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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사람 이야기]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배우,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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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사진가
jeromegraphy@daum.net
T. (864) 477-0643

배우 윤슬
일상은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날씨는 이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어느 새 가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지만(일주일에 한 번) 불안감 속에 서로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도 못한 채 수업을 하고, 어른들 역시 아직은 친한 사람들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아는 지인의 딸이 한국에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이라는 핑계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29살의 방송연예과 학생이며 나름 인생의 사연도 많은 배우 윤슬 양이다. 아직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편의 연극과 뮤지컬 무대, 그리고 단편영화에도 다수 출연한 배우다.

배우의 꿈
우선 맨 처음 미국에 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고등학교 올라가는 시점에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왔어요. 한국과는 굉장히 다른 환경에 놀랐고 그 다른 점이 저는 좋았어요. 부모님도 그걸 이해해주셔서 1년 후에 아빠가 미국에 있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셨고 가족들이 모두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민을 오게 됐죠. 저는 잠깐이나마 미국에서 생활을 했으니 아무래도 적응하는 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처음에 좀 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 와서 공부하며 잘 살다가 다시 한국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 참 특이하게 느껴진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배우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순풍산부인과의 아역배우 미달이를 좋아했고, 어린이 신문에 나온 연기학원 광고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 하며 동경했죠. 엄마는 저의 이런 모습을 그저 어린아이가 갖는 한때의 막연한 꿈 정도로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클래스’에서 활동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됐어요. 그때 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한국 무대로
그렇다면 배우로서 왜 미국이 아닌 한국 무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당시 제가 살던 곳에서는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게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졌어요. 만약 캘리포니아였다면 어떻게 길이 있지 않을까 더 열심히 찾아봤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편해서 한국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휴스턴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그 학교 연극영화과에서는 국제학생을 아예 받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전공으로 입학해서 의대에 진학할 생각으로 생물학으로 전과를 했죠.
그런데 오로지 공부만 파고드는 생활이 점점 더 싫어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사이드로 드라마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서는 그럴 여유도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미용실에 갔을 때 미스코리아 예선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포토제닉’상을 받게 됐어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포토제닉상을 받은 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사인 SBS에서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때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다시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한국에 가서 연기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매달렸어요. 부모님은 제가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조건 하에 허락을 하셨고, 저는 2013년도 수능을 보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14학번으로 입학했어요.”

부모님이 쉽게 허락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큰 갈등은 없었을까?
“갈등은 사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에요. 저는 아직 이룬 것이 없이 꿈만 바라보며 살고 있고, 엄마는 이런 저를 이해하면서도 늘 걱정이 되니까 지금도 말다툼의 연속이죠, 뭐.”
후일담을 들어보니 그 과정에서 엄마와 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의사가 될 줄 알았던 딸이 갑자기 한국에 가서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기도 한다.

재주가 좋은 건지 능력이 좋은 건지 윤슬 양은 한국에서 프리랜서 통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처음엔 대학 진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영어유치원에서 잠깐 일을 했어요. 그런데 학교생활과 병행하기가 어려워서 통역 일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평창올림픽 때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그리고 올 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키트 회사인 ‘젠큐릭스’에서 일을 했어요.”

밝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
연기자라는 직업은 언뜻 보기엔 하나의 직업군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세분화된 영역이다. 누구나 주연을 차지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되기도 하고, 잠깐 유명해졌다가 사라지는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백발이 되어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는 노장 배우들도 있다. 그녀는 어떤 연기자를 꿈꾸고 있을까?
”저는 그냥 연기가 좋아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잖아요. 인터뷰나 오디션에서 밝은 이미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배역에 한정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들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앞으로 써 나갈 페이지가 훨씬 많기에 인터뷰 글은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배역으로 나오든 ‘윤슬’이라는 배우는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해 나가길 뜨겁게 응원한다.

