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소와 송아지의 따뜻한 사랑 ©indulgy.com

소의 입장

아픔을 머금은 내 흰 피는
모두 어디로 흘러갔나?
우유라는 이름으로

불고기 육회 산적 너비아니 육포 장조림 떡갈비……
갈비탕 설렁탕 곰탕 내장탕 꼬리탕 사골탕……
스테이크 스튜 로스트 커틀릿 햄버그……

목심 등심 안심 채끝 우둔살
설도 사태 갈비 양지머리 앞다릿살
안창살 부챗살 살치살 업진살 토시살 치마살 제비추리

모두 인간들이 내 살과 뼈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고
입맛대로 조각조각 내 몸에 붙여준 이름이다

맞다, 인간들에게는
새김질하는 한 마리 소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한 뭉치 붉은 고깃덩어리

하지만 내게도
“음매”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엄마가 있고
“음매”하고 부르면 몸 부비는 아가가 있단다.

허영자 (1938~ ) 시인, 경남 함양 출생.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투명에 대하여』,『아름다움을 위하여』,『마리아 막달라』,『꽃 피는 날』등이 있다.

시 해설
한방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우유를 좋아하고 즐겨 마셨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그 중에서도 쇠고기를 가장 좋아하고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들은 소의 살과 뼈로 별의별 음식을 다 만들어 먹었습니다. 불고기 육회 산적 너비아니 육포 장조림 떡갈비 …… 갈비탕 설렁탕 곰탕 내장탕 꼬리탕 사골탕 …… 스테이크 스튜 로스트 커틀릿 햄버그 …… 목심 등심 안심 채끝 우둔살 설도 사태 갈비 양지머리 앞다릿살 안창살 부챗살 살치살 업진살 토시살 치마살 제비추리 …… 입맛대로 조각조각 소에 붙여준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유는 소가 송아지를 먹여 키우는 소의 흰 피 같은 액체입니다.
그리고, 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소에게도 “음매”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엄마가 있고, “음매”하고 부르면 몸 부비는 아가가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신축년 소띠 해입니다. 소띠 해를 맞이하면서 시인은 둔감한 우리에게 소의 입장이 한번 되어보라고 충격파를 던집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