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리본은 순수의 상징이자 불복종에 대한 처벌의 상징이었다. ©Amazon.com
박성윤
캐롤라이나 열린방송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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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 (The White Ribbon, 2009)
감독: 미하엘 하네케
주연: 크리스티안 프리에델, 에른스트 야코비

억압된 인간의 원초적 감정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부터 1914년까지, 한 노인이 자신이 교사로 있었던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의문의 사고와 사건들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화면은 흑백이며,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노인의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이는 관객이 몰입해 영화를 수용하기보다는 영화와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의 장치이다.
인간이 억압되고 통제당할 때 나오는 원초적인 분노와 잔인한 폭력성을 깊게 들여다본 영화 <하얀 리본>은 그동안 <피아니스트>, <퍼니 게임>, <아무르> 등을 연출한 오스트리아의 거장 감독 미하엘 하네케의 2009년 작품으로, 제62회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의문의 사건들
“이 이야기는 소문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아직도 확실한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노인의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 그런데 마을에 한 명뿐인 의사가 누군가 일부러 매어둔 철사줄에 걸려 낙마하여 쇄골이 부러진다. 이어 농부의 아내가 낡은 헛간에서 추락사하고, 지주의 아들이 심하게 구타를 당하며,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일어나고, 농부가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는가 하면, 급기야 장애아가 나무에 묶인 채 눈이 도려내진 채 발견된다. 경찰이 범인에 대한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하자, 마을 사람들은 점점 불안과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중세 봉건주의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엄격한 기독교 윤리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고, 토지를 독점한 한 명의 지주에 의해 나머지 소작인들이 경제적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감독은 각 계급을 상징하는 가정의 내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이 마을의 진정한 광기와 악의 근원이 무엇인지 관찰하게 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목사는 구약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매우 권위적인 인물이다. 저녁식사에 늦었다는 이유로 자신과 아이들을 굶기고 회초리를 든다. 또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수음을 악의 근원으로 간주하며 큰 수치심을 주면서 손을 침대에 묶어 놓는다.
목사는 아이들이 무언가 잘못을 할 때마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 리본’을 팔에 묶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게 한다. 그러나 이 리본의 본질은 목사이자 아버지인 자신의 권위에 불순종한 아이들에 대한 처벌의 수단이었다.

사건의 전말
그러면 이 모든 사건의 범인은 누구이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낙마 사고로 부상을 입은 의사는 얼마 전 아내를 잃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병원에서 산파로 일하는 과부와 내연관계였다. 그는 과부를 모욕하고 잔인한 말로 학대했으며 성적 착취를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도 성추행을 했다.
지주의 소작인이었던 농부의 가정은 실로 비참했다. 얼마 전 농부의 아내는 헛간에서 썩은 판자를 밟고 추락해 사망했다. 농부의 아들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간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다.
지주의 수확물을 놓고 잔치를 벌이던 날, 아들은 양배추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그 집에서 유일하게 일자리를 가지고 있던 딸이 해고되고, 농부는 결국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다.
얼마 후 과부의 장애아 아들이 두 눈이 파인 채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발견된다. 그곳에서 범인이 쓴 듯한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성경 출애굽기를 인용하여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인즉 3, 4대에 걸쳐 이 아이가 죄를 갚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범인은 죄 짓는 인간을 향한 신의 분노를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죄의식 속에 갇혀 살기를 강요하는 신에게 분노하는 것이었을까.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늘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아이들, 그리고 지나치게 조용하고 예의 바르며 침묵하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교사는 뭔가를 느낀다.
이 영화의 부제는 ‘독일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시작된 1913년부터 20년이 지난 후 이 아이들은 나치즘과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른들로 성장한다. 아이들의 팔에 묶여 있던 하얀 리본은, 20년 후 순수혈통을 부르짖던 나치의 팔에 둘러진 완장과 오버랩된다.
모든 억압은 정서적 불안을 야기시켜 권위에 복종하고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든다. 또한 자신의 진짜 감정과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여 자기 내면의 도덕과 윤리의식마저 마비시킨다. 결국 자아도 없고 생각도 없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른들의 권위주의와 위선, 종교적 금욕주의, 억압과 학대를 무의식 중에 학습한 아이들이 자기 혐오와 파괴, 그리고 권력의 모방을 통해 집단적 폭력성과 광기를 재생산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네케 감독 영화의 공통 키워드는 ‘폭력과 인간’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내면세계와 행동의 결과를 그야말로 롱테이크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억압과 폭력에 대한 관객의 사유를 유도한다.
불완전한 프레임과 롱테이크, 문 뒤에서 들리는 매 맞는 소리, 완벽하게 아름다운 흑백의 대조와 질식할 듯 순수한 설원의 풍경, 화자인 노인의 불안한 나레이션과 배경음악조차 없는 2시간 30분 동안의 불편함.
사회적 억압과 관념의 허상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며 그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살아온 관객들이라면 불편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영화를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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