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내 책임이다. ©Great Place to Work 블로그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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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둔 사람들
상담소에는 가끔씩 자신을 영원히 방 안에 가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야, 쟤 얼굴 좀 봐. 진짜 못생겼다. 토 나오네. 나 같으면 살고 싶지 않겠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자기 면전에서 “저능아야, 저능아!”라는 비웃음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가 ‘게이’라는 오해를 받고 이후로는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첫 직장에서 “저 사람,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아?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 이후에 들어간 직장을 계속 그만두기도 했다. 누군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방어와 공격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아이들은 학교를 옮기겠다고 떼를 쓰거나, 막무가내로 학교를 안 가고 결석을 해버리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도록 일부러 인상을 쓰고 다닌다. 또한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거나 방 밖으로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에 대한 험담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방어 행동이다.
반대로 자기가 상처받고 고통받은 만큼 그대로 되돌려주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그동안 자신이 들었던 잔인한 말을 세상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며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살기
그런가 하면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좀 더 의연하게 넘기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자신에 대해서 ‘건방지다’, ‘잘난 척한다’, ‘재수 없다’, ‘바람둥이다’ 등등의 뒷담화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반응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 아이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넘긴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꾸준히 보여주면 시간이 지나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나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지 않아도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그저 계속해서 ‘나 자신’이 되면 된다나…….

연 끊고 떠나기
이런 일은 아이들의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도가 지나친 말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살짝살짝 지나가듯 내뱉는, 별것 아닌 듯한 험담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섬기던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
또한 좋은 일에 앞장을 서다보면 본의 아니게 험담의 대상이 되곤 한다. ‘왜 저렇게 나대?’,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자격도 안 되는 게 뭘 한다고……’ 등등 온갖 모욕적이고 깍아내리는 말을 듣는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근거 없는 엉뚱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정말 인류애가 차갑게 식는 경험을 하게 된다.
친척들이나 가족, 직장동료들 간에,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교회에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은 그 험담의 타겟이 되기 일쑤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되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부족한 인간이기에 어느 조직에서나 리더에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부풀려진 근거 없는 소문의 희생양이 될 때도 있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이 공격의 대상이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형언할 수 없이 착잡하고 씁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들과 아예 연을 끊어 버리고 안 보고 살거나, 직장이나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하던 일과 맡았던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물러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전학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문제는 옮겨간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학을 가도 역시 학교는 학교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존재(Bully)들은 어느 학교에나 있다. 우리가 옮겨간 직장, 교회, 조직에도 나에 대해 뒷말을 하는 험담꾼들은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시 선택을 해야 한다. 나에 대한 험담을 그보다 더한 험담으로 받아치며 끝장을 보자고 달려드는 또 다른 Bully가 되든지, 아니면 험담의 피해자가 되어 방 안으로 숨든지 도망가든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옵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다 내 손해다.
그렇다면 다른 옵션은 없을까? 있다. 험담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서로 상처를 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온갖 험담에 대해 건강하고 건설적인 대처법을 찾는 것이다.

네 마음을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고 말씀하신다. 모욕적인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험담이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을 때 우리가 꼭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진짜 나, 원래의 나를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사람을 세울 줄은 모르고 깎아내릴 줄만 아는 사람들의 입방아 때문에 내가 쌈닭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나를 보호해야 한다. 내가 또 다른 험담꾼으로 변하지 않게 막아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하는 미성숙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냉담하고 무신경한 사람으로 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짜 나, 원래의 나로 남기로 작정해야 한다.
진짜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나’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믿을 줄 알고, 용서할 줄 아는 ‘나’이다.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할 줄 알고, 열정으로 섬길 줄 아는 ‘나’이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나’이다. 문제 있는 누군가의 험한 입 때문에 원래의 나를 잃지 않도록 꼭 붙들어야 한다. 험담에 익숙한 남의 입은 내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