뺀질이 나나양
그동안 제 직장 동료인 나나양과 사소한 갈등이 있었지만, 아직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철없는 20대 꼬꼬마이니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하며 이모 같은 마음으로 마음에 담지 않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을 하면서 나나양의 놀라운 영업 스킬 못지않게 저를 충격에 빠뜨리는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되었는데요, 그녀는 거짓말에도 능하고, 남이 한 일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숟가락 얹기’ 스킬도 역대급이더라고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연달아 겪다 보니 저는 이제 나나양이 하는 말은 곧이 듣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녀의 거짓말에 너무 많이 놀아나서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몇 가지 사건을 풀어보겠습니다.
그녀의 거짓말
나나양이 청소같이 힘든 일을 하도 안 하려고 하니 매니저가 나중엔 아예 대놓고 그녀에게 할 일을 정해 주고 시키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매니저가 나나양에게 매장에 있는 모든 거울을 퇴근 전까지 닦으라고 시켰답니다. 저희 매장의 거울이 30개가 넘으니 물론 다 닦으려면 팔이 아프겠죠. 그렇지만 마음 먹고 닦으면 20분이면 다 닦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매니저가 저에게 거울을 전부 닦으라는 거예요. 속으로 ‘어제 나나가 다 닦았을 텐데…….’ 하면서 거울을 확인해 보니 얼룩이나 손자국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닦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 끝냈나 보다 생각했고, 나중에 나나양이 출근했을 때 어제 퇴근 전에 매니저가 거울 닦는 거 부탁했는데 다 닦았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응, 전부 다~ 닦았어.” 이러는 겁니다. “몇 개만 닦았어.”도 아니고, “몇 개는 못 닦았어.”도 아니고 전.부. 다~ 닦았다고?!?!?
나중에 매니저가 매장으로 돌아왔을 때 제가 거울 닦는 거 다 끝냈다고 보고하자, “어제 내가 나나한테 거울 닦으라고 시켰는데 그것마저도 안 했길래 너한테 시킨 거야.” 이러네요. 역시나, 매니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며칠 후, 매니저가 각자 청소할 구역을 정해주고 퇴근 전까지 끝내라고 했어요. 나나양은 Rare Beauty 섹션을 맡게 되었죠. 그런데 퇴근 무렵에 나나양이 저에게 와서 이러는 거예요. “엘리, 내가 맡은 구역 청소 끝냈어. 한 번 볼래? 완전 깨끗해!!!” 아니, 청소를 얼마나 깨끗히 했길래 나한테 보여주고 싶을 정도인가 싶어서 그녀를 따라가 봤죠. 그런데 진짜 자랑할 만하더라고요. 정말 깨끗하게 딥클리닝이 되어 있어서 제가 물개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그랬더니, “매니저한테 내 구역 청소 다 끝 냈다고 말하고 가려고 했는데 지금 없으니까 나중에 돌아오면 꼭 내가 청소 다 끝냈다고 전해줘!” 하며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그동안 매니저에게 밉보여서 이번 일로 만회하려는 그녀의 의지가 엿보여서 제가 매니저에게 꼭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매니저가 제 퇴근 시간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예요. 제가 입사한 이래로 나나양이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를 한 게 정말 처음인데, 매니저가 알지 못하면 나나양이 헛수고 했다고 느낄 수 있고, 제가 꼭 전해주겠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키고 싶은 책임감도 있었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클로징 멤버인 B양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B야, 오늘 매니저가 각자 청소할 구역을 정해줬는데, 나나의 청소 구역이 Rare beauty 브랜드였어. 나나가 정말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매니저한테 좀 전해줄래? 나나가 나한테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내가 퇴근할 때까지 매니저가 안 보여서 전달을 못해줄 것 같아.”
그러자 B양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하는 겁니다. “뭐라고??? 나나가 Rare beauty 섹션을 자기가 청소했대??? 거기 내가 청소했어!!! 내가 청소하는 동안 거기 자기 구역이라고 말도 안 했어.” 헐~!!! 그러니까 그 섹션을 그렇게 깨끗하게 청소한 건 나나양이 아니라 B양이었고, 오후에 출근한 B양은 각자의 청소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도 모르고 나나양의 청소 구역을 열심히 청소했던 거죠. 나나양은 그걸 보면서도 B양에게 거긴 자기 청소 구역이라고 말하지 않고 B양이 청소를 하게 내버려두었고, 청소가 다 끝나자 마치 자기가 청소를 한 것처럼 저에게 자랑을 하고 매니저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거였어요. 이 뻔뻔한 거짓말이 절대로 들통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B양과 제가 그런 얘기를 나누게 될 거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겠죠.
