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100%의 완벽을 추구하는 대신 70%의 완벽을 지향하면 첫 걸음을 내딛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T Times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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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완벽주의
지금까지 3회에 걸쳐서 다루었던 경계선적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특징 중 하나는 극단적인 완벽주의(perfectionism)이다. 완벽주의는 성격장애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의 기저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매커니즘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완벽함을 추구하고 완전함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그로 인해 고민하고 속상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에서 보자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경향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더 발전하고, 일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완벽주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해서 자신의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수준이라면 완벽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주의깊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완벽한 B씨
B씨가 상담소를 찾은 것은 얼마 전 간신히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다시 해고된 직후였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 나가면서 간단한 일부터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상사가 주는 서류들을 복사하는 것을 포함해 잔심부름을 하는 것도 주어진 업무의 일부였다. 그런데 서류를 복사할 때, 서류에 조금이라도 구겨진 부분이 있으면 신경에 거슬렸다. 구겨진 부분을 한장씩 일일이 문질러 펴서 복사하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러자 이런 간단한 일조차 빨리 못한다며 결국 직장에서 쫒겨나게 되었다.
다른 직장을 구하는 동안 B씨는 미래를 위해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산더미 같은 숙제를 모두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이상하다며 수군거리는 말이 다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점 바깥 출입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쨌든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인터뷰를 가야 했다. 그런데 인터뷰 날에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프다든지,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때문에 인터뷰에 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인터뷰에서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B씨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압도했다.

원인은 하나
B씨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경험하는 문제들과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 등이 각각 별개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B씨의 비효율적인 업무 수행 능력이나 불안감의 문제는 하나의 뿌리에서 기인한다. 그가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일을 아주 잘 해내고 싶은 그의 완벽주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종이는 완벽하게 펴져 있어야 하고, 숙제는 모두 훌륭하게 해내야 했다. 인터뷰의 질문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끄럽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해 주기를 바랐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결과는 모두 실패였고,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은 결국 실패자, 낙오자일 뿐이었다.

완벽의 족쇄
이런 증상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일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완벽주의라는 틀에 갇혀 실패감과 자괴감을 맛본다. 완벽주의가 자신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기보다는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족쇄가 된다.
완벽주의의 틀에 젖어 있을 때는 자기 자신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의 틀에 비춰볼 때 다른 사람의 모자란 부분도 점점 커 보이기 마련이다. B씨 역시 가는 직장마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일을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일을 대충대충하는 주변 사람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수다를 떠는 다른 직원들도 꼴보기 싫었다. 동료들이 일은 안 하고 사교나 정치를 통해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B씨의 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가 낙오자였다.
이처럼 완벽해지려는 몸부림은 우리를 더 큰 실패감과 자괴감으로 몰아넣는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롬 3:10). 바울도 “우리는 나으냐”라는 질문에 “결코 아니라”고 모두가 죄 아래 있음을 고백한다(롬 3:9).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에 못 미치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완벽한 70%
상담 후 B씨에게 ‘완벽하지 않기 연습’을 과제로 주었다. 해야 하는 일의 70%만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70%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시작이 쉬워졌고, 일단 시작하니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70%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더하고 고백했다.
완벽함이 목표가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만큼 해 나갈 때,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완전함이 기대치가 아닐 때, 다른 사람이 일을 웬만큼만 해내도 대견스럽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보며 “이 정도면 잘했다”고 말해주며 기분 좋게 격려하고 함께 더 많은 일을 해 나갈 힘을 얻는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99%의 일을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1%의 순종일 수도 있다. 100%를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첫 걸음을 내딛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내가 완벽하게 다 하려는 생각의 틀을 바꾸면 비로소 다른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완벽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