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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어울림: 왼손잡이에서 양손잡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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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종택 목사 UMC 연합감리교회 은퇴 목사

왼손잡이 외톨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잡이였다. 누가 가르쳐 주거나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손이 먼저 나갔다. 이 버릇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닌 듯했다.

그런데 집에서는 괜찮지만, 밖에 나가면 따가운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쓰라린 기억 속에 한평생 왼손잡이로 살아온 내 모습을 잠시 돌이켜본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은 항상 나를 ‘왼 빼’ ‘짝 빼’라고 놀렸다.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는 물론, 공을 던지고 받을 때도 나는 항상 왼손이었다.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지면 상관없지만, 내가 이기면 아이들은 꼭 트집을 잡았다. 왼손으로 하는 것은 무효라는 거였다. 나는 왼손잡이였기에 또한 외톨이였다. 늘 따돌림을 당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왕따’였다.

나의 왼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내가 왼손을 쓰는 것을 보고는, “야! 요놈 봐라, 왼손잡이네! 두 번 다시 왼손을 쓰면 손목을 잘라 버릴 테다!” 하며 내 버릇을 고치겠다고 부엌칼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랐지만, 이유가 있다면 나의 왼손 때문이었다. 그때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섬뜩하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지나서 시골에 살 때였다. 나는 평소 동네 어른들에게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어른들과 식탁에 앉았을 때였다. 한 노인이 갑자기 소리치셨다. “아니, 나이 삼십이 넘도록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소?” 그 어른의 말씀을 이해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환경에 따라 처신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왼손잡이에서 양손잡이로
언젠가 내 손의 상처 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릴 때 난 상처들은 모두 오른손에 있었다. 연필을 깎던 칼이나 가위는 물론, 중학교 실습시간에 밭에서 쓰던 호미와 낫으로 인한 상처들이었다. 그때는 모든 도구들이 오른손잡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을 몰랐다. 그저 오른손으로 서투르게 사용하다 상처를 입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피리와 오카리나를 배우게 되었는데 왼손과 오른손을 함께 움직이는 게 나는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클라리넷을 배웠다. 트럼펫이나 트롬본 같은 금관악기는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피스톤을 누른다. 하지만 피리 모양의 클라리넷은 바람구멍을 막는데 양손이 똑같이 필요하다. 왼손잡이로서는 그것이 큰 감동이었다. 클라리넷을 배우며 나는 왼손잡이로서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뛰어난 왼손잡이들
왼손잡이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이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왼손잡이며 한국은 5%정도라고 한다.
왼손잡이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아이작 뉴턴, 베토벤, 나폴레옹, 빅토리아 여왕, 잔 다르크, 마크 트웨인, 프리드리히 니체, 헨리 포드, 마리 퀴리, 마하트마 간디,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이름을 나열하지만 끝이 없다. 이들은 모두 왼손잡이로서의 불편한 삶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요즘은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왼손잡이는 서양에서도 천대받았다. 영어사전을 보면 left는 ‘약한, 가치 없는, 왼쪽’이고, right는 ‘바른, 정당한, 오른쪽’이다. 라틴어 어원에서도 왼쪽은 sinister(고약한, 불길한), 오른쪽은 dexter(능숙한, 운이 좋은)이다.

한국에서 늘 왼손 사용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미국에 와서 포크, 나이프, 숟가락을 양쪽에 나란히 놓고 사용하는 것을 보고 어릴 때부터 나를 짓눌러온 설움에서 해방된 감격을 맛보았다. 왼손잡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유와 기쁨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1992년부터 왼손잡이 날이 제정되었다(8월 13일). 또한 요즘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키보드를 왼손, 오른손 구별 없이 사용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더불어 어울림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따돌림에서 어울림으로의 삶이다. 내가 겪은 쓰라린 상처와 아픔 때문에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을 성숙시키는 도구로 다듬어 가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 경험을 돌아보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어주며 살고 싶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볼 때마다 거친 두 손에 담긴 우정과 희생을 떠올리게 된다. 뒤러와 친구는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친구는 뒤러가 먼저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탄광에서 일을 해 뒤러의 학비를 지원했다. 마침내 뒤러의 그림이 팔려 친구를 찾아왔을 때 그는 이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제 친구 뒤러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의 손은 이미 노동으로 마디가 뒤틀려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뒤러가 제 몫까지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의 두 손에 그 삶을 담고 싶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은 아름다운 어울림 속에 더불어 가는 순례의 길. 얼마나 아름다운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