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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하버드대 한국인 합격자 현황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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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 한국인 합격 현황 UCLA 인도 출신 교수의 소송으로 밝혀져

■ 전체 합격률 6.3%, 백인 합격률 7.3%, 아시안 합격률 5.3%

■ SAT 성적 아시안 학생이 백인 학생들보다 100점 높아

■ 특례입학, 대기자 명단 모두 백인 우대 위한 꼼수

안치용 기자
시크릿 오브 코리아

한국인 963명 지원, 60명 합격

하버드대 아시안 학생 입학차별 의혹 소송에서 전체 한국인 지원자와 합격자 등 한인 입학 내역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하버드대는 인종별 합격률은 공개한 반면, 출신 국가별 합격률은 엄격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하버드대가 지난 2012년 2월 아시안 입학차별 의혹과 관련해 연방 교육부에 제출했던 자료가 전격 공개된 것이다.

2010년 말 조기지원 및 2011년 초 정시지원한 한인 학생은 모두 963명, 합격자는 60명이었고, 이중 4명은 동문자녀 또는 체육특기생으로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버드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하버드대 합격자 중 동문자녀 및 체육특기생 합격자는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대기자 중 합격자도 백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해 하버드대에 존재하는 이 특례입학 제도가 백인을 우대하기 위한 것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인도 출신 UCLA 교수 A씨의 편지

캘리포니아주 명문대학인 UCLA의 교수 A씨는 이 지역 고등학교 전교 1등인 자신의 아들이 하버드대에 지원했다가 탈락하자 지난 2011년 7월 4일 하버드대 입학처장에게 강력한 항의편지를 보냈다.

A교수는 이 편지에서 ‘한 달에 80달러도 못 버는 인도 가정의 22세 청년이 1984년 가방 하나와 3천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유학을 왔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계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박사학위를 취득해 마침내 대학교수가 됐고, 내 분야의 권위자가 됐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커뮤니티 봉사도 하는 자녀 2명을 두고 있으며, 오늘 내 자식 1명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며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A교수는 ‘내 아들은 고교 성적 627명 중 1등, AP 클래스 11개 이수, 교과성적 올 A, 배구와 야구 학교 대표선수, 고교 학보사 기자, 지역신문사 인턴, SAT성적 750점 이상, ACT성적 최우수, 전국 에세이대회 3회 입상, 전국규모 각종 경시대회 7회 이상 우승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왜 내 아들이 탈락했느냐, 지원서에 인종을 표시하게 돼 있는데, 인종을 이유로 차별한 것이 아니냐. 지금 미국이 윤리의식을 상실하는 것은 앞으로 50년 뒤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아들의 탈락에 대해 인종 차별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편지가 연방 교육부가 하버드대의 아시안 차별 의혹을 조사하는 계기가 됐다. A교수가 하버드대 입학처와 몇 차례 의견을 교환해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연방교육부 인권국에 하버드대가 아시안 지원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신고했던 것이다.

하버드대의 해명

연방교육부는 A교수의 하버드대 아시안 차별신고가 이유가 있다며 2012년 1월 이에 대한 정식조사에 나서 하버드대에 해명을 요청했고, 하버드대는 2월에 161쪽에 달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하버드대는 2015년 클래스, 즉 2010년 말 조기전형 지원자와 2011년 초 정시전형 지원자 등의 합격내역은 물론, 아시안은 출신국가별 지원자와 합격자 등 주요 정보를 교육부에 제출하며 인종차별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바로 이 서류를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FA)’이 입수해 재판 과정에서 전격 공개한 것이었다.

하버드대는 당초 연방교육부에 차별의혹을 신고한 A교수의 아들이 캘리포니아 출신이기 때문에 전체 합격자와 캘리포니아 출신 합격자 현황을 공개했고, 이에 따라 아시안 지원자의 출신국가별 합격률, 특히 한인 지원자와 합격자 현황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었다.

백인 7.3% vs 아시안 5.3%

2015년 클래스는 지원자 34,950명 중 2,188명이 합격함으로써 6.3%의 합격률을 기록했다. 당시 인종별로는 백인 지원자 14,895명 중 1,082명이 합력해 7.3%의 합격률을 기록했고, 아시안 지원자 7,310명 중 385명이 합격함으로써 합격률 5.3%로, 백인보다 2%, 전체보다 1% 포인트나 낮은 합격률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인은 963명이 지원해 60명이 합격함으로써 합격률 6.2%를 기록했지만, 이중에는 동문자녀 및 체육특기생이 10명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중 4명이 합력했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 일반 지원자는 953명이며 이들 중 56명이 합격하였으므로 합격률은 5.9%에 그치게 된다.

중국 7% vs 인도 3.4%

2015년 클래스 전체를 볼 때, 아시안 합격자 385명 중 중국인이 179명(46.5%), 인도와 한국 출신이 각각 60명(15.6%), 베트남 25명(6.5%), 일본 20명(5.2%) 등의 순으로 중국 출신이 1위를 기록했다.

합격률을 살펴보면 중국이 2,570명 지원, 179명 합격으로써 합격률이 7%에 달해 전체 합격률보다 높은 것은 물론 백인 합격률 7.3%에 육박했다. 이어 동아시안 국가가 6.3%, 한국과 베트남이 6.2%, 그리고 인도 출신은 3.4%로 합격률이 매우 낮았다.

