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추모행사를 주관해온 그린빌 한인연합감리교회 신규석 목사 ©제롬
제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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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가운 얼굴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그린빌의 12월 어느 날 밤. 필자의 직업상 일을 늦게 마치고 9시가 넘은 시각에 전화를 드렸지만 그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반가이 나를 맞아준다. 오늘 만나러 간 사람은 그린빌 한인연합감리교회 신규석 목사이다.
할 일이 많다며 이 시간까지 교회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방한용 패딩조끼와 무릎나온 청바지 차림이다. 목사라기보다는 교회를 돌보는 집사(steward) 같은 모습이다. 하얀 머그잔에 따뜻한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그가 미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얼떨결에 목사가 된 같아요. 대학원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 종교인의 의식과 참여 등등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를 공부했는데, 제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06년에 켄사스 시티에 있는 세인트 폴 신학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죠.”

하나님의 축복을 따라
그런데 켄사스 시티에서 이곳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린빌까지 그를 이끈 인연은 무엇이었을까?
“원래는 미국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어요, 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것도 하난님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F1 비자가 참 복잡한 부분이 많아요.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비자문제로 플로리다에 있는 미국 대형교회 한인 담당 목사로 부임했고, 2년여 후에 감리교단의 의뢰로 이곳 그린빌로 오게 됐어요. 부임 후보지가 두곳이 있었는데 그린빌에서 먼저 연락이 온 거죠.”

그 복잡한 비자문제를 겪으며 어려움은 없었을까?
“교회 부임을 기다리는 동안 3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 둘째를 임신중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병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더라고요. 참, 무어라 할 말이 없었죠……. 기도로 시간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 아이도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멀쩡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를 보니 그 동안 계속 걱정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지, 그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할 뿐이다.

청바지 입은 목사님
그는 동네 형 같은 후덕한 외모와 항상 자신을 낮추는 몸가짐, 그리고 청바지에 정장자켓를 즐겨 입는 캐주얼한 복장 때문에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목사님’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목사로서 그는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을까?
“예수님의 삶은 낮은 곳으로 향하셨으니 그분을 따르는 목회자들 역시 그렇게 살아야죠. 가진 사람이나 못가진 사람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가 그분의 자식들입니다. 목사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 위에 올라서서도 안 되고요. 저는 목사라는 직업군을 이렇게 정의해요. ‘돈을 받고 사랑해주는 직업’. 어찌됐든 교회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는 직업이잖아요. 일종의 프로페셔널이죠. 그러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감싸주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기도해야 하는 책무도 따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 속의 종교인
더 많이 위로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 그는 그린빌에서 세월호 2주기부터 올해 5주기까지 매년 추모행사를 주관해 왔다. 그는 이 일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을까?
“세월호 사고일이 아마 부활절 하루 전이었을 거예요. 저를 비롯한 모든 목회자들이 부활절예배 설교를 준비했다가 그 사고가 나서 준비한 설교 내용이 전부 바뀌었죠……. 당시엔 가능하면 많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도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1년이 지나서는 상식밖의 결과가 나왔고, 시간이 갈수록 유가족들이 억울하게 매도되는 상황이 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서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런데 마침 주변에 저와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계셨고, 그런 분들이 한 분 두 분 모여서 기적처럼 그린빌에서도 세월호 추모행사를 하게 됐던 겁니다.”

종교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한국에서 유명한 전OO 목사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은 그냥 저급한 개그맨이에요. 정당 경력도 있으니 사실은 정치인이죠. 힘과 권력을 추종하는 수구일 뿐이에요. 물론 다른 종교인들도 정치 참여를 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문익환 목사님이나 함세웅 신부님 같은 분들이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으셨어요. 목회자도 공공의 복지와 이익,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정치에 쓴소리를 해야지요. 하지만 사익추구는 아니죠.”

영웅을 기다리지 말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2020년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지금 사회의 모든 아픔의 원인은 무정함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어요. 교민들 수도 많지 않은 이곳 그린빌에서 서로 좀 더 관심을 갖고 함께 어울렸으면 해요. 연봉으로 사람들 레벨을 나누지 말고, 성적 보고 친구들 가려 사귀라고 하지 말고, 서로 격의없이 함께 어울릴 때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도 더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올해 저의 바람이고요, 영웅을 바라고 기다리기보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와 긴 이야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니 깜깜한 밤, 내리는 비 속에 교회 밖 풍경이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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