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노동 없는 생산, 상품과 서비스의 무한복제, 승자독식의 디지털 경제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수많은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내몰리며 경제 구조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경제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경제를 기반으로 한 여러가지 상부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의 정치 변화
미국의 공장들이 값싼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이전하고,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서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트럼프 정부를 탄생시켰다. 트럼프는 그들에게 자동차 공장, 철강, 탄광의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자동화의 흐름을 외면한 현실성 없는 공약이 되고 말았다.
블루컬러의 쇠락과 함께 심화된 부의 양극화는 2016년 대선 정국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시키기도 했다. 더욱 가속화되는 자동화로 블루컬러 노동자는 물론,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일자리까지 줄어들면서 앞으로 더 거센 정치적 격변이 예상된다.
또한 막대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미국 정치에서 자본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동시에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불만이 한계에 달하면서 두 진영 간의 충돌은 미국 정치 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정부(e-government)
유럽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은 모든 시민이 전자주민증으로 선거, 의료기록 등 정부 서비스의 99% 이상을 온라인으로 해결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나왔을 때만 해도 변변한 자원도 없고, 경제적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아 -14%의 역성장을 기록했던 나라가 지금은 투명한 전자정부 인프라에 힘입어 유럽의 강소국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인프라의 효율성 덕분에 GDP의 2%에 해당하는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2007년 러시아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받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2008년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자마자 이를 전자정부 시스템에 적용시켜 훨씬 안전하고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4년부터 에스토니아는 이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13만원만 내면 사이버 영주권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4만 5천명가량의 사이버 영주권자를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출산율 감소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를 일정 정도 보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다른 여러 나라 정부들에게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탈중앙화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암호화폐 이외에 적용시킨 초기 사례 중 하나이다.
기존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와 금융에 생기는 균열
IMF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준비금의 62%가 미국 달러화 이다. 또 은행 간의 국제송금 시스템인 SWIFT 거래액의 43%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진다. SWIFT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에 지불하는 대금의 98%도 달러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달러는 미국의 화폐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세계화폐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기축통화(reserve currency)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다.
미국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 종반이던 1944년부터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고, 1970년대에는 금본 위제를 포기하면서 금 대신 IMF의 SDR(Special Drawing Rights)을 달러 가치를 보장했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밖의 OPEC 회원국들과 정권보호를 조건으로 석유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는다는 협약을 체결한 뒤로 달러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달러의 독주에 반기를 들고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 기축통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고, 실제로 중국은 IMF의 SDR에 달러 41%, 유로 31%에 이어 위안화 10%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2017년부터 모든 항구에서 달러 거래를 금지시켰다.
이란의 경우,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지불 수단으로 달러 대신 다른 통화를 사용해야 했고, 미국은 이란을 SWIFT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중국이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s System)를 만들어 이란과 같은 나라가 국제송금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자, 다른 나라들이 달러 및 미국 금융 시스템의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구축해 놓은 달러 중심 시스템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용해 오다가 이젠 아예 노골적인 일방주의로 나가고 있어 여러 나라들이 달러 위주의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한 예로, 유럽연합(EU)의 외무부 수장은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에 발이 묶인 이란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교역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공도 경제 블록(bloc)을 형성해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 나라들은 새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을 설립하였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계은행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기간 투자 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도 설립하였다.
이처럼 달러에 집중된 세계금융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의 기저 개념인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바람이 불고 있고,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의 첫번째 응용프로그램인 암호화폐를 사용하여 미국의 영향력 아래 국제금융거래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SWIFT를 통하지 않는 국제 거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017년 6월에 지난 블록체인편에서 언급했던 2세대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 비탈릭 부터린을 만나 국가가 운영하는 암호화폐에 관해 토론한 다음, 2018년 1월에 CryptoRuble를 출범시켰다. CryptoRuble은 암호화폐 요소를 따와 SWIFT를 거치지 않고 국제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IMF 의 장인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장기적으로 암호화폐가 각 나라의 은행들과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평균수명 증가와 인구의 노령화
지난 50년의 통계를 보면 인류 사회에서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전쟁이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고,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보다 노령으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또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쟁이나 테러, 강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반면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전세계 인구는 노령화로 나아가고 있다. 전세계적 현상인 고령화는 4차산업 시대에 줄어드는 일자리와 함께 세계 시민들의 건강한 삶이라는 두 가지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의 이동
옛날에는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왕이나 각료들, 또는 성직자들에게 물어서 결정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내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거나 구글에 물어본다.
복잡한 도심을 운전할 때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이나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내비게이터의 안내에 따라 운전하는 것처럼, 이제는 많은 정보와 결정을 구글과 같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되었다.
새로운 종으로의 분화
3차 산업혁명까지 인류는 인간의 몸과 뇌를 사용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의 몸과 뇌까지도 스스로 개선시키기 시작했다. 덕분에 손상된 신체를 보완하는 의수, 의족을 넘어 인공장기에 이르기까지 신체 여러 부분을 대신하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
또한 유전자 조작 식품과 같은 분야에서 이미 많은 유전자 조작 경험과 기술을 얻은 인간은 그 기술과 노하우를 인간에게 적용시키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법적, 윤리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집중된 부를 소유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녀에게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한 슈퍼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단 몇 세대만에 초부유층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새로운 종은 유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기존의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새로운 종이 꼭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여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게 되면 인공지능에 의한 인공지능의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고, 인공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슈퍼지능(Super Intelligence)로 진화하면, 이를 새로운 종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대량생산 시대의 공교육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업무는 점점 자동화되어 인간의 노동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이 현상의 전조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20세기 전반에도 ‘컴퓨터’는 있었다. 예를 들어, 박격포가 전투에 배치될 때 목표 거리와 고도에 따른 포신의 각도를 현장에서 바로 계산 할 수 없어 이를 미리 계산해 책으로 배부하였다. 이를 계산해낸 그 당시의 ‘컴퓨터’는 바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인간 컴퓨터는 느리고 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계 컴퓨터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간 컴퓨터는 사라졌고, ‘컴퓨터’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기계 컴퓨터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계산숙달 교육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수행하는 일자리는 머지않아 자동화된다. 따라서 공교육의 역할은 지식의 주입이나 기계적인 훈련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과 스스로 배우고 훈련하는 자기 학습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