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이해하려 듣지 않고 대답하려고 듣는 것이다. ©Tiny Buddah

경청의 힘

40여 년 전, 내가 아는 한 선배가 미국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의 이야기이다. 레지던트마다 담당환자가 있는데, 다른 백인들에게는 예후가 좋은 환자들이 배정된 반면, 선배에게는 유독 예후가 나쁜 환자들만 배정되었다. 선배는 이런 식의 인종차별에 분노했지만 일단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6개월 후 모든 스탭이 모여 환자들의 치료 경과를 평가하는 자리가 열렸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상태가 안 좋았던 선배의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전되었던 것이다. 동료들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미국인 과장이 책상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굿 리스닝!” 선배는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자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더 집중해서 들었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면서 환자가 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동양인 의사의 정성에 감동한 환자들은 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결국 경청의 힘이 환자들의 상태를 호전시킨 것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하며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뿐 아니라 감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이라 할지라도 가끔 드러나는 새로운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청이 필요한 이유이자 경청의 가장 큰 힘이다.

단호하게 선을 긋자

책임감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항상 친절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 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대립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거나 관계가 틀어질까봐 두려워 선을 긋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힘은 친절과 배려가 아닌, 명확하게 선을 긋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서로 못하는 게 뭔지, 하기 싫어 하는 게 뭔지 알아야 서로 편하게 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 그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계 설정은 나를 지키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것은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내 처지와 능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된다고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독일의 관계 심리 전문가인 롤프 젤리는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에서 자신이 치유한 수십만 명의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을 때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한계를 설정하자 관계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해졌고,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자 비로소 내 생각과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을 긋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대신 선을 그을 때는 부드러우면서 단호해야 한다. 아무리 불쾌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내 의사를 존중하게 만들 수 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두려움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 출처: 김해남,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