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윤
캐롤라이나 열린방송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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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 Moonlight, 2016)
감독: 베리 젠킨스
주연: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트 로즈

뒤바뀐 최우수 작품상
극작가 타렐 엘빈 맥그리니의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달빛 아래에서 검은 소년들은 푸르게 보인다) 』를 각색한 베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는 89회 아카데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와 최우수 남우조연상, 각색상, 그리고 영예의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상의 맞춤형인것 같았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제치고 흑인 감독의 독립영화 문라이트가 오스카상을 받은 것은 영화 역사상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시상식에서 실수로 수상자 봉투가 잘못 전달되어 수상작이 라라랜드로 호명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5분만에 실수를 바로잡고 최우수 작품상이 문라이트의 베리 젠킨스 감독에게 돌아갔지만, 최악의 해프닝으로 인해 이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의 의미가 반감되어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흑인으로서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베리 젠킨스 감독 ©Fortune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다
문라이트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흑인 감독이 수상한 최우수 작품상, 최초로 모든 출연진이 흑인 배우인 최우수 작품상, 최초로 LGBTQ 스토리 최우수 작품상, 그리고 최저 제작비의 최우수 작품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문라이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게이 소년인 샤이론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세 가지 시간대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1부: 리틀
마이애미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샤이론은 왜소한 몸집과 약한 힘 때문에 ‘리틀’이라고 불리며 아이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어느 날 다른 아이들에게 쫓기다가 사람이 없는 집으로 숨어 들어가 위기를 모면하는데, 그곳을 자신의 마약 창고로 쓰고 있던 마약거래상 후안이 샤이론을 보게 된다. 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샤이론을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먹이고, 자신의 여자친구 테레사에게 데려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샤이론의 집으로 데려다준다.
마약중독자인 엄마에게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샤이론에게 후안과 테레사는 고통과 외로움을 덜어주는 안식처가 된다.
어느 날 저녁 후안은 해변에서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는데 세상 한가운데서 믿음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수영을 통해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물 속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샤이론을 바라보며 말한다.
“언젠가 너는 네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할 때가 올 거야.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말아라.”

2부: 샤이론
고등학생이 된 샤이론은 여전히 주위의 또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마약중독이 더욱 악화된 어머니로 인해 정서적 균열이 깊어진 샤이론은 더욱 불안하고 말이 없고 날카롭다. 그의 안식처였던 후안도 이미 죽고 없었다.
어느 날 밤 샤이론은 어머니를 피해 무작정 기차를 타고 후안과의 추억들이 있는 바닷가에 간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샤이론을 자신만의 닉네임 ‘블랙’으로 부르던 유일한 친구 케빈을 만나게 되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샤이론은 마침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너무 울어서 어떨 땐 내가 물방울로 변할 것 같아.”라는 고백 뒤에 케빈과 샤이론은 야릇한 분위기에 빠지고 서로 입을 맞추게 된다. 케빈은 샤이론을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누군가의 애정어린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는 샤이론은 당황해서 케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샤이론을 늘 괴롭히던 테렐이 케빈에게 “게임을 하자”며 자신이 지목한 사람을 때려 눕히면 케빈이 이기고, 못하면 진다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그 표적은 샤이론. 테렐과 그 패거리들이 둘러싼 상황에서 케빈은 어쩔 수 없이 샤이론을 때려 쓰러뜨린다. 샤이론이 쓰러지자 테렐과 그 패거리들이 샤이론을 잔인하게 밟아버린다.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케빈에 대한 배신감과 테렐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샤이론은 마음의 상처와 억압된 분노가 폭발한다. 샤이론은 학교로 돌아가 자신을 두들겨 팬 테렐을 의자로 내려쳐서 쓰러뜨린다. 샤이론은 곧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고 케빈은 그 모습을 괴로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3부: 블랙
테렐을 폭행한 죄로 소년원에 간 샤이론은 감방에서 만난 지인의 소개로 출소 후 마약거래상이 된다. 30대 성인이 된 샤이론은 더 이상 유약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 아닌, 근육질의 몸매에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블랙’으로 불리며 위협적인 존재로 변해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편안하지 않고,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로 인한 트리우마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어머니를 재활원에 홀로 남겨두고 자신은 애틀랜타에서 마약 거래로 생활하던 어느 날 새벽, 샤이론은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시간이 되면 어미를 좀 만나러 와 다오.”
대충 전화를 끊고 자려 하니 다시 전화가 울린다. 짜증이 난 상태로 전화를 받으니 어머니가 아닌, 학창시절의 친구 케빈이었다. 케빈은 자신이 지금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며 자기가 일하는 식당으로 샤이론을 초대한다.
샤이론은 재활원에 찾아가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던 샤이론은 어머니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때 어머니가 말한다. “어린 시절 내가 너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은 전부 다 내 잘못이다. 그 때문에 네가 날 싫어하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미인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나처럼 잘못된 길을 걸어가선 안 된다. 네게 맞는 길을 찾아가거라.” 어머니의 진심어린 고백에 샤이론 역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용서한다.
어머니를 만난 후 케빈이 일하는 식당으로 간 샤이론은 10년만에 케빈과 재회한다. 과거의 유약한 모습이 사라져버린 샤이론을 보고 생경해하는 케빈이 샤이론에게 묻는다.
“넌 누구야, 샤이론?”
“나는 나야.”

나는 나야
영화 문라이트는 빈곤이나 범죄, 인종,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다.
10년만에 재회한 케빈이 옛날과는 완전히 변해버린 샤이론에게 던진 질문, “넌 누구야?”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 내면의 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1부 ‘리틀’에서 샤이론이 후안에게 ‘호모’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후안은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소년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를 권하지만,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 인식에 따라 샤이론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지 못하고 성장을 포기한다.
2부의 제목이 ‘샤이론’의 이름 그대로인 것은 첫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샤이론은 자신이 놓인 적대적인 환경을 부수고 나가 바깥 세상에서 자아를 찾으며 끊임없이 방황한다.
3부 ‘블랙’은 과거 잔인했던 자신의 환경과 경험에 대한 방어 메카니즘을 보여준다. 위협적인 외모와 힘을 기르는 모습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사회적 외압에 대한 방어적 투쟁이며, 사실은 그 단단해 보이는 갑옷 뒤에는 여전히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어휘가 부족한 약하고 부서질듯한 작은 아이가 있다.
샤이론 같이 수줍고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소년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며 스스로를 왜곡하고 심지어 금욕주의자가 된 모습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젠킨스 감독의 영화적 기교는 놀랄 만큼 감각적이고 감성적이며 강렬하다. 단순한 몸짓과 눈 깜박임으로 한편의 아름다운 시 같은 영화적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상주의적 색채의 시각효과와 촬영기법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인물들의 내면 세계를 응시하고 이들의 고통과 갈망을 관객들에게 전염시킨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예술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며 특히 마지막 케빈과의 재회에서 주크박스 씬은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하고 낭만적인 순간으로 손꼽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샤이론은 파란 달빛 아래서 뒤를 돌아본다. 샤이론의 가장 순수했던 영혼은 어둠 속 달빛 아래에서 아름답게 빛나며 이제 막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나서는 샤이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후안과 테레사의 보살핌과 사랑, 그리고 케빈과 함께 했던 서정적인 경험은 샤이론의 회귀 의지를 불러온다. 이들이 샤이론에게 전해준 사랑이 영화 문라이트가 비참함에 빠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새롭게 정의할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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