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안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갖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1952~ )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동인지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내 젖은 구도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
의 오지』,『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 혼자의 넓이』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내가 만난 시와 시인』,『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등이 있
다. 생태시 운동을 이끄는 시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히며, 김달진문학상, 시와
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모교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 시 해설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도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많은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가 꼭 사원이나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지 않아도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말없이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고,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며,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갖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죽음은 항상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가장 순수해지는 순간, 마음이 가장 간절해지는 순간,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몰입하는 순간은 다 기도하는 순간이고, 크고 넓은 품에 안겨, 생명의 발원을 상상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요.
아무쪼록 우리의 새로운 한 해가 아름다운 기도로 꽃 피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