이 분석에 따르면 중국 학생들이 다른 아시안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합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을 살펴보면, 아시안 합격자 37명 중 중국이 18명, 한국이 9명, 일본과 베트남이 각각 3명, 인도계 2명, 인도 1명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인도는 99명 지원자 중 단 1명이 합격함으로써 합격률이 1.7%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1명은 A교수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별의혹이 제기된 셈이다. A교수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인도 출신 지원자의 합격률은 이상할 정도로 낮았다.

특례입학은 백인 우대용 꼼수

2015년 클래스에서 동문 및 체육특기생 합격내역을 살펴보면 이 제도는 백인 학생을 우대하기 위한 꼼수라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2015년 클래스의 전체 합격률은 6.3%이지만, 동문 및 체육특기생의 경우 942명 지원에 342명 합격으로 합격률 36.3%로 일반 학생들의 6배나 높다. 10명 지원하면 3.6명이 합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학생들이 동문 및 체육특기생으로 지원하고 합격할까? 백인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지원하고 백인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합격한다. 따라서 이 제도는 백인 학생들을 위한 합격의 비밀통로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동문 및 체육특기생 지원자 942명 중 백인이 702명으로 74.5%를 차지했고, 그 중 242명이 합격해 백인 학생들이 합격자의 70.1%를 차지했다.

반면 아시안 학생은 85명이 지원해 지원자의 9%를 차지했고, 이중 32명이 합격해 합격생의 9.36%를 차지했다. 합격률만 놓고 보면 백인 34.5%, 아시안 37.6%로 아시안 합격률이 높지만, 합격생 중 실제 아시안의 비중은 코끼리 비스켓에 불과하다. 합격자의 70%가 백인이니 아시안 합격률이 수치상으로 높아봤자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시안 합격자를 출신 국가별로 보면 중국 학생이 12명, 일본이 9명, 한국과 베트남이 각각 4명으로 조사되었다.

일반 지원자와 동문 및 체육특기생 지원자의 비율도 백인 특혜를 뚜렷이 보여준다. 2015년 클래스 전체는 일반지원이 97.3%, 특례지원이 2.7%이지만, 아시안 학생은 일반지원이 98.8%로 압도적인 반면 특례지원은 1.2%에 불과하다. 그러나 백인 학생은 일반지원이 95.3%, 특례지원이 4.7%를 기록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특례지원자의 77.5%가 백인이었고, 합격자의 69.2%가 백인이었다.

대기자 합격생의 70%가 백인

대기자 명단도 마찬가지다. 2015년 클래스의 대기자 명단에 오른 학생은 3,172명이며 이중 31명이 합격했다. 백인 학생 대기자는 1,686명으로 전체 대기자의 53.1%를 차지했는데, 전체 합격자의 71% 가 백인이었다.

반면 아시안 학생 대기자는 784명으로 전체의 24.7%를 차지했는데, 이 중 단 2명이 합격해 합격률은 6.45%로 백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기간 중 한인 학생 126명, 중국 학생 328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랐지만 단 1명도 합격하지 못했다. 전국에서 아시안 중 대기자 명단에서 합격한 학생은 인도 1명, 파키스탄 1명이 전부였다.

따라서 아시안 학생은 대기자 명단에 올랐더라도 사실상 합격할 수 없으며, 하버드대가 대기자 명단에서 백인만 집중적으로 합격시키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아시안 학생 SAT 성작 가장 높아

한편, 최근 18년간 아시안 학생의 SAT 성적이 각 인종 중에서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하버드대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2000년 클래스부터 2017년 클래스까지 하버드에 합격한 아시안 학생의 SAT 평균점수는 767점이었고, 백인은 745점, 히스패닉 716점, 하와이안과 인디언 712점, 흑인 704점으로 아시안 학생들이 월등히 높았다. 또한 지난해 SAT 시험에서도 아시안 평균이 백인보다 100점이나 높았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는 신입생 1,700명을 뽑는데 수학 만점자가 3,500명, 영어 만점자가 2,700명, SAT나 ACT 만점자가 1,000명에 달하기 때문에 SAT나 ACT 성적은 큰 변별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주 이야기] 최효정 양의 미국 고등학교 체험기

제롬, 사진가
jeromegraphy@daum.net

처음 학교 가던 날

약 4년 반 전, 5살이던 딸아이가 처음 등교하던 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만나는 미국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아무것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아빠 엄마에게 ‘난 괜찮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얼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이 녀석이 수업 중에 무서워 울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미안하고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나와 아내의 한숨까지. 다행히,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딸아이의 첫 등교일이 나의 첫 출근일이기도 해서 아이를 등교시키자마자 곧 내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우리 아이처럼 본인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에 이끌려 온 이민 1.5세대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물어보자니 자기의 깊은 속마음을 표현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을 듯했고, 또 중고생들 중에는 미국에 온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그 당시의 감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차에 미국 생활이 2년 정도 되는 오늘의 주인공, 11학년 최효정 양을 만나게 되었다.

저녁에 있는 삶

먼저 가족 이민을 결정하고 진행했던 효정양의 아버지 최기섭씨에게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저는 한국에서 시뮬레이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안정적이었지만, 시간적으로는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해야 했죠. 그리고 전근대적인 군대식 조직문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예를 들자면, 무리한 회식과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 관리자들에게 분배되는 과도한 업무량 같은 것들이죠.

그래서 저희 회사와 관련 있는 회사에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문의했더니, 마침 그쪽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웨이버 기간과 H1B 비자가 추첨식이라 자리를 옮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비숙련직 취업이민으로 미국에 오게 됐고, 계약기간 만료 후에 제가 전공한 일자리를 찾아 이곳 그린빌로 오게 됐죠.

