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일하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문득 “허무하다”고 했다. 어떤 목표를 향해 수년간 내달린 끝에 만나게 되는 감정은 일시적 성취감과 의외의 허무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가정을 돌보며 살아온 삶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복병이 바로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회의감과 허무감이다.
게리 콜린스는 남을 돕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번아웃 증상에 대해 경고한다. 탈진, 혹은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 이 상태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탈진이 오면 실패감이나 허무감이 감정을 지배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긍정적인 마음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잘 해오던 일에도 쉽게 압도되고 적절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무기력하고 쉽게 피곤하며 쉽게 좌절하고 짜증낸다. 판에 박히고 활기를 잃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삶이 지루하다. 때로는 만사에 냉소적이고 냉담한 상태가 된다. 상대방이 힘든 이야기를 해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겪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탈진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탈진하기 쉬운 사람들
정신분석가 허버트 프로이덴버거는 <목회와 신학(2000)>에서 처음 ‘탈진’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뉴욕의 이스트빌리지에 마약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에게 탈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고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탈진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리더들, 영적으로 귀감이 되는 사람들, 목적의식이 투철한 실천가들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극도로 지쳐 있었고 자신의 일에 환멸을 느끼며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수년간의 관찰을 통해 탈진할 가능성이 높은 5가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첫째 유형은 ‘헌신하는 일꾼’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많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나치게 깊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부담감에 시달리는데, 하나는 자신이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필요를 자신이 모두 채워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둘째 유형은 ‘사회생활을 포기한 일꾼’이다. 쉽게 말해 일 중독이다. 그의 인생에서 일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고, 그 외의 모든 활동, 인간관계, 사회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셋째 유형은 ‘독불장군형 일꾼’이다. 그는 자기만큼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모든 일을 자신이 항상 통제하려고 한다. 일은 잘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일을 나누고 맡기는 데는 서툴러서 주변 사람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킨다.
넷째 유형은 ‘실제로 많은 일을 맡고 있는 지도자나 행정가’이다. 이들에게는 일을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비롯해 다양한 역량들이 요구된다. 그래서 수시로 여러 가지 모자를 바꿔 써야 한다. 복장, 말투, 제스처, 사고방식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가지 역할을 오가며 책임을 감당한다.
다섯째 유형은 ‘동정적 전문가’ (sympathetic professional)이다. 목회자, 상담가, 교사, 간호사 등 다른 이들을 돕고자 헌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돕는 사람들의 상태에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작 자신의 필요를 돌보는 것은 자주 잊어버린다. 이 다섯 번째 유형은 탈진의 고위험군이다.
탈진의 위험성 인식하기
일반적으로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 상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계속 더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고 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을 채찍질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탈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그 사람을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어내린다.
탈진 혹은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그 위험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 더욱 더 헌신해야 한다는 열정이 때로는 건강하지 못한 강박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도 탈진이 올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침체기를 겪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좌절과 실패감에 사로잡혔다. 예를 들어, 엘리야(왕상 19장)는 혼자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이세벨, 그리고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위대한 선지자였다. 하지만 그런 성취들로 인해 이세벨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심신이 탈진하여 차라리 죽기를 간구하는 상황에 이른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크고 작은 귀한 일들을 열심히 해 나갈 때 이와 함께 찾아오는 탈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회복 방법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너무 지치기 전에 속도를 늦추고 한걸음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진정한 안식이 나를 탈진의 늪에서 건짐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