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네 아이, 엄마 둘, 개 두 마리! ©Smile Ellie

한 달 손님

지인이 한 달 가까이 집에 머무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선뜻 ‘오케이’ 하기가 쉽지 않죠?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일본인 친구 아유가 작년 추수감사절 연휴 마지막 날 오전에 갑자기 그날 밤부터 12월 20일까지 머물러도 괜찮냐고 물어왔거든요. 그와 동시에 아유의 남편은 저희 남편에게 똑같은 부탁을 해왔고요. (아유는 남편 친구의 아내로 알게 되었으니, 제 친구라기보다는 정확히는 남편 친구의 아내입니다.) 남편은 어차피 자기는 출장 가서 집을 비우니 제가 결정할 문제라며 저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사실 일주일 정도면 별로 고민하지 않았겠지만 3주가 넘는 기간에다 아이 둘에 아유의 남편도 가끔씩 저희 집에서 묵는다고 하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남편 친구의 아내로 서로 적당히 예의 지키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혹시라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마음 상할 일 생겨서 좋은 인연을 잃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고요.

그렇지만 그동안 봐온 아유의 성격이라면 민폐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제가 거절하면 남편이 교육 받으러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와 있는 동안 차가 없는 아유가 꼼짝 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하기에 저와 함께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저 역시 남편이 출장을 가는데 아이들과 저만 집에 남아 있는 것보다 누가 같이 있으면 덜 무서울 거라는 생각에 오케이 했죠.

네 아이, 엄마 둘, 개 두마리!

그리하여 밤 11시가 넘어 저희 집에 도착한 아유네 가족들. 그런데 개 두 마리도 함께 왔다는…..

‘이… 이건 생각지 못했다!’

어쨌든 네 아이와 엄마 둘, 그리고 개 두 마리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이렇게 하자~ 하고 룰을 정한 것도 아닌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정리정돈이나 청소도 같이 하니 오히려 생활이 훨씬 더 편해졌어요.

첫째 날부터 만두피 반죽해서 만두도 같이 만들어 먹고, 또 한국인 친구네 집에 왔으니 삼겹살은 필수 코스죠. 아유가 김치 담그는 법을 알고 싶다길래, 태어나서 딱 한번 김치 만들어 본 솜씨로 김치도 같이 만들었습니다. 아유와 아유의 남편은 진심으로 이 김치 맛에 감동한 것 같았어요. ㅍㅎㅎㅎㅎ

냉동 도우로 팥 듬뿍 넣은 찐빵도 만들어 먹었어요. 역시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라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하고 입맛도 비슷해서 뭘 하든 그녀는 감동 폭발이었어요.

아유가 직접 만든 일본식 함박 스테이크! ©Smile Ellie

아유가 일본 스타일의 부드러운 함박 스테이크와 감자 샐러드도 만들고 이름 모를 멕시칸 요리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점심은 불고기나 만들어 먹어야겠다’라고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잠시 외출했다 점심시간 맞춰 돌아와보니 “불고기 만든다기에 레시피 검색해서 처음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봤어.” 하며 내놓은 아유표 불고기. 고추장이 들어간 정체 불명의 불고기 레시피를 고른 탓에 뜻밖의 불고기맛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흠흠… 그렇지만 저는 그녀가 불고기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고추장이 들어간 정체불명의 불고기!? ©Smile Ellie

아리가또, 아유… ㅠㅠ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아유가 저희 집에 머물 때 제 생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봐줄테니 남편과 둘이서 조용하게 밥 먹고 오라고 해서 진짜 “아리가또” 한 30번은 했어요.

생일이니까 예쁘게 하고 나가라며 그날 제 머리도 염색해주고 고대기로 말아줘서 더 더 더 아리가또였죠. 덕분에 진짜 백만년만에 코로 들어가던 밥을 입으로 먹어봤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세상에!!! 제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더라고요. ㅠ.ㅠ 이게 실화냐!!!!

애들 넷을 보면서, 자기 집도 아니라 도구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를텐데… 그리고 제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초조한 마음으로 이 케이크를 만들었을 텐데… 아유, 넌 오늘부로 남편 친구 아내에서 내 베프로 거듭난 거야. ㅠ.ㅠ 엉엉엉~

남편이 저 몰래 레스토랑 예약해 놓고 생일 선물은 한국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 주면서 해야지!!!)이라고 했던 말보다 더 떨리고 감동적인 케이크였습니다. (고로 남편으로부터의 눈에 보이는 선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

배려의 끝판왕, 아유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함께 오랫동안 지내다보면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 받거나 마음 상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유가 정말 미안할 정도로 많이 도와주고 신경 써줘서 오히려 아유가 여기 와 있는 동안 제가 더 좋았다고 하는게 맞을 거예요.

식사 준비를 교대로 하는 것 외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저녁에 돌린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 정리를 미리 해놓고, 쓰레기통이 가득차면 쓰레기도 알아서 버려주고요. 애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이나 책도 그때그때 정리해줘서 저녁에 애들이 잠들고 나면 할 게 없어서 저녁 시간이 너무 여유롭기까지 했어요. 이런 도움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아유의 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키친 타올이 다 떨어져 가니 키친 타월도 사서 채워 넣고, 올리브 오일도 떨어지기 전에 새 걸로 사다 놓고, 게스트룸 욕실 청소와 거울까지 다 닦아 놓아서 제가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게 하더라고요.

심지어 욕실 청소를 하던 아유가 저에게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꼈을지도 몰라서 빼내고 싶은데, 배수구 분리 방법이 자기네 집과 다른 것 같다고 어떻게 분리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집주인인 나도 배수구에서 머리카락 꺼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막히면 무조건 뚫어뻥 용액이나 들이부었을 뿐인데…’

그리고 아유가 돌아가던 날은 침대시트와 이불, 베개 커버까지 다 빨아 두었으니 세탁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녀의 배려에 감동 받았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거나 방문하면 그 집을 떠나올 때 ‘내가 머물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최대한 민폐가 되지 않게 신경 써서 정리하고 나오는데, 배수구까지 청소하려 했던 아유를 보니 저희 집에 머무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유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제 이 친구가 이곳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사를 와서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더더욱 잘된 일이죠. 무엇보다 저의 무허가 엄마손 미용실로 와플이와 제제의 머리카락에 더 이상 테러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고, 셀프 염색 안 해도 되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입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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