가족들에게는 제가 설득을 했는데, 우선 한국에서처럼 살지 않고 온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아이들도 학원교육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설득해서 진행했습니다.”

이번엔 효정양에게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솔직히 기뻤어요.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적이었어요. 물론 영어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주위에 유학 경험이 있는 친구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하면서 한번 부딪혀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효정양의 바람대로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의 느낌은 어땠을까?

미국 고등학교 등교 첫 날

“물론 두려웠죠.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모든 준비를 다 마쳤는데 개학날까지 입학허가가 안 나왔어요. 그리고 개학 첫날 카운셀러 만나서 수업 신청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두려움을 떠나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태였어요.

아,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며 나름 영어 실력을 쌓고 와서 약간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아니더라고요. 단어 몇 개 빼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첫날은 그냥 모든 게 막막한 느낌이었어요. 영어가 들리기까지는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미국 학교에서의 차별

역시 최고의 해결책은 ‘시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비숙련직 취업 이민은 대부분 대도시가 아닌 지역으로 오기 때문에 같은 학년에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 차별이나 놀림, 왕따 같은 일을 겪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윌밍턴에서 다니던 학교도 시골이다보니 아시안 학생도 거의 없는 학교였어요. 처음엔 새로운 학생이라고 환영해주었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선 환경,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그룹활동 시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슬슬 무시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체육시간에 여학생들만 따로 수업을 받는데,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저한테 스시냄새, 누들냄새가 난다고 한마디씩 하고, 락커룸에서는 툭툭 치고 지나가는 일이 허다했어요.

영어수업 시간에는 저를 보고 눈을 쭈욱 찢는 행동을 한 남자아이와 정말로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어요. 선생님의 중재로 치고받는 일은 없었지만 선생님도 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행동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아셨대요. 그리고 그 아이를 엄청 혼내셨어요.

아빠가 한국에서 하시던 일과 관련된 직장을 찾아서 이곳 그린빌로 이사온 후로 지금 다니는 학교는 정말 좋아요. 시설도 좋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고요. 지금은 정말 맘에 들어요.”

아마도 그 사이 효정양의 영어 실력이 늘어서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가 처음보다 훨씬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효정양의 꿈

11학년, 이제 대학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앞으로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요즘 주말에 응급구조사 인턴쉽을 하고 있어요. 주로 수업을 받고 가끔 앰뷸런스에 동승할 기회도 있어요. 대학은 일단 의대에 가고 싶어요. 졸업 후에 심혈관계통의 의사가 되는 게 꿈이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효정양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미국에 온 효정양의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를 같은 동네 사는 사진관 아저씨도 기도하는 바이다.

[공연 소식] 중국 신년 페스티벌 한국 예술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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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바 유
캐롤라이나 열린방송 진행자
polca1515@naver.com

2019 Triangle’s largest Chinese New Year Festival 이 지난 1월 26일 (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NC Stat FairGround에서 열렸다. 이 페스티벌은 트라이앵글 지역에 손꼽히는 행사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즐긴 행사이다. 올해는 48개의 공연팀에서 500여명의 출연자가 무대 위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 예술인들도 대거 참여하였다. 랄리의 풍물패 “신명”의 흥겨운 무대가 관중들의 흥을 돋궈주었고, 지은애씨의 가야금 연주는 깊고 아름다운 선율로 큰 감동을 주었으며, CK-Dance “춤사위”의 한국무용 공연은 중국의 무용과는 사뭇 다른 풍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우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춤과 음악을 선보이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무용 문의 : polca1515@naver.com

[미술관 나들이] 13개의 그림이 담긴 장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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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NC 미술관 안내원
yopark.kwise@gmail.com

17세기에 유행한 장식장

어느 집에나 공예품이나 장식용그릇 같은 여러 가지 장식품을 수집해 진열하는 장식장이 하나 정도 있을 것이다. 그 장식장을 보면 그 집 주인의 취미나 취향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데 오늘은 이와 비슷한 의미의 장식장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NC 미술관에는 현대미술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플랑드르 미술관을 비슷하게 재현해 놓은 방이 있다. [참조 1]

그 방에는 여러 화가들의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장식장과 조개껍질, 산호 같은 자연수집품부터 책, 지구본과 같은 인공 수집품까지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호기심의 방

이러한 방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제후와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학자나 문인들도 즐겨 만들었고, ‘호기심의 방’이라고 불렸다.

그 수집품들을 살펴보면 산호나 원석을 가공한 액세서리, 동식물 표본과 조개껍질, 동물의 뿔, 상아 세공, 미니어처 세공, 외국 무기, 수학과 의학용 기구, 지구본, 동양의 도자기, 유물과 골동품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이 ‘호기심의 방’은 화가와 가구 장인, 석공 장인, 금은 세공 장인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참조 2]

메타 모르포세스(변신)

오늘 소개하는 이 검은 장식장에는 고전 신화의 장면을 묘사한 총 13개의 그림이 들어 있다. [참조 3]

그림의 장면들은 주로 고대 문학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길잡이로 평가받는, 로마의 시인 오비드의 대서사 시집 메타 모르포세스에 있는 것이다.

