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분노가 정당하더라도 적절한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 ©123rf.com
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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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너를 사랑해서…
가끔씩 부모가 자식을 때려 숨지게 하고 몇 달 동안 방치해 미이라 상태로 발견되거나, 가정에서 친족을 살해하는 끔찍한 뉴스들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과연 무엇이 부모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을 때리고 굶기고 죽이는 지경까지 몰고 갔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부모의 패턴을 똑같이 반복하며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주위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얼마 전에 본 어느 인터뷰에서 한 남자가 이런 고백을 했다.
“저는 상대방을 때리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를 심하게 때리고 온갖 욕을 쏟아붓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이게 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저에게는 사랑과 극심한 매가 하나의 세트처럼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랑의 표현은 폭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처럼 말했습니다. 이게 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엄마의 등짝 스매싱
미국에서는 아동학대(Child Abuse)를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크게 △ 정신적 혹은 언어 폭력(Emotional abuse or Verbal abuse), △ 육체적 학대(Physical Abuse), △ 성적학대(Sexual Abuse), △ 방치(Neglect) 등으로 나누어진다.
아이들에게 채벌을 해서라도 강하고 반듯하게 키워야 한다는 문화적, 경험적 분위기가 있는 한인 가정의 부모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 아동학대의 범주를 넘나들게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무심코 얘기한 일 때문에 어느 날 문앞에서 CPS(Child Protective Service) 직원을 맞이하게 되고, 이런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속수무책이다.
“너 때문에 엄마가 혈압 올라 죽겠다”라고 한 말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아이들을 빼앗기기도 하고, 아이가 잘못해서 등짝을 얻어맞고 저녁밥도 못 먹었다는 아이의 말에 신고가 들어가기도 한다.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사례들이 종종 등장하는 한인교회에서는 쉬쉬하고 침묵할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적절한 가이드를 주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교회나 교회의 교사들도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반드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 의무는 자주 잊혀진다.
상담을 꺼리는 한인들이 어쩌다 한번씩 상담소를 찾는 경우는, 바로 아동학대로 인한 법원 명령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억지로 상담소를 찾아오는 경우다.

부모들의 어려움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들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죽이는 참담한 현실로 치닫지 않도록, 이웃으로서 공동체로서 그 깨진 부분을 어떻게 막아 나갈 수 있을까?
사실 자녀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을 향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릴 때는 부모들이 심각한 육체적 피로감에 시달린다. 밤에 수시로 깨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늘 수면부족 상태이다. 그래서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반쯤 정신이 없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뒤따라 다니면서 잡아줘야 하고, 아이가 앞뒤 없이 뛰기 시작하면 내처 달려가 아이를 붙들어야 한다.
아이가 자라 이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면 자녀양육이 조금 쉬워지는 듯하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십대가 되고, 부모들은 이제 정신적인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고, 부모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세상, 위험한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교육제도에도 무지한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으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자기 새끼를 죽이는 짐승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부모들은 아동학대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부모라면 우리 중 아무도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실수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을 것이다. 혹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두려워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방치(neglect)라는 이름의 또다른 학대가 된다.

정당한 분노
자녀에게 화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 부모가 상처를 받는 일도 자주 있다. 만약 부모로서 자녀에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고 목소리를 높인 일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잘못을 하면 혼나야 한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죄가 너무 깊어 하나님이 차마 볼 수 없는 상태였고,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값을 치루지 않으셨다면 우리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불가능했다. 또한 옳지 않은 일에 대한 분노는 정당한 것이며, 이 분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의 잘못에 대해 화를 내고, 적절한 처벌을 하는 것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학대가 되는 분노
그런데 부모가 화를 표현하는 방법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또 다른 주제이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행동이 있다. 화날 때 줄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욕하고 소리 지르면서 탁자 위에 있는 물건들은 확 쓸어버리는 것이다. 또는 직성이 풀릴 때까지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패기도 하고, 종로에서 빰 맞고 엉뚱한 한강에 가서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들 중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일로 화가 났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을 찾아내 무차별적인 분노를 쏟아낸다. 약자인 아이들은 그 분노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 가장 가깝고도 가장 여린 존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인가, 학대인가?
부모의 절제된 분노는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불이지만, 미성숙한 분노의 표현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파괴하는 학대이자 폭력이 된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 한 영혼을 죽일 수도 있는 살인무기가 될 수도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갔을 때, 그들은 부모가 보여준 분노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학대는 대를 물리는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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