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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동안 받은 덕 나누며 살고 싶은 유충현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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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동안 받은 덕 나누며 살고 싶은 유충현 회장님

 

유충현 전 랄리한인회 회장님은 동네 착한 형이나 오빠 같은, 사람 좋은 인상에 선한 미소를 가진 분이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말씀도 차분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힘 닿는 한 적극 도와 주시고, 때로는 크게 밀어주신다. 슬림한 체형에 키가 약간 크셔서 동화책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분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강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유회장님은 그런 통념을 뒤집으며 세탁업계의 숨은 대부가 되셨다. 그래서 KORAN LIFE가 유충현 회장님을 만나 유회장님의 인생 스토리와 사업성공의 비결을 들어 보았다.

농사를 물려받은 셋째 아들
유충현 회장님은 유관순 열사가 살던 천안의 시골 마을에서 7남매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오니 아버지께서 중대 발표를 하셨다. 아들 넷 중에 첫째와 둘째는 이미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막내는 아직 어리니 셋째인 너에게 농사를 물려주겠다는 말씀이셨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1년간 농사를 지은 결과 자신은 농사 체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사업자금을 받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없는 젊은이에게 사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과 미국 이민
그러다가 중매로 옥자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끼며 사랑을 꽃피우고 결혼을 해서 예쁜 두 딸을 낳았다. 당시 처가댁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미국 이민을 계속 저울질하다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미국에 도착한 것이 1984년 7월 4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랄리는 너무 시골이어서 도로들이 모두 2차선이고 그나마 차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이 없어서 살기도 불편했다. 그래서 한인들이 많은 뉴저지로 가서 6년 정도 살다가 세탁소를 열기로 결정하고 다시 랄리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상가 렌트비가 많이 오르고, 중동 사람들이 세탁업에 진출하면서 반값도 아닌 1/3 가격으로 비지니스를 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도 떨어지지만, 당시만 해도 세탁업은 백인과 한인들뿐이어서 경쟁도 없고 일감도 많았다.

사업가의 안목
처음 옥자씨와 세탁소를 시작했을 때는 너무 일이 많아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고 2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새벽 6시부터 나와 일을 하는 날이 많았다. 아름답고 상냥한 옥자씨가 카운터를 맡고 있으니 손님도 나날이 늘고, 돈 버는 재미에 몸은 힘들어도 일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면서 2호점부터 차례로 오픈을 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새 매장을 오픈할 때가 되면 마치 우연처럼 쇼핑센터들에서 연락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받고 가서 쇼핑센터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면 1년 매출액이 거의 정확하게 예측이 되어서 실패 없이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매니저를 맡은 분들도 20년 이상 내 일처럼, 가족처럼 일해 주셔서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늘이 주신 인덕 나누며 살기
유회장님은 그것을 하늘이 주신 ‘인덕’이라고 표현했다. 젊은 시절 옥자씨와 함께 열심히 일했고, 사업가로서 로케이션을 보는 남다른 안목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늘이 주신 우연 같은 기회들과 내 일처럼 성실하게 일해 준 분들의 인덕이 사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유회장님은 이제 딸들도 모두 출가해서 잘 살고 있고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으니 지금까지 받은 덕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1년이 다 되도록 공석으로 비어 있던 한인회장 자리를 맡은 것도 그런 맥락이었고, 한국 전쟁 참전 베테랑들과 그 가족분들을 초대해 사비로 위로잔치를 열어 드린 것도 그런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한국에 자주 나갔는데,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80 넘은 할머니가 시장 카트에 폐지를 싣고 기우뚱 기우뚱 가시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됐다고 한다. 그걸 팔아 하루에 3천원을 번다는 말씀을 듣고 “어르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하며 100불씩 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시적인 도움보다 장애나 집안에 다른 어려운 사정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장기적으로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내가 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봉사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유회장님의 조용한 미소가 마음에 따듯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