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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단기알바생
회사에 급한 주문건이 생겨서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일주일 단기알바를 고용했다. 알바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단순했다. 9칸으로 된 박스에 지정된 물건을 지정된 위치에 정해진 수량만큼 넣고 뚜껑 닫아 라인에 흘려 보내면 되었다. 물건의 생김새나 크기가 다 달라서 구별하기도 쉽고, 수량 실수해도 라인에 예비품이 넉넉히 준비돼 있어서 괜찮았다.

그런데 알바 근무 첫날, 퇴근 무렵에 라인 조장이 나를 찾아왔다. 특정 파트만 수량이 너무 안 맞아서 일일이 확인하려니 힘들다고 했다. 한 칸에 25개씩 넣어야 하는데 확인해보니 19개, 30개, 22개…….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 편차가 컸다.
그래서 알바를 불러서 물어보니 우물쭈물했다. 29살 젊은 남자였다. 일이 어렵냐고 물어보니 그냥 좀 긴장해서 그랬다고 했다. 일단 알았다 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조장이 또 찾아와서 똑같은 컴플레인을 했다. 이번엔 나도 좀 화가 나서 알바한테 갔다. 마침 작업 중이길래 잠시 지켜봤더니…… 맙소사!
물건 5개 넣고 손가락 다 접고, 다시 5개 넣고 손가락 다 펴고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15개를 넘어가니 숫자를 헷갈려 했다. 좀 당황스러워서 다른 작업자를 불러서 물어보니 처음부터 저랬다고 했다. 설마설마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OO씨, 그 부품 30개만 주세요.” 했더니 역시나 15개 이후로는 카운트를 못했다.
그래서 차분히 말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이거 수량 체크하는 일입니다. 혹시 숫자를 못 세는 건가요?” 했더니, 머뭇거리다가 15개가 한계라고 했다. 왜 말 안 했냐고 했더니, 짤릴까봐 그랬단다. 작업한 박스들 확인해보니 역시나 수량이 다 틀렸다.
그래서 15개를 2번 세서 넣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어려웠다. 15개를 세고 곧 바로 다시 15개를 세면 헷갈려 했다.

결국 사무실로 돌아와 아웃소싱 업체에 전화해서 따졌다.
“일이 급해 죽겠는데, 이런 사람을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어려운 일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29살 짜리한테 25까지 세는 게 어려운 일이에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오늘은 보내줄 사람이 없으니까, 내일이나 돼야 다른 사람을 보내 드릴 수 있어요.”
하……, 결국 A4 용지에 제품 사진 실사 크기로 수량에 맞춰 프린트해주고, 거기에 하나씩 올려서 다 채우면 박스에 넣으라고 했다. 그러자 자기 안 짤리는 거냐고 되게 좋아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통해서 일주일 후에도 알바를 계속 하게 되었다.

정직원으로 채용되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번에 정직원이 되었다. 아웃소싱 알바생 출신으로 정직원으로 채용된 것은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사소한 잔실수가 계속 있어서 짤리는 거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른 곳에서 놀라운 능력이 발견되었다.
라인 중간에 제품을 옆으로 열어서 설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는데, 계속 하다보면 사람 눈이 익숙해져서 다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저 사람을 그 자리에 세워놨더니 불량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급감했다. 자기가 숨은그림찾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진짜 완전 초고수였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것도 족족 잡아냈다. 심지어 배선이 위아래 꼬인 것까지 찾아냈다. 신형 제품이면 외우는 데 3~4일 걸리지만, 일단 그림이 머리속에 들어가면 정말 기가 막히게 불량을 찾아냈다. 실적이 너무 좋아서 이번에 아예 정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본인도 엄청 좋아하고, 회사에도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다른 작업자들도 다들 인정할 정도로 불량을 너무 잘 찾아서 별명이 ‘박 써치’다.

솔직히 처음 몇 개월간 공정 바뀔 때마다 제품 사진 새로 프린트해서 갖다주고, 그래도 간간이 수량 틀리다는 말 들을 때마다 진짜 귀찮고 짜증났었는데, 지금은 너무 고맙다. 저 사람 없었으면 불량률이 못해도 지금보다 5% 이상은 뛰었을 거다. 박 써치군 덕분에 요즘 기분이 너무 좋다.
살아보니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경계선 지능장애인도 그 사람의 재능을 잘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보통 사람 2~3배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모난 돌은 쳐내는 게 아니라 맞는 땅으로 옮겨주면 된다.
출처: f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