메타 모르포세스는 세계의 탄생에서 시작해 로물루스의 로마 건국을 주제로 한 총 열다섯 권으로 된 서사시로, 비합리적인 욕망, 신들의 사랑과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설화들은 즐겁고 통쾌하며 우리의 옛날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장식장 가운데 있는 <큐피드의 승리>

장식장의 부분 그림들

장식장 한 가운데에 위치한 그림 <큐피드의 승리>는 결국은 신이 승리한다는 13가지 이야기의 종합적인 결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상단 뚜껑 위의 가장 큰 그림 <아폴로와 여신 그리고 조개 껍질>은 아폴로와 9명의 여신을 그린 것이다. 파르나소스산 꼭대기에 빨간 망토를 두른 아폴로는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아폴로 옆에는 명성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백마 페가수스가 보인다.

9명의 여신들은 아폴로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악기들은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 오늘날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여신들의 드레스는 녹색, 파란색, 갈색, 노란색, 보라색 등 화려한 색이며 드레스에 나타난 잔주름 등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모든 인물은 통통한 몸매에 큰 눈을 가진 인형과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러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여신들은 대체로 관능미를 풍기고 있어 한 편의 멜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식장의 왼쪽 문에는 올리브 나무로 변신한 아풀리아 목동 이야기가, 그리고 오른쪽 문에는 미다스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왼쪽 아래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는, 비너스와 아도니스, 주피터와 아이오, 까마귀로 변한 코로니우스의 딸, 발이 빠른 여자 사냥꾼 애틀랜타와 그의 남편 멜라니온, 아폴로와 단테, 플루토에게 납치되어 저승의 여왕이 된 프로세르피나, 염소의 뿔과 다리를 가진 음악을 좋아하는 숲과 목양의 신 판과 판의 추파를 피하기 위해 갈대로 변신한 목신 시링크, 연인이 사자에 물려 죽은 줄 알고 자살한 피라모스와 그의 연인 티스베, 그리고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페니키아의 왕녀 유로파의 납치를 그린 그림들이 차례로 담겨 있다.

■ 더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미술관에 들러서 다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각 그림의 배경과 인물들의 표정을 감상해 보세요.

• 각 그림들을 연결해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 여러분의 ‘호기심의 방’에는 어떤 물건을 넣을지 생각해보세요.

참조

  1. Seventeenth-Century Dutch and Flemish Paintings, NCMA 2009
  2. https://ja.wikipedia.org/wiki/%E9%A9%9A%E7%95%B0%E3%81%AE%E9%83%A8%E5%B1%8B
  3. https://learn.ncartmuseum.org/artwork/ebony-cabinet-with-thirteen-painting-of-classical-subjects/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2110 Blue Ridge Road Raleigh, NC 27607
한국어 안내도 가능합니다.

[미국 생활기] 20년 된 커피 테이블 리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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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째 프로젝트

남편과 저의 팀워크를 발휘한 두 번째 프로젝트~!

첫 번째 프로젝트는 침대 프레임이었고요, 두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커피 테이블 세트입니다. 미국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가격 후려치기 테크닉을 소심하게 시전하여 70불에 구입한 가구들이죠. 이것이 득템이었는지 아닌지는 결과물이 나와 봐야 아는 거겠죠? 아무리 싸게 잘 산 제품이라도 결과물이 엉망이면 그냥 돈 낭비한 거니까요.

20년 된 테이블 세트

판매자의 어머님께서 20년 넘게 사용하셨다는 이 커피 테이블 세트.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Fixer Upper의 디자이너인 조애나의 영향으로 팜하우스풍 인테리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저도 이 팜하우스 인테리어에 딱 꽂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제가 원하는 가구 스타일은 상판은 원목의 느낌만 살아 있고 나무색은 아닌 어두운 컬러, 그리고 다리는 화이트 컬러로 따뜻한 느낌이 나는 팜하우스풍 디자인의 가구입니다.

페이스북의 중고 거래 사이트를 수없이 들락거리다가 똬앟!!!!! 하고 제 눈에 들어온 이 가구들!!! 하루 빨리 리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남편이 상판을 샌딩기로 갈아 줘야 제가 스테인을 입힐 수 있으니까 남편이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들썩들썩~

“상판하고 다리라도 좀 분리시켜 주든가! 그럼 내가 다리라도 먼저 칠하게!!!”

테이블 다리에 초크 페인트를 바른 모습 ©스마일 엘리

초크 페인트 바르기

그렇게 해서 즐거운 페인트 작업이 시작되었죠. 세상 좋아져서 프라이머 없이도 바로 쓱~쓱~ 발라주면 쏙쏙 잘 먹는 초크 페인트란 게 있더라구요. 초크 페인트의 질감은 뭐랄까? 무광택의 보송보송함? 광택은 없는 질감이에요. 그러나 프라이머 작업을 하지 않아도 어떤 표면에도 잘 먹는다는 게 장점입니다.

애들은 뒷마당에 풀어 놓고, 언제 그만 논다고 할지 모르니까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후다닥~ 잽싸게 발랐습니다. 한번 바르고, 애들 낮잠 자면 또 그 사이에 나가서 후다닥 바르고 또 다음날 애들 풀밭에 풀어 놓고 바르고~

마누라가 페인트칠하는 걸 보고 조급해 진 남편이 소파와 완전 합체였던 몸을 일으켜 차고로 가서 열심히 샌딩을 해서 드디어 원목 상태의 상판을 대령했습니다.

스테인 입히기

미국 가구들은 원목으로 만들어 워낙 튼튼해서 10년, 20년 된 가구도 리폼만 하면 앞으로 10년, 20년은 거뜬히 쓸 수 있겠더라고요. 샌딩해서 헐벗은 가구들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질 때 느껴지는 그 쾌감~! 아,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이 상태에서 어떤 색의 스테인을 입히느냐에 따라서 가구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저는 어두운 톤의 원목 느낌을 원해서 카본 그레이라는 색을 선택했습니다.

