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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차이를 인정하며 시작하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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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차이를 인정하며 시작하는 연합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성격 차이
새롭게 시작하는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주례사 중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연합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떠남에 이어 연합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연합의 과정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혼 사유의 50%를 훌쩍 넘어선 가장 많은 표면적 이유가 소위 ‘성격차이’다. ‘성격차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을 때부터 이미 전제된 것이다.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과 자라난 환경이 다르니 자신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는 더 많이 부딪치기 마련이어서 애초에 서로 끌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성격차이’를 운운하는 부부를 만났을 때, 그러면 자신과 똑같은 성격의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았겠느냐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No’이다.

목적지향적인 남자 vs 관계지향적인 여자
연합의 원리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배우자와 내가 서로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정생활과 인간관계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남녀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에서 진정한 연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녀의 차이에 관한 책의 고전이 된『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는 남자의 목적지향적 성향과 여자의 관계지향적 성향에 관한 비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자들은 목적을 성취해내는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정의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남녀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편들은 대부분 스포츠를 좋아한다. 이긴다는 목적이 분명하고 결과도 단순 명료하다. 3:0이든 2:4 든 결론이 분명하고 목적과 결과의 상관관계도 깔끔하다.
반면 대부분의 아내들은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삶과 관계들에 따라 울고 웃는다. 한 드라마 안에 몇 쌍의 커플이 존재하더라도 그들 사이의 모든 역동을 다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아내 옆에서 기웃거리며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던 남편들은 가끔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한다. “저 남자가 왜 저기 가 있지? 이 여자가 그때 그 여자야?” 아내들의 짜증 섞인 보충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남자 vs 관심을 바라는 여자
이런 차이에서 파생되는 남녀 차이의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해결 능력을 중시하는 반면, 여자들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 동안 크게 인기를 누렸던 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새로 페인트 칠한 집에 들어갔더니 머리가 너무 아파. 그런데 창문을 열어 놓자니 매연이 너무 심해. 창문을 열고 있어야 될까, 닫고 있어야 될까?”
이럴 때 남자들은 여자친구의 머리를 안 아프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매연을 마시는 것이 더 나을지, 페인트 냄새를 견디는 것이 더 나을지 고민하며 좀 더 효과적이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질문에서 여자들이 바라는 대답은 창문을 열거나 닫으라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자기, 괜찮아?”이다. 두통에 대한 해결책보다는 나에 대한 남자의 관심과 보살핌을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본능을 가진 남자들에게 여성들이 바라는 관심과 보살핌은 상황에 따라 너무 알쏭달쏭하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남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여자들은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가 있냐고 서운해 한다.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맞장구치기’이다. 남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내가 투덜거리면 바로 해답을 준다. 아내가 만약 누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서운해하면 “당신이 잘못한 게 있겠지” 한다. 일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 “그럼 때려쳐.” 한다.
“맞아, 당신 말이 이해가 가, 너무 화났겠다, 속상했겠다” 등등 여성들이 바라는 공감적인 대화는 남자들이 보기엔 결론이 없는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인정을 바라는 남자 vs 사랑을 바라는 여자
가정에서 남자가 원하는 것과 여자가 바라는 것도 다르다.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정과 감사와 격려이다. 잘했다고,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며 격려하고 인정해주는 말이 남편을 더 남편답게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듣고 싶어한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믿어준다며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면, 아내는 사랑이 식었다고 느낀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꾸 물으면, 남편은 불필요한 간섭으로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가끔이라도 말이 통하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이런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고치려고만 들면 연합은 고통스러운 전쟁이 되어 버린다.

한 몸이 되라는 연합의 명령은 서로 다름에서 시작된다. 차이가 없다면 굳이 연합을 강조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배우자를 다르게 만드셨다. 연합은 하나님의 명령이 필요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래서 가정생활은 지루하지 않다. 따라서 내 배우자와의 좁힐 수 없는 차이를 연합의 기쁨을 더하는 축복으로 받아들이자.