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출근 시간은 언제?
시댁에 머무는 동안, 저희는 남편이 독립하기 전에 쓰던 2층 방에서 지냈는데요, 2층에 있다보니 1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길이 없었답니다.
시댁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어머님과 함께 아침 준비를 하고 아버님 나가실 때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도 해야지 하며 잠들었는데, 눈뜨니까 아침 11시였어요. ㅠ.ㅠ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제가 살던 샌디에고는 그때 시각이 9시, 시댁이 있는 위스콘신은 2시간이 빠른 11시. 원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났는데도 시차 때문에 이미 11시더라고요. 이것도 제 나름대로는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ㅎㅎㅎ)
아무튼 시아버님 출근하시는데 늦잠 자느라 배웅도 안 한 버릇없는 며느리가 되었다고 자책하며 가족들 아침 식사는 어떻게 됐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더라도, 적어도 시어머님 옆에서 거드는 척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는 속상한 마음으로 1층에 내려갔더니, 냉장고에 포스트잇 메모지가 남겨져 있더라고요. “잠시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마.” 시어머님이 메시지를 남기고 외출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저의 걱정을 말했더니 오히려 남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아침에 자기가 할 일이 뭐가 있어? 아침은 각자 먹는 거야. 씨리얼을 먹든 토스트를 먹든,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챙겨서 먹는 거지 그걸 왜 자기가 걱정해?”
이로써 아침 식사 걱정은 이날 이후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시차 적응을 핑계로 시댁에 있는 동안 아침 11시에 일어나고, 아침 식사는 남편과 둘이서 씨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으며 그렇게 지냈답니다. 어느 날 남편의 조카인 이든이 삼촌방에 가겠다고 계단을 올라오려니까 시어머님이 삼촌과 숙모는 자고 있으니 깨서 내려올 때까지 절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 그리고 시아버님 출근하실 때 배웅은 한번도 못 해드렸습니다. 이게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남편이 또 왜 제가 그걸 걱정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길래, 그것도 그냥 마음에서 내려 놓았습니다.ㅎㅎㅎ
여긴 내 주방이란다!
시어머님이 저녁 준비를 하실 때 며느리 된 도리로 옆에서 뭐라도 도와야 될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면 시어머님은 제가 할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음식 만드는 것은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함께 하셔서 실제로 제가 할 일이 없기도 했어요. 또 제가 미국 음식의 종류도 모르고 만드는 법도 모르니 음식 만드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건 사실이기도 했죠.^^;;
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매쉬드 포테이토를 만들 감자를 깎거나, 양파나 피망을 프라이팬에 볶는 것을 도와드리긴 했네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댁에 와서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설거지는 꼭 제가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식사 후에 소매를 걷어 붙이니 시어머님께서 놀라시며, “여긴 내 주방이란다! 니가 할 일이 없구나. 식탁 정리만 도와주렴~!” 이러시더라고요. 자기가 먹은 접시는 다들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고, 식탁 정리라고 해봐야 빵 봉지와 버터, 잼 등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 일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편에게 식탁 정리를 맡기고 설거지는 제가 하겠다고 나섰더니, “설거지는 식기 세척기가 할 거고, 내 주방을 게스트에게 내줄 수는 없지. 얼른 내 주방에서 나가렴~!” 하시며 어찌나 “MY KITCHEN”을 강조하시는지;;;; 제가 어머님의 주방을 뺏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나중에 남편과 라면을 끓여 먹고 그릇을 제가 씻으려고 하자 남편이 안 씻어도 된다며, 나중에 저녁 식사하고 식기 세척기 돌릴 때 같이 넣으면 된다는 거예요. “(나) 이건 우리가 먹은 거니까 우리가 씻어야지.” “(남편) 자기야, 여기는 우리 주방이 아니야. 엄마의 주방이야.” 하지만 전 과감히 남편의 충고를 무시하고 제가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식기들을 건조해 놓았죠. 나중에 시어머님께서 보시더니, “설거지를 해주었구나!!! 고맙다~!” 하시며 저를 꼭 안아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설거지를 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머님이 제 설거지 방식이 맘에 안 드실 수도 있고, 건조한답시고 가지런히 늘어 놓은 주방 식기들을 보고 조금 언짢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워낙 철저하게 개인주의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는 미국인들이다보니 자신의 고유 영역인 주방과 주방 살림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남이 손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텐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저는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행동이 어쩌면 어머니를 약간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 다음부터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은 과감하게 안 하기로 했답니다. 안 해도 된다는데 자꾸 해도 되냐고, 또는 하겠다고 하는 것도 역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어리버리 저의 첫 미국 시월드 체험기, 한국과는 조금 많이 다르죠? 문화가 다른 것이니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고, 또 집안마다 분위기나 가풍이 다르니 이게 미국 시월드라고 일반화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미국은 이런 부분이 좀 다르구나~ 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