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계획이 없이도 결국엔 다 이루는 나무 ©sarahraven

나무의 계획

올해 가지 뻗기 20cm
몸 둘레 늘리기 7cm
열매 맺기 배가 운동
이런 목표 나무에겐 없다
주간계획, 월중행사표 그런 것도 없다
햇볕 비추는 대로 쬐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오르면 잎 틔우고
꽃 지면 맺힌 열매 키울 뿐이다
그래도, 한 해에 키가 훌쩍 자라고
허리 통통하게 굵어지고
잎들은 셀 수도 없이 늘고
열매들 올망졸망 매어단다
바람이 와서 팔 흔들면
잡았던 손 놓아 잎들 보내고
열매들 향기롭게 익힌다
그저 그렇게 서 있을 뿐인데
결국엔 다 이룬다

▶ 시인의 말
새해를 맞이하면 우리들은 늘 새해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과 결심은 많이 흐트러지고 약해졌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그러지 않습니다. 새해를 맞아도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 같은 걸 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서 자연이 공급해 주는 대로 햇볕을 쬐고, 뿌리에서 영양분을 빨아 올리고, 비나 눈도 맞고,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그러면서 잎 피우고 열매 맺고 때가 되면 단풍 들고 또 그 단풍잎 미련 없이 다 떠나보냅니다. 연초에 아무 계획 세우지 않았어도 한 해가 다 가고 연말에 보면 나무는 모든 걸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내 계획 내 목표 내 뜻 고집하지 말고, 나무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신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면 어떨까요?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반가운 엽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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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시인의 새 시집 <반가운 엽서> ©시와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