[이야기가 있는 요리] 3. 불보다 뜨거운 요리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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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셰프 Carmen Kim
요리연구가, 푸드스타일리스트
Niagara College Cook Apprenticeship
Canada Red seal Chef (캐나다 국가공인 기술자격)
Root & Bone Sous Chef
iamherishi@gmail.com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의 지난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올해 7월은 제가 캐나다에 온지 8년이 되는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8년간의 캐나다 정착기와 요리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서로 다른 직장 문화
꿈에 그리던 파인다이닝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하루하루가 참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인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언어 장벽과 동료들과의 크고 작은 트러블, 그리고 학교와 직장에서의 경쟁과 시기 질투 등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제가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혼자 묵묵히 내가 할 일을 빨리 잘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사적인 대화를 피하고 일에 집중하면서 일과 관련된 대화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동료들은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제 기준에서 조금 too much talk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말이죠.^^;; 이런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첫 라인 쿡 경험
처음 호텔에서 요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주로 연회 요리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알라카르트 요리를 하며 주방 *라인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른손잡이인 제가 왼손으로 프라이팬을 컨트롤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프라이팬에 동전을 넣고 왼손으로 프라이팬을 돌리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연습할 여유도 없이 하루에 수백 명씩 되는 손님들의 요리를 하며 무거운 팬을 들다보니 어느 새 왼손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몇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알라카르트(à la carte) : ‘식단에 따라서’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 손님이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마음대로 한 가지씩 주문하는 일품요리
*라인 쿡(Line Cook) : 호텔이나 큰 식당 주방에는 전채 담당, 디저트 담당, 핫파트 요리사들이 각자의 라인에서 협업해 하나의 접시를 완성하는데, 이들을 라인 쿡이라고 한다.

주방 조직과 팀워크
주방에는 나름의 조직문화가 있습니다. 라인 쿡으로 일하면서 저도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고 셰프에게 따끔하게 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셰프는 리더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요리사는 셰프에게 무조건 “Yes Chef”로만 답해야 합니다.
모든 직업군이 그렇겠지만 주방은 팀워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항상 위험한 불과 칼을 다루는 주방의 특성상 일을 할 때 동료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요리사 한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많은 손님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를 중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은 동료들이 의기투합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요리사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면서 동시에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어떤 기분과 태도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주방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요리 철학
저는 요리사로서 요리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위생, 그 다음 첫 번째는 안전, 그 다음 첫 번째는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어떤 요리사들이 요리의 시각적인 요소에만 너무 집중하다가 정작 맛을 보면 그 재료들의 조합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든지, 이유 없이 멋을 부리기 위해 음식에 장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어 캐나다에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요리사라는 직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요리를 좋아하기 위해 ‘요리는 예술이야’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 생각이 저를 더 나은 요리사가 되도록 이끌어주었지만, 동시에 비주얼만 화려한 요리를 만들지 말자는 경각심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물론 요리에 있어 시각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의 본질은 맛이라는 신념을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타이밍과 완성도(디테일)입니다. 왜냐하면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매일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만들더라도, 서빙을 받으시는 손님들은 한 분 한 분이 모두 다른 분이기에 한 접시 한 접시를 모두 ‘처음 만드는 요리’처럼 한결같은 정성으로 차가운 요리는 차갑게, 뜨거운 요리는 뜨겁게 코스의 순서와 타이밍에 맞춰 완벽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올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리사는 멀티태스킹을 하며 실수 없이 라이브로 끝까지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공연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각 요리 접시마다 사용해야 할 재료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재료를 정확히 알고, 재료 준비와 조리과정에서의 교차오염(Cross contamination)에 대해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실수가 있으면 즉시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요리사는 메뉴에 정해진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손님이 많아 정신 없이 바쁜 시간에 예약 없이 갑자기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방문하시는 경우, 아무리 바쁘더라도 모든 주방기구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손님의 특별한 요청에 귀 기울여 실수 없이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요리를 동시에 조리하면서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고, 불과 칼을 다루며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프로페셔널한 요리를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매일의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녹초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하루도 실수 없이, 컴플레인 없이, 고객들에게 만족과 기쁨을 드렸다는 뿌듯함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창작요리의 시작
제가 일했던 이탈리안 다이닝의 특성상 정말 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기존의 메뉴들 외에도 날마다 셰프의 새로운 스페셜 메뉴를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고 창작하는 일이 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작메뉴를 계속 연구하는 과정에서 요리에 한계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요리는 예술’이라는 저의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의 특성상 제가 일했던 이탈리안 파인다이닝에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셨는데, 하루는 세계적인 팝의 황제 마이클 볼튼이 카지노 내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스태프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가벼운 식사만 하셨지만 제가 직접 요리를 해서 전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또한 캐나다의 유명한 셀러브리티 셰프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가 방문했을 때, 한식을 접목해 만든 저의 창작요리를 선보이며 요리에 대해 설명해 드렸던 적도 있습니다. 요리사에게 있어 자신이 만든 요리를 잘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리 레시피 대신 그동안 제가 파인다이닝에서 창작했던 몇 가지 요리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더 많은 요리 레시피와 캐나다에서의 생활 이야기는 저의 유투브 채널에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그럼 저의 요리 이야기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유투브 채널 : Carmen Kim Canada

