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레스토랑에 갔을 때 농담처럼 주위에 있는 커플들이 결혼한 사이인지, 연애하는 사이인지 맞춰 보자고 한 적이 있다. 서로를 열심히 바라보며 대화에 열중하는 커플은 연애이고, 밥 먹기에 바쁜 커플은 부부라는게 결론이었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을 했는데 어느 새 서로가 너무 익숙해지면서, 마치 집안 한 구석에 놓아 둔 오래된 가구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없으면 허전한데, 평소에는 눈이 안 가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마음 속에 가정에 대한 막연한 그림과 기대를 품고 시작한다. 일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쉼과 안식이 있는 곳, 집에 오면 맛있는 된장찌개가 준비되어 있는 곳,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한 곳 등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마음이 지칠 때 따뜻한 위로 한 마디를 건네 줄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픈 바람을 안고 결혼과 가정이라는 시스템 안으로 걸어 들어 온다.

가정은 농물농장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거나 혹은 무시하고 싶어 하는 가정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가정은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계속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모습, 부족한 모습, 더러운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곳이 가정인 것이다. 사랑받기를 가장 열망하는 곳도 가정이고, 그래서 가장 큰 불만이 쌓여가는 곳도 가정이다. 그래서 가정은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이 테스트 받는 시험장이 된다.
어느 목사님이 가정을 ‘동물농장’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온갖 짐승이 뛰쳐 나오는 동물농장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결혼하라고 볶으셨던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힘든 일을 왜 그렇게 못 시켜서 안달이셨을까? 아직도 간간히 튀어나오는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자신의 못난 부분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누가 더 많이 상처를 주나 내기하듯 달려들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 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지켜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모나고 뾰족한 부분이 깎여 나가며 성숙한 사랑을 배우는 장 또한 가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을 넘어서 한 단계 높고 크고 깊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사랑의 실습장이기 때문이다.

“나 좀 조용해 살게 해 줘…”
상담을 오시는 많은 분들이 제발 조용히 좀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자 마자 듣게 되는 잔소리, 신경질, 아이들 싸우는 소리에 지치고 짜증난다는 것이다. 자기 삶에 더 이상의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무능한 남편, 술 먹고 욕하는 남편, 아빠 노릇이 뭔지도 모르는 남편 때문에 속이 터지고,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아내, 입만 열면 비교하고 잔소리하는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다. 모든 싸움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지칠 만도 하고 화날 만도 하다. 그리고 그 배우자만 좀 달라지면 삶이 훨씬 행복해질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한 배우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갈등 없는 가정 또한 이 세상에는 없다. 조용히 삐져서 말을 안 하고 싸우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든 모든 가정에는 갈등과 충돌이 있다. 온 식구가 다 같이 무덤에 누워 있지 않는 한, 완벽하게 평화로운 가정은 허상이다.

John Gottman박사는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의 지표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랜 세월 지속되는 결혼의 비결은 갈등을 풀어가는 능력에 달려 있다.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고 존중함으로써 우리는 성숙한 배우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Gottman 박사는 부부가 갈등을 풀어가는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1. 인정형 부부 (Validating Marriage): 문제를 만났을 때 서로가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타협하며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부부
2. 충돌 도피형 부부 (Conflict-avoiding marriage): 서로의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직면하지 않는 부부 (They agree to disagree).
3. 휘발형 부부 (Volatile marriage): 갈등이 자주 제기되고 격한 논쟁으로 치닫는 부부
셋 중에 어느 유형이 가장 좋은 부부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첫번째? Gottman박사는 어느 유형이 결혼을 오래 유지하는지 조사하면서 의외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몇 십년을 함께 늙어가는 오래된 부부들 중에는 이 세 가지 유형이 골고루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부부들 중에는 어느 한 유형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았다. 문제를 대화로 잘 푸는 부부든, 매일 박 터지게 싸우는 부부든, 아니면 서로 데면데면한 부부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위안이 되지 않는가?

건강한 가정의 척도 5: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이냐가 아니다. 어떤 유형에 속하든 상관 없이, 안정적인 결혼관계에서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부정적인 상호작용보다 5배 이상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Positive interaction: Negative interaction = 5:1). 쉽게 말해, 결혼 생활에서 좋을 때가 안 좋을 때보다 5배쯤 많고, 싸울 때가 한번이면 편안할 때가 다섯번이라는 말이다. 살다 보면 잔소리도 필요하고, 싫다는 말도 해야 하고, 도움이 되는 비판도 해야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 한 마디를 뱉을 때 다섯 마디의 좋은 말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 그런 관계가 오래 가고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 우리 가정을 돌아볼 때 혹시 “밥 먹자”, “자자”에서 대화가 끝나는가? 뭔가 거슬리거나 화 나는 일이 있을 때만 한 마디씩 말을 하는가? 아이들에게 “숙제했어? 빨리 자”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는가? 잘할 때는 당연하려니 하고 실수할 때는 한번씩 소리지르고 째려보는가? 나의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잠시 돌아보자. 칭찬과 감사보다 비난이 5배 많은 것은 아닌지, 사랑의 표현보다 잔소리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지 가만히 비율을 한번 따져 보자. 그 비율이 바로 내 가정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심연희 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LMFT)로서 NC 4개 카운티의 정신과 및 상담기관에서 감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RTP지구촌교회(이철 목사 시무, Durham NC)를 섬기며, 동시에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로 상담 및 교육을 통하여 건강한 교회, 가정과 개인을 세워가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KOSTA 등 여러 모임과 교회에서 세미나와 상담으로 섬기며,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겸임교수로 상담학과 심리학을 강의하고, 침례신문 등에 상담/가정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칼럼에 대한 회신은 [email protected] 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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