스테인은 제가 침대 프레임 작업 할 때 한번 실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스테인 입히기 전에 미리 프리 스테인 컨디셔너 한번 발라준 후 스테인 작업을 했어요. 숯검댕이 색깔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뭇결은 살아 있습니다.

스테인 입히는 방법은 유성 스테인의 경우 붓으로 조금씩 발라주고 1분 정도 뒤에 천으로 스테인을 다 닦아내야 해요. 수성 스테인의 경우는 닦아줄 필요 없고요. 저는 유성 스테인을 사용해서 남편의 안 입는 티셔츠로 열심히 닦아줬습니다.

스테인 작업은 2회에 걸쳐서 했고, 다리에 초크 페인트는 3회에 걸쳐서 칠했어요.

여기에 상판은 마지막으로 폴리 아크릴릭으로 코팅을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광택이 생기고 물이나 오염에도 강해져요.

다리는 초크 페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초크 페인트용 씰링 왁스를 발라준 후, 헝겊으로 문질문질 닦아 줍니다. 그러면 처음의 약간 거칠거칠한 느낌이 좀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느낌으로 바뀌어요. 그러나 광택은 나지 않습니다.

커피 테이블에 도전!

사이드 테이블을 완성하고 이제는 커피 테이블 차례입니다.

20년 넘게 사용했기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이 있더라고요. 나무가 패인 부분이 있지만 테이블 다리에 이마 갖다 대고 쳐다볼 거 아니니까, 그 정도 흠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요.

페인트칠 1회는 그냥 대충대충 막 칠하면 됩니다. 덧칠할 때 한 방향으로 예쁘게 잘 칠해 주면 되니까요. 그냥 프라이머 칠한다는 느낌으로~ 역시나 애들은 방목하고 후다닥~

다리에 페인트칠이 완성되자 또 헐벗어서 수줍어 하는 듯한 원목 상판이 도착했습니다. 프리 스테인 컨디셔너 꼼꼼히 발라주고 스테인 작업을 합니다. 스테인 했을 때와 원목 상태일 때 느낌이 완전 다르죠? (아래 사진)

원목 상판에 스테인을 입히는 작업 과정 ©스마일 엘리

리폼 완성 작품

이렇게 해서 사이드 테이블과 커피 테이블의 리폼이 끝났습니다. 이제 완성작을 보러 가실게요. 짜잔~! Before 사진과 After 사진을 같이 봐 주세요.

20년 된 중고 커피 테이블(Before) ©스마일 엘리
사이드 테이블 리폼 완료 ©스마일 엘리

팜하우스 분위기 제대로 살려주는 가구로 재탄생했습니다. 사이드 테이블 위에 있는 저 둥근 장식품은 대나무 자수틀에 스테인 입혀서 만든 거예요.ㅋㅋㅋ Pinterest에 west elm sphere DIY로 검색하시면 만드는 방법이 나온답니다.

두 개의 사이드 테이블과 커피 테이블을 한 샷에 담아 봤습니다 (메인 사진).

역시나 리폼 투성이의 저희 집 거실. 5불짜리 거울로 만든 벽장식과, 중고로 구입해서 스프레이 페인트로 리폼한 램프, 자수틀로 만든 장식품, 중고로 구입해 리폼한 커피 테이블과 사이드 테이블.

이렇게 알뜰히 살면 부자가 될 법도 한데…. 참 미스테리예요. 아무튼 20년 넘은 커피 테이블 세트, 앞으로 10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죠?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smileellie777@gmail.com

[인생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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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말하는 의사에게 대처하는 법

몸살을 동반한 감기로 몸이 너무 안 좋아 병원에 들렀다. 잠시 대기실에 있으니 의사 선생님 방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의사 : 어디가 아파서….?

환자 : 몸살이 좀 심한 것 같아요. 몸이 욱씬욱씬 거리고 열이 나요.

의사 : 아~ 해봐.

환자 : (뭔가 말이 짧은 것 같은 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아~~

의사 : 웃옷 걷어 올려.

환자 : (응??? 뭔가 말이 계속 짧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웃웃을 걷음)

의사 : (청진지를 가슴에 대며) 숨을 깊게 들이마셔봐.

환자 : (몸도 안 좋은데 살짝 패닉 상태에 빠짐. 그래도 열심히 숨을 들이마심)

의사 : (손으로 배를 쿡쿡 누르며) 여기도 아파?

환자 : 아니. (몸도 안 좋고 점점 이성을 상실함)

의사 : (손으로 가슴쪽을 누르며) 여기는…? 여기도 아파?

환자 : 아니, 안 아파.

의사 : (뭔가 당황한 듯 나를 쳐다보며) 기침은 하나요?

환자 : 아니요. 기침은 아직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의사 : (아까 잘못 들었나보다 생각했는지) 열은 어때?

환자 : 재봐.

의사 : (이제는 알았다는 듯이) 몸살을 동반한 감기입니다. 처방을 해드릴 테니 약 받아가세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을 의사에게 알려주고 옴.

▶ 새해 기도
주님…!!
새해에는 뚱뚱한 지갑과
날씬한 몸매를 주세요…^^
지난 해에도 이 기도를 드렸는데
주님께서
거꾸로 주셨습니다.
올해는 절대로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아멘!

