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윌(Living Will)과 의료위임장(Health care POA)의 차이

본 칼럼은 유언(Will) 및 리빙 윌(Living Will)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로서 이 글을 읽는 독자 개인에게 제공한 법률자문이 아니다. 따라서 본 칼럼의 내용을 근거로 행한 법률 행위를 포함한 일체의 행위에 대해 본 변호사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또한 본 칼럼의 내용은 North Carolina주 법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주에서는 법률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시기 바란다.

리빙 윌(Living Will)이란
유언장(Will)에 대해 상담을 해주다보면 리빙 윌(Living Will)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이 또한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번 호에서는 유언장과 함께 작성하는 리빙 윌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
유언장은 본인이 사망한 이후 재산상속과 관련해 효력이 발생되는 것인 반면, 리빙 윌은 본인이 생존한 상태에서 병원 치료와 관련해 본인에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리빙 윌은 본인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의식이 불분명하거나 식물인간 상태이기 때문에 본인의 치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 자녀나 가족, 친지 등이 치료 내지 연명 조치의 시작과 중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부여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리빙 윌이 없는 경우
김갑동(가명)씨는 현재 85세다. 연세에 비해 큰 무리없이 건강하게 지내오던 어느 날,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배수구 쪽으로 넘어지며 심한 뇌진탕이 일어났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생활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가운데 병세는 날로 악화될 뿐이었다. 의사들은 갑동씨의 회복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갑동씨 가족들이 모여 의논을 했지만, 갑동씨의 리빙 윌이 없기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담당의사는 갑동씨에게 리빙 윌이 없으니 가족들이 갑동씨를 대신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원한다면 법원에 가서 후견인(Guardian) 설정을 하고 임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 후견인(Guardian)으로 임명받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야 하고, 그 과정이 몇 달 혹은 1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또한 후견인은 매년 법원에 보고도 해야 한다.
결국 갑동씨는 사고난지 1년 8개월이 지나 사망하였다. 그동안 갑동씨 본인의 고생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갑동씨의 가족들도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리빙 윌 vs 의료위임장
그런데 리빙 윌과 비슷한 것으로 의료위임장(Health Care Power of Attorney)이라는 것이 있다.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헷갈리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한인들을 상담해 보면 한국적인 정서상 본인이 의료적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장성한 자식이 본인을 대신해 여러 가지 광범위한 의료적 결정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많은 한인분들이 전반적인 의료적 대리결정 행위를 자식에게 위임하는 것을 통칭해서 리빙 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의료위임장에 더 가깝다.
의료위임장(Health Care Power of Attorney)이란 본인의 병이 너무 중하여 본인의 의료 사항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경우, 대리인이 의료 정보를 받아보고 의료 결정들을 대신 내릴 수 있게 하는 서류이다.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산 친자식이라도 의료위임장이 없으면 부모의 의료기록을 볼 수도 없고, 의사의 의견을 들을 수도 없으며, 어떤 의료 결정도 부모 대신 내릴 수 없다.
리빙 윌이나 의료위임장은 본인의 생명을 본인 대신 자식이나 가족 등이 끊는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규제가 따르고 내용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구체적으로 리빙 윌은 주로 회생 가능성이 없거나 불치병에 걸린 경우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할지 뗄지에 대해 가족과 주치의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그런데 의료위임장은 리빙 윌의 내용을 포함하여 훨씬 더 광범위한 의료 행위에 대한 결정권을 망라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을 때 어떤 약을 처방받을지 등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의료위임장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 계속된다.

[시가 있는 삶] 꽃피는 사연 – 임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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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사연

저 환하게 웃는 달을 좀 봐
저렇게 반짝이는 별들을 좀 봐봐

봄 여름 가을 겨울
비도 보내시고 눈도 보내시고
새들 노래 실어오는 바람이며
저 시냇물, 철 따라 온갖 꽃들
보내시는 걸 좀 봐

그래, 맞아
그분이 우릴 사랑하시는 게
틀림없어

작가의 말

여러분은 아시나요?

