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는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스킬이다. ©KOREAN LIFE
고현숙
국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코칭경영원 대표 코치 [email protected]

끈기 vs 끊기
‘포기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고, 이기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Quitters never win, winners never quit.)’라는 격언을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모든 일을 끝까지 버티며 계속 하는 것만이 과연 최선일까?
1974년 32세의 노장 무하마드 알리가 당대 무적의 헤비급 챔피언인 24세 조지 포먼을 쓰러뜨린 ‘킨샤사의 기적’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으로 꼽힌다. 그후 알리는 프로선수로 7년을 더 링에 올랐는데, 경기력과 체력이 많이 떨어져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결과 참담한 패배가 이어졌다. 그렇게 맞은 수많은 펀치들이 파킨슨병을 악화시켰다. 이처럼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을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그만둘 용기
우리 삶을 더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려면 그만둘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커리어를 전환할 때 멘토인 한근태 코치의 조언이 작용했다. 그 즈음 한 코치는 나에게 ‘배우는 것도 없는데 왜 그 회사를 계속 다니느냐’고 압박질문을 하고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솔직히 그 직장은 나의 안전지대(safe zone)였다. 익숙하고 편안했지만 발전은 없었다. 고심 끝에 결국 사표를 쓰고 돌아서 나오는데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가벼웠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박사학위 취득도, 코칭경영원 설립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둘 수 있는 지혜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이 세계 최고봉에 오르는 훈련에는 반환시간, 즉 하산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을 반드시 엄수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걸 어기면 정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하산 중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상을 단 몇 백 미터 앞에 두고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서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세계적인 등반가이자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 산업을 시작한 롭 홀(Rob Hall)은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켰지만, 평생에 딱 한 번 이를 어긴 일이 있다. 동료의 정상 정복의 꿈을 이뤄주려고 정상에서 3시간을 더 기다렸던 것이다. 그 결과는 두 사람 모두의 사망이었다(, 애니 듀크, 2022).
사업도 그렇다. 늘어나는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이익이 나오지 않고, 경쟁자를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져도 사람들은 그만두기를 어려워한다.
온라인 게임 ‘글리치(Glitch)’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벤처 사업으로 투자를 많이 받았다. 사업이 그런대로 성장했고 투자금이 600만 달러가 남아 있었지만, 어느 날 그는 사업을 접기로 결심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었다. 신규고객 확보 비용이 감당 못할 만큼 늘어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기업용 메신저 ‘슬랙(Slack)’을 개발해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는 중간에 그만두면 아주 멈출까봐 두려워하지만, 오히려 빨리 그만두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멈추게 되는 경우도 많다.

현상유지, 손실회피 성향
중간에 그만두기가 어려운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목표에 대한 집착이 그 중 하나다. 마라톤을 뛰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 결승점까지 무리하게 달린 결과 마라톤을 아예 못하게 된 사람들이 그 예다.
그만둔 이후의 상황이 불확실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거기에 매몰비용, 즉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일을 몇 년간 했고 그동안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이미 사라진 비용이지만,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투자를 하는 셈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제가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쏟은 정이 아까워 관계를 끊지 못하면 그 관계를 지속할수록 자신만 더 고갈될 뿐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주식 시장에서 손해를 볼 때, 그 시점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당장의 손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주식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한다. 안 파는 것은 그만큼 더 사는 것과 같은데도 말이다.
인간의 이런 어리석은 행동의 배후에는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편향이 있다. 이 때문에 실패가 확실한 일에도 고집스럽게 끝까지 집착하는 것이다. 줄어들지 않는 대기줄에 서서 계속 기다리는 것, 미국의 베트남전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계속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예다.

‘그만두기 코치’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때로는 ‘끈기’보다 ‘끊기’가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자 행동과학자인 데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어떤 일을 과감하게 잘 그만두려면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감정 상하는 말을 서슴없이 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만두기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나서야 친구로부터 ‘잘했어.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묻는다.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냐고.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네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그랬어.’
그러니 당신의 장기적인 행복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그만두기 코치’를 찾아 당신이 꼭 들어야 할 뼈 아픈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