론자 & 구운 회향 에피타이저 (Lonza & Grilled fennel) ©김혜리 셰프
비트 리소토 (Beet Risotto) ©김혜리 셰프
치킨 프리마베라 리가톤치니 (Chicken Primavera Rigatoncini) ©김혜리 셰프
농어 & 렌틸콩 (Pan seared Sea bass & Lentils) ©김혜리 셰프
그릴 새우 & 비트 뇨끼 (Grilled Shrimp & Beet Gnocchi) ©김혜리 셰프
홍합 사프란 링귀네 (Mussel Saffron Linguine)  ©김혜리 셰프
머스코비 오리 사프란 리소토 (muscovy duck) ©김혜리 셰프
랍스터 페투치네 (Lobster Fettuccine) ©김혜리 셰프
봉골레 파스타 (Spaghetti Alle Vongole) ©김혜리 셰프

[시가 있는 삶] 호수 – 임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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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그녀를 한번 보기만 하면
세상의 그 어떤 사내도
그만 퐁당 빠져버리고 말지

바위 같은 사내
달 같은 사내
해 같은 사내
구름 같은 나그네도
퐁당 빠져버리고 말지
심지어 하느님의 너른 가슴도
깊이 빠져 잠겼네

나도 그만 몸을 던져
영영 헤어나지 못한다네

작가의 말
호수에는 무엇이든 그 그림자가 다 비칩니다. 나무도 바위도 달도 해도 구름도 퐁당 빠져버리고 맙니다. 심지어 그 너른 하늘도 호수에 깊이 빠져 잠깁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그런 아주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누구나 보고 아는 현상을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한 의인법을 사용해 유쾌하게 반전시킨 데 있습니다. 호수를 마치 뭇 사내를 홀리는 매력적인 여자로 비유했거든요.
그리고 바위, 해, 달, 구름, 하늘을 바위 같은 사내, 해 같은 사내, 달 같은 사내, 구름 같은 나그네로, 하늘을 하느님의 너른 가슴으로 슬쩍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호수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마음이 끌려 빠져드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호수를 둘러싼 자연 현상을 남녀간의 사랑으로 바꾸어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엮어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 번 보기만 하면 뭇 사내들이 몽땅 그 여자에게 퐁당 빠져버리고 만다면서 슬쩍 우리의 관심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면서 시인 자신도 몸을 던져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도 호수처럼 매력 있는 사람에게 한번 퐁당 빠져보지 않으시렵니까?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Ymmh22@daum.net

[영화칼럼]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생의 길을 묻다, 트리 오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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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진행
parksungyoontree@gmail.com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감독: 테렌스 맬릭
주연: 브래드 피트, 숀 펜, 제시카 차스테인

