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처음 여행한다면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꼭 가봐야 하는 리스트에 올려 놓고 관광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파리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거나 혹은 일정이 좀 여유로운 분들에게는 또 하나의 명소, 빈센트 반 고흐의 집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를 소개해 드립니다.
화가의 산책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파리 근교에 위치해 있습니다. 파리 지하철 북역(Gare du Nord)에서 출발하는 H 기차를 타고 퐁투아즈(Pontoise)역까지 가면, 이 역에서 오베르(Auvers)역까지 바로 연결되는 기차가 있습니다.
오베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화가의 산책로(The Painter’s Walk)”입니다. 이 산책로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오베르에 살면서 그린 모든 풍경과 건물들이 있는 장소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시간은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오베르 성당
산책로의 초입에서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 성당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고흐가 그린 그림과 실제 성당을 비교해 보면 성당의 모습이 예전과 거의 그대로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물론, 그림에서는 건축물에 대한 고흐 자신만의 해석과 붓터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오베르 성당을 나와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을 지나면 드넓은 밀밭을 만나게 됩니다. 고흐가 그렸던 밀밭 들판을 걷는 동안 나는 광대하고 끝없는 바다를 볼 때 느끼는 내면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파삭파삭한 밀밭의 한가운데서 달콤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들판을 간질이고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걷는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하늘, 까마귀, 구름과 물결치는 밀밭 속을 걷다가 마침내 그가 그림을 그렸던 그 각도, 그 위치에 섰을때 고흐의 그림은 하나의 그림을 넘어 그 당시 고흐의 현실 세계로 나를 이끄는 듯했습니다.
지난 번 파리 여행 때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을 박물관에서 보았는데, 그 그림의 실제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런 현장감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가 그려진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Barbizon)을 방문해 이런 생동감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덧 밀밭의 끝에 이르자 길은 마법의 숲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져 자연스런 터널을 만들고, 그 건강하고 꽉 찬 녹색의 그늘 속을 걷다보면 여기 저기서 새 소리가 들리고, 마치 동화속 요정들이 내 눈 앞으로 지나갈 것만 같은 매혹적인 숲길이었습니다.
오베르 마을
숲길을 지나면 오베르 마을에서 마지막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흐가 그린 오베르 시청과(Mairie d’Auvres-sur-Oise)과 다비니 정원(Le Jardin de Duabigny)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고흐의 눈으로 재해석된 자연과 건축물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빈센트 반 고흐의 집이 보입니다. 고흐가 마지막에 자살한 2층 침실을 직접 가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보는 게 편안하지 않아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어둠과 평화
이 작은 마을을 걷는 동안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주 밝고 편안했지만, 고흐의 그림들은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둠’이었습니다. 그가 이 마을에 사는 동안 그렸던 모든 그림에서 그가 안고 있던 어둠과 그가 죽기 전에 느꼈던 슬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란 밀밭조차 어둡고 피곤하게 보였습니다. 고흐의 그림 대부분이 그가 자살했던 1890년에 채색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내면의 고통과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이 그림들을 통해 표현하며 마지막 삶의 의지를 그림에 걸고 살았다고 느꼈습니다. 그가 붓을 든 하루하루는 그가 살고자 했던 하루였을 것입니다.
오베르 수르 우아즈를 방문한 후 나는 오르세 박물관(Orsay Museum)을 방문해 고흐가 그린 그림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면서 밀밭에 부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고흐의 내면에서 일렁이던 불안과 평화를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베르 마을과 그곳에서 보낸 고흐의 마지막 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나의 감정들이 이 그림들 속에서 더 분명하게 이해되고 조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이 아름다운 마을에 가서 어느 평범한 화가가 예술 역사에 자신의 길을 닦으며 느꼈던 어둠과 한 줄기 평화를 같이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