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인 사회적 협약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모습 ©imdb.com
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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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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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퀘어
The Square (2017)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주연: 클라에스 방

두 개의 ‘스퀘어’

2015년, 스웨덴 베르나모 지역의 반달로룸 디자인 미술관에 ‘스퀘어(Square)는 신뢰와 배려의 영역이고, 모든 것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한다’는 메세지를 담은 4미터의 정사각형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이 예술 프로젝트는 곧 북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고안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를 만들어 2017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예술 프로젝트 ‘스퀘어’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협약이 인도주의적인 가치로 이어지는 긍적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더 스퀘어’는 그 공간 안에서 현대인이 행하는 온갖 위선과 모순을 비웃고, 무능한 현대의 엘리트주의와 스웨덴의 기득권층이 가진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스퀘어의 허구

세계적인 예술작품과 최첨단 전시로 유명한 스웨덴 스톡홀롬의 X-Royal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앙은 ‘서로를 돌보는 믿음의 성역’을 주제로 한 대규모 미술 전시회 ‘The Square’ 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크리스티앙의 아침 출근길. 세련되고 깨끗한 도시 이미지와는 반대로 주변을 맴도는 많은 이민 노숙자들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풍경의 스톡홀롬 광장(The Square)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한 여자가 크리스티앙에게 자신을 죽이려는 남자가 쫓아온다며 긴급히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를 도와준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에 뿌듯해 한다.

그런데 크리스티앙은 곧 자신이 그 여자를 도와줄 때 자신의 지갑과 휴대폰, 심지어 소매 커프스까지 소매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부하 직원과 함께 전화 추적장치로 소매치기가 사는 곳을 알아내고, 그 건물에 사는 50가구의 모든 우체통에 ‘나는 네가 도둑이라는 것을 안다’로 시작하는 협박 편지를 집어 넣는다.

인터뷰하는 크리스티앙과 ‘YOU HAVE NOTHING’ 네온싸인 ©MOM

지식인의 허구

영화는 크리스티앙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가 마주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그가 내리는 결정과 태도를 조명한다. 지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계급인 크리스티앙은 자신감 넘치고 합리적이며 유능한 동료이자 박애와 평화를 사랑하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어느 날 크리스티앙이 저널리스트 앤과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앤은 크리스티앙이 썼던 ‘전시’와 ‘비전시’의 의미에 대해 물으며 예술의 본성에 관한 이론적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크리스티앙은 그 질문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는 약삭빠른 임기응변으로 그 상황을 훌륭하게 모면한다.

“당신 가방을 미술관에 전시하면 그것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이는 마치 뒤상이 변기를 전시해 논란이 되었던 ‘샘’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미술계를 영원히 괴롭힐 ‘예술의 범주’라는 개념적 문제를 통해 크리스티앙의 지적 허구와 피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크리스티앙의 뒤로 보이는 ‘YOU HAVE NOTHING.’이라는 네온사인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스퀘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크리스티앙 ©frieze.com

신뢰와 돌봄의 공간 ‘The Square’의 메세지를 청중들에게 열정적으로 전달하는 그의 모습과 그의 실제 일상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거리에 즐비한 노숙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크리스티앙은 가끔씩 자기만족을 위해 적선을 하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하며, 손상된 예술작품을 작가 몰래 고쳐 놓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협박 편지에 피해를 입고 사과를 요구하는 이민자 소년을 계단에서 밀어 버리고, 광란의 파티 후에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는 그 여자를 믿지 못해 자신이 사용한 콘돔을 사수한다. 맙소사!

돈이 되는 예술

한편,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잃어버린 지갑과 휴대폰을 되돌려 받지만, 이 일로 인해 벌어진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몰두하느라 당시 전시 계획 중이던 ‘더 스퀘어’의 마케팅 을 외주 업체에 맡겨 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술의 가치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마케팅 업체는 최고의 동정심 유발 효과를 노리며 금발의 노숙자 아이가 스퀘어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아이가 스퀘어 안에 서자 폭발물과 함께 터져버리는 충격적인 영상을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유투브에 업로드한다.

그 결과 이 영상은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사회적 이슈가 되고, 크리스티앙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에 힘입어 스퀘어 전시는 성공하게 될 것이 암시된다. 이는 미술관의 작품들이 그 예술적 가치보다는 돈으로 환원되는 퇴폐적인 현대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협약과 방관자들

미술관에서 유명 인사와 부유한 후원자들을 위한 만찬에 공연 예술가 올렉의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곧 야생 동물과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공격성이란 상대가 약하다고 느껴질 때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눈 근육이 조금만 흔들려도 이 야생 원숭이의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퍼포먼스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 나오고 올렉이 야생 원숭이를 연기하며 등장한다.

사람들은 흥미롭게 기대를 하는 한편, 마치 야생 원숭이의 먹잇감이 될까봐 두려운 듯 긴장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퍼포먼스가 진행될수록 올렉은 점점 폭력적이 되어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그의 타겟이 된 한 여자가 도와달라고 울먹이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올렉이 여자를 겁탈하려고 하자 그제서야 한 노신사가 달려오고 뒤따라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올렉을 저지한다.

이 에피소드는 관념적인 사회적 협약이 가진 힘과 방관자 효과라는 인간의 군중심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상적 관념에 사로잡혀 야생 짐승에 대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고 익명성이 보장될수록 어려움을 당한 다른 사람을 돕지 않고 방관하는 심리적 기제를 보인다.

현재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유럽의 이민정책에 무관심한 수많은 방관자들에게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러한 인간의 행동양식을 보여주며 그 패턴을 깨라고 일갈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

영화 스퀘어는 장장 2시간 22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짧은 내러티브를 겹겹이 두르며 관객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다가 결국 이 이야기의 본질이 인간의 불합리성이라는 불편한 진실임을 깨닫게 한다.

영화에 쓰인 음악 역시 절묘하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 반주를 스캣으로 부른 바비 맥퍼린의 음색에서는 허공에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가벼움을, 요요마가 연주하는 첼로의 깊고 낮은 선율에서는 진지함을 더해주며, 결말이 없는 각 시퀀스 말미에 음악을 삽입하여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본 후 밀려오는 피로감은 한 치의 낭비가 없는 감독의 완벽한 설정과 예리한 연출탓일까? 아니면 평범한 나의 일상이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까?

외스틀룬드 감독은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를 통해 현대 지식인의 모습을 신랄하게 해부하고, 그것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초상까지 함께 전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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