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yahoo image
함종택 목사 UMC 연합감리교회 은퇴 목사 [email protected]

장독에 놓아둔 아기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두 살도 되지 않은 해방둥이 사내아이가 며칠간 몹시 앓았다. 부모는 아이를 정성껏 돌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위로 사내아이 셋이 있었지만, 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구차한 살림에 좁은 방이라 죽은 아기를 이불에 싸서 장독간에 내다놓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산에가서 묻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장독간으로 간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이불을 들추는 순간 아기가 움직이지 않은가? 아이 엄마를 불러 이불을 펼쳐보았다. 분명히 엊저녁에 숨이 끊어진 아기가 방긋이 웃고 있었다.

장독 위에서 깨어나다
그 후 그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서 나이가 들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장독 위에서 깨어난 아기가 바로 나였다.

장독 이야기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얘기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그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기는 분명히 숨이 끊어졌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생기가 돌아왔다. 만약에 부모가 숨을 거둔 아기를 부등켜안고 밤새 슬픔에 몸부림쳤다면, 혹은 아기를 밤새도록 방안에 그대로 놓아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기에게 생기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안방에서 장독으로
그렇게 본다면 아기는 장독에 버려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안방에서 장독 위로 옮겨진 것이다. 부모님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아기를 장독으로 옮겨 놓았을 테지만 나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기를 지켜주셨다고 믿는다. 생기를 되찾은 아이가 이불에 싸인 채 방긋이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는 두 살 때 이미 죽었다가 살아났다. 물론 그때의 나는 의식이 없었고, 죽음도 고통도 몰랐겠지만 생각할수록 장독에서 살아 돌아온 일이 감사와 감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장독에서 다시 깨어난 몸으로 살아온 70여년 삶을 돌아보면, 사는 동안 겪어온 크고 작은 어려움은 한이 없었다. 그러나 힘든 고비마다 나는 생각했다. 두 살로 끝났을 수도 있는 인생인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닌가? 죽음의 고비를 넘어 한번 더 기회를 받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죽을 만큼 힘들다면 진짜 죽는 순간까지 끝까지 견뎌보자!

나무토막과 장독
영국의 전도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다섯 살 때 사제관에 화재가 일어났다. 그때 주민들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가 2층 창문에 있던 웨슬리를 구해냈다. 웨슬리가 구조되자마자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구조된 아들을 보며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A brand plucked out of the burning, 스가랴 3:2)’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죄악을 제거하고 새 옷을 입혀주신 것처럼, 웨슬리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기회로 여겼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첫 기억이 개인의 생애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내 삶을 감히 웨슬리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웨슬리를 불에서 꺼내주신 하나님이 밤새 장독대에 놓여 있던 그 어린 생명을 지켜주신 손길에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 동안 ‘‘지고 싶은 욕심보다, ‘‘누려는 마음으로 ‘‘같이 더불어 사는 ‘가나다 인생‘을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날마다 내 앞에 감사함뿐
삶과 죽음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의 질병은 의술과 약으로 치료한다. 그러나 같은 병이라도 어떤 사람은 생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기적적으로 회복한다. 이처럼 생명이란 과학으로 완전히 해결하거나 해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각자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바라고, 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저마다의 믿음과 소망과 바람 속에 한 생이 흘러간다.

11월을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감사한 달은 11월만이 아니다. 장독에서 깨어나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생명. 그리고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돌아갈 생명. 전혀 두렵지 않다. 불안도 없다. 믿음과 바람을 안고 하루하루 ‘가나다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Sandrea Berg & Ahnfelt Oscar) 이 노래를 부를때마다 나는 속으로 다른 가사를 생각한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감사함뿐이네” 우리에게 허락된 생명과 수많은 가능성!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날마다 내 앞에 감사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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