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라에서 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도난 사건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예요. 특히 메이크업 제품들은 크기가 작고 숨기기가 쉬워서 거의 매일 도난 사고가 일어났어요. 물론 도난방지 부서에서 감시하고, 도난 현장이 포착되면 바로 달려와 제지하지만, 담당자가 쉬는 날이나 퇴근 후, 또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에는 놓치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직접 경험한 도난 사건들도 여러 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어이 없는 사건 두 가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세상 스윗한 남편
그날은 저녁 7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어요. 한 부부가 9살 정도 된 남자 아이와 함께 매장으로 들어왔어요. 여자분은 평범했고, 남자분은 영화 ‘토르(THOR)’의 주인공 크리스 햄스워즈의 스몰 사이즈 느낌이었는데 출연료 입금되기 전의 홈리스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양쪽 팔에는 ‘수묵화’가 가득했고, 긴 머리는 꽁지머리로 묶었고, 러닝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이었어요.
들어오자마자 남자분은 향수 코너를 맴돌았고, 여자분은 랑콤 앞에서 서성거리더니 저에게 물었어요. “아르마니 파운데이션 써 봤어요?”
아르마니 파운데이션 소문은 들어봤지만 제가 직접 써 본 적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희 매장에서는 취급하지 않지만 직영점에서 취급할 수도 있으니 몰 안에 있는 직영점을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죠.
“내가 웬만한 건 다 써 봤는데 이상하게 제 피부에는 다 뜨더라고요. 그나마 랑콤이 좀 괜찮았는데…….”
그래서 여자분의 피부 타입을 물어보고, 혹시 다른 브랜드 제품을 써 볼 의향이 있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하길래, 샬럿 틸버리 섹션으로 함께 갔어요. 샬럿 틸버리 섹션은 세포라 매장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서 매장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향수 코너와는 반대 방향이었어요.
파운데이션을 덜어서 스폰지로 그 여자분의 손등에 발라주었는데 파운데이션을 바르자마자 이 여자분이 갑자기 오바 육바를 하면서,
“이것 봐요!!! 이렇게 뜬다니까!!! 봐봐요, 봐봐!!!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전혀 뜨지 않았거든요. 속으로 ‘파운데이션이 뜬다는 게 뭔지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인이 뜬다고 오도방정을 떠니 어쩌겠어요. 그래서 다른 파운데이션을 발라보자 하고 로라 메르씨에 섹션으로 와서 다시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었어요.
“봐봐요!!! 또 뜨잖아요, 봐봐!!! 나 샬럿 틸버리도 써 봤고 로라 메르씨에도 다 써 봤는데 이렇게 떠서 반품했던 것 같은데……. (남편 쪽을 향해서) 자기야! 내가 반품했던 게 샬럿 틸버리 맞지? 그리고 로라 메르씨에도 반품했었지?” 하니까, 향수 코너에 있던 그 남자분이 저희 쪽으로 오면서 그러더군요.
“맞아, 그 브랜드 다 반품했잖아.”
‘아니, 와이프가 한두 번 쓰고 반품한 브랜드들을 다 기억한다고?!?! 자상함이 저 세상 레벨이네!!!’
그런데 그 여자분이 자기는 그나마 랑콤이 잘 맞았다고 해서, 그럼 랑콤 제품을 발라서 다른 제품들과 발림성을 비교해보자 하고 다시 랑콤 섹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랑콤 파운데이션을 손등에 발라줬더니,
“이게 그나마 낫지만 이것도 뜨잖아요. 봐봐요!!”
아니, 내가 보기엔 씹던 껌 어금니에 ‘촥’ 달라붙은 것처럼 밀착력이 좋기만 하구만, 자꾸 뜬다고 하니 이 분은 파운데이션이 뜬다는 의미를 모르는 게 확실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화장한지 반나절이 지나서 뜨기 시작하는 제 이마의 파운데이션을 보여주며 말했죠.
“여기를 보세요. 파운데이션이 피부에 밀착되지 않고 피부로부터 분리된 거 보이시죠? 이 정도를 뜬다고 하는 건데, 고객님이 바른 파운데이션은 잘 밀착되어 있는 걸로 보여요. 물론 알맞는 프라이머를 사용하면 훨씬 더 마무리가 좋겠죠. 일단 오늘 테스트 해본 파운데이션들 제가 샘플을 만들어 드릴테니 집에 가서 며칠간 사용하며 비교해보세요.”