영상철학자의 대서사시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삶의 근원과 의미, 우주와 생명의 역사, 철학과 종교에 대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철학적 명상이 담긴 작품이다.
맬릭 감독은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어느 날 동료 교수의 영화 수업을 수강하다가 영화에 입문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는 영상철학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감독생활 40년 동안 단 7개의 작품을 내놓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에는 할리우드의 많은 톱스타들이 출연하지만, 정작 자신은 언론이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린다. 심지어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가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대리인을 통해 수상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이 영화는 구약성경 욥기 38장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기 38:4, 7)
중년의 건축가 잭 오브라이언은 어린 시절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19살 동생이 베트남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어머니는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하며 흐느낀다. 그 뒤로 잭은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고 삶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불편한 통화를 마친 잭은 문득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곳
에덴동산의 ‘생명나무’(트리 오브 라이프)를 상징하듯 큰 떡갈나무가 있는 잭의 집에는 사랑 가득한 어머니와 함께 맨발로 풀밭을 뛰어노는 ‘행복한 시간’과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견디는 시간’이 공존한다.
맬릭 감독은 포근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주는 어머니와 가족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통해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생명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이원론적 우주의 원리가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춘기에 접어든 잭은 친구들과 사소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스스로 죄의식을 갖기도 하며, 엄마를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갈등 속에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잭의 성장통을 통해 맬릭 감독은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의 부재
이어 잭은 사고로 익사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고통과 신의 부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화상으로 피부가 일그러진 친구, 시내에서 우연히 본 장애인들과 죄수들,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과, 19살의 나이에 전사한 동생의 소식을 들은 선하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하늘을 향해 무력하고 슬프게 읊조리던 독백을 떠올린다.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맬릭 감독은 신에 대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품은 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의 공간으로 홀연히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문제적 장면이기도 한 17분간의 시퀀스는 우주의 창조와 빅뱅으로 인한 지구의 탄생, 용암과 바람, 유기체로부터의 생명체 출현, 공룡들의 시대, 그리고 인류의 진화까지 신비하고 광대한 ‘생명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스크린 안에 펼쳐지는 초자연적인 장엄한 비주얼과 웅장함으로 벅차오르는 음악이 엮어내는 대서사시적 영상에 압도당한다.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맬릭 감독이 보여주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역사가 우리 삶의 고통과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구약성경이 나오는 선한 욥과 잭의 어머니가 고통 중에 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한 욥기의 성경구절에 힌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
잭이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수없이 많은 철새떼의 나선형 군무 역시 또 다른 힌트가 된다. 신이 설계한 자연의 질서와 섭리 안에서 저 광활한 우주의 탄생과 소멸은 물론, 인간의 삶 또한 출생과 죽음을 지속하고 있으며,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고, 불확실성과 부조리와 대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의 눈으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는 신의 뜻을 전부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사랑
그러나 맬릭 감독은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공룡의 시대 장면에서 포식자 공룡인 벨로키랍토르가 죽어가는 초식공룡 파라사우롤로푸스를 발견한다. 먹고 먹히는 동물의 세계에서 초식공룡을 잔인하게 잡아먹을 줄 알았지만, 포식자는 쓰러져 있는 동물을 가련한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사라진다. 맬릭 감독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예상치 않게 자비심을 보이는 공룡을 통해 인간 세상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잭의 아버지는 “세상은 싸움”이라고 믿었으며 아들에게 “너를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몰랐다며 잭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잭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가 사실은 그의 불안과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지배하던 아버지의 그늘을 걷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은 상상한다. 하늘과 맞닿은 어느 해변을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 중년의 잭과 어린 잭, 그리고 두 명의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미소를 띄고 서로를 보듬으며 걷고 있다. 어린 시절 잭의 어머니가 말했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거란다.” 그렇게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상담칼럼] 쉼표에서 발견하는 진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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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lifeplusfamilycenter@gmail.com

강제 쉼표
COVID-19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멈췄다.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고, 경제 활동의 종류와 양상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돈을 번다는 사람과 돈을 잃는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불가능해졌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물론이고, 집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웃음소리도 그쳤다. 하다못해 아프신 부모님을 방문하는 일도 금지되었다. 노환으로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으로 가신다는 집사님과의 전화 통화가 마지막이 되었다. 목회자로서의 심방은 물론 심지어 장례식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교회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도, 밖에 나가서 전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삶의 모습들이 갑자기 멈추었지만,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다.

정지의 순간
모든 것에 일순간 쉼표가 붙여진 후 우리는 갑작스러운 ‘정지’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늘상 해오던 일들과 숨가쁘게 돌아가던 삶이 멈추었을 때 그 당혹감과 혼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마치 알코올 중독으로 수 십 년간 술을 마시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술을 끊었을 때 그의 빈 잔에 이제는 무엇을 채워야 할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정지상태에서 비롯된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가라앉을 즈음, 이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쉼표로 인한 삶의 여백에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홀로 남겨진 존재
Doing이 모두 멈추었을 때 남는 것은 Being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 자신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닥쳐온 정지의 순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과 마주하기를 거부했던 한 내담자의 사례가 떠오른다.
그녀는 온 가족이 자살이나 살해로 죽음을 맞았던 가정에서 자라 혼자 남겨졌다.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희망을 안고 시작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끝이 났고, 두 아이를 혼자서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오로지 일만 했다.
그런데 장성한 아이들이 자신의 품을 차례로 떠나가면서 바쁘던 삶이 점점 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50대 후반이 되었고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냥 살아갔다.

아무도 아닌 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았다. 이제 곧 60을 바라보며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어정쩡한 나이에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게 되니 그녀의 삶이 그대로 정지해 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멈추어 선 지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자신이 가진 모든 약과 술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그녀의 삶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해 상담소를 찾아온 그녀는 마치 온몸이 텅 비어버린 듯 어떤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어느 직장인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 그 아무도 아닌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삶을 놓아 버린 그 순간에도 그녀를 놓지 않으신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해답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바쁜 삶을 핑계로 마음 한 구석에 밀쳐 두었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에 몰두하며 잊어버리려 했던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들을 하나하나 꺼내고 직면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힘과 기쁨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가며 그녀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할 준비를 해나갔다.

