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온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아주 작은 선물을 건네는 크리스티안 ©pinterest
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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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아일(IN THE AISLES, 2018)
감독 : 토마스 스터버
주연 : 프란츠 로고스키, 산드라 휠러, 피터 쿠스

인생 영화
영화 ‘인 디 아일’은 동독 출신 작가인 클레멘스 마이어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토마스 스터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통일 이후 소외와 고독으로 점철된 구동독 노동자들의 일상에서 삶의 의미와 작은 행복들을 탐구한 작품이다. 삶의 근원적 우울과 쓸쓸함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수작이다.

고독한 마음들
소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뒷골목에서 근근히 살아오던 크리스티안은 구동독의 대형 창고형 슈퍼마켓의 야간팀에 취직해 수습사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트 영업 시간이 끝나면 매니저 루디의 위트 어린 멘트와 함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가 울려 퍼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물건을 나르는 지게차들이 매장의 통로 사이를 유연하게 누비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가리기 위해 소심하게 작업복 소매를 잡아당기는 남자 크리스티안. 늘 말이 없고 수줍음을 타며 어깨가 구부정한 그에게 나이 지긋한 사수 부르노는 하나씩 일을 가르쳐주며 격려한다. 특히 수습사원이 정직원이 되려면 지게차 운전면허를 따야 했기에 부르노는 크리스티안에게 지게차 운전하는 법을 열심히 가르친다.
자신의 구역인 음료 코너 진열대를 정리하던 크리스티안은 어느 날 반대편 사탕 코너에서 일하는 마리온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15분 휴식 시간에 휴게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커피 친구가 된다.

이 영화는 크리스티안, 마리온, 부르노 세 인물의 이름으로 챕터를 나누어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유년 시절 이미 전과기록이 있는 크리스티안은 예전에 함께 어울리던 패거리를 피해 혼자만의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트레일러를 몰고 아우토반을 누비던 트럭 운전사 브로노는 통일 이후 대형 마트로 바뀌어 버린 창고 안에서 지게차를 모는 답답한 삶을 홀로 견디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남편의 상습 폭행으로 결혼생활이 불행한 마리온은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해변의 퍼즐 조각을 맞추며 마음을 달랜다.

공동체, 따스함, 약간의 행복
동독 출신 작가 클레멘스 마이어와 스터버 감독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오는 우울한 정서를 모티브로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현재 독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로 하루 아침에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어버린 동독인들의 상실감과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동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이 세 인물이 느끼는 고독과도 맞닿아 있다.
“하루가 흘렀을까? 어쩌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엔 햇빛이 들지 않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하루 일을 마치고 매장을 나서면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각자 다른 공간으로 간다. 마치 다음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깊은 잠을 자러 가는 것 같다.”
크리스티안은 이 독백에서 자신이 일하는 매장을 ‘집’이라고 표현한다. 혼자 분리된 자신의 집보다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매장이 더 집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쓸쓸함과 소외감이 마음 시리게 전해진다.

한편 마리온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동료들은 크리스티안에게 “마리온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그녀도 너를 좋아해. 그녀에게 상처주지 마.”라고 말하며 마리온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힘들 때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내어주는 이들의 애틋한 모습은 동료들에게 아름다운 활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시선과 따뜻한 공감으로 채워져 있는 동료들 간의 유대감은 언더그라운드 같은 일터를 밝히는 마법의 연료가 된다.
첫 출근한 크리스티안에게 새 작업복을 입혀보며 옷깃을 털어주고 박스 뜯는 칼을 주머니에 넣어주는 매니저 루디의 일상적인 행동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 있고, 크리스티안이 지게차 운전 시험을 볼 때 지게차 주위를 둘러싸고 그를 응원하던 동료들의 모습에서는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진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는 폐기장에서 같이 소시지를 뜯어 먹고 맥주를 나눠 마시며 파티를 할 때 삭막한 대형 마트는 정겨운 작은 마을이 된 듯하다. “결국 남는 것은, 공동체, 따스함, 그리고 약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오직 대형 마트의 통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깨달음이다.”라고 스터버 감독은 말한다.

그래도 다시 사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온은 크리스티안에게 부르노에게서 배운 것을 알려준다. 지게차의 포크를 천장까지 올렸다가 천천히 내릴때 파도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지게차의 기계 소리는 파도 소리로 변하고 마트의 통로는 야자수가 늘어선 아름다운 해변으로 변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의 나즈막한 독백이 이어진다. “아, 나는 여태 왜 이 소리를 몰랐을까!”
고독이 긴 고립감으로 이어지면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부르노는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시절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깊은 우울감 속에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그의 어수선한 부엌은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은 그의 무력감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풍요로운 세상에서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결핍과 소외감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공동체의 결속과 공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과 불신이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타인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것은 역시 힘들 때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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