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뉴스 [제롬의 마주 이야기] 그린스보로에 살던 주민, 정용철 교수

[제롬의 마주 이야기] 그린스보로에 살던 주민, 정용철 교수

0
제롬 [email protected]

가을에 생각나는 반가운 얼굴
가을이 되면 내가 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는 길은 단풍이 정말 장관이다. 개인적인 생각엔 경춘가도의 경관에 내장산의 단풍을 입혀놓은 듯한 분위기랄까….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은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에 노스 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에 사시는 분들이 보시면 특히 더 반가워하실 분과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바로 서강대 체육대학원 스포츠심리학과의 정용철 교수이다.

종신 교수직 포기하고 귀국
정용철 교수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노스 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에서 살았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A&T University에서 스포츠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2006년부터 그린스보로 한국학교 교장, 재미 한국학교 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필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조금 덧붙이자면 정용철 교수는 군대시절 소대장이었으며, 그 외에도 자잘한 인연이 계속 이어져왔다.

보통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여기서 계속 사는 경우가 많은데, 정교수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우선 아버지가 은퇴하시면서 이제는 자식과 손주들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고, 마침 그 시점에 큰아들이 6학년이라 중학교에 진학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공부한 것을 한국의 후학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테뉴어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느끼게 될 변화와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잘 적응했을까? “둘째가 4학년, 막내는 유치원생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적응하기가 나름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비슷한 연령대의 두 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멘탈 코치
작년에『스포츠 인권을 만나다』라는 공저를 낸 정용철 교수가 요즘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스포츠와 인권에 대한 책을 내긴 했지만 아직 그쪽 분야의 활동은 많지 않고, 지금 주로 하는 일은 운동선수들의 최고 수행을 돕는 멘탈 코치예요. 한국에는 스포츠 심리 상담사라는 자격증 제도가 있고, 지금도 나는 미국 응용스포츠심리학회 공인 컨설턴트로 있어요. 그래서 시합을 앞두고 선수들 개인의 심리 상태를 체크하고, 불안하고 긴장한 마음을 토닥거리는 일을 해요. 팀을 맡으면 팀 전체의 응집력도 함께 관리하고요.”

정용철 교수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의 멘탈 코치로서 선수들이 항상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동반자 역할을 수행했다.

생활 속 스포츠와 인권
그렇다면 스포츠와 인권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정교수는 이해를 돕기 하기 위해 <4등>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해주었다.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가 대회에 나가면 자꾸 4등을 했다. 아들이 1등을 하기를 바라는 준호 엄마는 수영코치를 새로 바꾸고, 코치는 체벌까지 동원해 준호를 1등으로 만들려고 한다.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다”는 엄마와, “맞으면서 꼭 1등을 해야 하냐”는 아이, 그리고 “때리는 스승이 진짜 스승”이라는 코치와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영화 <4등> 찍을 즈음에 그 영화를 제작한 국가인권위에서 연락이 왔어요. 나도 어릴 때 수영을 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이 잘 이해가 됐고, 그래서 책까지 쓰게 된 인연이 됐어요. 그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마도 엄마일 거예요.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둥바둥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경쟁과 비교에 눌려 있는 삶이잖아요. 배우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너무나 리얼하게 잘 표현해줘서 다들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어릴 적에 선생님이나 코치가 종종 그런 말을 했다. ‘이 다음에 커서 생각해보면 네가 엇나갈 때 혼내고 때려서라도 잡아준 선생이 진짜 좋은 선생이란 걸 알게 될 거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와 지도자의 조바심과 열등감,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왜곡된 열정이라면 운동을 하는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는 일이 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다른 질문을 하나 던져 보았다. 이 양반이 그래도 한국에선 나름 유명인사다. 지난 정부 시절 누구는 못올라가서 섭섭해 했다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일로 어려움은 없었을까? “체육계에는 워낙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분들과 함께 시민단체 활동을 했죠. 평화마라톤대회도 하고 체육계 비리나 폭력, 성폭력에 대해 비판하고…. 체육시민연대라는 단체에서 3년 정도 집행위원장을 했고 지금은 문화연대라는 단체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건 문화연대 집행위원으로 있을 때 워낙 단체가 심하게 찍힌 단체라 별 활동 안 해도 이름이 올라갔어요. 그렇다고 어디 불려가서 고초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그동안 너무 바빠 안식년도 없이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큰아이가 군대에 가는 상황이 되고 보니 그동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며 세월무상의 대답만 돌아왔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고 졸린 눈 비비며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때울 이 형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분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조금 더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에 살게 된 것에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정용철 교수의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