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긴 채 두 달만에 돌아온 내 택배상자 ©스마일 엘리

잃어버린 소포
저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9일,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발이 휘날리던 날이었어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댁 식구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려고 커다란 택배상자를 들고 우체국에 갔더랬죠.
그날은 아침부터 일진이 안 좋았어요. 눈길 운전이 익숙치 않은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져서 눈 쌓인 도로에서 차가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인도쪽에 쳐박혔어요. ㅠ.ㅠ 날씨는 흐리고 해도 빨리져서 3시 반쯤 되니 이미 깜깜해진 상황에다가 춥기도 엄청 추웠죠. 그래서 얼른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부치고 차로 돌아오면서 영수증을 어느 구석에 던져 놓았다가 결국 잃어버렸네요. 그래도 빠른 우편으로 보냈으니 3일이면 도착할 것이고, 보험도 자동으로 적용되니 분실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죠.

그런데 크리스마스 당일, 가족들의 페이스북을 보니 크리스마스 사진에 제가 보낸 시댁 식구들 선물이 안 보이더라고요. 어랏?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래서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더니 제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직 도착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트랙킹 번호가 없으니 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었죠.

그래서 12월 27일에 우체국에 갔습니다.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트랙킹 번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영수증이 없으면 트랙킹 번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연말이고 연휴라서 우편 물량이 많아서 늦어질 수도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봐요.”

영수증 재출력
영수증이 없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니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우체국 직원의 말대로 연휴라 배송 물량이 많아서 늦어지는 거라 위로하며 일주일을 더 기다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가 도착하지 않자 시어머니가 직접 그 동네 우체국에 가셔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여쭤보셨어요. 그랬더니 직원 왈!
“택배 보낸 날짜와 시간, 그리고 담당직원의 이름을 알면 영수증을 다시 출력할 수 있어요. 단, 사람이 붐비지 않는 이른 아침 시간에 가야 해줄 거예요.”
What?!?!?! 우리 동네 우체국 직원은 분명 영수증이 없으면 트랙킹 번호를 알 길이 없다고 했거늘……. 이럴 땐 정말 미국인들의 일처리 방식에 속이 터져요. 미국에서는 되는 것도 안 된다고 할 때가 많은데 보통은 다음 셋 중의 하나죠.

1. 직원 본인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를 때

2. 귀찮을 때

3. 기분이 안 좋을 때

우리 동네 우체국 직원은 아마 2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날 제 소포를 담당했던 직원의 얼굴은 기억하지만 이름은 몰라서 그 직원의 이름을 알아야 했거든요. 다른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영수증 재출력이 가능한데, 제가 접수했던 시간의 직원은 11시가 넘어서 출근하니 그 이후에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오후에 다시 찾아가 그 담당직원에게 제 상황을 설명했지요.
담당직원은 무슨 전표 같은 것을 확인하더니 제가 접수한 기록이 있고 재출력을 해주겠다며 창구 뒤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뭔가를 하더니 나와서 하는 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수증 재출력 화면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출력을 할 수가 없고 그 영수증을 볼 수도 없어요. 그 화면으로 들어가야 트랙킹 번호도 볼 수 있거든요.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해요.”
하~!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온 가족 크리스마스 선물의 행방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우체국 웹사이트에 들어가 고객센터에 이 상황을 설명하고 답변을 기다렸어요. 이틀 뒤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제 소포를 접수한 담당직원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 직원에게 가서 영수증 재출력을 부탁하라고 하더군요. 아, 진짜!! 이미 그렇게 해봤는데 안 된대잖아!!! 그래서 내가 여기 웹사이트에 글을 남긴 거라고!!!!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미국에 한두 달 살아본 것도 아니고, 에휴~~~. 체념 섞인 목소리로 그 직원이 영수증을 볼 수 있는 화면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 말했죠.
“이상하네요. 제 화면에서는 되는데……. 그 직원이 못하면 매니저에게 부탁해보세요.”
앗, 매니저~!!! 그래서 우체국에 또 갔지요. 이러다가 우체국 문지방이 닳을 지경. ㅜ.ㅜ 하여튼 가자마자 매니저를 불러 달라고 한 후, 그분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제 소포를 접수했던 직원이 아직 출근 전이니 출근하면 알아보겠다며 다음날 다시 오라네요? 하~! 뭐, 별 수 있나요, 아쉬운 건 저인데요.

그래서 다음날 또 다시 갔습니다. 이제 우체국 직원들이 저랑 눈 마주치면 다들 눈인사를 해주네요. 왠지 이 우체국에 이력서 내면 이 직원들한테 추천서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분실 우편물을 찾겠다는 굳은 의지가 돋보이고, 포기를 모르는 끈기와 인내력, 하루에도 몇 번씩 우체국을 드나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까지 두루 갖춘 인재임’^^;;
제가 우체국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매니저가 달려오시더니,
“엘리씨! 영수증을 출력했어요. 그리고 소포를 추적해보니 전혀 다른 지역으로 배송이 돼서 세 번 정도 배달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상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편물이 있는 우체국에 전화를 해서 원래 도착지를 알려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골 우체국이라 하루에 3시간만 오픈을 해서, 오늘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예요. 그러니 제가 내일 다시 전화해서 얘기를 해볼게요.”
와우! 역시 매니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네요. 트랙킹 번호를 알아내려고 그동안 직원들한테 몇 번이나 찾아왔는데, 매니저한테 얘기하니 일이 한 번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다니!!! 게다가 소포의 위치를 알아내서 그 우체국에 직접 전화까지 해주신다니, 폴 매니저님 만쉐이~
그리고 다음날 폴 매니저님이 전화를 주셨답니다.
“그 우체국에서는 이미 소포를 리커버리 센터로 보냈대요. 우체국 웹사이트에서 이 트랙킹 번호로 ‘분실 우편물 찾기’ 접수를 하시면 다시 수신자에게 발송하거나 아니면 본인 집으로 되돌아 올 거예요.”

