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진정한 친구가 있는 것이 노년생활의 승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어디 노년뿐이겠는가? 우리의 경험에 더해 우리의 자녀들을 키우면서도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좋은 친구든 나쁜 친구든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겸손하며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친구라면 따라 다니면서라도 친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은 누구나 친구가 되기를 바랄 만한 분이다. 유명한 솔로몬의 연애시 아가서 2장 10절로 13절에서는 그 이유 두 가지를 묘사한다.
1. 초청의 환경: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것은 선택 받은 신부에게 주시는 말씀이겠으나 따지고 보면 모든 인류에게 이런 초청을 하신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초청이다. 이 초청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지금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니 이 초청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초청의 환경은 기가 막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일찍 익은 무화과 열매가 맺히고 포도꽃이 향기를 토한다. 건기와 우기로 나뉜 이스라엘의 기후가 이제 긴 우기(10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지나고 이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동산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좋은 것을 가진 분이신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성지순례를 하신 분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금방 이해하실 것이다. 좋으신 친구 예수님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구나 오기만 하면 그렇게 기가 막힌 모든 것을 주신다. 그리고 마11: 28 말씀을 떠올려 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 초청의 핵심: 일어나라
우선 일어나라고 하신다. 이것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지만, 우리 삶에 적용하면 예수님의 이 놀라운 초청을 실감케 된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에서 일어나라, 슬픔과 고통에서 일어나라, 죄악과 죽음에서 일어나라고 하신다. 감히 누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 오직 인생의 가장 처참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시고 죽음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이 아니시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며 싫어했듯이 예수님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 아래 떨어진 사람만 찾아 다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 가난한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그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시며 천국이 너희에게서 멀지 않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번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 장례식과 만나게 되셨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모든 괴로움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왔던 그녀에게 무어라 위로할 수 있을까? 나인성에서 나가는 행렬은 죽음과 절망의 행렬이요, 반대로 그 성으로 들어오시던 예수님 일행은 새로운 삶과 희망의 행렬이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시자 ‘울지 말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죽은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죽음에서 살아났다. 이 얼마나 놀라운 친구이신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죄악과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사죄와 생명을 주시는 분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기적과 능력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모진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두려워 떨기 바빴고, 확신도 기대고 없었고, 슬픔과 두려움뿐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슬픔이 기쁨이 되게,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평안이 되게 하셨다. 또한 절망이 소망이 되게 하셨다. 이 예수님만이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시는 진정한 친구이시고 참된 능력자요 실천자이시다. 예수님은 말씀과 약속을 지키시는 친구이시다. 함께 가자는 말씀은 영원한 동거, 동행, 동역을 보장하는 말씀이다. 이 약속을 붙잡고 진정한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생애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영원한 친구
어느 유수한 교회의 기관지에 ‘재판장과 사형수’라는 글이 올라왔다. 11세 소녀를 납치, 성폭행, 살인한 범죄자에게 당연히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데, 교회 집사였던 판사님은 괴로움 중에 할 수 없이 법에 따라 사형을 언도하고 그 사형수를 잊지 않고 3년 동안 신앙서적을 보내고 편지를 써 보내며 예수님을 친구로 영접하도록 권면하였다.
그런데 교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던 그 사형수에게 쏟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가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완전히 거듭나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열심히 전도하여 예수님을 친구로 영접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절망에서, 좌절에서, 실패에서, 두려움과 슬픔에서, 죄악과 죽음에서, 박차고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영원한 친구의 초청을 기쁘게, 그리고 신중하게 받아들이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천국에)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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