왜, 달은 저렇게 환하게 웃을까요?
별들은 왜, 저렇게 반짝반짝 반짝일까요?
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다채롭게 바뀔까요?
누가, 왜? 비도 내려 보내고, 눈도 내려 보낼까요?
왜, 예쁜 새들은 노래하고, 실바람이 불어오고, 시냇물은 저리 흐를까요?
누가, 왜? 철 따라 온갖 꽃들을 피어나게 할까요?

저는 어느 날, 젊은 연인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발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해 별의별 좋은 것,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고, 만들고, 꾸미고, 보내고 그러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지고 벌어지는 이 온갖 아름다운 일들은 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신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Ymmh22@daum.net

[영화칼럼]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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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진행
parksungyoontree@gmail.com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199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이우라 아라타, 오다 에리카, 테라지마 스스무, 이세야 유스케

After Life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안개에 휩싸인 밝은 빛의 세계로부터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은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인다.
“상황을 대충 아시겠지만 확인하는 차원에서, 여러분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렇다. 이들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었다. 안내인의 설명이 이어진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딱 하나만 선택해주세요. 여러분이 선택하신 추억은 저희가 영상으로 재현해 드립니다. 그 추억이 여러분께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순간, 여러분은 그 기억만을 가지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이곳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7일간 머무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역 ‘림보’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림보의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러면 림보 직원들은 그 추억을 짧은 영화로 재현해 그들이 선택한 그 영원한 순간 속으로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새로 사망한 22명의 사람들이 일주일간 림보에 머물며 펼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단순하고 강렬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기억, 비행연습 때 하늘을 날며 보았던 구름, 처음으로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남자와 함께 있었던 호텔, 전쟁 후 헤어졌던 연인을 우연히 만난 다리, 아이를 낳았을 때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던 순간, 대지진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대피한 대나무숲에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먹던 주먹밥, 전쟁 때 적군이 바나나잎에 퍼준 쌀밥, 어릴 때 빨간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오빠가 귀엽다고 치킨 라이스를 사주던 기억…….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평범한 인터뷰 장면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추억에 함께 빠져들게 된다.
이 인터뷰에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캐스팅되어 진짜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늘 소소하고 작은 것에 귀 기울이는 히로카즈 감독의 ‘사람’에 대한 태도가 녹아 있는 대목이다.
영화 속에는 추억을 골라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결정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두 사람이 나온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관심이 많은 20대 청년 이세야,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온 남자 와타나베.
와타나베의 담당자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일생이 찍힌 비디오 테잎 70개를 갖다주며 이렇게 말한다.
“참고만 하세요, 기록은 기억과는 다르거든요.”
와타나베는 자신의 일생에 대한 기록을 보며 아내 교코에게 평생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와 함께 영상을 보던 모치즈키의 얼굴이 문득 굳어지며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행복하셨습니까?”
50년 전 해군장교로 사망한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비디오에서 자신의 약혼녀였던 교코의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모치즈키는 교코와 약혼한 상태에서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은 것이었다.
한편 와타나베는 결혼 40년만에 처음으로 아내 교코와 함께 극장에 갔던 날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한가한 오후를 선택하고 림보를 떠난다.
와타나베가 떠난 후 모치즈키는와타나베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아내의 마음에 살아 있는 당신을 질투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그걸 뛰어넘을 만큼 긴 세월을 우리 부부는 함께 살았습니다.”
와타나베는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모치즈키와 교코의관계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네 행복의 한 부분
한편 모치즈키를 짝사랑하는 조수 시오리는 방황하는 모치즈키를 위해 교코가 사망한 후 선택한 추억이 들어 있는 필름을 찾아온다.
교코가 선택한 추억은 모치즈키가 전쟁터로 떠나기 전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던 순간이었고, 이를 본 모치즈키는 이제 자신에게게도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림보는 추억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모치즈키는 50년만에 비로소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치즈키는 교코의 추억 속에 담겨 있는 그 벤치를 찾아가 홀로 그곳에 앉아 자기 삶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림보의 사람들을 눈에 담으며 림보를 떠난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곧 자기 실존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어.”라는 모치즈키의 깨달음은 그의 인생에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었고, 모치즈키가 선택한 가장 소중한 추억 또한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림보의 사람들과 함께 한 날들이었다.