새로운 숨 고르기
멈춤은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를 찾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남아 있는 아무도 아닌 내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마주하게 한다. 가만히 있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내 자신’을 보게 된다. Doing이 아닌 Being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워진다.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나 싶다.
그런데 숨가쁜 달리기가 멈춘 잠잠한 중에 의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셨다고 말씀하신다(렘1:5). 주님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는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한다. 주님 안에서 Being만으로 충분함을 알게 된다. 뭔가를 해내는 것보다 내 존재 자체, 살아감 자체도 의미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지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진짜 나, 또 다른 발견의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숨 고르기다.

[영어칼럼] 코로나 상황에 맞춘 영어학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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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KoreanEnglish.org 운영자
영어 학습 프로그램 개발자
contact@koreanenglish.org

역사적인 하루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염병으로 인해 새로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혼란 속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 상황도 머지않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가 그런 역사 속의 특별한 하루임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와 미래를 내다보는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현 상황에서 영어학습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고의 타이밍
경제 활동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외출과 만남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가시간이 주어지게 되었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추가적인 시간을 자기계발이나 영어공부에 사용해보면 어떨까요?
영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영어에 투입하는 시간이 부족하면 어떤 공부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고, 반대로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영어공부 시간을 늘리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지금이 영어공부하기에 너무나 좋은 시기임을 알고 충분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이입 훈련
영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 간의 차이점은 첫째가 영어에 투자한 시간의 양이고, 둘째가 말할 때 감정이입의 여부입니다.
영어 표현을 익힐 때 흔히 감정을 실어 말하라고 조언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작동시키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배가 고픈 것과 배고픈 것처럼 느끼며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원어민이 모국어를 배울 때는 자신도 모르게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이입되어 언어와 감정을 하나로 익히게 됩니다. 이것은 외국인 학습자가 영어를 공부하며 느끼는 감정의 강도와 횟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지요.
현재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의 안전을 비롯해 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 많은 감정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뉴스 하나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이 동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 에너지를 마냥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어학습에 이용해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접하게 되는 좋은 뉴스, 나쁜 뉴스로 인해 감정이 동요할 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그것을 영어와 접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전 대화와 영어 글쓰기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동요한 상태에서 배우고 익힌 영어 표현은 무덤덤한 감정으로 익힌 영어 표현보다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게 됩니다.

공통 관심사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한 곳에 모이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뉴스 채널을 보면 코로나 관련 이야기가 수도 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에 관련 주제의 영어 표현을 배우기에 좋습니다. 다만 원어민 표현을 모두 익히려고 욕심을 내면 과부하가 걸릴 수 있으니 온라인 기사를 읽거나 뉴스를 들을 때 자주 언급되는 표현부터 익히는 것이 오래 기억되고 그 표현을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준비는 바로 지금
코로나 이전 상황을 생각해보면 많은 것이 지금보다 나았지만 영어공부를 위한 시간은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조심하고 걱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영어공부를 위한 여건은 이전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까요.
관건은 이 시기를 잘 이용해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영어 외에도 고민해야 할 것이 많지만 그런 것들에 얼마나 시간을 쏟아야 할지는 스스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말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다시 없는 행운이자 인생의 다음 단계로 발돋움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안전을 기함과 동시에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현명함을 발휘해보시기 바랍니다.

