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지를 못해
몇년 전, 영어학원에서 만난 지인이 자신의 영어공부에 회의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전날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원에서 몇년간 영어를 공부한 터라 자신있게 만남을 가졌지만 결과는 좌절스러웠습니다. 그 미국 여성의 말을 생각만큼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못하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었죠. 원어민 여성들의 발음이 남성들보다 알아듣기 쉽다고 하는데, 왜 수년 동안 영어를 배운 그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어느 한국 학습자의 이야기
원어민의 말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과정입니다. 개별 단어의 발음, 그 의미, 연음, 문장 이해 능력, 거기에 유추 능력까지. 따라서 듣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프로세스가 결합된 복잡한 활동입니다.
그 미국 여성이 슬랭이나 관용어를 많이 사용했다면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해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대화 수준을 대략 감지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평이한 단어를 쓰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의 이해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고 느꼈을까요?
한국내 원어민 강사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학생들과 대화할 때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학생들이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속도를 늦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학원 강사의 대화 속도에 익숙한 그는 미국 여성의 빠른 대화 속도에 적응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도 빠른 속도 때문에 쫓아가지 못했던 거죠.
따라서 그에게는 학원 커리큘럼을 따라감과 동시에 추가적인 리스닝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원어민들의 대화는 인터넷을 통해 거의 무한하게 제공되고 있으니 이제 문제는 그가 얼마나 시간을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
미국에서 3년째 대학을 다니고 있는 A군은 동료 학생들과 어울리며 빠른 대화 속도에는 점차 익숙해졌는데, 문제는 상대방이 조금 긴 문장을 말하는 경우 이해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A군은 학업을 쫓아가기에 바빠, 학습자 수준에서 해야 할 기본적인 영어학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대략적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그 깊이가 깊어지지 않고 상대방이 긴 문장을 구사할 경우 이내 놓치고 마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리스닝 학습의 기본은 집중과 많은 양의 시간 투자입니다. 동시에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은 다른 분야 학습입니다.
원어민 성인들의 대화는 영어회화 책에 나오는 간단한 문장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당연히 긴 문장의 대화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 대화를 잘 이해하려면 영어의 소리를 듣는 리스닝 능력뿐만 아니라, 긴 문장을 빨리 이해하는 독해력, 영어식 사고, 연음 법칙 등이 두뇌에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리스닝은 공부가 아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그것이 리스닝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를 즐기기 때문이죠. 일정 수준까지는 리스닝 역시 공부이자 부담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가면 리스닝은 영어학습 중에서 가장 쉬운 학습이 됩니다. 집중은 필요하지만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 리스닝 학습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책을 읽는 것보다 리스닝이 더 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이미 언급한 복합학습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여러 리스닝 자료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뉴스만 보거나, 영어회화 교재의 원어민 음성만 듣거나, 이해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리스닝 자료만 듣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해 수준이 70~80% 정도의 리스닝 자료로 훈련하면서 가끔씩 도전적인 리스닝 자료를 함께 접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의 이해 순준이 낮아 자료의 대부분을 듣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영어 리듬에 익숙해진다는 느낌으로 리스닝을 하면서 어휘, 표현, 문법, 읽기 등 다른 학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게 영어 지식을 쌓는 것 역시 리스닝 학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천: 하루 2시간 리스닝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영어 리스닝 없이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집중해서 듣는 리스닝 훈련을 얼마나 하는지는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리스닝 훈련은 다다익선이며, 못해도 하루 2시간 이상은 꾸준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리스닝 훈련이 전체적인 영어실력 향상에 기여하려면 다른 영역의 학습 역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도전적인 리스닝 자료를 통해 두뇌가 빨리 달리는 훈련을 해야 하며, 아울러 속도가 느리거나 적정 수준이라면 리스닝을 하며 따라 말하는 쉐도잉(shadowing) 훈련을 병행하면 좋습니다.
리스닝을 하며 쌓는 언어적 경험은 단기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정말 큰 도움이 되는 부분입니다. 리스닝이 적정 수준으로 되면서부터 영어 학습 자체가 즐거울 뿐 아니라, 말하기나 읽기 등 다른 부분에도 큰 발전의 발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