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가 되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멀리 보고 살자. ©yebon.com

이제 나는 원시인

어느 날부턴가
신문에 까만 벌레들이 가물가물 기어간다
발밑이 뿌옇다

작은 것, 쓸데없는 것, 못된 것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것들
다 보고 사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나요
노안老眼이십니다
이제부턴 멀리 보고 사십시오

드디어, 내가 원시인이 되었구나, 그래
코앞의 일, 눈앞의 푼돈, 발 밑 길바닥만 보지 말고
저 멀리 아마존의 밀림, 북극의 빙하, 아프리카의 퀭한 눈을 보아야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아야지
저 멀리 하늘나라까지도

▶ 작가의 말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언어유희를 한 시입니다. 근시가 아닌 원시안(遠視眼)을 가진 사람을, 원시 시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원시인(原始人)으로 착각하도록 제목을 붙였습니다.
시는 원시안, 즉 노안이 온 시점에서 출발합니다. 어느 날부턴가 신문의 작은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글자들이 기어가는 까만 벌레처럼 보이고 발밑이 뿌옇게 보입니다.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말합니다. 노안이라고, 원시가 된 거라고. 그러면서 그동안 작은 것, 쓸데없는 것, 못된 것,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런 것들 보지 말고 멀리 보고 살라고 당부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코앞의 일, 눈앞의 작은 돈, 발 밑 길바닥만 보지 말고, 좀 더 넓고 큰 시야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자고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의 사막화를 불러오는 아마존의 밀림 훼손 문제라든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빙하가 녹는 환경문제 같은 것도 내다보고, 아프리카의 식량난과 기아문제 등에도 관심을 가지자고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의 현실 문제를 넘어서서 하늘나라 먼 사후세계의 일까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내다보며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노안을 맞이하면서 삶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안목과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모습이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지요?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