기억의 재구성
타임벨이 울리며 안내 방송이 나오고, 학예회 준비를 하듯 합주를 하기도 하는 림보의 공간 설정은 감상적이지도 않고 신비롭지도 않는 내세에 대한 감독의 비전인 듯하다. 그에게 ‘죽음’이란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도구였다.
또한 사람의 기억은 여러 가지 감정에 의해 편집되고 미화된다. 와타나베의 일생을 기록한 비디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마지막 영화를 만든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실 여부와는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을 왜곡하더라도 그 사람이 진짜 갈망하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히로카즈 감독의 의지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시오리가 새로운 망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고, 카메라는 빈 의자를 정면으로 비춘다. 그러면 그 의자의 새 주인공이 된 우리 각자는 영원으로 가지고 갈 단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고르기 위해 가만히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지?’
지나간 삶을 반추할 때 우리는 그리움을 느낀다. 실체 없는 그리움과 회귀본능을 늘 안고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그 그리운 것과 다시 한번 마주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삶이 이어진다. 어쩌면 그 기다림이 곧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은 사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삶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 이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게 된다. 아, 이 소중한 인생! 나에게 주어진 이 고마운 시간! 나의 원더풀 라이프!

[상담칼럼] 분노의 뿌리 ② – 필요한 사람이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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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lifeplusfamilycenter@gmail.com

당신 없으면 안 돼
몇년 전 한국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평범한 가정의 매우 흥미로운 갈등 양상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남편과 아들들만 집에 두고 급히 친정에 다녀와야 했던 어느 엄마와 그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자.
엄마가 집을 비우자 집안은 점점 쓰레기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들은 엄마와 아내가 없는 집에서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한다. 과자 부스러기를 사방에 흘리며 먹고, 팬티만 입고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자기가 먹고 싶은대로 먹어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자유와 혼돈의 ‘내 맘대로’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러다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이 ‘내 맘대로’ 세상에 비상이 걸린다. 남자들은 정신없이 집안을 원래 상태로 복구시킨다. 그리고 엄마와 아내가 없는 동안 남자들끼리도 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그런데 깨끗하게 정된된 집안을 보고 엄마가 보인 반응은 남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깨끗한 집안과 엄마가 말한대로 깨끗하게 비워진 냉장고를 살펴본 엄마의 표정이 영 시큰둥하다. 엄마의 저기압을 눈치챈 남자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막내 아들은 집안 남자들의 실수를 ‘조작’해내기 시작한다. 라면을 끓이다 일부러 손을 데게 하고, 연탄불을 갈다가 실수인 척 떨어뜨려 연탄이 부서지게 한다. 그리고 자주 “엄마!” 하고 부르며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런 남자들을 보며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잔소리를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의 활기찬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왠지 우울하고 삐진 듯하던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메세지는 우리에게 없던 힘도 솟구치게 하는 마법인 것이다.

