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남자
당신은 호락호락한 사람인가, 깐깐한 사람인가? 가족에게 엄격한가, 너그러운가? 사람들이 당신을 어려워하는가, 편하게 생각하는가? 지금은 어떤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쉬운 남자다. 원래도 쉬운남자인데 점점 더 쉬운 사람이 되어간다. 우선 잘 따지지 않는다.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대체로 오케이한다. 남들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가족한테 그렇다. 우선 아내와의 관계가 그렇다.
아내는 우리 집의 절대 권력자다. 모든 의사결정을 아내가 한다. 다른 집은 큰 건 남자가 작은 건 여자가 결정을 한다는데 우리 집은 대소사 모두 아내가 결정한다. 내가 결정하는 건 거의 없다. 집을 사고 옮기는 일이나, 아이들 교육, 휴가 장소와 날짜, 식당에서의 메뉴와 텔레비전 프로까지 모두 아내가 결정한다. 심지어 내 옷과 신발을 고르는 것도 아내가 결정한다. 내 취향보다는 아내의 취향이 중요하다. 요즘은 투표할 사람까지 아내가 정해준다. 대체로 그 결정이 합리적이라 난 순순히 따른다. 그 동안 아내에게 따진 적이 거의 없는데 앞으로도 따지지 않을 예정이다.
아내는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요즘은 손자 양육까지 깊이 관여해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어 보인다. 안 그래도 힘든 아내에게 나까지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난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직업적인 일 외에는 대부분의 일에 서툴고 어설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의견을 내서 아내의 속을 긁고 싶지 않다.
쉬운 아빠
두 딸과의 관계도 일방적이다. 그들은 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나를 놀린다. 큰 애는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자기 할 말을 하는 편이다. 내가 뭔가 실수를 하면 어김없이 큰 애가 빛의 속도로 피드백을 한다. 그럼 이실직고하고 사과해야 한다. 앙탈을 부리면 일이 커진다.
둘째는 다르다. 둘째는 소심하고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싫은 얘기는 절대 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특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사람이 달라진다. 눈이 빛나고 자신감이 넘친다. 허점이 많은 난 완전 둘째의 밥이다. 본인 말로는 내가 잔소리를 부르는 스타일이란다. 아빠 왜 문자에 답을 안 해? 왜 음식을 흘려?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엄마를 열 받게 해? 하며 온갖 소리를 다한다.
난 앙탈을 부리며 저항하지만 번번이 진다.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식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래도 괜찮다. 밖에서 못한 소리 집에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도 편한 사람이 돼 주어야지 나까지 그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심플 라이프
무엇보다 나는 가족들이 놀리고 잔소리하는 것이 노엽지 않다. 나를 사랑하니까 저런 행동을 한다고 이해한다. 만약 그들이 마음 문을 닫으면 내게 정중하게 대할 것이고, 온갖 예의를 다 차리고 옆에 오지 않으려할 것이다. 난 그것보다는 지금처럼 나를 쉽게 대하는 것이 좋다. 내가 가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나는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싶지 않다. 아내와 싸워 이기고 싶지 않다. 논리적으로 따져 딸들을 꺾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 이겨서 뭘 할건데? 피곤하고 늙은 꼰대 취급을 할 것이고 결국 나는 독거노인이 될 뿐이다.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은 이미 떠난 그런 사람이다. 난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해 얘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영양가가 없는 일은 쓸데없이 따지고 논쟁하는 일이다.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동의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좋다.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태클을 거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논쟁을 잘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일시적인 우월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사이가 좋으면 그 자체가 천당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는 것처럼 토론을 피하라. 자기 의사와 반대로 잠시 설득을 당하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굳게 지킨다.” 내게 대인관계의 눈을 뜨게 해 준 데일 카네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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