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이면, 불쑥 찾아와
나를 울려 놓는 사내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월계관을 쓰고서도, 시상대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던
그 사내

태극기가 아니고
핏덩이 같은 일장기가
국기게양대에서 펄럭이던
지워지지 않는 그 장면

2시간 29분 19초 동안
핏덩이 하나 가슴에 안고
42.195km를 달렸을
그 사내

2002년 11월 15일 우리 곁을 떠난
손기정이 아니라
기테이 손이라고 불렸던
그 사내

그 사내가 그예 나를 또 울리는데
독도를 바라보며, 소녀상도
나와 함께 울고 있겠지요

 

▶ 작가의 말
8월 15일은 광복절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그날의 만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고, 태극기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복절이 되면 저는 한 사내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일제시대 적국 일본의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 달려야 했던 한 사내. 금메달을 따고 월계관을 썼지만, 그 기쁨보다 나라 잃은 슬픔이 더 컸을 사내 손기정!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만세도 하지 않고, 환호성도 지르지 않은 채 쓸쓸히 탈의실로 퇴장했습니다. 시상대에 선 손기정은 경기장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오자 월계수 화분을 들어 올려 입고 있던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만세도 환호성도 없이 쓸쓸히 탈의실로 퇴장하는 손기정 선수 © 하종강의 노동과 꿈

당시 우리나라 신문사들은 손기정 선수의 가슴팍에 있던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를 내 보냈습니다.
슬픈 승리!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지 말아야겠지요. 소녀상도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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