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40대에 정치에 뜻을 두다
젊은 시절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벌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쇼 비지니스를 통해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 가면서 정치 입문 기회를 계속 타진했다. 구체적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부시 시니어가 당선된 1988년 대선 때부터 그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트럼프는 부시 시니어의 부통령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때 그의 나이 42세였다.
빌 클린턴에 이어 부시 주니어가 당선된 2000년에는 개혁당(Reform Party)의 대표로 대선 출마를 시도하였고,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15,000표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어 2004년에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다가 포기하였다.
한국에서는 대선에서 한번 지더라도 다음 대선에 다시 나갈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한번 대선 후보가 된 사람이 다시 출마하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후보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에 한번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 싸우고 이겨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선 가능성이 확실히 있을 때 대선에 뛰어 들어야 하는 것이다.
2012년 오바마의 재선 때는 트럼프가 매우 진지하게 대선 출마를 고민했다. 2011년 3월에 발표된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방송의 합동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트럼프가 당시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밋 람니(Mitt Romney)를 포함한 다른 후보들을 앞서 있었다. 그러나 2011년 5월 16일, 트럼프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대신 밋 람니를 공개 지지했다. 당시 오바마가 강력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상한 대로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밋 람니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4년의 시간이 흘러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트럼프가 지명되자 밋 람니는 대선 기간 내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였고, 이에 트럼프는 람니가 2012년 대선 때는 자신을 찾아와 도와 달라며 애걸복걸하더니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다며 맞받아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선이 끝난 후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다시 밋 람니를 초대해 자신의 국무장관 후보로 그를 인터뷰한 것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트럼프의 중요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기는 게임만 하는 비지니스맨
트럼프는 비지니스맨이다. 정치는 그에게 또 하나의 비지니스다. 비지니스맨으로서 그는 오직 성공만을 추구하며 이기는 게임만 한다. 또한 그는 게임을 시작하면 성공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체면’은 그의 사전에 없다. 오직 이기는 전략만 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뱉고 다른 사람을 모욕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가 유치하고 충동적인 ‘똘아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계산된 언론 플레이, 노이즈 마케팅이다.
그는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면 거의 항상 두 배로 반격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계산된 말을 하고 사람들에 대한 태도도 쉽게 바꾼다. 예를 들면 오바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오바마를 만나면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추켜 세운다. 한국에 대해서도 부자가 된 한국이 미군 주둔비용을 안 낸다고 공격하다가, 다음날에는 “I love Korea!”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를 욕해도 그는 웃는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우리의 관심을 얻었고 더불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단의 시간
2013년에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립한다. 그가 6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고,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4년에 트럼프는 공화당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뉴욕 주지사 출마에 관심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의 야망은 뉴욕 주지사가 아니었다. 2015년 2월, NBC와 ‘어프렌티스’ 프로그램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서 그의 대통령 출마설에 불을 지폈고, 마침내 2015년 6월 16일,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처럼 트럼프는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사업적 야망과 정치적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대권 도전을 위해 약 30년 동안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그의 나이 70세를 목전에 두고 이번에는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과감하게 대선 레이스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세계 주류 언론들의 예측을 뒤엎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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