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조,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지난 호부터 회계, 금융 분야를 시작으로 전문직에서 자동화 진행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의료 영역에서 컴퓨터가 어떻게그 역할을 확대해가고 있는지 알아보자.

의료, 인간의 영역을 넘어
회계, 금융 분야의 중심 데이터는 화폐의 양을 나타내는 숫자라서 컴퓨터가 이미 오래 전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더해진 컴퓨터의 역할이 점점 더 확대되어 관련 업무를 더 잘 알아서 처리하도록 발전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호에서 다루게 될 의료 영역은 이와는 좀 차원이 다르다. 의료 행위는 인간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아우르는 건강과 질병을 다루기 때문에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통념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의료 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 가지 예로, 인간의 몸을 투시해 뼈와 장기들을 촬영하는 X-선 사진은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이 X-선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컴퓨터로 합성해서 좀 더 정확한 영상을 얻는 기술이 CT(Computed Tomography) 촬영이다. 더 나아가 자기 공명 현상을 이용해 많은 양의 물리적인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모델에 따라 처리해서 더욱더 정확한 영상을 얻는 기술이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다.

이런 투시 촬영 기술의 발전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분야의 기술 발달을 잘 보여준다. 양질의 기초 데이터를 잘 수집하면 영상 이미지를 출력하는 수준을 넘어 질병의 종류와 단계는 물론, 치료 방법까지 제공하는 시스템이 시도되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MRI처럼 인체를 투시할 수는 없으니 이는 의료 기술이 인간 의사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 고유의 영역, 그 모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고유의 영역, 즉 의사 선생님의 손이 닿아야만 하는 치료 영역이 오랫동안 남아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 구더기 요법의 역사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구더기 요법은 심한 외상을 입은 병사가 며칠 동안 전쟁터에 방치되어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다가 후송된 후 상처에 구더기가 없던 다른 병사들보다 빨리 치유되는 것을 보고 착안한 치료법이다. 의사의 주된 업무는 몸에 발생한 이상을 고치는 것인데, 구더기 요법에서 외상을 실제로 치료하는 것은 구더기이고 의사는 구더기 요법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여기서 구더기가 하는 일을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구더기 요법을 선택한 의사의 처방을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불러야 할까? 참 애매하다.

의료 분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의 역할이 남아 있을 전망이지만 기계가 담당하는 영역과 인간 영역의 경계가 모호하며, 인간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방사선 전문의(Radiologist)
질병 진단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외과,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신경과, 치과 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X-선, 초음파 등을 이용해 영상을 얻는 방사선 촬영(Radiology)이다. 이 영상은 방사선 전문의가 판독해 결론을 내린다.

방사선 전문의는 많은 교육과 임상 훈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고 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의료영상을 판독하는 소프트웨어가 연구되었고 최근에 인공지능을 이용해 방사선 전문의보다 더 정확하게 영상을 판독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이 시스템은 그동안 누적된 수많은 의료영상을 학습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질병을 정확하게 판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제한적인 부분이 있어, 앞으로도 당분간은 방사선 전문의가 계속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방사선 전문의는 영상 판독외에도 다른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방사선 전문의 일자리가 줄어들거라는 예측은 섣부른 짐작이다. 다만 방사선 전문의 업무가 이런 인공지능 시스템을 적극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로봇 수술(Robotic Surgery)
라식(LASIK) 수술, 모발이식 수술 등은 인간이 직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계가 수행해왔다. 인간이 해오던 심장수술, 관절수술 등에도 원격조종 로봇의 사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로봇 손과 팔은 사람의 손과 팔보다 훨씬 작고, 길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어서 수술 부위를 많이 절개하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하다. 또 아주 작은 부위를 수술할 때도 의사가 손으로 직접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

원격조종 로봇 수술은 2000년에 미국 식약청(FDA)이 미국 의료용 로봇 제조회사 Intuitive Surgical이 만든 원격조종 로봇을 사용한 da Vinci Surgical System을 허가한 후로 확대 일로에 있다. 이 원격조종 수술 로봇은 바로 옆에서 의사가 실시간으로 로봇의 내시경에서 보내는 영상을 보면서 원격으로 조종해야 하므로 자동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자동 수술 로봇도 시도되고 있다. 한 예로, 2016년에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만든 Smart Tissue Autonomous Robot(STAR)은 돼지의 작은 창자 봉합수술을 인간의 도움을 일부 받아 자동으로 수행했다.