출처 : 최규상 유머경영연구소

[참지 말고 사이다!] 며느리를 위한 명절 사이다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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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친정 가기, 시댁에서 안 보내주면 못 가나요?

아뇨~! 명절 당일에 아침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세요. ‘이 세상에 기분 좋은 거절은 없다’는 말 아시죠? 이건 명절 때도 마찬가지예요. 시댁에서 기분 좋게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친정 못 가요.

저는 결혼 전부터 남편한테 아주 확실하게 못을 박았습니다. “나는 아침 먹고 바로 일어난다. 만약 이거 못 지키면 우리 사이에 다음 명절은 없다!” 이렇게요.

저보다 10년은 먼저 결혼한 저희 형님은 명절에 친정에 거의 못 가셨더라고요. 명절 내내 시댁에 있었다고 해요. 이 얘기를 듣고 제가 더 단호해진 것도 있어요.

어차피 욕 먹을 거

명심하세요. 남편 혹은 남편이 될 사람한테 “나는 할 말은 한다. 그리고 한다면 한다.” 이런 이미지를 평소에 심어 놔야 해요. 평소에 남편이 약속을 안 지켰을 때 그냥 넘어갔다면? 이 방법은 안 먹혀요.

제 친구는 명절 당일 남편이 조금 더 있다 가자고 하니까 시댁 식구들한테 미움 받기 싫어서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하루 더 자고 왔대요.

처음에 이런 식으로 참고 참다가 나중에 가서 친정 간다고 일찍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훨씬 더 심한 욕을 먹어요. 그러니 어차피 욕 먹을 거, 애초에 첫 명절부터 욕 먹으며 제대로 틀을 잡아 두세요.

나의 명절 투쟁기

저는 첫 명절 때, 그 전날 저녁에 시댁에 가서 자고, 명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짐부터 다 싸 놓고 차례 지내고, 아침 먹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시어머니가 “섭섭하다. 너무 빨리 간다.” 하시기에 “그러게요, 어머님.” 이렇게 입으로는 대답을 하면서도 차에 짐을 실었죠.

시어머니가 저한테 포옹하려는 듯이 슬쩍 다가오시더니 귓속말로 “다음부턴 이렇게 일찍 못 간다!” 하셨는데 저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차에 탔어요. 차 타자마자 남편에게 어머니가 다음엔 빨리 못 간다고 하셨는데 난 다음 명절에도 이 시간에 출발할 거다 했어요.

그리고 다음 명절에도 저는 당연히 아침 먹고 바로 일어났죠.

친정 가기,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 아시겠죠? 아침 먹고 정리한 뒤에 그냥 일어나서 인사하고 차에 타면 됩니다. 시어머니가 서운해 하거나 기분 나빠하실지언정 여러분의 멱살을 잡고 차에서 끌어내리지는 않아요.

저의 투쟁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친정에 못 가던 저희 형님도 이제는 저 출발할 때 같이 친정으로 출발해요. 시부모님이 어쩔 수 있는 건 1도 없어요. 그러니 그냥 일어나서 친정 가시면 됩니다. 먼저 친정 가라고 좋은 말 해주는 시댁? 거의 없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반에 어느 정도 성격을 드러내세요. 착한 며느리? 그런 건 개나 줘버려요! 그래야 인생이 편해집니다. 잠깐 욕 먹고 기분 나쁘면 인생이 편해요.

그냥 며느리로 생각해주세요!

결혼 초반에 시어머니가 나중에 아들이랑 같이 살고 싶다 하시길래, “그럼 두 분이 같이 사세요. 전 따로 살게요.” 그랬어요. 그리고 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신다길래 “그냥 저를 며느리로 생각해주세요.” 했어요.

결혼할 때 양가에 딩크 합의하고 결혼했는데 애 낳으라고 하시길래 “어머니 아들 이미 수술했잖아요, 모르셨어요?” 했네요.

제가 남편보다 5살 연상인데, 저 볼 때마다 당신 아들 아깝다고 하셔서, “저희 부모님도 남자가 연하라 못 미덥고 불안해 하신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결혼 전에도 후에도 남편 앞에서 그런 거 티 내신 적 없는데 저한테 자꾸 이러시면 기분 상한다. 반품 원하시는 거냐?” 했어요. 자기 집안은 절대 이혼 안 된다고 하시길래, 저도 폭력, 바람, 도박 아니면 이혼할 생각은 없다고 했죠.

매일 연락 안 한다고 시어머니가 삐지셔서 3달 동안 연락 없기에 저도 안 했어요. 죄송한 게 없어서 사과도 안 했고요. 그 다음에 만났는데 제 인사도 안 받으시길래 저도 말 안 걸었어요. 그 후로는 저한테 심한 소리 거의 안 하세요. 뭔 말을 해도 내가 할 말 다하니까 어이가 없으신가 봐요. 게다가 남편이 항상 제 편 드니까 더 안 해요.

아, 이때 남편이 100% 내 편이어야 해요. 마음만 내 편이고 자기 집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하는 남편은 ‘남의 편’입니다. 자기 집에 가서 내 편을 들어주는 게 ‘내 편’이에요!

