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며 소중한 존재이다. ©KOREAN LIFE
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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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으면 안 돼
몇년 전 한국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평범한 가정의 매우 흥미로운 갈등 양상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남편과 아들들만 집에 두고 급히 친정에 다녀와야 했던 어느 엄마와 그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자.
엄마가 집을 비우자 집안은 점점 쓰레기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들은 엄마와 아내가 없는 집에서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한다. 과자 부스러기를 사방에 흘리며 먹고, 팬티만 입고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자기가 먹고 싶은대로 먹어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자유와 혼돈의 ‘내 맘대로’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러다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이 ‘내 맘대로’ 세상에 비상이 걸린다. 남자들은 정신없이 집안을 원래 상태로 복구시킨다. 그리고 엄마와 아내가 없는 동안 남자들끼리도 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그런데 깨끗하게 정된된 집안을 보고 엄마가 보인 반응은 남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깨끗한 집안과 엄마가 말한대로 깨끗하게 비워진 냉장고를 살펴본 엄마의 표정이 영 시큰둥하다. 엄마의 저기압을 눈치챈 남자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막내 아들은 집안 남자들의 실수를 ‘조작’해내기 시작한다. 라면을 끓이다 일부러 손을 데게 하고, 연탄불을 갈다가 실수인 척 떨어뜨려 연탄이 부서지게 한다. 그리고 자주 “엄마!” 하고 부르며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런 남자들을 보며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잔소리를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의 활기찬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왠지 우울하고 삐진 듯하던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메세지는 우리에게 없던 힘도 솟구치게 하는 마법인 것이다.

나는 필요한 사람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을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도, 일단 화가 나면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 안에서 갈등과 분노를 일으키는 숨겨진 이슈(Hidden issues), 즉 우리 내면에 뿌리깊게 자리한 숨겨진 문제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중요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 또한 거대한 분노 아래 숨겨진 뿌리 중 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나를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대할 때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어린 아기들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렵다. 입는 것, 먹는 것, 씻는 것 어느 하나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들지만, 나에게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 항상 나를 찾고 기다리는 아기를 키우는 동안 ‘품안의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 깨닫게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가 되는 가슴 벅찬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가 자라 “No” 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아이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엄마 아빠는 날 이해 못 해!” 하고 대들 때 쯤이면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이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부모들은 자랑스러운 마음 한켠에 서운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꼭 필요한 존재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의미
교회가 작아서 모든 것을 직접 다 챙겨야 하는 담임목회자는 늘 지쳐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성도들이 모이면서 “목사님, 이제는 좀 내려 놓으시고 저희들에게 맡기시지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과연 정말로 맡겨도 될까 불안해진다.
또한 모든 사역을 내려 놓고 은퇴를 하면 날아갈 듯 좋을 것 같지만, 수많은 선배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힘들지만 그래도 사역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입을 모은다.
몇십 년을 하루같이 교회에서 커피를 내리던 권사님을 위해 어느 날부터 젊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이드신 권사님의 오랜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권사님은 한동안 우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귀찮은 잡일에서 놓여났다는 안도감보다는 자신이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서운함이 더 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때로는 그것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자존감의 근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근거이다.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교회 커피나 자식에게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또한 그룹카톡에서 내 말에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를 화 나고 서운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은 의구심과 낮은 자존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은 불안감, 누군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낮은 자존감의 신호이다.
우리는 모두 “나에게는 당신이 꼭필요해요”라는 메세지를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불안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당신한테 나는 도대체 뭐야?”라고 물으며 자꾸 싸우게 된다면, 혹은 “나는 있으나 마나라는 거 아냐?” 하는 자괴감 때문에 괴롭다면 이제 돌아보아야 한다.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분노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누가 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고 해서 몇 달간 삐져 있는 이유는 단지 무심한 상대방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꼭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존귀한 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나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늘 평안히 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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