[정착 이야기] 10. 코로나-19 관련 변경사항

이원호 정착 서비스 대표
upcyclingstorenc@gmail.com
Kakao ID : LWHJOSEPH
T. 910-228-6759

1. 차량 판매 및 구매
코비드 사태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많은데 미국으로 오시는 분들은 없기 때문에 카페에 차량 판매를 위한 매물이 많이 올라와 있고, 구매자자 많지 않아 가격이 낮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차량을 판매하기가 어렵고, 차라리 현지인에게 판매하는 것이 조금 더 유리한 상항입니다.
실제로 현지인들이 코비드 사태로 인해 정부에서 받은 현금을 중고차 구매에 사용하면서 중고차 매매가가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구성원 수가 많은 저소득층 현지인들이 이번에 받은 정부 지원금으로 그동안 미뤄온 차량 구매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에 발맞춰 카맥스(CARMAX)도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차량 구매 가격을 많이 올려 매입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지인에게 차량을 판매하고 싶은 분들은 저와 같은 정착서비스 제공자와 함께 하시면 불안함을 덜 수 있고, 판매가격도 몇 백에서 천불 정도 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현지인에게 판매가 불발될 경우 마지막으로 카맥스를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차량 판매 및 구매 시 차량 등록과 번호판 반납을 위한 DMV 이용은 가까운 DMV Plate Agency를 검색해 직접 찾아가시면 IPAD를 들고 DMV 안팎을 드나들며 안내해주는 직원이 있습니다. 그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면 코비드 관련 증상 유무에 대해 질문한 후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대기 시스템에 등록해줍니다.
대기자가 많은 경우에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문자 통보 서비스에 등록되었다는 첫 번째 문자가 오고, 몇 명이 남았는지 알 수 있는 링크가 있습니다. 자기 순서가 되면 다시 두 번째 문자가 옵니다. 두 번째 문자를 받으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대기자가 없는 경우, 시스템 등록 없이 바로 업무를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DMV 업무
현재 노스 캐롤라이나 DMV에서는 주행 테스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최초 운전면허 취득의 경우 시력검사, 도로표지판시험, 필기시험을 거쳐 Student Permit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DMV는 코비드 이전에도 워낙 대기시간이 길어서 악명이 높았는데, 지금 DMV는 완전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https://www.ncdot.gov/dmv/license-id/driver-license-appointments/Pages/default.aspx
위 링크에 들어가시면 현재 시점에서 약 보름에서 한 달 사이에 예약 가능한 날짜가 보입니다. 만약 날짜는 지정되었는데 시간이 뜨지 않는다면 예약 불가한 상황입니다.
부부가 같이 면허를 취득하는 경우 각자 따로 예약 시간을 잡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상 어렵기 때문에 한 사람 예약을 잡고 가서 가족이라고 말하고 시험을 같이 진행해 학생면허를 취득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리고 DMV 직원이 필요한 서류점검과 코비드 관련 질문을 할 때는 간단하게 “Yes, No”로만 답하는것이 좋습니다.
시험에 최종 합격하면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받게 되고, 2주 안에 정식 면허증이 우편으로 배송됩니다. 그리고 기존 미국 운전 면허를 소지하신 분들은 시력검사와 도로표지판 시험만 보고 바로 노스 캐롤라이나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3. 스폰서 학교 등록
J비자를 스폰서 받은 학교 담당자와 긴밀하게 연락하시고,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담당자가 전산상으로 J비자 어카운트를 Active 상태로 변경해줘야 DMV 및 Social Security 업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국제학생센터로 가서 면대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으나 코비드 사태 이후로는 점차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으로 전환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국제학생센터 담당자와 연락하여 오리엔테이션을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오리엔테이션이 오전 일찍 끝나면 당일 오후에 면허 시험을 볼 수도 있습니다.
코비드 사태 이후 각 학교에서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자가격리를 감시하는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가격리 안내를 하지만 자가격리를 모니터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면 자가격리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발열이나 기침 등 유사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방역수칙을 따르셔야 합니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음식 구입을 비롯해 입국 후 초기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정착서비스 제공자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4. SOCIAL SECURITY 관련 사항
사회보장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이 아직 오프라인 업무를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새로 소셜 넘버를 신청해야 하는 경우 우편으로 여권 및 신청서와 각종 증빙서류를 보내고 다시 돌려받는 식으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여권 없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국제운전면허로 운전을 하는 경우 국제운전면허와 운전면허 원본, 그리고 여권을 함께 지참한 상태로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여권 없이 국제운전면허로 운전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운전면허증 발급 이전에 여권이 없으면 은행 업무 등 여러 가지 초기 정착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따라서 여권 원본을 보내야 하는 경우에는 여권 사본을 미리 여러 장 복사해 놓고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5. 자녀 교육청 등록
교육청에 전산 등록 및 이메일로 입국 사실을 알리고 등록 업무를 진행하도록 지침을 요청해야 합니다. 현재는 담당직원과 전화 면담을 통해 자녀 등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직원과 전화 통화 스케줄을 잡기 위해 교육청 대표 이메일로 지침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교육청 시스템은 통역 서비스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교육청 관련 전화 통화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미리 통역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요청해 두시기 바랍니다.

6. 해외 출국
코비드 사태 이후 한국으로 출국하는 비행편이 일방적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출국 3일 전에 갑자기 변경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또는 외국으로 출국하시는 분들은 비행편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시가 있는 삶] 저린 사랑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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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린 사랑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하려는 내 왼팔이 저리다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딸 몸을 받아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
몸 위에 몸을 내리고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팔베개 돌이 되어
소스라치며 떨어지는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며
저린 두 몸이
서로에게 밑간이 되도록
잠들기까지 그렇게
절여지는 두 몸
저런, 저린 팔이 없는