B양은 자신이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자기가 실컷 청소해 놓은 공을 나나양이 냉큼 가져가려 했다는 사실에 어이없고 열 받아 했어요. 왜냐면 B양도 매니저의 눈밖에 나서 안 그래도 일하는 게 고달픈데, 이런 식으로 자신이 한 일을 가로채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요. 게다가 B양은 임신 중이었거든요. 이렇게 되니 저는 매니저에게 나나양이 청소를 잘했다고 전달해줄 의무가 사라져 버렸죠. 나나양이 청소한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B양에게 이 상황을 매니저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얘기하고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는 나나양이 하는 말들을 점점 더 못 믿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꼬마 아가씨가 B양이 한 일에 숟가락을 얹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그녀의 숟가락 얹기
제가 오후 출근이었던 어느 날. 나나양이 자신은 곧 퇴근이라며 자신이 하던 일을 알려주며 마무리를 지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브랜드의 선반 디스플레이 교체 작업이었는데, 첫 번째 선반만 끝내고 나머지 선반 세 개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어요. 휴~, 사실 이 디스플레이 교체 작업은 꽤나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메이크업 제품들은 사이즈가 작아서 상품을 진열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아래 서랍에서 재고를 꺼내느라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고 작업을 해야 해서 몸도 피곤하거든요
아무튼 나나양이 하던 일을 넘겨 받아 마무리를 하고 다음날 오후에 출근해서 라라양으로부터 오늘 해야 할 일을 전달받는데, 라라양이 이러는 겁니다. “이 선반 교체 작업이랑 디스플레이는 어제 나나가 다 끝냈어, 그러니까 넌 오늘 이쪽 작업을 맡아줘.” ‘으잉??? 그건 내가 다 끝낸 거나 다름 없는데???’ 그런데 애초에 나나양이 그 일을 맡았던 거라 그렇게 말하나 보다 생각했죠. 그리고 몇 주 뒤, 제가 오후 출근을 했더니 나나양이 말하기를,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니가 마무리해줘.” 그런데 나나양이 한 것보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두 배는 더 많아 보이더라고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면 반 이상은 해 놓고, 저에게 넘겨줘야지, 자기는 손만 대다가 말고 그 일을 통째로 저에게 떠넘기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저에게 부탁하고 간 일이니 제가 교체 작업과 디스플레이 작업을 모두 끝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나나양이 자꾸 자기가 맡은 일을 저에게 ‘마무리’를 시키며 은근슬쩍 숟가락 얹기를 시전하더라고요. 그러다 나중에는 자기가 못 끝낸 일은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듯이 얘기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어 얘기했죠. “(엘리) 나나야, 그 일은 매니저가 너에게 시킨 일이니까 니가 끝낼래?” “(나나) 나 5분 뒤에 퇴근해야 해.” “(엘리) 그럼 오늘 못 끝냈다고 보고하고, 내일 출근해서 마무리해도 돼. 나도 오늘 끝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랬더니 알겠다며 자기가 하던 일을 그대로 벌여 놓은 채 그냥 퇴근해 버리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제품 디스플레이가 안 된 텅 빈 선반을 보고 라라양이 어떻게 된 건지 저에게 묻더군요. 그래서 어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얘기해줬죠. 나나양이 자꾸 자기가 맡은 일을 저에 게 떠넘겨서 그동안은 제가 마무리를 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마무리하라고 얘기했다고. 그랬더니 라라양의 턱이 무릎까지 떨어졌어요. “뭐라고??? 그동안 나나가 자기가 다 끝냈다고 자기 어메이징하지 않냐고 막 스스로 대견해 하길래 내가 얼마나 폭풍칭찬을 해줬다고!!! 그런데 니가 끝낸 거였어???” “뭐라고?!?!?!” 이번엔 제 턱이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그랬구나……. 나나양이 그동안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하는 척만 하다가 매니저와 라라양이 퇴근하고 나면 그대로 두고 내가 출근하면 나한테 다 떠넘기고 자기가 했다고 보고했구나. 자기는 상만 펴고, 내가 허리 숙이고 무릎 꿇으며 열심히 밥 하고, 요리해서 상에 올려 놓으면 다음날 자기가 상 다 차렸다고 보고했구나. 이 꼬마 아가씨가 아직 어려서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줄로만 알았더니 오히려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잔머리 대마왕이었지 뭐예요.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절.대.로!!! 나나양이 마무리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넘겨 받지 않게 됐어요. 못 끝내면 내일 와서 끝내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제가 차려 놓은 밥상에 혹시나 또 숟가락을 얹을까봐 제가 하던 일도 절대로 그녀에게 맡기지 않아요. 제가 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그날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다가 퇴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일을 하고 있으면 나나양이 다가와서 말해요. “엘리, 나머지는 내가 마무리할게. 너는 어서 퇴근해.” 그러면서 제 등을 떠미는데, 다른 동료가 그랬다면 너무너무 고마웠겠지만 나나양이 하는 말은 저도 모르게 의심부터 들더라고요. 이렇게 그녀에 대한 불신이 점점 쌓여가던 어느 날. 드디어 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더는 못 참아!!!
