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수면시간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OECD

잠이 부족한 사회
한국의 불명예스러운 타이틀 중 하나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것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1위를 지키고 있다. 2018~2020년 통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24.1명으로 OECD 42개 회원국의 평균(11.1명)보다 2배 이상 높다. 연령별로 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0대부터는 암이 사망원인 1위로 나타났다.
그런데 자살과 암을 동시에 촉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수면부족’이 꼽히고 있다. OECD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자살률 1위 지역은 캐나다 북동쪽에 위치한 덴마크령 그린랜드(Greenland)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린랜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82.9명으로, 한국과 비교해도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심지어 전체 인구의 1/4이 살면서 최소한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랜드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으로는 전통사회 붕괴에 따른 우울증, 가난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알콜 중독, 그리고 백야(白夜) 현상으로 인한 ‘불면증’이 꼽힌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자살률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이 몇날 며칠 밤이 지속되는 겨울철이 아니라, 백야 현상으로 인해 몇날 며칠 낮이 계속되는 여름철에 최고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만성적 수면 부족은 심신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건복지부

한국인 수면시간 꼴찌
그렇다면 한국의 높은 자살률도 수면부족과 관련이 있을까? 놀랍게도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세계 최하위로 나타났다. 2016년 통계자료를 보면, OECD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22분인데 비해,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6분으로, 직장인들의 74.2%가 수면부족을 호소했다. 특히 한국의 아동·청소년들은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중학생 7시간 21분, 고등학생 6시간 3분으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잠이 줄어들면서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다. OECD 국가들의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 평균은 10점 만점에 7.6점이었으나 한국은 6.6점으로 꼴찌였고, 한국 아이들 3명 중 1명이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 수준이다. ©OECD

암 걸리는 사람들의 공통점
그렇다면 수면부족이 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암과 함께 8년간 20대의 황금기를 보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게 된 것은 암 치료 5년차에 접어들 때였다. 암 병동에 입원해서 내가 본 암 걸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새벽까지 깨어 있다는 거였다. 진짜 놀랍도록 암환자들은 모두가 새벽 2~3시는 되어야 잠이 들었다. 그래서 암 병동에는 새벽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특히 재발 환자.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도 암 걸리고, 건강하게 먹는 사람도 암 걸려서 오는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암 걸린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나도 생활패턴을 고치고 나서야 암이 나았다.
잠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20대 초반에 롤게임하고 SNS하면서 밤을 많이 샜다. 밤을 새면 일단 몸이 굳어지면서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신경계도 느리게 반응한다. 온몸에 산소가 잘 공급되지 않고 장도 예민해진다. 그러면 몸이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잠은 종합적으로 암에 가장 나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음식은 암의 초발이나 재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지만, 커피나 콜라 같은 카페인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카페인을 먹으면 잠을 조절할 수 없게 되고 깊은 잠에 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규칙적으로 자고, 카페인 안 먹고, 스트레스 덜 받으며 지내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암을 일으키는 최종보스는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암환자 중에 비염이나 천식, 아토피 환자가 많다. 애초에 약하게 태어난 거다. 하지만 잘 자는 습관만 들여도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수면부족이 치매와 암 유발
미국의 수면 전문가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버클리) 신경과학 교수 매튜 워커는 수면부족이 치매와 암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수면부족은 우리 뇌 속에 ‘베타-아미노이드’라는 독성 단백질을 증가시킨다. 우리가 깊은 수면을 취할 때 뇌가 이 독성 물질을 제거한다. 그런데 매일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뇌 속에 독성 단백질이 쌓여 치매 확률을 높이게 된다.
또한 단 하루만 4~5시간을 잔다 해도 암세포와 싸우는 면역세포인 자연살상세포(natural killer cell)의 기능이 70% 감소한다. 따라서 수면부족 기간이 길어지면 갖가지 형태의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특히 대장암, 전립선암, 유방암은 수면부족과 연관성이 깊다. 수면부족과 암 발병과의 연관성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든 형태의 야간 교대근무를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6시간 이하로 잠을 자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도 200%나 높아진다. 봄에 써머타임제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수면시간이 1시간 가량 줄어들게 되는데, 이때 심장마비 발생 확률이 24% 증가한다.
인간의 몸은 16시간 동안 줄곧 깨어 있으면 신체 기능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좋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6시간 동안 깨어 있은 다음에는 반드시 8시간 동안 깊은 잠을 자서 뇌 손상을 치유해야 한다.

연령대별 권장 수면시간을 참고해 매일밤 충분히 깊게 잘 자도록 하자. ©N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