두 달만에 반송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 버렸고, 일단 소포를 다시 찾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마음이었기에 이렇게 소포의 행방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그 상자에는 시댁쪽 가족 11명의 선물이 담겨 있어서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너무너무 아까운 일이었죠. 12월 27일, 제가 맨 처음 우체국에 갔을 때 그 직원이 영수증이 없이는 트랙킹 번호를 찾을 수 없으니 그냥 기다리라는 말 대신, 트랙킹 번호 찾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소포를 더 빨리 찾았을 거고, 리커버리 센터로 가기 전에 저희 시댁으로 다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그 직원의 귀차니즘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린 게 너무 괘씸하긴 했어요.
우체국 웹사이트에 들어가 ‘분실 우편물 찾기’ 접수를 하고 몇 주를 기다렸지만 제 소포는 더 이상 추적이 안 되어 행방이 묘연했고, 시간은 흘러 2월 중순이 되었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분실이 확실하구나 싶어 안타깝지만, 보험 청구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보험은 priority mail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보험이라 보험 보상액이 최고 50불밖에 안 되더라고요. 헐~!!! 제 소포는 택배비만 해도 78불이고, 가족들 11명의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까지 합치면 300불이나 되는데, 고작 50불밖에 못 받으니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더라고요. ㅠ.ㅠ
우체국에서도 우편물의 행방이 확인이 안 되니 보험 청구를 받아들이겠다며 50불 체크를 보내왔습니다. 소포를 잃어버려서 속상한 것도 속상한 거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보냈다는 사실이 제일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시어머니께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보낸 대신, 가족들 생일에 서프라이즈 선물을 보내겠다고 말씀드리고 조카들의 생일 날짜를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2주일 뒤에 저희 집으로 정체 불명의 큰 상자 하나가 배송됐어요. 발신자는 우체국 리커버리 센터!
“왔다~~~!!!!!!!”
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나의 소포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두 달만에 저에게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너무너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상자를 열었는데……,
“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선물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긴 채 두 달만에 돌아온 내 택배상자 ©스마일 엘리

선물 포장지들이 다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어요. 제가 뜯은 게 아니라, 저렇게 다 뜯겨진 상태로 상자에 담겨 있더라고요. 진짜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그냥 쓰레기 담아놓은 줄 알았을 거예요. ㅠ.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얘는 뭐지???”

내가 보낸 샵킨스 궁전 장난감 대신 웬 인형이 반송되어 돌아온 상황 ©스마일 엘리

택배 상자에는 제가 산 적도, 본 적도 없는 웬 인형이 떡~ 하니 들어 있고, 그 대신 이 인형 크기의 큰 상자에 들어 있던 샵킨스 궁전 장난감이 사라지고 없네요. 그 외에 또 분실된 물건이 있나 확인해보니 시어머니 선물로 샀던 옷도 없어졌고요.
지난 번에 보험 청구할 때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 리스트와 사진을 첨부하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구입했던 영수증과 그 사진을 첨부했거든요. 아마도 리커버리 센터에서 그 리스트를 보면서 내용물을 확인하느라 포장지를 이렇게 다 뜯어서 확인한 것 같았어요. 그래요, 내용물을 확인하려면 포장지를 뜯어야 하니 이건 뭐 이해한다 칩시다. 그런데……,
“아니, 이건 또 뭐지???”

택배 상자에 들어 있던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신분증과 지갑 ©스마일 엘리

생판 모르는 한 남자의 신분증과 다른 여자의 사원증이 담긴 지갑도 함께 왔네요? 이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분명 이것들도 분실물로 리커버리 센터로 보내졌을 텐데, 이렇게 엉뚱한 사람에게 배송이 된 걸 보면 제가 이걸 다시 우체국으로 돌려보내도 또 엉뚱한 곳으로 배송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주인들에게 보내주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어요.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들의 한숨 나오는 일처리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지만, 이번 일로 미국 우체국 시스템의 민낯을 보게 됐네요.

제가 이렇게 주절주절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미국 우체국에서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트랙킹 번호를 알 수 없을 때, 접수 날짜와 시간, 소포 발송 금액, 접수한 직원의 이름만 알면 영수증을 재출력을 할 수 있고, 트랙킹 번호도 알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예요.^^ 단, 바쁜 시간에 가면 안 되고, 우체국 문 열기 직전 좀 한가한 시간에 가셔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참,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일찍 보내시고, 소포 영수증 사진을 꼭 찍어두세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엘리네 미국 유아식>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