“그냥 직영점에 가서 아르마니를 구입해야겠어요. 사고 싶었던 게 그거라서 다른 제품 사면 후회할 것 같아요.”
그래서 흔쾌히 그렇게 하시라고 했죠. 그러니 남편을 부르더군요.
“자기야, 아르마니로 사기로 했어. 직영점으로 사러 가야 해.”
그러자 남자분이 흔연히,
“렛츠 고!!! 직영점이 어딘데?”
“타코마에 있는 몰에 있어.”
“그럼, 당장 태워다 줄게!”
저는 또 한번 깜짝 놀랐어요.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데, 40분이나 걸리는 곳까지 와이프 파운데이션을 사기 위해 데려다 준다고?!?!
그래서 제가 그 남자분에게 엄지를 치켜 세우며 말했어요.
“진짜 좋은 남편이시네요!!! 와이프의 쇼핑을 위해서 이 시간에 40분 운전을 기꺼이 해주시다니!!!”
그러자 남자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고 갔어요.
알고보니 도둑놈
그리고 휴식 시간을 끝내고 돌아온 동료가 향수 코너의 몽블랑 향수 테스터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어요. 도난 방지를 위해 향수에 붙여 놓았던 시큐리티 장치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고요.
그 시간에는 도난방지 부서의 직원이 이미 퇴근한 후라서 제가 다음 날 아침 세포라 매니저에게 보고를 했어요. 그러자 세포라 매니저가 도난방지 부서로 가서 카메라를 돌려보고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양쪽 어깨에 문신 잔뜩 있고, 머리 묶고, 펑키하게 생긴 남자랑 아이 데리고 온 여자랑 커플 같던데 기억나? 너랑 샬럿 틸버리에서 파운데이션 보는 동안 그 남자가 훔쳐갔어.”
으아니!!!이런 수박 씨발라 먹을 놈이!!!!!! 자상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도.둑.놈.이셨쎄요?!?!?!? 세상에!!! 어린 아들래미까지 데리고 와서 마누라는 직원 붙잡고 오도방정을 떨며 바람잡이 하고, 그 사이에 남편놈은 도둑질이라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엄지 손가락 치켜 세우며 ‘굿 허즈번’이라고 칭찬한 내 주둥아리를 미싱으로 오버로크 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불과 며칠 뒤에 또 어떤 남자한테 깜빡 속았으니 가슴을 칠 노릇이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미스터 빈
며칠 후 한 중년 남성이 저희 매장에 와서 혹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구하냐며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자기는 밸뷰(Bellevue)에 있는 세포라에서 22년간 일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서. 그 사람의 인상착의가 하도 특이해서 이걸 묘사하지 않고는 이야기가 안 되니 일단 설명을 해드릴게요. 여러분 혹시 ‘미스터 빈(Mr. Bean)’ 아시나요?
그 남자는 미스터 빈보다 약간 호리호리한 체형이어서 말하자면 살 빠진 미스터 빈 얼굴이었어요. 복장도 미스터 빈 그대로, 심지어 붉은 넥타이와 옷 색깔도 그대로였어요. 얼굴에 얇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가에는 반짝이는 큐빅을 군데군데 붙이고, 입술은 보톡스를 과하게 맞아서 물에 빠지면 입술만 물 위에 동동 뜰 것 같은……. 그런데 향수는 또 얼마나 뿌렸는지 너무 역해서 정신이 나갈 정도였어요.
그래도 양복을 갖춰 입고, 메이크업도 하고, 향수도 뿌리고 와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구하냐고 물으니 콜스 백화점의 부매니저와 얘기해 보라고 연결해주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너무나 신이 난 모습으로 저에게 다시 오더라고요.
“매니저가 지금 사람 구하고 있대요. 아마도 2주 안에 같이 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파운데이션을 골라 달라는 거예요. ’22년간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했다는 사람이 자기 파운데이션을 골라 달라고??? 지금 내 실력을 테스트하는 건가? 아니면,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는 말이 거짓말인가?’