출저: 네이트 판

[상담 칼럼] 가정의 시작은 떠남에서부터 – 2편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lifeplusfamilycenter@gmail.com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

지난 호에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가정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인 ‘떠남’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시한 떠남의 원리 중, 지난 호에서는 경제적 독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떠남의 두 번째 의미로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정신적 독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받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그 상처의 그늘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지만, 부부의 역동(psychodynamics)을 가만히 살펴 보면 두 사람이 아닌 여섯 사람이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랑과 신랑의 부모, 그리고 신부와 신부의 부모가 함께 살면서, 어릴 때 있었던 가족의 역동을 현재에 또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신의 부모와 닮은 배우자

어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자신의 부모, 특히 부정적인 특징을 가진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만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통계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이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상담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자기 어머니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혹은 매일 술에 취해 살았던 친정 아버지처럼 자신의 남편이 컴퓨터 게임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신이 그리 싫어했던 부모와 닮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일까? 이런 현상에 대해 헨드릭스 박사는 ‘우리가 어릴 때 미처 끝내지 못한 일(Unfinished business)’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내게 상처 주었던 부모를 고치는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못다한 일을 마무리짓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현재의 관계를 통해 치유받고자 하는 욕구이지만, 사실은 그 상처를 현재의 관계에서 계속 반복하며 오히려 상처가 덧나는 경우도 많다.

쉽게 상처를 받는 아내

S양은 남편과의 잦은 싸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하루 종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씨름을 하다보면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내 인생은 뭔가, 내가 애들 똥기저귀나 갈려고 돈 들여 공부했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날은 어김없이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갔다.

남편의 어떤 말에 그렇게 화가 나는지 물으니 S양은 “오늘 당신 뭐했어?”라는 말이라고 했다. 남편이 집에 발을 들여 놓으며 “당신, 오늘 뭐했어?” 라고 물으면 그 말이 “당신 오늘 뭐했길래 집안 꼴이 이 모양이야?”라고 들렸다. 사실 남편은 그냥 관심을 보이고 싶어 다정하게 물어 본 말일 수도 있는데, 아내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 나쁜 뜻이 전혀 없는 가벼운 물음에도 S양은 “나 정신없는 거 안 보여? 당신이 애를 한번 봐줬어, 청소를 해줬어?”하며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과거의 상처와 동거 중

반복되는 갈등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S양은 딸만 있는 가정의 큰딸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을 못 낳아서 대를 끊어 놨다는 할머니의 비난에 어머니는 큰딸을 어느 아들 부럽지 않게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큰딸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고 S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해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늘 눌려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대와 요구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자신은 항상 부족한 존재로 느껴졌다. 부모의 비현실적인 기대를 채울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항상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남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곤 했다.

“오늘 뭐했어?”라는 남편의 말은 “너는 대체 오늘 한 일이 뭐냐?” 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애들이 왜 이리 극성이냐?”라는 남편의 푸념은 “너는 대체 뭐 하고 사는 거냐, 애 하나 똑바로 못 키우고…….” 라는 부모님의 비난을 연상시켰다. S양은 자신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님의 비난의 목소리와도 함께 살고 있었다. “너는 뭘 해도 부족해.“라는 어릴 때의 메시지를 지금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분노와 서운함과 부담감을 이제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한 남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자기 남편도 늘 비판적이었던 자신의 부모님과 다를 게 없다고 절망하면서. 남편은 어느 새 자신이 미워하던 친정 부모님과 꼭 닮아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정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것은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서적인 독립은 이제 부모의 문제, 혹은 부모와의 갈등이 내게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부모를 사랑하고 잘 섬기지만, 그 당시 현실에서 생긴 상처를 계속해서 곱씹지 않는 ‘건강한 분리’를 의미한다.

부모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Unfinished business)는 그것을 대면하고 넘어서고 치유받는 과정을 거쳐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치유되어야 내 배우자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진정한 독립성을 확립할 때 비로소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내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는 어쩌면 지금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나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받았던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내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 때문에 나의 배우자는 내게 상처주었던 과거의 어떤 사람으로 매도되고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성찰해보자.

[명상 칼럼] 진정한 자신과 가까워지려면

다음 글은 ‘죽음 연구가’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의 책 『 인생수업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명예로운 상

몇 해 전, 나(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운 좋게도 시카고 의대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수들에게는 매우 명예로운 일입니다. 교수라면 누구나 학생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던 날, 동료 교수들은 다들 평상시와 다름없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미소 뒤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때가 다 되었을 때, 아동심리학자인 동료 교수 한 명이 멋진 꽃다발을 보내왔습니다.

솔직한 표현

꽃과 함께 보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그 카드를 읽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겠구나!’ 나는 그가 가식적이지 않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그와 이야기할 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라면 가까이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신

진정한 자신과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어두운 면과 결점에 대해서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내가 질투의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솔직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함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신과 가까워지려면 나의 솔직한 감정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출처 : Peacewoods.com

[미래교육 칼럼] 17.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 구조의 변화

유문조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munjo.yu@gmail.com

지난 호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노동 없는 생산, 상품과 서비스의 무한복제, 승자독식의 디지털 경제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수많은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내몰리며 경제 구조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경제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경제를 기반으로 한 여러가지 상부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의 정치 변화

미국의 공장들이 값싼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이전하고,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서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트럼프 정부를 탄생시켰다. 트럼프는 그들에게 자동차 공장, 철강, 탄광의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자동화의 흐름을 외면한 현실성 없는 공약이 되고 말았다.

블루컬러의 쇠락과 함께 심화된 부의 양극화는 2016년 대선 정국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시키기도 했다. 더욱 가속화되는 자동화로 블루컬러 노동자는 물론,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일자리까지 줄어들면서 앞으로 더 거센 정치적 격변이 예상된다.