▶ 정끝별 (1964~ )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수상.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 시 해설
남편이 내어준 갸륵한 오른팔을 아내가 베고 누웠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 모르게 자신의 왼팔로 살짝 버티며 무게를 덜어내려 애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참이 지나자 남편은 오른팔이 저려옵니다. 아내도 왼팔이 저려옵니다. 하지만 그 저림을 참고 함께 절여지면서 부부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딸(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딸의 왼팔은, 잘은 모르지만, 아직은, 저리지는 않겠지요.
이 시는 발음이 비슷한 ‘저리다’와 ‘절이다’의 의미를 십분 활용하여 서로 배려하는 사랑의 의미를 오묘하게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 견디며 배려하면서 하나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실 현실의 사랑은 아프기도 합니다. 그 아픔을 숨기고 참는 배려가 있으면 사랑의 고통이 사그라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견딤을 통해 사랑은 성숙해지고, 말을 아끼고 몸으로 실천하는 배려가 있으면 사랑은 아름답게 승화됩니다. 아내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듯하지만, 팔을 내어주는 남편의 마음이 갸륵해서 불편을 참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는 게’ 바로 사랑입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Ymmh22@daum.net

[영화칼럼] 세상이 이래서 미안해요,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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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진행
parksungyoontree@gmail.com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
감독: 켄 로치
주연: 크리스 히친, 데비 허니우드

83세 거장의 직구
지난 50년 동안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온 83세의 영국 거장 감독 켄 로치는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영국의 빈곤층에 대한 국가적 소외를 비판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화두를 확장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잠식되어가는 한 가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로 다시 돌아왔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온갖 일을 다 해봤습니다. 안 해본 일이 없지요.”
건축 노동자였던 리키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실업자가 되어 일용직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중, 택배 회사에 개인사업자로 취직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가족들과 좀 더 안정된 삶을 꿈꾸며 택배 회사 관리자와 면접을 본다.
택배 회사 관리자는 리키에게 택배 기사는 회사와 함께 일하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이 번창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의 본질은 회사가 고용노동법을 피해가면서 모든 비용은 택배 기사가 부담하고, 보험이나 사건사고에 대한 보상 등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리키는 자율과 기회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거대 자본의 속내를 생각지도 못한 채, 당장 택배 일을 시작하려면 택배용 밴을 구입하거나 회사 차량을 빌려야 한다는 첫 번째 조건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성실한 소시민
리키의 아내 애비는 시급이 아닌 임시직 급료를 받으며 일하는 방문 간병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을 정성껏 간병하고 싶었지만 회사의 정책상 고객과의 감정교류는 금지되어 있었고,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
애비는 하루에 여러 명의 환자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차가 필요했지만, 리키가 택배 일을 시작하려면 밴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차를 팔아 계약금을 마련해주고 자신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점점 피로에 지쳐간다.
한편 개인사업자로 택배 일을 시작한 리키의 근무여건도 만만치 않다. 배달 사고가 생기면 100파운드의 벌금과 벌점을 받으며, 자신이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자비로 대체기사를 구해야 하고, 실시간 배송 추적을 하는 스캐너의 감시 아래 늘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했다.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 차에 소변통을 가지고 다니고, 심지어 십대 아들인 세브가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 부모를 호출해도 학교에 찾아갈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방치된 아이들
모범생이었던 아들 세브는 점점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길거리 벽에 그래피티(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래피티에 필요한 스프레이를 사려고 자신의 코트를 팔고 심지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경찰서에 잡혀간다. 학교에서는 정학 당한 세브에게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라고 하지만, 그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아들 세브의 변화는 무방비하게 방치된 사춘기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대물림되는 가난과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무력감과 패배감, 그리고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딸 라이자 역시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늘 자기 몫을 척척 해내던 똑똑한 아이였지만 바쁜 부모의 본의 아닌 방치와 빈번해진 불화 때문에 불면증과 야뇨증까지 생긴다.

열심히 사는데 왜 이래…
리키와 애비는 빚을 갚고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내 집을 마련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리키는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며 그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었고 가족들은 그의 빈 자리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존이 우선일 때 간과하기 쉬운 정서적 빈곤감은 결국 모든 가족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리키는 강도를 당해 배달할 물건들을 빼앗기고 구타당한 후 소변통에 있던 소변 세례까지 받게 된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택배 회사 관리자가 리키에게 벌금과 스캐너 값 1,000파운드를 물어내라며 전화를 한다.
일하다가 다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손해배상 문제만 따지고 드는 관리자에게 애비는 전화기를 빼앗아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고, 원래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며 흐느낀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간을 목적 자체인 존엄한 존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시킨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을 그저 ‘인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누군가 일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면 대체인력을 구해 다시 그 시스템을 돌릴 뿐이다.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 정상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50년 동안 영화로 세상과 맞서며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온 켄 로치 감독은 지난 2014년 <지미스 홀(Jimmy’s hall)>’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2019년 <미안해요, 리키>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평범한 개인과 가족들이 불합리한 제도에 이용당하고 파괴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리라.
강도 사건으로 빚이 더 늘어난 리키는 가족들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과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택배 일을 하러 나가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떤 상황에서든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돌파구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장면이다. 리키는 그 몸으로 택배를 배달하며 집주인이 없을 때마다 ‘Sorry, We Missed You’ 스티커를 붙여 놓고 오지만, 정작 리키를 놓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이었다.
이 영화는 리키와 그 가족의 힘겨운 삶을 대상화하지 않으며 직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의 붕괴 원인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불편하면 분노하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철저한 분노’라고 했던 한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르며, 세상의 모든 리키들에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요, 리키. 그리고 늘 고마워요.”

