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라 내색은 안 해도 미국으로 옮기면서 마음 고생 많이 했을 것임. 영어 때문에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나에게 미안해 하고 고마워 하는게 느껴짐. 나는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 자기가 이루어 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와준 것이 고맙고 미안한데. 그래서 지금까지 시댁 일에 관한 건 웬만한 건 내가 알아서 하고, 신랑에게 문제 삼지 않았음. 신랑이 더 의식하고 미안해 할까봐.

그런데 신랑이 날 의식해서 말을 좀 쎄게 했는지 시어머니께 전화가 옴. 참고로 지금까지 내가 겪은 시어머니는 개념 있는 시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시나 가끔 자주 실패하시는 분임. 그래도 노력은 하시기에 나도 최대한 맞춰 드렸음.

방 한 칸 내어주기가 어렵냐
시어머니 입장은 시누도 자신의 딸이기에 내가 좀 야속한가 봄. 내가 힘들고 바쁜 거 알아서 엄마도 마음 아프다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결국엔 방 한 칸 내어 주기가 어렵나로 본론이 나옴. 어차피 올해는 힘드니 내년이라도 되게 하자고 하심. 정 힘들면 시어머니가 직접 애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심. 진짜 머리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돌고 돎.

성격대로 받아 치기엔 신랑을 사랑하고, 신랑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지만 그냥 참을 수도 없었음. 그래서 그냥 형님 시댁에서 형님께 이런 부탁을 한다면 어머니 뭐라고 하시겠냐고. 형님이 하루에 잠을 5시간도 못자며 동동거리고 사는데 거기다 이런 부탁을 하면 뭐라고 하시겠냐고. 어머니가 오시는 건 항상 환영했고 마음으로 최선으로 대한 거 어머니도 아실 거라 믿는다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해드리지 않았냐고. 어머니가 오셔도 운전도 못하시고 무엇을 어떻게 아이를 케어해주실 수 있느냐고. 정말 애를 미국에 보내길 원하시면 전문 홈스테이에 맡기시는 게 맞다고. 꼭 귀찮아서가 아니라 내가 제일 걱정되고 싫은 건, 남의 금쪽 같은 아이를 책임지고 맡는 거라고. 나는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고. 신랑이 전적으로 맡겠다고 한다면 난 신랑을 믿고 의사를 존중할테니 신랑한테 말씀하시라고.

난 진심 시어머닐 좋아했음. 다른 이유 다 떠나서, 나에게 선물같은 사람을 낳아주신 분이라 마음 다해 잘 해 드리고 싶었고 지금도 그럼. 그래서 시어머니랑 사이가 나빠지는걸 원치 않음. 내가 좀 힘들더라도 1년에 한번씩 보면서 좋은 시간 함께 보내고 잘해드리고 싶은 게 내 진심임. 나도 내 옆에 있는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픈데, 가끔밖에 볼 수 없는 신랑 마음은 어떨까 싶어 진심으로 사랑해드리고 싶었지만… 짝사랑이었음.

신랑한테 대화 내용 설명했고, 신랑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음. 솔직히 자기 조카라도 예쁜 거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나보다 애를 더 싫어하고 원래 성격이 원체 ‘남한테 신세 안 지고 나도 안 준다’ 스타일이라 믿고 맡겼음. 신랑이 너무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걸 넘어서 자존심이 상해 해서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분위기가 됐음.

그렇게 일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얹쳐 답답함…

사부인께서 잘 타일러 주세요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음. 정중하게 부탁하는 어투였지만 내용은 형제 없이 자라서 가족간에 도리를 모르는 나를 사부인께서 잘 타일러 달라는 내용이었음. 그리고 남편 기죽이지 말고 타향살이 하며 생고생 하는 남편 보듬어주게 하라는 당부도 있었음.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던 엄마가 신랑과 나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으시고는 나보다 더 분개하심. 우리 엄마는 꼭 내 엄마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환갑이 넘으셔도 소녀감성 유지하시며 자기일 열심히 하시고 주변에 열심히 베푸시는 분임. 항상 나에게도 너는 혼자 자라서 이기적일 수 있으니 손해보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하고 베풀어라 가르치신 분이고, 제일 든든한 후원자이자 나를 가장 날카롭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분이기도 함. 결혼할때 모두가 반대할 때도, 넌 어차피 우리 말 들을 애도 아니고 네 삶 네가 선택하는 거라며 말 없이 지지 해 주셨음. 결혼 전후 집안간 크고 작은 마찰이 있을 때도 자식들에게 상처줄 필요 없다시면서 많이 참으시고 양보하셨음.

자초지종 들으시고 화 삭히신 후 처음 꺼낸 말씀이 신랑 이름 불러주시며, 네가 지금 가장 마음 아프고 곤란한 사람인 거 잘 알고, 엄마도 그게 참 가슴 아프다. 지금까지 모든 걸 너희가 알아서 잘해 나가리라 믿고 맡겼지만, 사부인께서 나에게 직접 얘길 꺼내신 만큼 이젠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야속해 하지 말고, 어른들의 일을 부부간의 일로 만들지 말아라. 서로 집안간의 일로 힐책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지금까지 지내온 대로 두 사람 위주로 살아라 였음. 나에게도 따로 신신당부하심. 신랑이 제일 곤란하고 마음 아플 테니, 절대 탓하지 말고 이 문제로 부부싸움 하지 말라고.

사돈끼리 © MBN

남편 기죽이지 마라
엄마가 신랑에게 물었음.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남편 잘 챙기고 존중하며 사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남편 기죽이지 말라는 얘길 들어야 하냐고. 알고 보니 나 없는 시간에 시어머니와 신랑이 통화를 했나봄. 신랑이 안 그래도 살면서 내게 면목 없는 부분이 많으니 제발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해서 더 면목 없게 만들지 말라고 했나봄.