나는 필요한 사람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을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도, 일단 화가 나면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 안에서 갈등과 분노를 일으키는 숨겨진 이슈(Hidden issues), 즉 우리 내면에 뿌리깊게 자리한 숨겨진 문제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중요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 또한 거대한 분노 아래 숨겨진 뿌리 중 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나를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대할 때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어린 아기들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렵다. 입는 것, 먹는 것, 씻는 것 어느 하나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들지만, 나에게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 항상 나를 찾고 기다리는 아기를 키우는 동안 ‘품안의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 깨닫게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가 되는 가슴 벅찬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가 자라 “No” 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아이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엄마 아빠는 날 이해 못 해!” 하고 대들 때 쯤이면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이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부모들은 자랑스러운 마음 한켠에 서운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꼭 필요한 존재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의미
교회가 작아서 모든 것을 직접 다 챙겨야 하는 담임목회자는 늘 지쳐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성도들이 모이면서 “목사님, 이제는 좀 내려 놓으시고 저희들에게 맡기시지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과연 정말로 맡겨도 될까 불안해진다.
또한 모든 사역을 내려 놓고 은퇴를 하면 날아갈 듯 좋을 것 같지만, 수많은 선배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힘들지만 그래도 사역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입을 모은다.
몇십 년을 하루같이 교회에서 커피를 내리던 권사님을 위해 어느 날부터 젊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이드신 권사님의 오랜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권사님은 한동안 우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귀찮은 잡일에서 놓여났다는 안도감보다는 자신이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서운함이 더 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때로는 그것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자존감의 근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근거이다.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교회 커피나 자식에게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또한 그룹카톡에서 내 말에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를 화 나고 서운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은 의구심과 낮은 자존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은 불안감, 누군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낮은 자존감의 신호이다.
우리는 모두 “나에게는 당신이 꼭필요해요”라는 메세지를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불안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당신한테 나는 도대체 뭐야?”라고 물으며 자꾸 싸우게 된다면, 혹은 “나는 있으나 마나라는 거 아냐?” 하는 자괴감 때문에 괴롭다면 이제 돌아보아야 한다.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분노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누가 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고 해서 몇 달간 삐져 있는 이유는 단지 무심한 상대방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꼭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존귀한 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나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늘 평안히 거할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탐방] 웨이크 포레스트 맛집, Korean Kitchen

베스트 코리안 푸드 in Wake Forest
웨이크 포레스트의 Wake Forest Eatery 몰에 새로운 한국 식당 “Korean Kitchen”이 문을 열었다.
일단 가게에 들어서면 3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실내가 굉장히 밝고 환하다. 그리고 테이블 공간 배치가 아주 넓직하게 되어 있어서 가게가 한결 더 여유롭고 쾌적하게 느껴진다. 가게 뒤쪽에는 야외 테이블도 여러 개 준비되어 있고 조경도 예쁘게 잘 되어 있어서 날씨가 좋을 때는 밖에서 운치 있는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넓고 쾌적한 Korean Kitchen 식당 내부, 야외 테이블도 이용 가능 ©KOREAN LIFE

가게를 연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손님들 사이에 웨이크 포레스트 지역 최고의 한식당으로 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손님들이 먼저 와서 줄을 서 있을 정도이며, To-go 손님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Korean Kitchen의 주방장 겸 사장님은 경력 27년차의 베테랑으로 여러 도시의 맛집을 다니며 새로운 요리를 접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레시피로 개발하는 취미를 가진 덕분에 Korean Kitchen에서는 한식, 일식, 중식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최고의 치킨윙
그 중에서도 Korean Kitchen 사장님이 자신있게 추천하는 첫 번째 메뉴는 바로 치킨윙이다. 점보 프라이드 치킨에 사장님이 직접 개발한 양념으로 매운맛, 안 매운맛 치킨윙을 맛볼 수 있는데, 한 입 먹어본 순간 엄지척을 하게 만드는 정말 맛있는 치킨이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치킨에 한국식 양념이 깔끔하게 발라져 있어 정말 맛있다. 어떤 손님이 열흘 동안 매일 와서 치킨윙을 주문하더니, 하루는 치킨윙 160개를 주문해 갔을 정도로 인기짱인 메뉴다. 심지어 한국 치킨 체인점 직원들도 이곳 치킨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Korean Kitchen의 인기메뉴 중 하나인 치킨윙 ©KOREAN LIFE