또한 막대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미국 정치에서 자본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동시에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불만이 한계에 달하면서 두 진영 간의 충돌은 미국 정치 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정부(e-government)

유럽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은 모든 시민이 전자주민증으로 선거, 의료기록 등 정부 서비스의 99% 이상을 온라인으로 해결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나왔을 때만 해도 변변한 자원도 없고, 경제적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아 -14%의 역성장을 기록했던 나라가 지금은 투명한 전자정부 인프라에 힘입어 유럽의 강소국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인프라의 효율성 덕분에 GDP의 2%에 해당하는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2007년 러시아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받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2008년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자마자 이를 전자정부 시스템에 적용시켜 훨씬 안전하고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4년부터 에스토니아는 이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13만원만 내면 사이버 영주권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4만 5천명가량의 사이버 영주권자를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출산율 감소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를 일정 정도 보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다른 여러 나라 정부들에게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탈중앙화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암호화폐 이외에 적용시킨 초기 사례 중 하나이다.

기존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와 금융에 생기는 균열

IMF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준비금의 62%가 미국 달러화 이다. 또 은행 간의 국제송금 시스템인 SWIFT 거래액의 43%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진다. SWIFT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에 지불하는 대금의 98%도 달러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달러는 미국의 화폐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세계화폐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기축통화(reserve currency)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다.

미국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 종반이던 1944년부터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고, 1970년대에는 금본 위제를 포기하면서 금 대신 IMF의 SDR(Special Drawing Rights)을 달러 가치를 보장했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밖의 OPEC 회원국들과 정권보호를 조건으로 석유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는다는 협약을 체결한 뒤로 달러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달러의 독주에 반기를 들고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 기축통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고, 실제로 중국은 IMF의 SDR에 달러 41%, 유로 31%에 이어 위안화 10%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2017년부터 모든 항구에서 달러 거래를 금지시켰다.

이란의 경우,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지불 수단으로 달러 대신 다른 통화를 사용해야 했고, 미국은 이란을 SWIFT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중국이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s System)를 만들어 이란과 같은 나라가 국제송금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자, 다른 나라들이 달러 및 미국 금융 시스템의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구축해 놓은 달러 중심 시스템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용해 오다가 이젠 아예 노골적인 일방주의로 나가고 있어 여러 나라들이 달러 위주의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한 예로, 유럽연합(EU)의 외무부 수장은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에 발이 묶인 이란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교역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공도 경제 블록(bloc)을 형성해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 나라들은 새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을 설립하였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계은행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기간 투자 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도 설립하였다.

이처럼 달러에 집중된 세계금융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의 기저 개념인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바람이 불고 있고,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의 첫번째 응용프로그램인 암호화폐를 사용하여 미국의 영향력 아래 국제금융거래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SWIFT를 통하지 않는 국제 거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017년 6월에 지난 블록체인편에서 언급했던 2세대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 비탈릭 부터린을 만나 국가가 운영하는 암호화폐에 관해 토론한 다음, 2018년 1월에 CryptoRuble를 출범시켰다. CryptoRuble은 암호화폐 요소를 따와 SWIFT를 거치지 않고 국제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IMF 의 장인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장기적으로 암호화폐가 각 나라의 은행들과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계 5세 미만 어린이와 65세 노인 인구의 변화 ©United Nations

평균수명 증가와 인구의 노령화

지난 50년의 통계를 보면 인류 사회에서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전쟁이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고,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보다 노령으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또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쟁이나 테러, 강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반면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전세계 인구는 노령화로 나아가고 있다. 전세계적 현상인 고령화는 4차산업 시대에 줄어드는 일자리와 함께 세계 시민들의 건강한 삶이라는 두 가지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의 이동

옛날에는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왕이나 각료들, 또는 성직자들에게 물어서 결정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내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거나 구글에 물어본다.

복잡한 도심을 운전할 때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이나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내비게이터의 안내에 따라 운전하는 것처럼, 이제는 많은 정보와 결정을 구글과 같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되었다.

새로운 종으로의 분화

3차 산업혁명까지 인류는 인간의 몸과 뇌를 사용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의 몸과 뇌까지도 스스로 개선시키기 시작했다. 덕분에 손상된 신체를 보완하는 의수, 의족을 넘어 인공장기에 이르기까지 신체 여러 부분을 대신하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

또한 유전자 조작 식품과 같은 분야에서 이미 많은 유전자 조작 경험과 기술을 얻은 인간은 그 기술과 노하우를 인간에게 적용시키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법적, 윤리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집중된 부를 소유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녀에게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한 슈퍼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단 몇 세대만에 초부유층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새로운 종은 유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기존의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새로운 종이 꼭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여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게 되면 인공지능에 의한 인공지능의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고, 인공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슈퍼지능(Super Intelligence)로 진화하면, 이를 새로운 종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대량생산 시대의 공교육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업무는 점점 자동화되어 인간의 노동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이 현상의 전조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20세기 전반에도 ‘컴퓨터’는 있었다. 예를 들어, 박격포가 전투에 배치될 때 목표 거리와 고도에 따른 포신의 각도를 현장에서 바로 계산 할 수 없어 이를 미리 계산해 책으로 배부하였다. 이를 계산해낸 그 당시의 ‘컴퓨터’는 바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인간 컴퓨터는 느리고 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계 컴퓨터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간 컴퓨터는 사라졌고, ‘컴퓨터’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기계 컴퓨터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계산숙달 교육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수행하는 일자리는 머지않아 자동화된다. 따라서 공교육의 역할은 지식의 주입이나 기계적인 훈련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과 스스로 배우고 훈련하는 자기 학습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