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사진가
jeromegraphy@daum.net

시원한 물냉면 한 그릇
이제 여름 햇살이 완연하다. 덥고 습한 미국 동남부 날씨탓에 스콜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가 반가운 어느 날, 가게에 들러 물냉면 한 그릇 먹고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동네에는 이렇게 누군가 생각나면 불현듯 전화해 따뜻한 안부와 밥 한 공기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다. 오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될 주인공 양영희 님이다.

아이들 유학 보내려다 이민
큰 냉면 사발의 육수까지 싹 비우고 나니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제야 양영희 님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처음 미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에 오빠가 먼저 와서 살고계셨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세탁소를 하셨는데 자리를 잘 잡으셨지. 그때가 1991년인가… 아이들을 유학 보내서 공부를 시키고 싶었는데 아이들만 보내는 것보다 식구들이 다 같이 와서 사는 게 비용도 좀 덜 들 것 같더라고. 연고도 있으니 오기도 좀 수월했고.”

영어 못해도 사업 시작
미국에 와서 세탁소를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영어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하다.
“86년에 미국에 한번 와봤었는데, 그때는 나도 미국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까 캄캄하지…. 영어가 안 되니까 우선 꼭 필요한 문장만 달달 외웠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어. 영어를 못하니까 오히려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하면 그냥 다시 해주고 말았어. 안 되는 영어로 싸워봤자 그게 싸움이 되나? 그냥 내가 다시 해주고 마는 게 낫지….”
어찌 보면 이게 가장 현명한 답인 듯하다. 차별과 억압이 아닌 이상 자신의 모자란 부분은 인정하고 그것을 보완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법이니까.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며 ‘아메리칸 드림’을 많이 이루셨을까?
“세탁소하면서 돈 많이 벌었지. 그래서 그 돈으로 여기서 조그만 호텔사업도 할 수 있었고. 그렇다고 늘 잘 벌기만 한 건 아니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는 매출이 반에 반토막이 났거든. 한 번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을 생각도 했어. 차를 끌고 호수에 들어가려고 물가 앞까지 갔는데 아이들 생각에 차마 빠질 수는 없더라구…. 차 핸들을 돌리면서 ‘내가 지은 빚은 내 손으로 갚고 가자’ 이렇게 마음 먹구 다시 열심히 일했지.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주변에서 도와주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있더라고….”
우리 동네에서 아는 분들은 다 알지만 양영희 님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하시던 호텔사업을 정리하고 두 달만에 다시 조그만 식당을 오픈해서 지금껏 일하고 계신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셨고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편히 쉬셔도 되는데 고작 두 달 쉬다가 좀이 쑤신다고 다시 일을 저지르는 분이다. 천성이 부지런하면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낚시광 남편
양영희 님의 남편 양인환 님은 예전에 캐롤라이나 팟캐스트 방송에도 출연하신 낚시광이다. 필자의 낚시 스승님이기도 하다. 부지런한 아내와 낚시광인 남편, 두 분은 평소에 평화롭게 잘 지내실까?
“남편이 한국에서부터 낚시를 좋아했지. 미국에 와서도 낚시를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골프를 추천해서 한동안은 골프에 미쳐 살았어. 그런데 그린빌로 이사 와서 호텔이 힘들어지니까 골프를 안 하더라구…. 그게 안쓰러워서 내가 등 떠밀어 보낸 것도 있지. 나는 호텔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꼭 그런 건 아니거든. 그리고 미국으로 오자고 고집 피운 것도 나니까 미안하기도 하지…. 원하지 않는 이민생활을 투정 안 부리고 있어준 것도 고맙고, 또 가을철에는 나도 한번씩 따라가서 쉬다 오니까 나도 좋고.”

행복을 나누는 사람
이분들과 친하게 지내다보면 얻게 되는 행복이 많다. 낚시 조과가 좋은 때는 꼭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예전에 호텔을 하실 때는 지인들을 위해 전국의 같은 호텔 체인에 연락해서 할인을 받아주기도 하셨다.
두 분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어려운 부탁에도 거절을 모르신다. 덕분에 이 동네에서 이분들께 소소한 도움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우리 친정어머니가 손이 좀 크셨어.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우리 오빠가 먼저 자리를 잘 잡고 있으니까 그 후에 이민 온 사람들한테 어머니가 김치며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많이 나눠주셨어. 그때 우리가 2층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1층은 전부 새로 이민 온 식객들이 신세를 지고 있었지. 그 사람들이 찾아왔다기보다는 어머니가 불러다가 나눠주신 거야. 내가 그런 걸 보고 살아서 남 주는 거 좋아하나봐. 그런데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나누는 것은 내가 더 좋아지는 일인 것 같아.”
작은 행복을 나누면 내가 더 좋아진다는 말씀이 그대로 내 마음으로 전해졌다. 우리 동네에 숨은 현자가 한 명 살고 있구나 싶다.

칠십에도 꿈이 많은 사람
한 2년 후에는 완전히 은퇴를 하실 예정이라고 하는데, 양영희 님의 은퇴 후 계획이 궁금하다.
“학교 다니고 싶어…. 거창하게 나이 칠십에 대학교 다니고 싶다는건 아니고, 영어랑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그리고 아람이 엄마(6월자 신문에 실린 한국화가 김연희 님)옆에서 그림도 배우고 싶어. 나 그런 한국화 정말 좋아해. 그리고 미국 내셔널 파크 다 돌아다녀보고 싶고….”
70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양영희 님의 꿈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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