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사상 최고의 시청률
공화당 1차 경선 방송 토론은 2015년 8월 6일, 공화당 TV 방송 채널인 팍스 뉴스(Fox News) 주최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개최되었다. 트럼프가 출마 선언을 한지 약 한 달 보름이 지난 시점이었다.
공화당에서는 무려 17명이나 되는 후보가 경선에 나왔는데, 이렇게 많은 후보가 나온 것은 미국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워낙 숫자가 많기 때문에 원활한 토론을 위해서는 후보를 10명 이내로 줄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선정 기준은 최근 다섯 번의 전국 여론조사 순위였다. 그리고 10명 후보들의 자리배치는 여론조사 1위가 중앙, 2위가 그 오른쪽, 3위가 그 왼쪽 서는 방식이었다.
트럼프는 존 매케인과 젭 부시를 상대로 한 노이즈 마케팅 덕분에 출마 선언 한 달 보름만에 여론조사 1위로 등극해 무대의 중앙을 선점했다. 그의 오른쪽에는 2위 젭 부시가 배정되었다.
이날 트럼프와 젭 부시의 맞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무려 2천 4백만 명이 이 토론회를 시청했다. 이는 스포츠를 제외한 전체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역대 최대 숫자였다. 시청률 또한 15.9%를 찍으며 공화당 경선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여성 앵커와의 설전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트럼프와 젭 부시의 맞대결이 아니라, 트럼프와 토론 진행자 중 한 명인 여성 앵커 매긴 캘리(Megyn Kelly)와 설전이었다. 당시 토론 진행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대선 본선 마지막 3차 토론을 단독으로 진행한 베테랑 앵커 크리스 월레스(Chris Wallace), 팍스 뉴스의 저녁 6시 프로그램 진행자 브렛 베이어(Bret Baier), 그리고 팍스 뉴스 저녁 9시 프로그램 진행자 매긴 캘리였다. 매긴 캘리는 친 공화당 방송인 팍스 뉴스 소속이지만, 민주당 CNN에 가까울 정도로 민주당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7년 1월 팍스 뉴스를 떠나 NBC로 이적하였다. 이 날 그들이 설전을 주고받는 장면을 잠시 지켜보자.
캘리: 사람들이 트럼프 후보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후보님이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나쁜 면도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여성에 관한 것이라면요. 후보님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뚱땡이 돼지, 개, 속물, 역겨운 것이라고 불러왔습니다.
트럼프: 단지 로지 오도넬에게만 그랬습니다. (*Rosie O’Donnell,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
캘리: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후보님의 트위터에는,
(청중의 박수)
트럼프: 감사합니다.
캘리: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로지 오도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아니오, 확실합니다.
캘리: 후보님의 트위터를 보면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혐오스러운 표현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후보님은 언젠가 <어프렌티스> 프로그램의 경쟁자에게 무릎 꿇은 모습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이 대통령이 가져야 할 인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후보가 될 것 같은데, 그녀는 당신이 여성비하자라고 공격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후보님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트럼프: 우리나라가 가진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는 것입니다.
(청중의 박수) … 후략 …
이날 트럼프와 매긴 캘리의 설전은 미국의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또한 토론 후에도 그들은 자극적인 막말 공방을 이어갔는데, 이는 트럼프와 매긴 캘리 양쪽이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자신들의 주가를 올리려는 선수들끼리의 계산된 플레이로 보였다. 왜냐하면 얼마 후 매긴 캘리는 자서전을 내고 NBC, CNN 등으로 이적하기 위해 조용히 면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식의 설전과 막말 퍼레이드는 대선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이런 이슈들을 십분 활용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언론들이 오늘은 트럼프가 또 무슨 막말을 했는지 날마다 트럼프의 이야기를 퍼 나르게 되었고, 그 덕분에 트럼프는 수많은 악평의 홍수 속에서도 여론조사 결과는 늘 부동의 1위였다.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