매주 수요일은 상품이 입고되는 날이에요. 그 말인즉슨, 하루 종일 상품 스탁하고, 진열하는 일로 엄청 바쁘다는 말이죠. 그날 하루만 매장 안을 돌아다닌 거리가 6마일이라면 말 다 했죠. 만 보가 넘습니다. 그 만 보를 걸으면서 진열대 서랍을 열쇠로 열고 닫고, 무릎을 굽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백 번은 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수요일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완전히 기진맥진하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수요일은 집에 오자마자 시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상품 스탁하고 진열하는 속도가 다른 직원들보다 두세 배 빠르다 보니 매니저가 수요일마다 저를 너무 어여삐 여긴답니다.
사실 속도가 빠른 건 한국인의 종특이잖아요. 우리는 ‘빨리빨리’ DNA 를 갖고 태어났으니까요. 그래서 보통 속도로 해도 다른 직원들보다 빠를 수밖에 없죠. 그런데 ‘몇 시까지 이걸 끝내고야 말리라!’ 다짐하며 2배속으로 일을 하니 매니저가 이런 저를 너무 애정하셔서 수요일엔 반드시 저를 스케줄에 넣는답니다. 그런데 이게 제 입장에서는 너무 불공평한 거예요. 수요일에 나나양은 오히려 쉬게 하고, 저는 절대로 쉴 수가 없거든요. 제일 힘든 날, 제일 일을 안 하는 동료는 쉬고, 제일 열심히 일하는 저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 저도 수요일에 휴무 받아서 스탁 업무 좀 비껴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느 수요일에 나나양이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오프닝이어서 출근하자마자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며 스탁하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스탁 업무도 거의 끝나고 바구니가 6~7개 정도 남은 상황이었어요. 상품을 바구니에 나눠 담고 그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재고 보충을 하거든요. 그 정도면 저는 30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양이었어요. 사이즈가 큰 제품이라면 10분이면 되죠. 제가 30분간 점심 휴식을 다녀오면서 나나양이 아무리 못해도 바구니 3개 정도는 끝냈겠지 생각하며 돌아왔는데, 아니 글쎄, 바구니가 그.대.로.인 거예요!!! 너 30분 동안 뭐 한 거니?!?!?!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나나양은 머리카락에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있더라고요. 한숨을 삼키고 나나양에게 바구니 몇 개 안 남았으니 빨리 끝내자고 얘기하며 저는 다시 스탁 업무를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그녀는 마스카라를 바르고, 립스틱도 바르고, 일 하느라 바쁜 저를 따라다니며 립스틱 색깔이 어떠냐고 묻고, 요즘에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없었다며 밥 먹으러 가자는 둥 잡소리를 해대길래, “니가 시작한 바구니 마무리 좀 지어줄래?”라고 했더니 바구니를 들고 일을 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손님에게 다가가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묻더니 스몰토크로 시작해 네버엔딩 스토리로 이어지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그 바구니 1개를 가지고 4시간을 버티더라고요. 남의 일 가로채고, 자기 할 일 떠넘기고, 남이 한 일에 숟가락 얹는 것까지 참을 만큼 참았는데, 정말 더 이상은 못 참겠드아!!!!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 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