어쨌든 골라 달라고 하니까 ILIA 브랜드의 틴티드 모이스춰라이저를 추천해줬어요. 그리고 색깔을 하나 골라서 그의 손등에 테스트를 했는데, 오 마이 갓!!! 열 손가락의 손톱에 때가 까맣게 끼어서 느무느무 드러웠……. 게다가 손에는 온통 긁힌 상처에, 지문이 다 벗겨져 맨들맨들한 것이 너무 이상했어요. 손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 손 관리를 이렇게 했다면 자질이 부족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처음 테스트한 파운데이션 색깔이 너무 밝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다른 색을 권했어요.
“이건 너무 밝은 것 같은데, 조금 어두운 쉐이드도 한번 발라보죠.”
“난 이거 좋아요. 이걸로 할게요.”
그런데, 그 색이 정말 너무 밝았단 말이죠. 분명히 하얗게 뜰텐데 본인이 좋다고 하니, 게다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고 하니, 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었죠. 그래서 알겠다고 하니 제품을 들고 세포라 매장 밖으로 그냥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아, 세포라 제품은 매장 안에서 계산하셔야 돼요, 혹시 콜스에서 쇼핑하실 거면 제가 제품 홀드하고 있다가 계산하실 때 도와 드릴게요.”
“오, 알겠어요. 그러면 아까 추천해주셨던 어두운 톤의 파운데이션 샘플도 만들어줄래요?”
그래서 계산대로 함께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샘플을 만드는 동안 정적이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제가 물어봤어요.
“세포라에서 일하셨다고요?”
“네, 제가 18살 때 밸뷰에 있는 세포라에서 일했어요. 저 지금 4X살이에요.”
“어머, 저랑 동갑이시네요! “
“저랑 동갑이라고요? 정말 어려 보이네요.”
“그쪽도요!!! (돈 안드는 영혼 없는 칭찬 멘트 아시죠?)
“저는 원래 밸뷰에 살았는데 2주 전에 이 동네로 이사 왔어요, 여기 세포라가 있다는 거 알고 너무 신났잖아요. 그래서 일해 보려고요.”
“어머, 환영해요! 좋은 소식 있으시면 좋겠네요.”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가 구입한 파운데이션을 스캔하고 세포라 뷰티 인사이더 리워드가 있는지 물었어요. 그런데, 없다네요!?!?
‘으잉??? 세포라에서 22년을 일했는데 세포라 리워드가 없다고???’
어쨌든 결제를 부탁드렸습니다.
“현금카드, 신용카드 되죠?”
“그럼요! (으잉? 현금카드, 신용카드 안 되는 체인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카드를 긁었는데 승인거부! 뭔가 불안했는데 역시나였어요.
“카드 승인이 거부되었는데, 혹시 다른 카드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현금 있으세요?”
“아니요.”
“…….”
저는 그분의 결정을 기다렸죠. 그런데 그분이 곤란한 표정으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이렇게 묻더라고요.
“혹시 카드사가 본인이 아닌 사람이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카드 승인이 거절된 걸까요?”
“글쎄요, 이유는 나오지 않으니 저도 알 수가 없네요. 죄송해요.”
그리고 또 다시 저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어서 아무래도 제가 마무리를 지어야겠더라고요.
“이 파운데이션 제가 홀드하고 있을테니 나중에 다시 오시겠어요?”
“오케이, 그럴게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매장을 나갔습니다. 그가 나가자마자 동료와 눈이 마주쳤는데 박장대소하는 거예요.
“너, 저 사람이랑 얘기해 봤어?”
그러자 그 동료가 질색팔색하며,
“노우!!! J(도난방지 부서)가 워키로 저 사람이 전에 여러 번 물건 훔친 적 있다고 했는데 못 들었어?”
“WHAT?!?!”
제가 영어로 아직 멀티 커뮤니케이션이 안 돼서 미스터 빈과 대화하느라 이어폰으로 들리는 J의 말을 놓친 거였어요. 으아니!!! 자기가 물건 훔친 가게에서 일하겠다고 다시 오는 그 뻔뻔함이라니!!!
다음날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이 상황을 얘기했더니 그 친구 왈,
“어, 누구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아!!! 미스터 빈 닮은 키 작은 남자 말이지? 그 남자 몇 달 전에 와서 향수 훔치려다가 들켜서 다 내려놓고 그냥 갔어.”
에휴~ 또 당했네. 또 당했어!!! 그래도 파운데이션 들고 가려는 거 막았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네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