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있는 황금돔 사원 ©doopediat.com
이혜선 목사 하비스터스 성결교회 부목사

나를 사로잡은 말씀
약 3년 전 몸살이 나 드러눕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목회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누워 있던 저에게 별안간 떠오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 11장 12절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평소 심상히 넘겼던 그 말씀이 그날 따라 누워 있는 저를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땅
이 구절에서 연(year)으로 번역된 헬라어 ‘샤나’는 1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whole age 즉 모든 세대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다시 번역해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세상 처음부터 세상 끝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은 물론 지금의 이스라엘이 있는 가나안 땅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하나님의 눈길이 가나안 땅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나안 땅이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땅이라는 것은 너무나 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많은 구절들이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이사야 2:2-3, 시편 48:1-8, 미가 4:2, 시편 2:6)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발이 예루살렘에 서실 것이고, 그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이 이라크에?
그러나 세상 처음부터 하나님의 눈길이 머문 땅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세상 처음에는 에덴동산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눈길은 에덴동산에 있었을텐데 왜 가나안 땅에 있었다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이라크 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데 말입니다.

이런 의문을 갖고 왜 신학자들이 에덴동산의 위치를 이라크라고 추정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2장의 에덴에서 시작된 네강 때문이었습니다. 그 네 강 중 비손은 오늘날 나일강 지류 중 하나인 청나일, 기혼은 백나일이고, 힛데겔은 오늘날의 티그리스강이며, 다른 하나는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이 네 강 근처에서 가장 비옥하여 에덴동산이 있었을 법한 위치로 신학자들이 ‘추정’한 곳이 바로 이라크 지역이었습니다.

이라크, 바벨탑이 있던 땅
그러나 제 내면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라크라면 성경의 바벨탑이 세워진 지역이며 우상숭배가 가득하여 아브라함을 빼낼 수밖에 없었던 갈대 아우르 지역입니다. 그 땅의 비옥함으로 인해 인류 문명의 중심지는 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영적 역사의 중심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저는 ‘이라크에 에덴동산이 있었을 리가 없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11장 12절로 돌아가본다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알파’를 시작하신 곳은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예루살렘에!
그러나 문제는 그때까지 제가 단 한 사람에게서도, 단 한 권의 책에서도 예루살렘을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주장을 접해본 적이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저는 연구문헌과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메시야닉 주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하버드대학교의 로렌스 E. 스태거 교수의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예루살렘에 에덴동산이 있었을 것임이 학계의 강력한 새로운 주장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예루살렘에 쏠려 계시는지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이 있었을 그 곳, 아브라함 당시 예수 그리스도이신 멜기세덱을 통해 다스리신 그곳(창세 4기 14: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 있던 아브라함을 굳이 3일을 걷게 하셔서 이삭을 바치게 하신 그곳(창세기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다윗이 인구조사에 대하 속죄의 단을 쌓은 그곳(사무엘하 24:18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그곳(역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저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그 예루살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미가 4: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예루살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땅 예루살렘에 대한 마음을 품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경관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시듯 새로운 관점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룻기는 나오미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실족함이, 룻으로 대표되는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는데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책이며,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본래 멀리 떠났었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둘째 아들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첫째 아들 유대인이 시기가 나게 하는 구원계획을 보여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계획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어 한 새 사람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니나 믿음으로 영적 유산을 받은 우리 이방교회의 사명은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맏형이며 하나님의 첫 사랑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태복음 23:39) 할 때 우리 사모하는 예수님께서는 약속 그대로 당신의 신부들을 찾으러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 62: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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