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는 지난 2022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수학자로는 최초 수상이었다. 4년마다 수여하는 필즈상은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허 교수는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필즈상을 수상했다. 필즈상을 수여하는 국제수학연맹은 “허 교수는 리드 추측을 비롯해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던 문제들을 독창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수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에서 초중고와 석사 학위까지 마치고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프린스턴대 교수와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고교 중퇴 학생
허준이 교수는 1983년 부모님이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 태어나, 2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그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버거워했고, 수학에 큰 관심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수학에 관심이 생겨서 경시대회나 과학고에 가볼까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이미 늦었다고 해서 포기하고 동네 일반고인 상문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건강상의 문제와 야간자율학습에 얽매인 생활이 힘들어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1년만에 자퇴했다. 그후 1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문학책을 읽으며 지내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에 한계를 느껴 시인의 꿈을 접게 된다.
이후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과학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재수학원에 들어가 입시준비를 했다. 거기서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서울대 물리학부에 입학했고, 물리천문학부와 수리과학부를 복수전공했다. 대학에 와 보니 주변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 공부를 게을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성적표엔 F가 가득했다.
다행히 4학년 때 위상수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순수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있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들으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첫 과학기사로 히로나카 교수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열심히 듣고, 그에게 다가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히로나카 교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으며 그는 전공을 수학으로 바꾸고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늦깎이 천재 수학자
그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대학교 12곳에 박사 과정을 지원했지만, 일리노이 주립대(UIUC)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거절당했다. 그래서 일리노이 주립대 박사과정에서 엄청난 열의로 학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박사과정 1학년 말에 50년 가까이 수학계의 난제였던 리드 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해냈다. 리드 추측이 해결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의 러브콜을 받고 학교를 옮겨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또 다른 난제인 로타 추측(Rota’s conjecture)을 풀어내 세계적 권위의 과학상을 휩쓸었다. 이후 그는 연달아 수많은 수학적 난제들을 해결하며 눈부신 업적을 쌓았고, 2022년에 미국인으로서는 14번째, 한국계로는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수학난제연구소 개소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1주년을 맞아 지난 7월 한국고등과학원은 허준이 교수의 이름을 딴 수학난제연구소를 열고 ‘허준이 펠로우’ 제도를 만들어 잠재력이 뛰어난 젊은 수학자들을 위한 자율적이고 장기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다. 20년 내에 두 번째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것이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의 목표다.
허준이 교수는 수학난제연구소 개소식 특강연에서 ‘인생과 수학에는 단 두가지 질문이 있다. 무엇이 참인가? 왜 참인가?’라는 말을 소개하며, “결국 깨끗하고 정확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을 반영하듯 그의 연구실 책상에는 모래시계, 노란 노트, 샤프연필, 그리고 그의 연구 주제인 정다면체 모형이 전부다. 연구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생각에 집중하고 떠오른 생각을 노트에 써 내려가며 정리한다. 매일 혼자서 똑같은 식당에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연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일상의 모든 자극을 차단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목표가 없다고 한다. 연구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며 즐겁게 지낸다고 한다. 그저 수학이 재미있어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은 진정한 수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