[상담칼럼] 위기를 성장으로 이어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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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lifeplusfamilycenter@gmail.com

전 지구적 비상사태
요즘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상황보고가 한창이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모두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하고 어수선하게 만들 줄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그동안 축복이라고 여겼던 해외여행이 막기 힘든 재앙의 전염 수단이 되고, 한 국가의 비상사태가 전 세계의 위기감으로 번져가고 있다. 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동네에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웃음소리가 그쳤다.
이 위기가 우리 세상에 과연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태가 전 세계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벌써부터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우리 삶의 위기들
위기(crisis)는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우리 삶에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누구나 자연스레 거쳐야 하는 위기도 있고, 화재, 교통사고, 실업, 가족의 죽음 등 갑자기 닥쳐오는 충격적인 사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가뭄이나 기아,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와 폭동이나 테러 같은 사건들이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기 눈 앞에서 형이 파도에 쓸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아이도 있고, 태풍으로 온 마을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된 경우도 있다. 오랜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피난을 가는 길에 군대 행렬과 마주칠 때마다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난민도 있다. 이유도 모르는 채 삶에 갑자기 닥쳐온 이 엄청난 위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위기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위기에 대처하는 반응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이안 존스 박사는 <성경적 기독교 상담>이라는 저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보인 다양한 반응에 대해 설명한다.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처럼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처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유다처럼 자살로 삶을 끝내기도 한다. 십자가 주변에서 고통과 애도를 표하는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조롱과 비난을 퍼붓는 구경꾼들과 군사들도 있었다. 예수에게 분노하고 비난하며 대척점에 섰던 제사장이나 율법사, 장로들도 있었고, 회개한 강도도 있었다. 방관자로서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들과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처럼 십자가 사건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고, 아리마데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예수의 시체를 수습하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등 실질적인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마처럼 불신을 드러내며 증거를 요구하는 성향의 사람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던 군중들처럼 희생양을 찾으며 비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 역시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VS 성장
이런 위기 상황을 겪으며 정신적,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갖게 되는 정신적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또는 흔히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현실에서 분리되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자주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집중력이 저하된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깜짝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거나, 신경과민, 극도의 경계심, 악몽, 선명한 회상현상(flashback)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위기를 겪은 사람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외상 후 성장(PTG-Post Traumatic Growth)을 경험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외상 후 성장(PTG)이란 위기를 경험한 후 그것을 이기고 살아남은 결과로 삶에 대처하는 능력이 훌쩍 자라나는 경우이다.
외상 후 성장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람이 얼마나 큰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위기와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그것을 이겨내거나 적응해서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난에 찌들어 극심한 경제적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유명한 CEO로 성장하기도 하고,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심각한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헌신적인 의사나 연구자가 되기도 한다. 정신적인 문제를 가졌거나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나중에 유능한 상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례들은 위기는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결과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위기를 성장으로
위기는 고통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 머무는 퇴보와, 고통에 적응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성장의 갈림길이다. 위기는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전 세계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파괴력이 있지만, 동시에 도전과 변화를 불러오는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위기를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면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은 후 기왕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보다는 외상 후 성장(PTG)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위기를 성장으로 이어주는 요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인이 가진 긍정적인 마인드와 내적인 힘이며, 둘째는 주위에서 그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깊은 사랑과 신뢰로 하나된 가족,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친구, 기도로 지원하는 교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겪는 위기를 성장으로 이어주는 지원군이다.
지금은 비록 함께 모일 수는 없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스크가 부족해 위기를 겪는 의료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 위해 집안에 머물며 천으로 마스크를 만드는 손길이 있는가 하면, 그들에게 간식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감사카드를 보내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도움과 위로가 절실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위기에서 가장 큰 위로와 피난처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래서 이 위기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최선의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도록 기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