심장 수술을 하고 있는 원격조종 수술 로봇의 모습 ©Mayo Clinic

보조 인공 신체 기관
의수, 의족과 같은 보철은 최소 수백년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이 전통적인 인공 수족은 접합된 신체부분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여 제한된 역할만 했지만, 최근 들어 컴퓨터의 발달로 인간의 신경과 연결되어 능동적인 제어를 할 수 있는 인공 수족이 나오고 있다. 또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여러 회사들이 동력형 외골격(Powered exoskeleton) 제품을 출시해 군사용, 의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동력형 외골격 제품들 ©therobotreport.com

인공 수족에서 나아가 인공 골반, 인공 심장, 인공 방광, 인공 간, 인공 허파, 인공 귀, 인공 눈, 그리고 두뇌 보조장치까지 여러 가지 인공 인체 기관들이 출시되고 있다.

간질 환자 뇌에 삽입된 초소형 컴퓨터 ©Wall Street Journal

위의 X-선 사진은 간질 환자 에밀리 보르가드(Emily Borghard)의 두개골 안에 삽입된 작은 컴퓨터를 보여주고 있다. 에밀리 보르가드는 하루에 많게는 400번의 간질 증상이 일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약물 치료 등의 효과가 없자 그녀는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19세가 되던 2011년 두뇌에 컴퓨터를 임플란트했다. 임플란트된 컴퓨터는 그녀의 뇌파를 감지해 데이터를 Neuropace의 중앙 컴퓨터로 보내 발작 증세가 임박했는지를 판단한다. 발작 증세가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그녀의 두뇌에 임플란트된 컴퓨터에 발작 억제 전기 신호를 뇌에 보내라고 명령한다. 이 신경기술(neurotech) 장치 덕분에 발작이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줄어들어 그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위 Neuropace의 기술 혁신은 진단과 처방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의료기기 및 휴대전화, 스마트 워치 등의 휴대기기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고, 뇌와의 직접 통신이란 측면에서 의미 심장한 발전이다.

생체 감지기(Bio-Sensors)를 이용한 (자가) 검진
스마트워치처럼 몸에 부착하는 기기들에 맥박, 체온, 혈액 성분 등을 측정하는 생체 감지기를 부착시켜 감지된 데이터를 컴퓨터에 전송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 환자의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연구가 최근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미 여러가지 생체 감지기 제품과 분석 시스템 제품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피를 뽑지 않고도 심장의 이상 동작의 원인 중 하나인 칼륨 함량을 추정해낸다.

AliveCor회사에서 만든 심전도 기록 애플워치 앱 KardiaBand ©Wall Street Journal

다음 이미지는 생체 감지기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을 수치로 보여주는 Edwards Lifesciences사의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을 알려주는 Edwards Lifesciences사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Wall Street Journal

의료문서의 디지털화

의료계에서 대부분의 정보 처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종이에 의존해 왔다. 의사들이 종이에 알아보기 어려운 필기체로 휘갈겨 쓴 처방전은 환자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에게도 종종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의료사고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2009년에 제정된 건강한 경제 및 임상 보건을 위한 의료정보 기술 법률(일명 HITECH Act) 이후로 종이를 사용하던 각종 의료 기록이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 기록으로 대폭 바뀌었다. 의료정보가 전자기록, 다시 말해 디지털로 바뀌면 Machine Learning으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가 쉬워졌다.

IBM의 Watson과 인공지능 암 센터
IBM은 인공지능 Watson의 기술을 가지고 야심차게 암치료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다. 현재 세계적으로 230개의 병원이 Watson으로 시험 운용 중에 있고 한국에서도 인천 길병원 등 7개 병원이 IBM과 손잡고 인공지능 암센터를 시작했다. 아직은 양질의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료문서의 디지탈화를 통해서 양질의 컴퓨터 훈련용 데이타가 대폭 늘어 가고 있으므로 머지 않아 성공을 거둘 전망이다. IBM은 또 암과 같은 종양 분야 뿐만 아니라 게놈 분석과 제약 개발에도 Watson을 진출시키고 있다.

영국의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
영국에서도 Babylon Health라는 인공지능 의료 소프트웨어 회사가 Watson과 비슷한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을 개발해서 이미 2만 6천명이상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한편 이 시스템은 영국의 한 의사 시험에서 인간 합격자들 평균 72%보다 꽤나 높은 82%를 받았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

중국의 의료 인공지능
중국은 정부 주도로 인공지능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수년간 수백억달러를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전문가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값싸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 하려는 많은 시도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컨설팅 회사 ‘이우지능’(亿欧智库)에 따르면 130여개의 회사가 인공지능을 의료분야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국의 iFlytek과 칭화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의료용 인공지능 시스템은 중국의 의사 자격증 시험에서 인간 응시자들의 96%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틀린 부분은 상식과 윤리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앞으로 인공지능 개발을 이끄는 지도자들에 중요한 결과다.

이번 호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영역인 의료 분야에서 컴퓨터 및 인공지능 이용 현황과 전망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의료분야보다 더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인 법률 분야에서 컴퓨터가 어떻게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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