매운맛이 얼마나 매운지 몰라서 매운맛과 안 매운맛을 반반씩 주문했는데 한국인 입맛에는 매운맛 양념이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비트로 물들인 분홍색 치킨무도 함께 나오는데 색감이 아주 예쁘다.
치킨의 크기가 아주 큼직하고 닭 냄새도 전혀 없어서 어떤 재료를 쓰는지 물어보니, 사장님이 직접 가서 가장 큰 점보 사이즈 치킨을 고르고 포장 박스를 다 열어서 크기, 색깔, 냄새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가져온다고 했다.
그리고 치킨무도 기왕이면 더 보기 좋고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양조식초 대신 비트와 레몬주스를 사용해 더 건강하고 상큼한 맛을 살려 만든다고 한다.
앞으로 통닭 반마리 튀김, 마늘치킨 등 새로운 한국식 치킨 요리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사뭇 기대가 된다.

다양한 메뉴
Korean Kitchen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식, 중식, 일식 요리가 거의 다 있다.
비빔밥, 돌솥비빔밥, 볶음밥, 덮밥 등을 비롯해 순두부찌개, 육개장, 갈비탕, LA갈비, 소불고기, 돼지갈비, 제육볶음, 불닭, 안창살구이, 잡채 등 대표적인 한식 메뉴들과 더불어 짬뽕, 짜장면, 탕수육 등의 중식 메뉴, 그리고 미소라면, 소유라면, 볶음우동 등의 일식 메뉴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또한 찐만두, 군만두, 바오번 등의 가벼운 식전 메뉴들과 한국인이 술안주로 많이 찾는 해물파전, 김치전 등도 준비되어 있으니 해질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잔 걸치는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Korean Kitchen에서 개발한 차슈, 불고기, 치킨 바오번 ©KOREAN LIFE

우리가 갔던 날은 비가 내리는 약간 쌀쌀한 날씨여서 짬뽕과 짜장면을 주문했는데 왕새우, 홍합, 오징어, 목이버섯, 각종 야채가 어우러진 짬뽕의 비주얼이 아주 근사했다.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노부부가 이게 무슨 요리냐고 물어보더니 할아버지도 짬뽕을 시켰다. 그분들은 Cary에 있던 Korean Garden의 단골이었는데, 그집 사장님이 은퇴하면서 문을 닫은 후 이곳의 새로운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메뉴
지금은 가게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가게가 안정되면 출시하려고 준비중인 사장님의 비장의 메뉴들도 줄줄이 대기중인데, 해물전골, 우거지 갈비탕, 선지해장국 등 여러 가지 탕과 전골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BBQ 테이블도 설치해 정통 Korean BBQ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메뉴들을 계속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장님은 특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관심이 많은데, 중국식 꽃빵에 차슈, 불고기, 치킨텐더를 넣고 사장님이 직접 만든 피클소스와 신선한 야채를 곁들여 만든 바오번은 새로운 인기메뉴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불고기 바오도 맛있고, 2시간 30분 동안 삶아 기름기를 뺀 차슈 바오도 고소하고 상큼하다.
그리고 앞으로 월-금에 고기와 탕으로 된 런치 스페셜 콤보 메뉴를 요일별로 하나씩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Wake Forest 지역에 사는 분들은 점심때 방문해 Korean Kitchen의 대표 메뉴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보시면 좋을 듯하다.
각종 모임과 파티 음식 케이터링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 2주 전에 예약을 하면 한식, 중식, 일식 메뉴로 다채로운 파티 음식도 준비해 배달해준다고 한다. 예전 랄리 경찰서장님의 파티 음식 400명분을 맡아서 준비한 후로 케이터링 서비스로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 행사나 결혼식, 생신 등 잔치음식이 필요한 분들도 한번 눈여겨 봐두시면 좋겠다. 동네마다 이런 한식당이 하나씩 생겼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