시어머닌 네가 3억이나 들고 갔는데 왜 면목이 없냐고 하셔서 세세한 계산을 하게 됐다 함. 신랑이 받은 3억은 8년 전 취업해서 혼자 독립해서 나올 때 받은 돈임. 그 때, 3억 + 신랑이 대출받아 아파트를 샀음. 결혼 자금을 미리 받은 돈이라 결혼할 땐 다른 도움 일절 없었고 불만 또한 없었음. 결혼을 결정하면서 우린 이미 평생 동반자라는 믿음으로 니돈 내돈 없이 우리 돈이란 개념을 공유했음. 미국에 오게 되면서 아파트는 전세주고, 신랑이 그동안 모은 돈 + 대출갚고 남은 전세금이 2억 5천 정도였음. 그중에 3천을 결혼할 때 예단 개념으로 시댁에 드림. 나는 예물 받은 거 없고 바라지도 않음.

나는 솔직히 결혼할 때 현금이 얼마 없었음. 계속 학비로 나가기도 했고,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401K, IRA, life insurance 등등 미래를 위한 예금을 더 많이 했음. 그래도 미국 first-time home buyer 제도 덕분에 일부 페널티 없이 해약 해서 7만불(약 7천만원)을 집값에 보탬. 그리고 신랑 차를 사주려고 했음. 신랑이 자긴 수입도 없는데 다달이 나가는 지출은 무조건 최소화시켜야 한다며 차 없이 살거나 진짜 굴러가기만 하는 몇천불짜리 차 사겠다고 우김. 그러는 와중에 아빠가 신랑이 차를 워낙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런 상황일수록 기 살려줘야 된다고 해서 아빠가 6만불 짜리 차를 사주심. 그리고 내 짐 덜어주시겠다고 차 보험료도 내주심.

그리고 신랑은 내 바램으로 2년 가량 취직하지 않았음. 신랑은 한국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주 6일 평균 14시간 근무해왔음. 주재원 생활은 조금 나았지만 업무 스트레스와 상사 스트레스는 내 상상을 초월했고 결혼할 즈음 신랑은 심신이 지쳐 있는 상황이었음. 실력이 있어도 언어장벽이 있으니 실력보다 못한 자리 가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신랑이 좀 쉬어야 했음.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만큼 온갖 스트레스성 질환은 다 가지고 있었음. 신랑은 가장이 쉰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몸쓰는 일이라도 하겠다고(실제로 나 모르게 페인트 알바도 다녔음) 했지만, 간곡한 설득 끝에 신랑은 2년 동안 영어공부와 자기 분야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한 끝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금 좋은 직장 다니고 있음. 그간 들었던 신랑 학비만 2만불 이 넘음.

그럼 받은 돈 도로 토해내라
그때 신랑은 자기 직업은 전업주부라며 정말 전문적으로 집안일을 해줬고, 나도 신랑을 최선을 다해 챙겼음. 스트레스성으로 소화기관이 약해져서 식이요법 신경 썼고, 영양균형 챙겨서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저녁 챙겼고, 도시락도 싸줬음. 신랑이 시어머니에게 엄마보다 내가 더 잘 챙겨주고,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대접받으며 산다고 했다 함.

하여튼 이런 얘길 신랑이 시어머니께 했고, 아마도 앞으로 평생 내가 자신보다 연봉이 더 높을 테니 돈 얘긴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함. 애시당초 3억도 모든 형제에게 공평하게 배당된 거니 이 집에 대한 소유권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했다 함. 신랑이 버릇없이, 제발 기본적인 상식은 지키면서 살자고 말했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시어머니가 받은 돈 내놓고 그돈으로 미국에 직접 집 사시겠다는 말까지 나옴.

내가 그냥 그 돈 돌려드리고 마음 편히 살자니까 신랑은 그럴 마음 없다 함. 자긴 받을 걸 받았고, 자식 도리 못하고 산 것 없고, 무리한 얘길 하는 건 부모님이니 토해 놓을 필요 전혀 없다고 함. 그리고 자기는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절대 시민권 따는 일은 없을 거라고(영주권자로 살면 부분부분 불편한 일들이 있긴 함). 시민권 따서 형제초청, 부모 초청 해달라는 얘긴 싹도 못 나오게 할 거라며 진짜 나라 잃은 사람처럼 상심해 있음.

이건 manipulation이다!
엄마에게 시어머니와의 일은 어떻게 됐냐고 여쭤봐도 신경 끄라고만 하심.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다 늙은 자식 일에 끼어드는 게 우습고 이해되지 않지만 어쩌겠냐고. 너는 신랑이나 잘 챙기라고 하심. 그리고 아빠가 알면 일 더 커진다고, 나중에 타이밍 봐서 엄마가 말씀하실 테니 당분간 말하지 말라 하심.

정말 별거 아니라고 열받는 헤프닝 정도로 치부했던 일이 나와 내 사랑,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이 되어버렸음. 만약 나 하나 양보했다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엄마에게 여쭈어 보니, 그건 양보의 차원이 아니고 말하자면 일종의 시어머니의 manipulation(조작, 조종)이라고. 나는 그런 상등신을 낳은 적이 없다고 하시는 거 보니… 양보하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음.

신랑은 시댁에서 연락 와도 모조리 받지 말라고, 자기선에서 해결하겠다고 함. 나도 그 뜻을 따를 생각임. 그런데 힘든 내색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신랑 보기가 더 괴로움. 가만히 등 쓸어주니 “내 맘 알지?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미안하다…”라고 하는 신랑이 너무 안쓰러움.
결혼하니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많네요.
출처: 네이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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