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혼자 품고 읽어 온 갈대 ©Posterstore

갈대의 낭독

속이 빈 나는
하지 못한 말들로
그 속을 채웁니다

가끔 속에서는
물소리도 나고
바람소리도 나고
새소리와 짝을 짓지 못한
매미소리도 흘렀습니다

겨울이 오고서야
흰 눈이 오고서야
시끄러웠던 제 속은
읽기를 멈추었습니다

이의희 시인, 2012년 <문학의 봄>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의 봄 특선 15인 시집『혼의 빈터』

▶ 시 해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시인은 갈대에게서 말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갈대의 빈 속에는 그동안 갈대가 살아오면서 겪은 온갖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들어 있고, 새소리와 짝을 짓지 못한 매미소리도 들어 있습니다.
갈대의 소리는 귀만으로는 듣지 못합니다. 눈으로 읽어도 듣지 못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갈대와 동화되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슴속에 사연을 쌓아 둔 채 말 못하는 여인의 삶까지 이해해야만 들을 수 있습니다.
갈대는 바람 앞에 누워 길을 내주고 곧바로 일어섭니다. 갈대는 반복적으로 굽혀 잠시 길을 내주며 바람이 지나가게 할 뿐, 끝내 굴복하지는 않습니다. 풀어내지 못하고 쌓인 사연은 끝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들리지 않으나 갈대는 끊임없이 자신의 사연을 중얼중얼 계속 읽고 또 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스치며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끓다가 겨울이 오고 흰 눈이 내리자 비로소 그때서야 소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고 읽기를 멈추었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